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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접근을 통한 변화' - 2

하지만 동독지역(Zone)에서의 변화는 매우 어렵게 달성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동독은 정치적인 발전 면에서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소련보다 더 낙오해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울브리히트가 권력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지막 스탈린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러기 때문이었다. 1953년의 경험들은 크레믈린이 보기에 동독지역에서(in der deutschen Zone) 사람들에게 편익을 허용하면 그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었다. 이건 바로 갈라진 민족의 한쪽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폴란드 혹은 소련 등과 달리 사회적 경제적인 요구들이 곧바로 [서독으로 가자는]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요구들로 전복되기 때문이다. [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과 비교해서 뚝 떨어지기 [때문에] [동독사람들이]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쏠리는 것은 [직관적인] 현실이다 (Das Gefälle zur Bundesrepublik ist da/동독사람들이 서독으로 쏠리게 하는 낙차가 있다.). 그리고 이런 낙차(落差)는 18년간의 공산주의 지배로 제거될 수 없었다. [생산]목표량(Normen)을 더 적게 하라는 요구에서 [출발한] 1953.6.16 [의 봉기가] 스탈린알레(Stalinallee/도로명)에서 [포츠담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재무부(Haus der Ministerien)로 가는 도중에 자유선거를 실시하라는 요구가 되었다. 울브리히트 정권은 고삐를 놓치고, 오직 소련 전차의 힘을 입어 다시 장악할 수 있었다. 결과는 울브리히트의 지위 강화였다.

 

동독지역을(Zone) 소련 영향권에서 낚아챌 수 없다는 게 틀림없다면, 나는 그리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저쪽 정권의 직접적인 붕괴를 지향하는 모든 정책이 아무런 가망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결론은 우리의 분통을 터뜨릴 만금 불편하고 우리 감정에 거슬리지만 논리적이다. 이 결론은 변경과 [그 결과로서의] 변화(Änderungen und Veränderungen)는 오직 현재 저쪽에서 지배하는 혐오스러운 정권을 [전재로 하여] 출발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듣기보다 그리 깜짝 놀라고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엄격하게 음미해보면(schliesslich) 우리는 이미 이 정권과 상당기간동안 관계를 갖고 있고 나아가 [들킬까봐 두려워 직접 하지는 못하고 뒤로 호박씨 까듯이] 슬그머니(verschämt) 신탁소라는 걸 차려서 [동서독] 지역 간의 교역(Interzonenhandel)을 [대행하도록 하는 걸] 지지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아주] 자연적으로 아직 현존하는 경제적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의 단절로 동독지역(Zone)이란 구성체(das Gebäude der Zone)의 붕괴가 [생각]가능하지 않을까 저울질 해보는 충동이 솟아오른다. 여기다 한술 더 떠 의도적으로 추진된 상황악화를 통해서 그 구성체가 붕괴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론적인 생각에 매달리고 몰두할 수도 있겠다. 냉정한 저울질은 이런 생각의 전면 거부로 이어진다. 경제적 어려움이 어쩌면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동독지역(Zone)에 살면서 [동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교역을 중단하라, 우리는 기꺼이 허리띠를 더 졸라맬 거다.’라는 선의의 조언들은 유감스럽게도 앞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경험] 바로 그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긴장 증대는 울브리히트를 강화하고 분단의 골을 깊게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저런 입장이 베를린이 처해 있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저런 입장에 대한] 다음 반증은 우리[모두]가 정당하게 동독지역(Zone)의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얻은 결론이다. 나는 동독 인정을 둘러싼 논쟁을 때때로 협소하다고, 나아가 다분히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류의 논쟁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서 [결국 어떠한 정책도 취할 수 없게] 정치 [자체]를 망쳐놓을(jegliche Politik verbauen) 수 있기 때문이다. 동독지역(Zone)을 자주국가로 인정하는 걸 거부하는 자명하고 어느 누구도  문제시 삼지 않는 행위가 우리를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수년 동안 적(赤)중국(Rotchina)과 미국의 대사들이 제네바와 바르샤바에서 협상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적중국을 인정했다거나 아니면 그런 대화가 인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독일민주공화국 -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았다1 - 의 내무부 장관이 베를린에 주둔한 연합군에게 1961.8.13일자로 모든 통로를 통해서 베를린동부지역에 출입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 행사하는 걸 금지하고, 오늘날의 체크포인트 찰리의 통로로만 제한했다. 연합군이 이 지시에 따랐을 때  아무도 그게 ‘DDR’의 인정 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또한 동독지역(Zone)의 군대[=동독군]이 모든 법을 어기면서 동베를린에 진입하여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 군에 맞서 이들이 앞의 지시를 따르도록 했을 때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 동독이탈자가 슈프레 강을 수영하여 도주할 때 총격을 받으면 혹은 동독 이탈자를 실은 버스가 복잡하게 구축해 놓은 진입방해시스템(Slalomsystem)에 걸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차안의] 사람들이 총격을 받으면 이건 어디까지나 범죄행위의 사건이다. 그렇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 경찰은 응사해서는 안 되고 이런 범죄행위를 저지하게 위해서 그 무엇을 해서도 안  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이것이야말로 가장 조야한 인정의 형식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연방경제부장관과 베를린 시장의 위임으로 [활동하는]  협상대표가 있다. 저쪽의 위임자와 수년 전부터 협상하고 있는 레오폴드 박사다. 이것 역시 인정이 아니다. 아무튼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내독 통과검문소]  퇴펜, 마리엔보른, 혹은 라우엔부르크에서 통행료를 지불하고 [검문소의] 신분증 투입구에 신분증을 내밀고 뒤에서 이루어지는 신분조사에 응한다고 해서 울브리히트 정권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른 길들이[육로가]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즉 울브리히트 정권의 압류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항공을 사용하라고 권하면 이것 역시 인정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동독인정이 아니라면] 독일연방공화국이  판코우(Pankow/동독수뇌부거주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국가와 외교관계를 끊으면 이건 더욱더 인정이라 할 수 없다. 기껏해야 인정의 부정형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저런 강제정권의 법적인 인정과 실증된 정당성을 밑도는 차원에서 [이미] 수많은 것들이 우리가 접하는 현실에서(bei uns) 통용되고 있고, 그 [강도는] 그런 형식들을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유리한 쪽(Sinn)으로 사용 가능하게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레오폴드 박사가 혹은 다른 사람이 [동서독] 지역 간의 교역뿐만 아니라 양독일 간의 실천적인 이익과 관련이 있는 모든 문제를 다루는 당국의 수뇌로 승격된다고 해도 나는 거기서 현재상황의 실질적인 변경을 볼 수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동서] 지역간 교역을 위한 신탁소(Treuhandstelle füer Interzonenhandel)가 이미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없이(ja) 오직 무역문제만을 따로 다루지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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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수구꼴통 언론사 슈프링어는 동독을 표기할 때 항상 인용부호를 사용하였다. 'DDR' 이런 식으로 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