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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징그럽던 <초록잉크>, 동의하지 않는 <국가전략>과 함께한 수난이월(受難二月)도 이제 다 지나가고 영영 다시 안 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싸)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순간들도 결국 견디며 산다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걷다보니 2월이란 터널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잠시 숨통이 트입니다. 2월을 함께 견딘 H 책공장 사람들에게 감사와 애정을, 저의 짐을 아무 말 없이 덜어준 집장님(집장님의 내공은 정말 그냥 쌓인 게 아닌듯)께 빚진 마음을 느낍니다. 3월이라고 크게 어깨의 짐이 가벼워진다거나 건강이 좋아진다거나, 동쪽에서 귀한 인물이 나타날 것 같진 않습니만, 그래도 3월 1일에는 차분히 심호흡하고 새 마음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

어제는 야근을 하루 쉬고 미학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미학수업은 어제가 마침 종강이었는데, 가르칠 건 많고 시간은 부족해서 마음 급한 신혜경 선생님의 말씀은 더 빨라지고 제너레이션을 발음할 땐 자꾸만 제네이션이 되었지만 역시 마지막 수업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매1분이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언젠가 수업 내용을 정리,요약해서 올려봐야겠;;; -ㅁ-). 흑,, 신혜경 선생님 정말 좋아요.

9시를 넘겨 수업이 끝나고 비빔냉면을 사먹고 삼청동으로 걸어갔습니다. 가방도 가볍고 옷도 가볍고 날씨는 적당히 시원합니다. 가방 든 손을 휘휘 젓고 발걸음도 대충대충 디뎌 뒷모습은 웃길지 모르지만 그 순간의 나는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삼청동 도로길에서 계단을 오르니 언덕 위에 가지런히 모인 집들과 하늘이 보입니다. 밤하늘은 유난히 짙어 별이며 가로등이 더욱 선명합니다. 계단을 오르니 계단 아랫집들의 옥상이 도로의 한 부분인 양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남의 집 옥상에서 그러면 안 될 줄 알지만, 언덕길의 발코니 같은 그곳을 지나치지 못하고 옥상 난간에 서서 [야ㅡ호오ㅡ] 했습니다. 단, 소심하게.

으리으리한 집들(-_- 췟)도 지나고 좁다란 골목을 돌고 돌아 다시 찻길로 나오려는데, 계단 옆의 작은 집이 눈에 띕니다. 할무이 빨래가 집벽을 타고 나란히 걸려있는 모습이 정다워서 다가가보니, 혼자 사시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아립니다. 집을 박차고 나와 혼자 사는 나와 이곳에 정착해 혼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할무이는 무엇이 다를까요(아, 사실 반드시 할무이는 아닐 수 있습니다. 아주머니일 수도 있지만 상상하는 자 마음대로).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빨간불과 파란불에 '독립'과 '독거'라는 두 단어를 나란히 놓아봅니다. 어느새 파란불로 바뀌었습니다. 독립한 나도 독거하는 할무이도 같이 행복했으면 하고 빌어봅니다. 행동하지 않고 비는 마음 자체만으로는 그 무엇도 될 수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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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버럭하는 이 내 성질 견딜 수 없어

정교회 옆 無人道에 한숨을 게운다

 

: 폼 잡아 봤;;;;

