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언어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4/09/18
    번역: 칼 크라우스의 "언어" - 싸가지론 논쟁에 대한 단상을 대신하여
    ou_topia
  2. 2014/03/05
    번역이란? -2
    ou_topia

번역: 칼 크라우스의 "언어" - 싸가지론 논쟁에 대한 단상을 대신하여

언어의 형태(Gestalt)가 아니면 의미전달(Mitteilung)에 입각하여 언어에서의 말의 가치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둘 다 [언어를 사용하는] 탐구수단에 의해서 [언어란] 질료의 일부가 되지만, 그 어는 점에서도 공통의 인식으로 만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시구의 청진과 언어사용의 퍼켜션 사이에는 말에 포함되어 있는 수많은 세계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위의 두 갈래 시도에서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을 구별하는 일은 둘 다 언어란 유기체와 동일한 관계에 기반하고 있다. 왜냐하면, 언어의 모든 영역에서, 시편에서 시작해서 지역보도기사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자연법칙성이 의식(Sinn)에 의미(Sinn)를 매개하기 때문이다. [언어의 입자인] 불변화사가 논리적인 전체를 포괄한다는 규범을 관통하는 것은 저 자연법칙성 외의 그 어떤 원소(Element)도 아니며, 어떻게 한없이 한찮은 것을 위해서 한 시구가 피어나고 시들어지는지 그 비밀을 관통하는 것 역시 저 자연법칙성일 뿐이다.  

 

최근의 언어학은 [언어의] 규칙성을 넘어서 창조적인 필연성을 인정하는데까지 왔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창조적인 필연성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Sprachwesen)과의 연관을 알아차리고 읽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규칙성에서도 [언어의] 정형과 기형을 기록하는데에는 공을 세웠지만 본질적인 인식에는 제몫을 다하지 못한 과거 언어학과 같이 인간과의 연관을 읽어내지 못했다.

 

저들이 시적 자유라고 일컫는 게 단지 운율법상으로만 구속된 것인가? 아니면 보다 깊은 합법칙성에 의존하는 것인가? 그게 언어사용에서 작용하는 것과 다른 것인가? [이런 작용의 연속하에 마침내 언어사용이 규칙이 되어서] 결국 규칙이 언어사용에 의존하게 되는게  아닌가? 말의 선택에 대한 책임성 –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야 할 이 선택, 하지만 실지로는 가장 쉽게 행해지는 이 선택 – 이런 책임성을 갖는 것, 이 건 글쓰는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요구되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이 책임성을 깨닫는 일, 바로 이 일에 있어서 언어교육자들이 부족하다. 이 일의 요구에 충족해야 [한다고 느끼면서] 자칫 심리학적인 문법을 만들려고 하지만 그러나 학교문법선생들과 마찬가지로 언어교육자의 부족함은 말의 심적 공간에서 논리적으로 사유할 줄 모르는데 있다.   

 

언어뿐만 아니라 말하기와 관계하는 훈계의 활용은 절대 말하기(sprechen)를 배우는 사람이 또한 언어(Sprache)를 배워야 한다는 것일 수 없다. 그러나 이건 분명 말형태(Wortgestalt)를 파악하는 가운데 직접 유용한 것 저편 (jenseits des greifbar Nutzhaftenen)에서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영역으로 접근하는데 있다. 이런 도덕적인 수확의 보증은 벌 받지 않고 해칠 수 있는 유일한 것, 즉 언어를 대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기준으로 책임성을 책정하는 정신의 훈육(Disziplin)에 있다. 삶을 좋게 하는 모든 것(Lebensgut)에 대한 경의를 가르치는데 이런 훈육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다.

 

과연, 언어적인 주저(Zweifel/의심, 회의)보다 더 강력한 도덕적인 것의 보호(Sicherung)를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주저에 모든 물질적인 소망에 앞서 사유의 아버지가 되는 권리가 있는 게 아닐까? 오늘날의 모든  말하기와 글쓰기는, 전문이의 그것을 포함해서, 경솔한 결정의 진수가 되어서 언어를 사건과 체험을, 있음과 그러함을(ihr Sein und Gelten) 신문이 하라는 데로 하는 시대의 쓰레기(Wegwurf)로 만들었다. 주저(Zweifel)는, 언어의 덕택일 수 있지만 오늘날까지 경멸의 대상이 된 커다란 재능으로서의 주저는 틀림없이 문명의 종말로 이끄는 진보를 제지하는, 문명에 봉사한다고 망상하는 진보를 제지하는 구원[의] 힘일 것이다.

 

(이어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번역이란? -2

Sprache ist ein Kontinuum von Momentaufnahmen. Sie nimmt von dem, was je und je Geschichte (Geschichtetes) ist, jene Momente auf, die zusammen ein ganzes Bild ergeben. In der Übersetzung geschieht, ausgehend von diesem ganzen Bild, notwendigerweise eine gewisse Verschiebung jener Momente. Darum ist eine wortwörtliche Übersetzung eine blinde Übersetzung.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