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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귀환-신자유주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김태권)

우석훈의 쓴 해제가 달린 책을 보게 된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이 해제가 그리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만화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거나 부족한 지점에 대해 지적을 해두는 게 필요하다면, 해제의 형식을 취할 필요가 있긴 하다. 게다가 자신의 저서에서는 중언부언하여 난삽하지만 해제 같은 것에서는 나름 자신의 쉽게 쓰기의 장점을 살리고 있는 우석훈을 능가하긴 어렵다.
 
김태권의 만화는 과거 그가 학부에 재학중이던 시절부터 좋아했다. 섬세하진 않지만, 농담을 섞어가며 만화가 가진 장점을 살려내는 재주가 대단하달 수밖에... 이번 만화도 기대된다. 그러고 보니 십자군은 1편만 헌책방에서 구입해놓고 제대로 보지도 않았네. 이게 먼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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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젊음이 안타깝다면, 이 책을 읽자"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09-07-11 오전 10:08:32)
[화제의 책] <어린왕자의 귀환-신자유주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십자군 이야기>에서 이라크 전쟁을 벌인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풍자했던 만화가 김태권이 새 책을 냈다. <어린왕자의 귀환-신자유주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겨냥한 내용이다. 1994년에 대학에 입학한 작가에게,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까마귀 떼처럼 엄습한 신자유주의가 낳은 변화는 너무 아팠다. 이 책에 담긴 만화 가운데 상당수는 외환위기 직후에 그려졌다. 당시 20대였던 작가가 겪은 번민이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우리 세대의 젊은 시절은 IMF와 함께 끝이 났다. '평생 고용'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면서 직장인도 예비 직장인도 가혹한 경쟁에 내몰렸다. '88만 원 세대'의 대학 생활에서는 취직 준비 이외에는 모든 것이 사치가 돼 버렸다. 플라톤과 <자본론>을 한 팔에 안고 다니던 낭만적인 청년 시절은 사라졌다. 생활과 학습의 공동체로서의 대학 사회는 붕괴했다.
 
친구들을 뿔뿔이 흩어졌다. 어떤 친구는 비싼 연봉을 받고 어떤 친구는 헐값의 품삯을 받고 사회로 나갔는데, 한두 해만 지나면 모두 삶에 지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론의 영역에서는 하루에도 열 번씩 해소되던 저 자본주의가, 실제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막강했던 것이다. 몰랐냐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학창시절에는." (작가의 머리말)
 
신자유주의에 대한 작가의 첫 경험은 상처였다. 그래서 작가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작가는 30대가 됐고 결혼도 했다. 그런데 기억의 저편에 봉인돼 있던 장면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순간이 닥쳤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나의 20대는 기억의 저편에 봉인돼 있었다. 편집자님의 제안을 받고서야 나는 그때 그 만화들을 꺼내들 엄두가 들었다. 그런데 막상 만화를 펼쳐들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지금 상황과 꼭 들어맞을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잦아들었음에도 불구하고(아니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문제 그 자체는 더욱 심각해졌던 것이다.
오늘날 빈부 차는 더 커지고 일자리는 더 위태위태하며 FTA는 몰려오고 민영화는 몰아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숫자에 가려져 있다. GDP 몇%, 교역량 및 몇 위라는 알쏭달쏭한 암호의 그늘에 감춰진 이야기, 즉 철수는 재개발로 부자가 되지만 영희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쫓겨나리라는 이야기를 굳이 들추어내는 건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 지금 시점에 이 만화를 모아 책을 묶자던 편집자님의 말씀은 옳았다." (머리말)
 
'좋았던 젊은 시절'을 끝장냈던, 그토록 아팠던 신자유주의가 이제 공기처럼 익숙해졌다. 일상이 됐으니, 아픔도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늘 겪는 일이라서 문제제기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었을 뿐이다. 사회 곳곳에서 상처가 입을 벌리고 있는데, 비명은 막혀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아는 이들이 있다. 그들 중 한명이 대통령이 됐다. 입에 발린 말로라도,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챙길 줄 모르는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신자유주의는 군사정권 시절 반공주의와 같은 위세를 누리게 됐다.
 
"공공 부문 민영화는 절대선이며, 자유무역은 모든 이들에게 이롭다"는 주장에 의심을 품으면 어느새 '반(反)기업', '반(反)시장'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이런 꼬리표가 달리면, 변호사는 '돈 되는 사건'을 수임할 수 없고, 언론은 '광고'를 유치할 수 없으며, 학자는 대학에 남을 수 없다. 한마디로 밥줄이 끊긴다는 뜻. 신자유주의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곳에서 가난한 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러니 다들 두려워할 밖에.변호사 개업 이후를 걱정하는 판·검사, 늘 경영불안에 시달리는 언론사 기자, 교수가 못 되면 평생 극빈층으로 지내야하는 연구자…. 내면 깊숙한 곳에 공포가 자리 잡은 이들은, 재벌과 신자유주의를 찬양하는 장막을 치장하는 것으로 불안을 달랜다.
 
