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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은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에서 동구권 국가들과의 교역이 가능한 한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독일에 적용하면 대단히 넓은 [실용]영역이 전개된다. 이 영역을 먼저 우리들의 가능성 및 한계들의 관점에 따라서 [시침바느질하듯] 길잡이가 되게 나누면(abstecken) 좋을듯하다. 내 생각에는 [이런 가능성들이] 지금까지 언급된 그 어떤 수보다 훨씬 더 크다. 앞에서 언급한 제한아래 동서교역의 강화가 서구의 이익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im Interesse des Westens) 게 틀림없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러면 그것은 또한 독일의 이익으로 해야 할 일이고, 독일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 때에 우리는, 익히 알려진 [조무래기의] 자세를 일컫는 잘 알려진 쾰른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고집을 피울(pingelig sein)1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정치의 목적은 물론 동독지역의(Zone) 협박일 수 없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정권은, 더군다나 동독지역에서와 같이 위협을 받은 정권은 경제관계들에 의해서 자신이 성격이 변경되게 내버려 둘 수 없다.2 [그런 변화를 반대급부로 요구해야 한다고 하지만](aber) 그것은 엄밀하게 따져보면 폴란드에 신용대출을 할 때 미국도 요구하지 않았고 그게 또한 강화된 동구권교역을 원하는 미국이 뜻하는 바(Sinn)도 아니었다.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에선(uns) 먼저 인간이 문제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인간의] 상황을 편하게 하는 생각가능하고 책임질 수 있는 모든 시도를 철저하게 다 이용하는 게 문제가 되어야 한다. 물질적인 개선은 [아마] 동독지역에서(Zone) 긴장완화의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보다 더 강화된 소비품공급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소련에서 소비욕구가 불어나 긍정적인 효과에 기여했다. 이게 동동지역에서는 (Zone) 아니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련은 서구를 따라잡고 추월하겠다는 목표로 [서구와의 경쟁에] 나섰다. 다른 영역이 아니라 서구가 가장 강한 생활수준의 영역에서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이야말로 필경 서구를 모범으로 삼고 서구의 능력에 눈을 맞추고 있다는 건 차치하더라고 이런 정책이 동구권에서 동독(Zone)만을 제외할 수 없다는 건 명료하다. 생활수준의 향상 과정을 가속하는 건, 이를 통해서 다층적인 종류의 편익이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강화된 경제관계로 강화된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이익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그럼 [그런 편익이 제공됨으로써] [동독의] 동포들의 [동독 정권에 대한] 불만족이 느슨해지지 않나하는 [그래서 분단이 영구화되는]걱정까지 할 수 있겠다. [잘못된 생각이다.] 역으로(aber) 바로 그게 바람직한 것이다. 바로 그게 통일과정에서 통제 불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결과 [상황을] 필연적으로 [통일의] 후퇴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요소가 누락되는 또 다른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편익으로] [동독] 정권을 지원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aber) 나는 바로 [동독] 정권붕괴를 통해서는 실천가능한 길이 전혀 없다는 걸 [증명하는 논리의] 개발을 시도했다. 나에게는 오직 소련의 이익을 고수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소련의 개입을 불러일으킬 혁명적인 격변의 위험이 수반되지 않게 극소량의 분량으로 생활고를(Erleichterung für die Menschen/여태 편익으로 번역함) 덜어주는 좁은 길만 보일 뿐이다.
