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자크 아탈리의 <위기 그리고 그 이후>

 

[주말을 여는 책]자크 아탈리의 <위기 그리고 그 이후> (내일, 박순철 칼럼니스트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2009-02-20 오후 2:10:56)
세계 경제위기의 공적 ‘정보선점자들’  
‘위기 그리고 그 이후’, 자크 아탈리/양영란 옮김/위즈덤하우스/1만2000원
 
소시민의 갇힌 분노는 21세기라고 다를 바 없다. 재래시장에서 몇 백 원, 몇 천 원을 바가지 썼다고 분노하지만 피땀 흘려 장만한 아파트 값이 몇 천 만원씩 떨어져도 속만 탄다. 그건 마치 천재지변 같아서 원망할 대상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자산가격 폭락, 도산, 실업, 가정 파탄. 미국발 금융위기가 초래한 음울한 풍경들이다. 뭉크의 비명이 세계 도처로 퍼져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천재지변인가? 물론 아니다. 큰 사고가 터지면 흔히 하는 말로 인재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잘못한 결과다.
 
자크 아탈리에게 분노의 대상은 분명하다. 그 이름은 ‘정보선점자들’이다. 유럽부흥개발은행의 총재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저서 ‘위기 그리고 그 이후’에서 이들의 행태를 심지어 강도짓과 비교하기도 한다. 그는 정보선점자들이 시장의 위험을 잘 알면서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다면서, “그것은 은행금고에서 최대한 많은 금괴를 빼내기 위해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범죄 현장을 떠나지 않는 강도들의 행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까지 비난한다. 특히 금융기관 내에 포진한 이들은 은행의 경영진마저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품들을 계속 만들어 내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부채담보부증권, 신용부도스와프는 그 대표적 예일 뿐이다. 그 결과 부채는 팽창을 거듭해 마침내 통제 불능한 상태에 이르렀고, 드디어 그 한계점에서 집단 패닉현상을 낳기에 이르렀다. ‘빚의 빅뱅’이었다.
 
그렇지만 어디선가 이런 반론이 들리는 것 같다. 정보선점자들이 범법자였는가? 만일 그렇다면 왜 법으로 다스리지 않았는가? 만일 도덕적 근거에서 그들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마음껏 추구하라는 시장의 지상명령과는 어떻게 양립하는가? 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활용했을 따름이 아닌가? 법과 도덕의 차원에서 풀어야 할 숙제의 한 가닥이다.
 
현실의 과제는 물론 더 절박하다. 우선 여기서 주어진 상황이란 무엇보다도 70년대쯤부터 미국 경제에 불어 닥친 총수요의 부족이다. 공정한 소득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중산층의 소비가 위축되자 빚에 의한 수요 진작이 정책적으로 시도되었다. 이를 위해 연준은 저금리체제를 선택했다. 가계뿐이 아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주식 가격의 상승에 따라 경영진에게 천문학적인 보수가 돌아가면서 빚에 의존해 단기적인 성과를 거두는 게 왕도였다. 기업 경영진들과 금융업자들은 아주 적은 자기 자본만으로 엄청난 대출을 일으켜 기업들을 사들였다. 금융위기의 ‘민스키 모멘트’가 운명적으로 예약돼 있었다.
 
신용시장이 자산가격에 의해 주도되는 한 신용의 수요와 공급은 균형을 잃어 금융위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경제학의 논리가 확인된 건 서브프라임 위기가 처음은 아니다. 20세기 후반 유럽의 선진국들에서도,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개도국들에서도, 금융자유화와 부동산 거품으로 대표되는 심각한 금융위기가 도처에서 일어났다.
 
아탈리는 ‘자본주의가 사라질 뻔한 날’이라는 드라마틱한 제목의 장에서 2008년 가을의 긴박했던 상황을 복기(復碁)한다. 선진국의 수뇌들이 사태의 중대성과 필요한 조치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가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결국 시장의 논리는 버림받았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전혀 개입하지 않고 시장의 자율과 무규제에 맡기는 것이 경제와 정치를 성공으로 이끄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보인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해 참으로 금석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이다.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데 있다. 아탈리의 표현대로 ‘독약’은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벌써 시작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한다.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꺼려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은행을 제외한 금융기관들이 파국을 맞으면서 자산 가치는 심각하게 하락하며, 돈줄 노릇을 했던 중국이 돈을 자국으로 되돌려 달러 가치는 추락하리라는 게 악몽의 일부다. 그는 2년에서 5년 정도 계속될 디플레에 이은 인플레의 위협도 잊지 않는다.
 
위기는 사물의 근본을 드러낸다는 말이 있다. 대공황에 비견되는 이번 위기는 세계경제의 지층 깊은 내부에서 요동치고 있던 불균형의 힘들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더 큰 지진들이 터지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그러나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 가운데는 충분한 임금 지급으로 소득불균형을 해소해 총수요를 진작시키고, 금융 시장의 권력을 법의 권위 밑에 두는 것이 포함된다. 제대로 된 민주정치만이 제대로 된 법치를 마련할 수 있다면 이는 정치 발전과 경제 발전의 상호의존에 대한 근본적인 각성을 요구한다. 아탈리는 세계정부의 필요성까지 내비친다. 대공황은 케인즈주의를 등장시켰다. 8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초대형 위기가 이번에는 자본주의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지.
 
이렇게 문제의 거대함을 보면서 김수영의 시가 고발했던 우리의 작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겁먹은 타조처럼 땅에 머리를 처박을 수도 없다. 사실 아탈리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어쩌면 약간의 낙관이 현재 필요한 구급약 같기도 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