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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한국 진보.좌파의 퇴행을 “체계들의 차례”(Serie der Ordnungen, 자본론 제2판 후기)를 단절1로 대신한 좌파의 망각의 정치에 있다고 진단했다.
어제오늘의 생각이다. 새누리당의 약진, 홍준표 경남지사가 야기한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 인성교육진흥법 등 최근의 일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이곳 블로거 예술인생님이 늘 지적하는 점이긴 하지만.
참세상 김용욱 기자의 보고서 “계급정당 이번엔 건설할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더 정확하게 애기할 수 있게 되었다.
“[노힘은]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 등 민족-통일 운동진영과는 선을 그었다.” 이 한마디에 속이 쓰리다. 이 말이 함축하는 내용을 완미하진 못하지만 모종의 단절을 감지하고, 이 느낌의 근거를 제시해 보려고 한다.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 계급정당 추진위원회(추진위)’는 제도권 내 진보세력=정의당를 비판하는 가운데,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대중운동 조직에 사회주의 정치를 드러낼 공간[의] 확보”를 제시하지만, 양자 모두 단절이란 범주안에서의 정치세력화의 노력으로 분석될 수 있다. 잘될리가 없다.
진보.좌파는 자의 반 타의 반 종북몰이에 걸려 목욕통의 꾸정물과 함께 아이를 내버리듯이 (독일 속담: das Kind mit dem Bade ausschütten) ‘민족’을 내버렸다. 내버리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의식의 장에 출현한 의식 내재적 사건은 밖으로 쫓겨나지 않는다. 의식의 장에서 축출된 것(독: Verdrängtes)은 결코 축출되지 않고 음영의 삶을 살면서 필연적으로 회귀하게 되어 있다. 병적인 모습으로. ‘민족’을 ‘더러운 꾸정물’로 취급하고 그것을 ‘북한’과 연계시켜 잘라냈다. ‘민족’을 추방할 수 있는 외국인으로 취급했다. 북한 삼대세습 독재하의 인권유린을 두고 어찌 그리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리하여 모순을 담아내는 능동 변증법이 아닌 배후에서 작동하는 수동 변증법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아이는 내버려지고 꾸정물만 남게되었다.
이 꾸정물 ‘민족’이 새누리당의 서식지다. 이 서식지 생성에 ‘민족’을 발견적인, 인식을 돕는 개념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진보.좌파의 결함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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