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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정리.
국정농단 파문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國基)문란 행위”라고 했다.
“문건 외부 유출”을 정확하게 음미하기 위해서는 개념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국가행정은 투명해야 한다. 공화국 이념이 요구하는 사항이다. 그러나 대외관계에서, 특히 적대적 관계에 있는 국가와의 협상에서 외부에 알리지 않는 일이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양국체제 하의 독일이 분단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들이 있었다. 누가 누구를 언제 만났는지는 알려졌지만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함구했다. 말 그대로 함을 만들어 봉쇄하고, 거기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못하게 했다. 함구했다. 침묵으로 일관했다.
개념사용이 엄밀한 로마사람들은 이를 두고 arcanum이란 말을 사용했다. arcanum은 arca에서 파생된 낱말이다. arca는 함에서 국고란 의미까지 있다. 그래서 arcanum은 함부로 꺼내다 쓸 수 없는, 함으로 봉쇄된 내용[물]이란 의미가 있다.
국정에 대한 함구물설은 민주 및 공화 이념이 요구하는 투명성과 공중(Öffentlichkeit, publicity)의 요구에 대립한다. 이 모순을 참을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는 오직 침묵하는 가운데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성찰이 가능하다는데 있다. 이 성찰은 현재의 연속으로서의 미래를 지양하고 현재의 꽉막힌 상황에 틈을 주고 현재와 다른 미래를 지향하는 성찰이다.
한반도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국정원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 대화록을 공개한 것은 이런 침묵에 역행하는 떠벌이였다. 정치권의 아타가 서로 침묵하고 성찰하는 가운데 분단상황 극복으로 향하는 길을 닦았던 독일에서 볼 수 없었던 작태였다. 떠벌임으로서, 그것도 왜곡하여, 성찰을 불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현황을 완고하게 하는 물타기였다.
이런 국정상 함구된 내용을 국가기밀이라고 하자. 더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국가기밀의 대상은 내용이지 객관적인 사실 – 예컨대 누가 누구를 언제 만났는지 – 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이 회담에서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구상이 논의된 것도 보도되었다. 이 회담에서 어떤 가능성이 타진되었는지, 어떤 가정이 가능했는지는 그 내용이야 어떠했든 함구해야 할 내용이었다. 이북에 대한 이남의 갈라진 심성상 시끄러움만 야기할 뿐 새로운 장을 탐색하는 미래 지향적 성찰을 불가능하게 할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국가기밀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만나면서 만난 사실 그 자체를 은폐하는 일이다. 이를 두고 로마인은 ‘secretum’이라고 했다. 행여 제3자가 알까봐 제3자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만나는 일이다. 이걸 비밀이라고 하자.
이때 이야기되는 내용은 “찌라시”일 수밖에 없다. 제3자의 눈을 피해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어찌 정정당당할 수 있겠는가? 국가기관이 이런 비밀을 생산할 경우 청부살인에 – 예컨대 김대중 살인명령 – 비롯해서 자기 이권을 챙기려는 회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박근혜 정부의 문제
우선 개념이 없다. “문건 외부 유출”이라 하면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지만 사실 국가기밀과 반듯이 밝혀져야 하는 비밀을 혼합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 박정희 독재와의 단절과 계승의 모순에서 국정원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회동한 비밀이 박근혜 정부의 기밀이기 때문이다. 더렵혀진 눈으로는 자기자신의 더러움을 볼 수 없다. 공중의 빛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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