2007년 봄 루냐는

공덕동 정교회를 빙 돌아 정교회 마당에서 한숨 쉬던 순간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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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설이든 추석이든 나에게 명절은 '빨간날'이라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륜의 표현을 빌리면, 오늘 아침의 하늘은 하느님을 믿고 싶을 만큼 밝고 평화로웠다. 교회에 갔다가 예술의 전당에서 그림 구경을 하고 볕에 등을 말리고 콧구멍에 바람을 넣고 엄마가 사는 곳에 왔다. 가방을 내려놓다가 아빠가 할아버지댁에 가서 아빠네 집이 비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강아지 재복이와 애틋한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아빠가 사는 곳으로 갔다. 아빠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안 계신 틈을 타 그 집으로 간다. 내가 예전에 살던 곳. 열쇠도 첨단 시스템으로 바뀌어 버벅대다가 간신히 들어갔다. 휑한 집. 나와 다른 가족의 흔적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내 방은 다행스럽게도 작년 봄 이전의 모습대로 머물러 있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소중히 모아놓은 것들과 손때묻은 책들과 노트가 없어지면 어쩌나 두렵기도 하다. 없어져도 그만이라고 억지로 다독이면서도 당장 필요한 것들을 주섬주섬 챙긴다. 다리가 떨린다. 엄마의 부탁을 받고 몇 가지 더 챙긴다. 원래 내가 쓰던 물건을 챙기는 것일 뿐인데도 남의 집에 와 도둑질하는 것마냥 마음이 불안하다. 다시 엄마네 집으로 왔다. 떡국을 주신다. 쌀떡을 꼭꼭 씹으며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의 한숨과 걱정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엄마는 내가 동생을 잘 설득해보길 바란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머릿속 한켠에 입력. 다시 떡국을 먹는다, 꼭꼭 씹는다. 씹히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살아온 기억 중에 지우고 싶은 것들은 편집해버리고 싶다.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고 움츠러들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상처받고 그것을 응시하고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다른 것에 의존하고 위로받고 어서 망각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내 힘으로 이겨내라고, 의지를 갖고 상처와 문제를 넘어서라고 너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너무 무기력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나는 어느새 피곤을 느끼고 만다.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헛된 기억, 헛된 상처, 헛된 고민-

고등학생의 일기처럼 지친 하루를 늘어놓는다.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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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기원

샤릉한다, 샤릉한다, 샤릉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말 대신 당신은 나에게

샤릉한다고 고백합니다.

 

당신의 속삭임으로, 나는 마음이 뜨끈뭉클해지고 살아갈 용기가 납니다.

당신의 2007년이 따뜻하고 평화롭기를 기원합니다.

 

+) 실제로 나에게 속삭인 '당신'은 륜이지만,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당신'은 이 글을 보는 당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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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

타이밍.이라고 쓰니 '졸음 쫓는 약'이 생각나지만

텔레파시인지 운 좋게 타이밍이 맞은 것인지 어쨌거나 나는 적절한 순간에 위로를 받았다.

 

나는 번역이 엉망인 책을 작업 중이다. 역자를 원망하고 책이 이렇게 밖에 나올 수 없는 이 상황(빠듯한 마감 일정)을 안타까워하고, 나의 가난한 영어 실력을 부끄러워하며, 원고와 열흘 정도 씨름하고 편집장님에게 원고를 제출했다. 나의 씨름은 결국 '뒤집기'에 성공하지 못했고 편집장님은 여전히 엉망인 원고를 보고 있다. 결국 출간 예정일을 보름 정도 미루고 말았고, 나는 오케이 원고의 교정사항을 반영하고 있다.

아흑, 오케이 원고는 고칠 게 없을 수록 100점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건 30점도 못 받을 것 같다. orz

아무리 원고가 못났기로서니 이게 뭐냐고 편집자로서의 내 자질을 의심하며 '이거 담배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하고 있을 때,



[있잖아 나는 너의 1번(핸드폰 단축번호 1번. 상징적 의미이기도 하다)인 게 정말 자랑스러워. 근데 정말 그래.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너의 1번이 될테야. 너도 물론 나의 1번이 되어줘.]

 

아, 웅, 정말...?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거.

아무런 기대 없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나 자체를 자랑스러워한다는 거.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만큼이나 나를 행복하게 한다. (고마워 ♡)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지만 덕분에 기운을 좀 차렸다. 읏챠, 또 시작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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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황새울에서 지키고 싶은 것

[이야기 나눔] 황새울에서 지키고 싶은 것

 글쓴이: 하얀점 딱새

 작성일: 2007. 1. 27.

 


*마을! 농민, 주민, 지킴이, 외부내부 사람들, 자연, 쌀, 당, 집 등이 함께 만들어내는 모든 것인 마을.



*논길, 바람, 담, 길, 들판, 동네 개들, 나무들, 1반 할머니들 집

 방 할아버지 논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자치 공동체


*조금은 어렵지만, 아니, 많이 어렵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 -밥 먹기, 화투치기, 농사짓기, 촛불 행사

 정말로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언니, 아이들의 웃음. 즐거움. 행복>o<

 벽시, 새든년, 문무인상, 벽화 등 대추리 안의 예술품들

 대추리 공동체 안의 인심, 그리고 그 마음.

 지킴이

 도서관, 학교 터, 농협 창고, 영농단

 노을, 마을, 황새울의 풀과 나무

 철새(오리 등), 솔부엉이 (본 적 없는..)

