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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19
    수동 변증법 (3)
    ou_topia
  2. 2012/02/13
    National - Nationell
    ou_topia

수동 변증법 (3)

앞에서 한국 진보.좌파의 퇴행을 “체계들의 차례”(Serie der Ordnungen, 자본론 제2판 후기)를 단절1로 대신한 좌파의 망각의 정치에 있다고 진단했다.

 

어제오늘의 생각이다. 새누리당의 약진, 홍준표 경남지사가 야기한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 인성교육진흥법 등 최근의 일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이곳 블로거 예술인생님이 늘 지적하는 점이긴 하지만.

 

참세상 김용욱 기자의 보고서 “계급정당 이번엔 건설할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더 정확하게 애기할 수 있게 되었다.

 

[노힘은]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 등 민족-통일 운동진영과는 선을 그었다.” 이 한마디에 속이 쓰리다. 이 말이 함축하는 내용을 완미하진 못하지만 모종의 단절을 감지하고, 이 느낌의 근거를 제시해 보려고 한다.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 계급정당 추진위원회(추진위)’는 제도권 내 진보세력=정의당를 비판하는 가운데,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대중운동 조직에 사회주의 정치를 드러낼 공간[] 확보”를 제시하지만, 양자 모두 단절이란 범주안에서의 정치세력화의 노력으로 분석될 수 있다. 잘될리가 없다.

 

진보.좌파는 자의 반 타의 반 종북몰이에 걸려 목욕통의 꾸정물과 함께 아이를 내버리듯이 (독일 속담: das Kind mit dem Bade ausschütten) ‘민족’을 내버렸다. 내버리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의식의 장에 출현한 의식 내재적 사건은 밖으로 쫓겨나지 않는다. 의식의 장에서 축출된 것(: Verdrängtes)은 결코 축출되지 않고 음영의 삶을 살면서 필연적으로 회귀하게 되어 있다. 병적인 모습으로. ‘민족’을 ‘더러운 꾸정물’로 취급하고 그것을 ‘북한’과 연계시켜 잘라냈다. ‘민족’을 추방할 수 있는 외국인으로 취급했다. 북한 삼대세습 독재하의 인권유린을 두고 어찌 그리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리하여 모순을 담아내는 능동 변증법이 아닌 배후에서 작동하는 수동 변증법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아이는 내버려지고 꾸정물만 남게되었다.

 

이 꾸정물 ‘민족’이 새누리당의 서식지다. 이 서식지 생성에 ‘민족’을 발견적인, 인식을 돕는 개념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진보.좌파의 결함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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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서 단절은 역사의 단절로서 “성찰적 문제의식[의] 부재”(참조: 예술인생, 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search/%EB%8B%A8%EC%A0%88)를 거쳐서 “심화되면 망각”의 지경까지 이르는 망각의 정치란 의미로 사용한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National - Nationell

유럽, 아니 독일, 아니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좌파는 „Nation“하면 안색이 달라진다. „나찌“가 „나찌오날쏘찌알리스무스/Nationalsozialismus“의 „Nation/나찌온“을 줄인 말이니 안색이 달라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좌파가 아니더라도 „Nation“하면 기색이 별로 좋지 않거나 쓸데없는 말을 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아무튼 많은 독일인은 „Nation“과 아직 불편한 관계에 있다 (통동후 2000년대에 들어와서 그 관계가 좀 풀렸다는(entspannt) 이야기도 있다.)

근데 독일의 이런 상황이 80년대 한국의 사회운동을 독일에 소개하는 걸 어렵게 했다. 특히 NL계열의 민족주의를 좌파에 소개하는 것이 그랬다. 장황한 설명이 항상 필요했다. 그리고 번역부터 문제가 되었다.

„민족“을 „Nation“으로 번역해야 하나? „Nation“이 국수주의라는 함의로 넘어서 바로 „나찌“로 연결되는 독일 좌파의 풍토에 NL이 말하는 „민족“을 „Nation“으로 번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중에 민중신학을 통해서 독일개신교 주변에 먼저 알려진 민중개념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독일말에는 „national“과 유사한 „nationell“이란 형용사가 있다. 요새 쓰지 않는 말인데 독일 현시대 작가 보토 슈트라우스(Botho Strauss)의 책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어떤 책이었는지 깜깜하다. 다만 보토 슈트라우스에 퐁 빠져 있을 때였고, 독일 전통좌파를 까는 맥락이었다고 어렴풋이 기억된다. 떠돌이(생활?)에 지쳐서 그랬는지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였다. 아도르노의 „최소한의 도덕“의 미시적인 정확함과 노발리스의 간결함이 어우려진 글 때문에 퐁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nationell“이란 낱말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나중에 횔더린이 1801년 12월 4일, 그러니까 걸어서 근 600km떨어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나기 며칠을 앞두고 뵐렌도르프에 쓴 편지에서 사용한 낱말이란 걸 알게되었다.

횔더린은 이 편지에서 „nationell“을 „eigen“과 같고 „fremd“에 대비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eigen“은 ‚몸에 베어있는, 토속/토향적인 것’이란 의미로 „fremd“는 ‚외래적인 것’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횔더린이 살펴보는 ‚토속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의 변증법을 떠나서 „nationell“이란 것의 의미가 명료하고 정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인터넷을 헤매다가 이 두 단어를 설명하는 일간지 „taz“의 블로그를 검색하게 되었다 (http://blogs.taz.de/wortistik/2007/06/18/nationell/). 주지하다시피 „taz“는 70-80년대 베를린 크로이쯔베르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안운동 세력이 주체가 되어서 만들어진 신문이다. 데틀레프 귀어틀러(Detlef Guertler)란 블로거는 „nationell“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nationell“은 „national“과 비교해 볼 때 본질적으로 열광적이지 않고 „국가긍지/Nationalstolz“나 „국가대표팀/Nationalmannschaft“ 등과 같은 복합명사의 일부로 사용될 수 없고, 오로지 형용사로만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national“이란 형용사는 „Nation“이 2격으로 사용되는 곳에서만, 예컨대 ‚Mannschaft der Nation’을 ‚Nationalmannschaft’란 복합명사로 줄이는 형식으로만 사용될 수 있고,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nationell“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Küche der Nation/민족의 부엌/요리/맛’이란 표현에 기댄 „Nationalküche“(‚민족요리’)란 표현은 있을 수 없고, 다만 „nationelle Küche“(‚익숙한/몸에 베어있는/토속/토향적인 맛’)이란 표현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nationelles Klima“(‚전형적인 기후’), „nationelle Sprache“(‚독일 (땅)에서 자라 통용되는 독어’) 등의 표현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근데 „nationell“의 함의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마지막에 가서 설명된다. „taz“지가 만들어진 배경에 주목하면서 „taz“는 „nationelle Zeitung“(‚(출신 배경이 정확하고 자력으로 자라난) 토속적인 신문’)이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 전역에서 구독되고 „Zeitung für Deutschland“(‚독일을 위한/대표하는 신문’)이라고 자긍하는 „FAZ“지는 ‚nationale Zeitung’('범국가적인/민족적인(?) 신문')이 될 수야 있겠지만, 정체가 (누가 돈줄을 대고 어떤 이데올로기에 속하는지가) 분명한 „nationelle Zeitung“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nationell“에는 행위주체가 분명하고 정확하게 스며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족민주주의의 „민족“을 „Nation“으로 번역할 수 없었는데 그럼 이제 „nationell“은 어떻게 번역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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