연방정부는 최근 정부성명에서 ‘[우리는] 동독지역의(Zone) 형제[자매]들이 [우리의 협상요구에]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응할 수 있다면, 많은 것에 관한 대화의 창구가 될(mit sich reden lassen)’ 준비가 되어있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이때 인도적인 고려가 민족적인 고려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나의 상술을 이런 맥락의 토론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아차리고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장벽이 약함의 증후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게 공산주의 정권의 불안과 자기보존의 증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전적으로 정당한 [동독정권의] 근심걱정을 점진적으로, 동독이 보기에 [서독과의 협상이 수반하는] 위험이 감수할 만하기 때문에, [동독의 동의하 철통같은] 경계와 장벽의 완화가(Auflockerung) 실천가능하게 될 때까지 덜어주는데 있다. 이것은 접근을 통한 [점진적] 변화라는 말로 축약될 수 있는 정책/정치다. 나는 우리가 이런 정치/정책을 아무런 환상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자부심이 있다고 굳게 확신한다. 나아가 이런 정치는 평화전략이라는 서구 구상에 꽉 들어맞는(nahtlos) 정치라고 확신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적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이건 정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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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독지역(Zone)에서의 변화는 매우 어렵게 달성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동독은 정치적인 발전 면에서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소련보다 더 낙오해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울브리히트가 권력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지막 스탈린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러기 때문이었다. 1953년의 경험들은 크레믈린이 보기에 동독지역에서(in der deutschen Zone) 사람들에게 편익을 허용하면 그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었다. 이건 바로 갈라진 민족의 한쪽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폴란드 혹은 소련 등과 달리 사회적 경제적인 요구들이 곧바로 [서독으로 가자는]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요구들로 전복되기 때문이다. [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과 비교해서 뚝 떨어지기 [때문에] [동독사람들이]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쏠리는 것은 [직관적인] 현실이다 (Das Gefälle zur Bundesrepublik ist da/동독사람들이 서독으로 쏠리게 하는 낙차가 있다.). 그리고 이런 낙차(落差)는 18년간의 공산주의 지배로 제거될 수 없었다. [생산]목표량(Normen)을 더 적게 하라는 요구에서 [출발한] 1953.6.16 [의 봉기가] 스탈린알레(Stalinallee/도로명)에서 [포츠담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재무부(Haus der Ministerien)로 가는 도중에 자유선거를 실시하라는 요구가 되었다. 울브리히트 정권은 고삐를 놓치고, 오직 소련 전차의 힘을 입어 다시 장악할 수 있었다. 결과는 울브리히트의 지위 강화였다.
동독지역을(Zone) 소련 영향권에서 낚아챌 수 없다는 게 틀림없다면, 나는 그리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저쪽 정권의 직접적인 붕괴를 지향하는 모든 정책이 아무런 가망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결론은 우리의 분통을 터뜨릴 만금 불편하고 우리 감정에 거슬리지만 논리적이다. 이 결론은 변경과 [그 결과로서의] 변화(Änderungen und Veränderungen)는 오직 현재 저쪽에서 지배하는 혐오스러운 정권을 [전재로 하여] 출발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듣기보다 그리 깜짝 놀라고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엄격하게 음미해보면(schliesslich) 우리는 이미 이 정권과 상당기간동안 관계를 갖고 있고 나아가 [들킬까봐 두려워 직접 하지는 못하고 뒤로 호박씨 까듯이] 슬그머니(verschämt) 신탁소라는 걸 차려서 [동서독] 지역 간의 교역(Interzonenhandel)을 [대행하도록 하는 걸] 지지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아주] 자연적으로 아직 현존하는 경제적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의 단절로 동독지역(Zone)이란 구성체(das Gebäude der Zone)의 붕괴가 [생각]가능하지 않을까 저울질 해보는 충동이 솟아오른다. 여기다 한술 더 떠 의도적으로 추진된 상황악화를 통해서 그 구성체가 붕괴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론적인 생각에 매달리고 몰두할 수도 있겠다. 냉정한 저울질은 이런 생각의 전면 거부로 이어진다. 경제적 어려움이 어쩌면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동독지역(Zone)에 살면서 [동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교역을 중단하라, 우리는 기꺼이 허리띠를 더 졸라맬 거다.’