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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교수의 진보세력 다원화론 비판

자작나무숲님의 [진보 보수 모두 다원화 절실] 에 관련된 글.

조희연 교수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의 다원화가 '절실'하다고 한다. 글쎄,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길래 '절실'이라는 표현까지 썼는지 모르겠지만, 반쯤 맛간 강단좌파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그는 애매한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었다. 그의 시민의 신문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심지어 그는 노무현 지지세력조차 '진보'로 보는 듯 하다. 세상에, 노사모가 헛튼 꿈꾸고 캐속은 시절이 한참지났는데 아직도 노무현 타령인가. 그는 노무현 및 그의 지지세력을 '자유주의적 진보'쯤으로 파악하는 듯 하다. 몇년간 냉동인간됐다가 깨어난 인간이 아니라면 알 것이다. 자유주의(심지어 신자유주의지!!!)는 맞지만 진보는 결코 아니다. 어라? 내 보기에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노무현과 공병호인데 이윤율 재고와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기업 사유화하고, 비정규직 늘리자던데? 얼마나 자유주의적인가!! 자유주의는 좋은 것인가? 그가 쩔쩔매는 반공주의라는 한국적 모순의 백태는 이제 신자유주의자들의 적절한 놀이감이 되어버렸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이 진보일수 없다는 얘기를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강단좌파 비판글 안에 넣어야 한다는게 참 우습다. 세상에 진보가 학살전쟁에 파병을 하는가? 이미 임기 초부터 볼짱 다 봤다고 봐야한다. 여기서 환상을 보는 강단좌파들이 사회운동을 '캐'망치기 시작했다. 내 말이 심한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련의 몰락 이후 자신들의 이론적 공백을 자유주의를 껴다맞춰 맞춘 GD들은 그냥 입 쳐 다물고 있어야 한다. "급진진보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게다가 노동자들을 무한정 비정규직화하는 비정규노동법 개악안을 만들고, 노동운동을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 관리하는 노사관계로드맵 법안, 평택, 그리고 한미FTA도!

 

조희연은 뻔뻔스럽게 훈계한다.,

 

진보에게는 다른 의미에서 다원화라는 도전이 나온다. 조 교수가 보기에 진보세력은 자유주의 진보와 급진진보가 분화되지 못하면서 ‘저항의 미덕’과 구별되는 ‘통치의 미덕’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에게 필요한 정책 ‘실현가능성’ 혹은 현실성을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권력을 갖고도 조중동 탓만 하는 것은 알리바이일 뿐”이라며 참여정부를 비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비판이라는 것이다.

통치의 미덕이라니. 조희연이 보기에 진보는 곧 '운동권들'이다. 그는 진보세력이 통치의 미덕을 발휘하지 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철저히 조희연스러운 생각으로 빠진 자들이 2012년 집권 운운하며 '정책정당'이니 뭐니 하고 있지만 이미 강고한 지배이데올로기 안에서 허덕이며 의회 안에 갇힌 저들만의 '통치'만 하고 있다. 조희연식 대안은 뻔한 결말만 맞이할 뿐이라는 것이다. 민노당이 내놓은 대안들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요구가 의회안에 갇혀있는 이상 아무것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기막힌 것은 거기에 최장집의 참여정부 비판 논리를 껴맞췄다는 것이다. 이 XX, 욕나온다. 대가리가 어떻게 된거 아닌가 싶은 생각뿐이다. 아무래도 당장 동아리방 가서 조희연 책 다 태워버려야 할듯 하다.

 

 

<-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진보'가 될 수 없고, 신자유주의가 케인즈주의 경제모델의 종결 이후 대안으로 출현했다는 상식은 EBS수능 사탐 강의에도 나온다!

 

조 교수는 더 나아가 진보와 보수 사이에 비적대적 공존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각축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기 위한 경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 교수는 극심한 양극화를 완화해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을 낮추는 것이 기업과 자본의 ‘거시적 합리성’에도 부응한다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에 경제문제를 둘러싸고도 비적대적 공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보수에게는 단순히 박정희 모델을 부활시키는 퇴행적인 모델이 아니라 달라진 조건을 반영하는 ‘박정희 모델의 혁신적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양극화 완화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을 낮추는 것이 자본의 거시적 합리성에 부응한다는 멍청한 소릴 하다니.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 자본주의의 동학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멍청한 얘기일 뿐이다. XX, 공부는 하는거야? 이윤율이 지속적으로 하락되어 70년대 이후 그 어떤 방편(예컨대, 도요티즘 등)으로도 극복되지 않으니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체제를 도입한게 아닌가. 어디서 캐 멍청한 케인즈주의 타령이냐. 자본주의의 동학조차 파악하지 못한 자가 <새로운 경제모델> 운운하다니;;;

 

진보세력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당위론에 그쳤고 정책으로 구현하지도 못했다. 참여정부는 박정희 모델에 반대한다고 천명했지만 관료적 작동방식은 예전과 똑같았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속에서 전개되는 민주주의가 투명성과 민주성은 높였지만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계급사회’를 출현시켰다는 게 조 교수 설명이다.

 

당연하지. 신자유주의 정권이니까. 어디서 진보래? 이 땅의 평등, 자유는 오직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으로 가능할 뿐이다. 정책 구현 좋아하네. 조희연은 아무래도 50년쯤 전 미국이나, 20년전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스웨덴이나 프랑스에서조차 케인즈주의 모델, 사민주의 모델은 이미 멸종했음을 모르는가. 지금 시기 야만의 세계화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그것을 적실하게 비판하고 저항을 조직하는 일 뿐이다. 정책 대안 좋아하네, 이미 30년전에 끝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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