멀리서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는 장막이, 사실은 쉽게 찢어지는 천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게 '지식의 힘'이다. 그리고 <어린왕자의 귀환>은 이런 지식을 담고 있다. 바로 정치경제학이다. 이 책 46페이지를 펼치면, 두 쌍의 따옴표에 묶인 글귀가 있다. "자유무역은 누구에게나 이득이 되는 거야",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는". '자유무역의 허와 실'을 다룬 내용의 도입부다. 불과 13페이지 분량의 만화에, "자유무역은 모든 이들에게 이롭다"는 주장의 맹점이 잘 묘사돼 있다. 조금 부족하다 싶은 독자를 위해서는, 경제학자 우석훈의 글이 바로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자유무역,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비교우위론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들은 한국이 왜 경쟁력 없는 농업을 계속 유지해야하느냐고 묻는다. 한국은 휴대폰을 잘 만드니까, 휴대폰을 팔아서 번 돈으로 더 싼 식량을 사서 먹는 게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FTA 홍보물에서 흔히 접하는 내용이다. 얼핏 들으면 솔깃한 이런 주장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 경제 자체가 비교우위론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형적인 자유무역 논리에 따르면, 한국은 농업과 경공업에 주력했어야 했다. 그게 더 경쟁력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1950~60년대에는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신생국가 정부 각료들 사이에서 "선진국이 공산품을 만들고, 개발도상국이 농업에 주력하면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주장이 상식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런 상식에 맞춰 정책을 추진한 개발도상국 가운데 경제 성장에 성공한 곳은 하나도 없다. 산업화에 성공한 쪽은 한국처럼 상식에 어긋나는 노선을 택한 나라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비교우위가 없는 산업을 빨리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을 읽어내는 힘을 스스로 키워갈 기회가 드물었던 까닭에 교과서 속 이론에 지나친 권위를 부여하곤 했던 문화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학 교과서에 실린 비교우위론이 거스르기 힘든 '상식'이라면, 이런 이론의 맹점을 지적하는 논리 역시 널리 통하는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후자의 상식은 오랫동안 상식 취급을 받지 못했다.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한 주장, 혹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소리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상식은 그저 상식일 뿐이다. 상식이지만, 상식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상식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요령 있게 정리했다는 점이 <어린왕자의 귀환>가 가진 미덕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을 설명하면서 프랑스의 포도주인 보르도를 예로 들었다. 영국에서 만들기 힘든 보르도산 포도주를 영국이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면화를 더 만들어서 프랑스와 무역을 하는 것이 양쪽에 모두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만 믿고 포도주 생산을 포기하는 나라는 없다. 프랑스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해 포도 경작에 불리한 자연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독일은 아이스바인(Eiswein, 아이스와인)이라는 고가의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으며 미국, 호주, 칠레, 심지어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포도주를 생산하면서 프랑스의 포도주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절대적 의미의 비교우위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줄어들고 세계화와 함께 국가라는 지역적·사회적 경계는 점점 완화되고 있다. 게다가 식량안보와 같이 비교우위 이론에 의해서 간단하게 포기하기 어려운 경제적 영역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저가의 곡물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 먹으면 간단할 것 같지만 미국은 물론이고 프랑스, 일본, 심지어는 스위스까지 주식 생산을 포기한 선진국은 없다. 국가가 장기적으로 안정되기 위해서는 식량과 같은 필수 품목의 생산능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근간이 되는 비교우위 이론은 현대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는 가설인 셈이다." (2장 '여행을 떠나다'에 따린 우석훈의 글 가운데 일부)
 
신자유주의 앞에서 영혼이 녹슬어 가는 어린왕자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소설 속 어린왕자가 이명박 시대 한국에서 살아간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게 이 책의 내용이다. 어린왕자가 살던 작은 별은, FTA를 계기로 골프장으로 바뀐다. 살던 별에서 쫓겨난 어린왕자는 '근로자의 별'과 'CEO의 별'을 찾아가지만 편안히 머물 곳을 얻지 못한다.
 
