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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죄악인가〉 권혁범 지음

 민족, 과연 최상위 가치일까 (서울, 이순녀기자, 2009-07-15  23면)
권혁범 대전대 교수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출간 
 
단일민족 신화에 기반한 한국 민족주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강한 응집력으로 근대 산업화를 이룬 성장의 원동력인 동시에 ‘우리’와 다른 남을 철저히 차별하고 배제하는 획일성으로 비판받고 있다. 긍정적 요소를 강조하는 쪽은 우파 민족주의, 폐해를 인정하지만 유효성에 더 무게를 두는 쪽은 진보적 민족주의로 구분된다. 근래에는 민족주의를 폐기, 또는 약화하자는 탈민족주의도 민족담론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민족주의는 죄악인가’(생각의 나무 펴냄)에서 이 세가지 민족주의를 둘러싼 논의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각각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나름의 균형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시도했다.
 
권 교수는 먼저 단일민족 의식은 근대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국사와 국어 등 국가 교육을 통해 유포된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민족을 최상위 가치로 두는 민족주의적 세계관은 생명, 자유, 평화, 환경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하거나 배제할 위험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진보적 민족주의도 퇴행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민족관에 반대하지만 젠더나 다른 정체성을 가진 하위집단의 문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한계를 지닌다고 권 교수는 주장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민족주의의 부정적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민족이라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또 민족을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는 단순한 시각을 경계한다. 결론적으로 ‘민족주의는 죄악인가’란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대신 민족이란 범주를 고민하면서 페미니즘, 인권, 환경 등을 축으로 한 세계시민주의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을 강조한다.
 
한국사를 세계사와의 유기적 관계에서 파악하고, 민족주의가 지배적 담론의 장에서 약화되도록 다른 가치체계, 이를 테면 사회정의론, 세계시민주의 등을 확산해야 한다는 것 등이 권 교수가 제시하는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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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고 곱씹은 민족주의, 고민거리 늘었네 (한겨레, 이권우 도서평론가·안양대 강의교수, 2009-08-07 오후 09:54:17)
이권우의 요즘 읽는 책 /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권혁범 지음/생각의나무·1만1000원 
 
민족주의를 주제로 다룬 책을 읽을 적마다 곤혹스러워진다. 눈을 덮은 비늘이 몇 껍질 벗겨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어서다. 다른 무엇보다 제도교육을 통해서 내면화한 민족의식이 탈민족 담론에 강하게 저항한다. 하나의 민족으로 오랜 역사 경험을 공유해왔다는 믿음을 깨기는 쉽지 않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식이 감당해온 진보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한몫한다. 일제 강점기는 물론이고 분단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저항담론으로 민족의식은 큰 몫을 해왔다. 세계화한 자본의 공세에 대항하기 위한 방파제로서 민족의식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렉서스’가 세계를 아무리 평평하게 하더라도 여전히 ‘올리브나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탈민족주의 담론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불편하고 미심쩍고 염려되는 바가 있더라도 과거를 성찰하고 내일을 새롭게 조망하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만들어졌고, 이 담론이 오늘에는 다른 중요한 가치를 억압할 수도 있다는 주장은 파격이기는 하나 곱씹어볼 만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권혁범의 <민족주의는 죄악인가>는 그동안 펼쳐진 민족담론을, 말하자면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그리고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책의 전반부는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결국 근대의 산물임을 입증하는 데 바쳐져 있다. 7세기 무렵 민족통합이 완료되었다는 박호성의 주장은 논박되고, 고려시대 농민들이 외세에 저항한 것은 나라가 아니라 향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임지현의 주장은 옹호된다. 권혁범은 우리의 민족의식이 조선시대 말에서 일제시대 초기에 걸쳐 생겨났다고 본다. 버나드 야크의 말대로 “민족은 근대에 와서야 생긴 개념이고 그것이 구성원 간의 평등한 정치적·시민적 권리 및 동일성을 기초로 발생”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셈이다.
 
이 책의 4장 <민족주의와 젠더>는 자못 도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민족주의가 여성에게 부여한 가치가 무엇인가, 라는 물음 앞에서 민족담론의 허상이 드러난다. 우에노 지즈코의 말대로 “자기 민족 여자는 자기 것이며 그 여자가 다른 민족에게 능욕당하는 것은 ‘남자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는 의식이 민족주의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젠더화되면서 성애화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여러 여성학자의 노력으로 “한국의 민족주의가 사실은 제국주의와 공모하여 여성을 억압하고 성착취/지배를 지속시키는 내부의 구조를 은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이런 견해가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뉴라이트 주장과 어떤 점에서 다르고, 달라야 하는지를 지적하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민족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든 “한 사회의 핵심이념이 반드시 민족주의일 필요는 없다”는 지은이의 말은 폭넓게 수용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인권, 환경권, 개인 및 생명의 권리 및 평등, 존엄성”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가운데 민족 문제도 끌어안을 수 있다. 또한 “계급적 정체성이 민족적 정체성에 압도되기보다는 그것과 경합하거나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높다. 책을 읽고나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느낌보다는 고민할 거리가 많아졌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본디 좋은 책은 그러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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