 어딘가에 있을 나의 신발 한 짝


*대추리 도두2리 분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면 된다


*노을, 들녘, 솔부엉이, 대추리에 살고 또 사랑하며 찾는 사람들의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근데 다 적기엔 사랑할 만한 것들이 그리고 또 사랑받아야만 할 것들이 너무 많네요.)


*마을. 평화. 웃음. 농협 창고. 도서관. 방송국. 집. 논. 들. 등등

 꼭 승리하고 싶다. 꼭 지켜내고 싶다


*드넓은 들판


*함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


* 


*솔부엉이 가창오리 벼랑 바람 새싹(돋아나는 벼)

 아! 영농단. 영농단 정말 좋아!!

 촛불. 할머니. 할아버지. 농사꾼. 아이들. 아저씨. 아줌니. 잔소리하는 할머니들...

 근데, 정말 들판에서 고라니 뛰어 댕기는 거 다시 보고 싶고..

 다시 직파한 논에 누워 하늘 바라보고 싶다.

*미군 기지를 뺀 모든 것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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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이워이, 가버려라 2월

뒷북 쳐대는 필자들과 목을 조르는 일정

일하다가 내가 왜 사는가 하는 철학적-_-인 고민까지 하게 될 때가 있다.

진짜로 몬살겠다 꾀꼬리ㅡ

요만한 일에도 헉헉 대는 내 꼴이 우습고

아니면 객관적으로 이건 정말 일의 템포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얼마나 버틸런지도 모르겠다.

 

집에 가서 밥까지 먹고 왔지만

그래도 마음은 여유가 없어서 길게는 못 쓰고



<야근에 부쳐>

-심마담


편집자의 인생이란
야근밖에 없다마는
반복되는 야근덕에
어깨에는 곰한마리

내일가는 대구출장
저자설득 잘하려나
오늘따라 침침한눈
칼퇴근은 남의얘기

창문보니 날어둡고
눈밑에는 검은구름
출간일이 다가오면
교정지는 젖어간다

 

+) 워이워이ㅡ 2월아 얼른 가라. (3월엔 안 그럴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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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독립은 시작됐다

오전부터 슬슬 머리 왼쪽 뒷편에서 신호를 보낸다. 머리 왼쪽 뒷편이란 내 몸의 일부를 인식한 적이 별로 없지만, 이 녀석이 신호를 보내자 그제서야 내 몸에 그런 일부가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불편한 녀석이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   *   *

어젯밤부터 엄마가 독립하는 나를 보며 이래저래 안타깝고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자 나는 조금 심란해졌다. 출근길에 자취방에 갖다놓을 후라이팬이며 세탁망 등등을 한보따리 둘러매고 나왔다. 조금 복잡한 지하철에서 문쪽으로 다가가던 도중 역시 민폐를 끼쳤다. 아마도 옆에 있던 아저씨의 등을 후라이팬 손잡이로 찔렀던 것 같기도 하고... -_-; 열차 문이 열렸고, 긴가민가 하면서 돌아봤더니 아저씨의 험악한 표정이 내 모든 감정을 한 번 더 뒤숭숭하게 만든다.

[에이 이게 뭐야 아침부터 민폐나 끼치고]

얼렁뚱땅 우당탕탕 어리버리 실수쟁이지만 민폐를 끼칠 때마다 내가 조금 싫어진다.

오늘은 어제부터 심란했던 마음 때문에 스스로 [괜찮다]며 다독이지도 못했다.



목이 잠기고, 기침도 나고, 열도 오르는 것 같다. 걸어다니자면 바닥 위에서 내가 0.5cm 동동 떠다니는 느낌이다. 달뜬 얼굴에 생각도 동동 뜬다. 아파서 괴로울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비정상이 된 느낌은 확실하다. 작업 중인 두 책의 필진과 관계자들로부터 오늘도 슬금 시달리고 나니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 너무 긴장해버렸다. 쓸데없이.

 

오늘 내가 왜 이럴까- 아픈 건 아픈 거고 내면의 문제가 면역력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다.

내 면역력은 어디로 갔을까.

 

아무래도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이번에도 엄마다.

엄마는 걱정이 끊이질 않아 계속해서 챙겨주느라 바쁜데, 나는 그것 때문에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그래 어여 여길 떠나자. 마음을 먹고, 내일까지는 짐을 다 옮겨야겠다고 다짐한다. 