라는 선의의 조언들은 유감스럽게도 앞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경험] 바로 그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긴장 증대는 울브리히트를 강화하고 분단의 골을 깊게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저런 입장이 베를린이 처해 있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저런 입장에 대한] 다음 반증은 우리[모두]가 정당하게 동독지역(Zone)의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얻은 결론이다. 나는 동독 인정을 둘러싼 논쟁을 때때로 협소하다고, 나아가 다분히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류의 논쟁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서 [결국 어떠한 정책도 취할 수 없게] 정치 [자체]를 망쳐놓을(jegliche Politik verbauen) 수 있기 때문이다. 동독지역(Zone)을 자주국가로 인정하는 걸 거부하는 자명하고 어느 누구도 문제시 삼지 않는 행위가 우리를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수년 동안 적(赤)중국(Rotchina)과 미국의 대사들이 제네바와 바르샤바에서 협상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적중국을 인정했다거나 아니면 그런 대화가 인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독일민주공화국 -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았다1 - 의 내무부 장관이 베를린에 주둔한 연합군에게 1961.8.13일자로 모든 통로를 통해서 베를린동부지역에 출입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 행사하는 걸 금지하고, 오늘날의 체크포인트 찰리의 통로로만 제한했다. 연합군이 이 지시에 따랐을 때 아무도 그게 ‘DDR’의 인정 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또한 동독지역(Zone)의 군대[=동독군]이 모든 법을 어기면서 동베를린에 진입하여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 군에 맞서 이들이 앞의 지시를 따르도록 했을 때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 동독이탈자가 슈프레 강을 수영하여 도주할 때 총격을 받으면 혹은 동독 이탈자를 실은 버스가 복잡하게 구축해 놓은 진입방해시스템(Slalomsystem)에 걸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차안의] 사람들이 총격을 받으면 이건 어디까지나 범죄행위의 사건이다. 그렇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 경찰은 응사해서는 안 되고 이런 범죄행위를 저지하게 위해서 그 무엇을 해서도 안 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이것이야말로 가장 조야한 인정의 형식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연방경제부장관과 베를린 시장의 위임으로 [활동하는] 협상대표가 있다. 저쪽의 위임자와 수년 전부터 협상하고 있는 레오폴드 박사다. 이것 역시 인정이 아니다. 아무튼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내독 통과검문소] 퇴펜, 마리엔보른, 혹은 라우엔부르크에서 통행료를 지불하고 [검문소의] 신분증 투입구에 신분증을 내밀고 뒤에서 이루어지는 신분조사에 응한다고 해서 울브리히트 정권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른 길들이[육로가]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즉 울브리히트 정권의 압류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항공을 사용하라고 권하면 이것 역시 인정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동독인정이 아니라면] 독일연방공화국이 판코우(Pankow/동독수뇌부거주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국가와 외교관계를 끊으면 이건 더욱더 인정이라 할 수 없다. 기껏해야 인정의 부정형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저런 강제정권의 법적인 인정과 실증된 정당성을 밑도는 차원에서 [이미] 수많은 것들이 우리가 접하는 현실에서(bei uns) 통용되고 있고, 그 [강도는] 그런 형식들을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유리한 쪽(Sinn)으로 사용 가능하게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레오폴드 박사가 혹은 다른 사람이 [동서독] 지역 간의 교역뿐만 아니라 양독일 간의 실천적인 이익과 관련이 있는 모든 문제를 다루는 당국의 수뇌로 승격된다고 해도 나는 거기서 현재상황의 실질적인 변경을 볼 수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동서] 지역간 교역을 위한 신탁소(Treuhandstelle füer Interzonenhandel)가 이미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없이(ja) 오직 무역문제만을 따로 다루지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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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을 통한 변화
(1963.7.15 독일개신교 아카데미 투찡에서의 에곤 바르의 발제)