결국 어린왕자가 찾아간 곳은 '부유층의 별'. "이 신자유주의 우주에서 가장 큰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러니까 투자자란 말이지?"라고 중얼거리는 어린왕자 앞에서 부유한 투자자는 이렇게 말한다. "FTA? 해고? 허허, 그런 건 처음 들어봐! 다만 난 수익성 높다는 곳에 묻지 않고 투자를 할 뿐이라고. 그런데 내가 당신까지 책임질 필요가 있을까?"
작은 별에서 장미를 키우고 싶었던 어린왕자를 받아줄 곳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젊은 시절이 끝장나버린, 한국의 어린왕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취업 경쟁으로 망가진 젊음이 안타까운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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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어린왕자의 음모 추적기 (레디앙, 2009년 07월 18일 (토) 23:26:53 김경탁 기자)
[새책]『어린왕자의 귀환…』…경제학 이슈를 만화로 
 
이번에 나온 『어린왕자의 귀환』-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이하 『어린왕자의 귀환』) 은 지금까지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패러디물은 물론 『어린 왕자』 원전과 비교해서도 돋보이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어린왕자의 귀환』이 담고 있는 풍자가 이 시대 우리 사회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2009년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동시에 『어린 왕자』 원전이 내포하고 있던 수많은 상징들을 이해하는 보너스(?)를 얻게 된다.
 
데뷔작 『십자군 이야기』를 비롯해 그동안의 작품들을 통해 역사와 현실 사이에 나타난 유사성을 꿰뚫는 통찰력과 통렬한 시사성, 배꼽 잡는 해학성을 함께 보여줬던 만화가 김태권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해제를 썼다.
 
사실 이 책의 기본 골격은 김태권이 1999년부터 노동단체 소식지나 대학 교지 등에 기고했던 작품들로, 김태권은 '작가의 말'에서 편집자의 제안으로 이 책을 구상하면서 작업에 앞서 20대 때 그렸던 만화들을 펼쳐들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10년 전에 그린 만화가 지금 상황과도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고전적인 자본주의의 폐해와 신자유주의의 해악이다. 고전적인 노동 통제의 방식들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문제, 건강보험 등 공공부문의 민영화 문제, 각종 규제 철폐와 개발주의로 인한 환경 문제, 주거 문제, 또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각종 통제의 부활…. 21세기 한국 사회를 둘러싼 온갖 문제들이 독자들 앞으로 호출된다. 이는 작가가 고백했듯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변화는 아니다. 또 이 책에 실린 만화들이 보여주듯이,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미망에 사로잡혀 ‘이 정도쯤은 괜찮아, 별 문제 없겠지’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던 사이 우리의 삶이 어떻게 조금씩 더 각박해지고 척박해졌는지 이 만화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분명 시사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만평식의 일시적인 풍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노동과 상품, 초과이윤이나 분할통제, 시장주의, 비교우위론 등 정치경제학의 기본 개념들이 풍부하게 소개되고 있으며, 당면한 현안들에 대해서도 좀더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가령 공공부문 민영화를 다룬 6장만 하더라도 시사적인 이슈와 역사적인 정보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아주 특별한 경지를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딱딱한 정치경제학 책을 바로 집어 들기에 어색함을 느끼는 학생, 청소년, 일반인들이 세미나 교재로 사용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사실 이는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문제에 불편함과 불만과 분노를 느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더 고민하고 알아보기를 권유한다. ‘지식만화’라는 조금 낯선 개념은 이런 작가의 의도를 고려할 때 더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시사적 이슈들을 다루는 작가의 관점은 통렬하며 그러한 관점을 구체화하는 사례들 역시 날카롭고, 매 페이지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고도의 말장난이나 썰렁한 블랙 유머는 딱히 특정한 시사적 이슈에 관심이 없던 독자들까지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에 실린 꼭지들 중 일부는 예전에 작가가 다른 매체에 발표했던 작품들이므로 개개의 꼭지가 저마다 완결성을 갖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상 속에서 수정과 보완을 거치는 사이, 이 다양한 꼭지들은 이제 거대한 우주 속에 감추어진 신자유주의의 음모를 파헤치며 나아가는 두 주인공의 우주 모험담이라는 구조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책에 정보와 고민거리를 더 풍부하게 포함하게 된 데는 매 꼭지마다 부록으로 달려 있는 해제의 공이 크다. 이 해제들에서 경제학자 우석훈은 만화가 미처 다루지 못한 개념적이거나 이론적인 설명을 보완하고, 오늘날 (정치)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논쟁적인 이슈들을 한결 명확하게 설정한다. 가령 상품화의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레저의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고, 경영 합리화의 문제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나 CEO 신화의 허구성에 관한 설명으로 이어지며, 노동시간의 문제는 ‘사회적 임금’의 확충이라는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고, 노동자 분할통제라는 문제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연대와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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