엄마가 어제 이사하는 집이 궁금하다며 당장 가보면 안 되겠냐고 말했는데, 어쩐지 집을 알려주면 시간 날 때마다(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찾아올 것 같아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역시 난 정말 나쁜 딸년이었어.

 

엄마가 뭐라 하든,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당분간 나무처럼 광합성만 해야겠다. 흔들리지 않을테야. (루냐는 당분간 나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나름 진정한 여행이기도 한 자취 생활. 가정사에 시달리기 싫어서 10년 전부터 꿈꿔온 독립. 산전수전 아직 덜 겪어봐서 엄마 그늘에서 나오려고 내맘대로 시작해버린 독립. 젊어서 고생 사서 한다는 속담을 나도 한번 지켜보자고 시작한 독립. 머리가 나빠 수족이 고생해도 내 머리 써가며 살아보자고 시작한 독립. 이제서야 나는 비행연습을 시작하는 아기 새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루냐는 이제 나무이자 아기 새이기도 하지만, 이제 2만원으로 월급날을 기다려야 하는 거지루냐가 되기도 했다. 마음만큼은 초라해지지 말아야지. 앞으로 1년 동안 나와 함께할 그 공간을 다른 무엇이 아닌 루냐 공기로 채울테야. 음후후.  

 

+) 인쇄 걸어 놓고 시작한 포스팅, 시간 가는 줄 모른다. 400페이지는 언제 다 인쇄됐다냐. 켁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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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과 28일

27일 | M 선배 결혼식, 대추리 가기

28일 | 월세 계약, 독립 만쉐이

 

+) 흐아, 바쁘네;; 그래도 이런 일들로 바쁜 거라면, 기꺼이! 응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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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대하지 말아요

안산/안양 쪽에는 공장이 많고 그곳에서 고된 일을 하는 이주 노동자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가끔 4호선을 타면  이주 노동자들을 심심찮게 본다.

일요일 저녁, 나는 지하철 4호선을 탔고 내 앞에는 이주 노동자 청년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졸고 있는 청년의 몸이 빈자리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어 앉기가 어려웠다. [많이 피곤한가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아저씨가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면서 그 청년을 '굳이' 깨운다. [어이 자네 머리 좀 치워봐!] 청년이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그는 또 청년의 머리를 '굳이' 손가락으로 밀며 코끼리 같은 자기의 몸을 빈 공간에 쑤셔 박는다. 도톰한 겨울 코트로 감싼 아저씨의 두꺼운 어깨는 쿠션 같다. 청년의 고개는 또다시 갸웃 기울어 아저씨의 어깨에 닿는다.

 

아저씨는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자기 손가락 하나를 꼿꼿이 세워 청년의 머리를 받쳐보더니 [자네, 어디까지 가나?] 하고는 더 열심히 청년의 머리를 반대편으로  민다. 단지 난감해서도 아니고, 자기 몸에 청년의 머리가 닿는 자체가 기분 나쁜 듯한 태도이다. 그러고는 동행하는 자기 친구와 함께 지하철에서 신나게 떠든다.

 

지켜보던 내 미간에 자꾸 주름이 잡힌다. 청년 옆에 차라리 내가 앉을걸, 하는 생각도 든다.

굳이 저럴 필요 있을까, 아가씨가 앉아서 청년처럼 졸았으면 가만히 있었을까, 또는 그 청년이 선진국형 인간(백인?)이었다면?

 

[함부로 대하지 말아요!!!]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주먹만 불끈할 뿐. 결국 한 번 노려보고 돌아서버렸다.

처음에 내 머릿속엔 아저씨에 대한 분노뿐이었는데, 조금 있으니 다른 생각이 밀려왔다.

[루냐 너도 잘한 거 별로 없어]라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몇달 전에 알게 된 방글라데시 친구에게 잘해주지 못한 일이 생각난 것이다. 마음이 저렸다.

나를 좋아해주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그 친구를 나는 좀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그가 자주 문자를 보내오고 전화할 때도 시큰둥하지 않았던가. 처음에 내가 그에게 보였던 친절함은 결국 가식이 아니었을까. 나는 '의식'이 있으니 그들에게 '이렇게 대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내게 진실한 마음을 갖기도 전에 과장된 친절이나 행동을 하게 하고, 그가 나에 대해 괜한 기대를 갖게 한 건 아닌지. 그래서 결국 그 친구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닌지.

휴. 생각이 번질수록 생각도 글도 마무리가 안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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