최근에 통일 주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한보따리 있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연을(Korreferat) 하지 않고 단지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깨달은 점(Anmerkungen)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이것들은 [다른 방향으로의] 토론을 자극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고 우리가 지금까지의 입장을 계속하면 과연 통일정책의 전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회의와 통일정책을 가능한 한 선입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롭게 두루 생각해야(durchdenken) 할 때가 되었고 이게 우리의 의무라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로운 통일정책은] 물론 베를린문제가 따로 해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독일문제가 동서대립의 일부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독일인이 한 [협상]테이블에 모여서’(Deutsche an einen Tisch)라는 구호는 [얼핏 독일분단 극복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항상 독일분단의 인정에 기여하는 구호일 뿐이었다. 소련이 아직 예전과 다름없이 동독을 [소련]방위의 완충지역으로(Glacis) 꽉 붙들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베를린에 민주주의자가 앉아있다고 이론적으로나마 상상해 보자. 이때 곧바로 분명해지는 것은 통일은 오직 독일인의 일이라는 소련의 [민주주의 원칙을 준수하는] 테제가 동베를린에서의 소련 총독의 지배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의 전제조건들은 오로지 소련과 함께 마련될 수 있다. 통일은 동베를린에서 얻을 수 없고, 소련에 대항하여 , 소련을 제쳐놓고 얻을 수 없다. 어찌되었든, 동베를린과 협력해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결국 소급되는 관념들을 개발하는 사람은 환상에 매달려 있는바, 20 혹은 22개의 잘 무장된 소련 사단들이 [동독에] 주둔해 있음을 생생하게 그려보기 바란다.
통일은 외교적인 문제다. 이것은 수많은 결의와는 모순되지만, 독일연방정부 산하 전독일문제부가 아니라 외무부가 통일문제덩어리를 소관하고 있다는 건 현실적인 상황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이런 소관분담이 DDR[동독 약자]의 인정을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하게끔 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의 평화전략은 공산주의 지배는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변화되어야 한다는 문구로 정의될 수 있다. 미국이 시도하기 원하는 동서관계의 변화는 우선 현상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음으로써 궁극적으로 현상 극복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이것이, 지금까지의 압력과 反압력의 정치가 단지 현상의 경직만을 야기하고 난 이후에, 새로운 전망을 개시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 좋고 평화적인 의미에서 더 강한 세계라는 확신이 자신과 다른 쪽이 문을 열고, 지금까지의 [동독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해방관념을 보류하는 시도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문제는 이런 구상에서 특별한 독일 과제가 있는지 아닌지 그 여부에 있다.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동서관계의 발전에서 배제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런 틀 안에서 오직 독일인만이 실현할 수 있는 과제가 있다. 왜냐하면 민족이 분단된 우리는 유럽에서 유일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평화전략을 독일에 적용하여 얻게 되는 첫째 결론은 다 아니면 무(無)라는 정치를 [배설하듯] 버리는 것이다. 자유선거 아니면 무, 전독일의 자유결정권 아니면 완강한 아니요, 첫걸음으로 선거 아니면 거부, 이런 모든 것들은 구제불능의 옛것이고 비현실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평화전략[이라는 맥락]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sinnlos) 것이다. 오늘날에 분명한 것은 통일이란 어느 역사적인 회담에서, 역사적인 어느 날, 어느 한 역사적인 결의로 한꺼번에 완성되는 한 번의 행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많은 발걸음과 수많은 단계를 수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른 쪽의 이익도 역시 인정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케네디의 말이 옳다면, 소련은 분명 동독이(Zone=소련 관할 지역) 서구의 역량 강화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빼앗기는 걸 가만두고 볼 수 없다. 동독(Zone)은 소련의 동의아래 형상을 바꿔나가야 한다. [소련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면] 우리는 통일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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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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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건을 번역하게 된 동기는 우선 ‘접근을 통한 변화’ 전문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데 있다. 궁극적으로는 전후 20세기 유럽역사를 서구의 사민주의와 동부권의 실존 사회주의 간의 대립으로 이해하고 일단 전자가 승리했다는 인정과 인식아래 그 사상의 기조를 분석해 보는데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접근을 통한 변화’는 기독교적인 사상과 인본주의가 농후한 사상을 기조로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한반도의 통일에서는 한국의 기독교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지 않나 질문해 본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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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란 실명으로 실체가 호명되는 기독교가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