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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 〈법을 보는 법-법치주의의 겉과 속〉

 

“위법을 무릅쓴 투쟁, 법 진보의 동력” (한겨레, 허미경 기자, 2009-05-08 오후 09:01:00)
교통범칙금서 헌법까지 법 일반 쉽게 푼 안내서
근대사 배경 사례 담아  

〈법을 보는 법-법치주의의 겉과 속〉 김욱 지음/개마고원·1만2000원

 
여기 교통신호를 어긴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한 달 150만원을 버는 임시직 택시기사이고, 또 한 사람은 한 달 3000만원을 버는 고소득 기업 임원이라고 치자. 이 둘에게 ‘똑같이’ 6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면 ‘평등한’ 법 집행일까? 아니면 각자의 소득 수준에 비례해 ‘차이나는’ 액수의 범칙금을 매기는 것이 ‘평등’할까?
 
<법을 보는 법-법치주의의 겉과 속>은 우리의 작은 일상에 끼어드는 교통범칙금에서부터 모든 법의 상위법인 헌법에 이르기까지 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로 안내하는 책이다. “법이 걸어온 근대 역사를 배경으로 법에 관해 체계적 이해를 하는 것을 목표로” 쓰인 책이다. 앞에서 든 교통범칙금 에피소드에서, 택시기사는 범칙금 6만원이면 하루 일당이 날아가지만 고소득 임원에게 그 돈은 껌값이다. 똑같은 잘못에 똑같이 처벌받는데도 어떤 사람은 큰 고통이고 어떤 사람은 별 고통을 받지 않는다면, 과연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이 책의 화두 중 하나다. 한국을 비롯한 현대 국가들은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치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법 앞에 군림하는 사회적 강자들과 이를 방관하는 법치주의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이다. “현실의 법은 오늘날까지도 틀림없이 강자의 법일 수밖에 없다.”
 
교통법칙금 ‘차등’부과제도가 일각에서 검토되고 있듯이, 지은이는 법적 정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 규정들의 총체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실정법을 정의라 부른다 해도 그 정의는 ‘역사적 한계 속에서 변화하는 정의’일 뿐이라는 것이다. 법이 이렇게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법을 바꾸는 힘은 무엇인가. 법이 제정되고 개정되는 동력은 역설적으로 ‘위법’이다.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것으로 여기는 헌법적 권리인 기본권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헌법에 열거돼 있는 재산권,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종교와 양심의 자유, 평등권 등의 기본권은 서구 시민혁명의 소산이다. 중세 봉건시대를 끝장내고 자본주의 시대를 개막시킨 근대 부르주아 계급은 이런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위법적으로’ 투쟁한 세력인 것이다.
 
지은이는 지난해 촛불시위가 흥미로웠던 것은 대의민주주의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에서, 진부할 정도로 오래된 역사적 논쟁이 아주 새로운 21세기적 방식으로 재연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촛불시위와 이에 대한 현 정부의 대응은 민의와 민의 대변자 사이의 모순을 드러냈다. 민주주의와 대의제의 충돌이다. 이른바 기관 구성권과 정책 결정권을 분리해서 국민에게는 기관 구성권만을 행사하게 하고 국회의원에게는 정책 결정권을 위임한다는 대의제 원리는 18세기 후반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에 의해 정식화됐다. 이런 대의제 주장은 17세기 시민혁명 속에서 부르주아의 지배권 확립을 고민했던 로크 시대가 아니라, 부르주아가 기득권자로 안정을 찾아가던 버크 시대에 비로소 나온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실정법의 정당성을 논하지 말고 법을 설명하고 그 주석에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곧 법실증주의가 맹위를 떨쳤다.
  
부르주아 계급에 의한 자본주의 건설의 결정적 토대가 된 이데올로기이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기본권을 만들어낸 17~18세기의 혁명적 자연법론은 왜 법실증주의에 자리를 양보해야 했을까? “자연법론은 중세를 무너뜨리는 혁명기가 아닌 자본주의의 안정기에는 다소 불편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며 영국 대의제를 공격하던 미국 독립 지도자들도 신대륙의 통치계급이 되자 태도가 돌변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대표가 없는 한, 영국 의회가 식민지를 포함한 전체 이익을 실현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던 그들은 독립 뒤에는 “국민 대표를 통한 대중의 목소리는 국민의 직접적인 의견보다 공익에 더 부합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르주아는 기득권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지은이는 대의제와 민주주의에 관한 역사적 논쟁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피지배계급의 무기였으며 대의제는 지배계급의 무기였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와 대의제가 선택적인 진리가 아니라 상호 대립하면서 상호 의존하는 모순관계 속에서 진보한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니 헌법은 대의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것과 모순되는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제 등의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동시에 규정할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리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법을 보는 눈만으로는 결코 (법이) 보이지 않는다. 법을 보는 눈은 법 밖을 보는 눈에 의해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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