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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9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PP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은 민중의 고달픈 일상을 추석 명절과 직접 비교하며 한가위때 만큼은 행복해지자는 덕담이다. 그리고 일상이 한가위처럼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뜻도 분명히 담겨있는 말이지만, 그래도 꽤 낙관적이지 않은가? 어릴 때 어른들에게 이 말을 들으며 명절을 즐겼고, 어른이 되어 다시 아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며 오랜 세월 명절이 이어져왔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세월 속에 인이 박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것을 상상하며 괜히 슬퍼진다. 내 처지 때문에 그런가? 옛날에도 이 말이 짜증났던 사람들이 꽤 많지 않았을까?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에서 구직자와 취업자들에게 추석 스트레스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친척들의 취업에 대한 지나친 관심, 결혼하라는 이야기, 금전적 문제, 귀성 교통체증 등 대충 누구나 공감하는 스트레스들이다. 그 중에 가슴이 살짝 아리는 내용은 구직자들 중 40.8%가 귀성하지 않고 취업정보를 검색하거나 공부하겠다는 부분이다. 실업률이 생략된 조건에서 퍼센트의 높낮이는 눈속임이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귀성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취업 스트레스 속에서 잠시도 탈출하지 않겠다는 부분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들에게 해와 달의 밝음이 무슨 의미겠는가? 밝음이 두루 넓지 않은 세상이다.
하여간 이번 기획은 추석을 앞둔 활동가들과 노동자들의 애환을 두루 들어보는 것이었다.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 추석 애환에 대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대략 실패하다 보니 괜히 서설이 길어졌다. 전통, 가족, 결혼, 음식준비, 대화주제 등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사회주의 운동하는 사람들의 명절 문화가 어떤지 살짝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인데, 그닥 건진 게 없다. 그래도 쉬어가는 페이지로다가...

H씨가 추석하면 떠올린 것에 정확한 해독은 어려운데, “어”로 들리는가 하면 “오”로 들리기도 한다. 미혼인 H씨는 동생이 곧 결혼해서 그 때 내려가기로 하고, 이번 추석에는 고향집에 안가기로 했다. 동생이 먼저 결혼해서 부담되지 않냐니까, 부모님이 우리 딸 하고 싶은 대로 하랬다며,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다. H씨가 반어법을 거의 안 쓰는 걸로 보아 그 부모님도 반어법을 안 썼다고 믿고 싶다. 만사에 표정이 밝은 H씨지만, 추석과 상관없이 동지들과 관계에 대해 자기 운동에 대해 깊은 근심에 빠져있다. 그래서 추석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추석에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단다.

S씨는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이 외로움이랬다. 추석과 상관없이 항상 외로운 사람이 추석에 특별히 외로운 이유가 뭐냐고 묻자, 외로움이 아니라 심심함이라고 번복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안 놀아줘서 심심했다고 한다. S씨는 한동안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았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없어졌다며 이번 추석엔 고향에 간단다. 그래서 이번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게 돼서 뭘 할지 고민은 덜었지만, 혼자 궁상 떨 때보다 제대로 심심할 거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차표는 끊었냐 물으니, 안 갈 이유가 없어서 가려는 것이지, 적극적으로 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차표를 못 구하는 상황을 기대한단다. 어쨌든 고향집에 가게 되면 전형적으로 가족들에게 스트레스 받을 조건인 듯한데, 대처방안이 있냐고 물었다가 욕만 먹었다. S씨는 노총각이고, 가족들의 기대나 바램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K씨는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에 동문서답했다. 다른 질문들에도 거의 말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그래도 종합하자면, K씨는 서울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일상적으로 결혼 빨리 하라고 심각한 압력을 받고 있다. 아직 노총각이 아니라고 우기는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결혼할 수 있다며 공수표를 날리고 있지만, 부모님들이 그게 공수표다 아니다 부부싸움할 정도라고 한다. 작년 추석에는 수원에 있는 산소에 성묘를 가다가 가족들이 K씨 걱정으로 의견이 분분하자, 그 상황을 참지 못해 오지도 않은 급한 전화를 받고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러 간다는 핑계로 K씨 자신의 위기를 극복했다고 한다. 뻥과 구라가 부모님께 통하기는 하느냐는 질문에, K씨 버럭 화를 내며, 이런 말을 남겼다. “여보세요, 이래뵈도 내 뻥구라는 완벽한 사이버스페이스에요. 우리 부모님은 나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고... 에헤 흠”

A씨는 추석에 추상적인 뭔가를 떠올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뭔가를 떠올린 것도 아니라, 질문이 유치하다는 대답을 했다. 하여간 A씨는 결혼한지 몇 년 안돼서, 아직 시댁에 대한 어색함이 있었다. 시댁이 옛날에는 삼촌, 외삼촌들이 함께 사는 대가족이라 꽤 시끌벅쩍했다가 근래들어 시부모와 남편 동생들만 있는 조용한 가족이 됐다고 한다. 시댁 식구들끼리도 그 분위기가 사뭇 어색하다고 느끼는데다가 새가족이 된 A씨의 어색함이 더해져서 이래저래 더 어색한 가족이란다. 자기 몸이 약해서 시댁갔다가 친정갔다가 하면 몸살나서 완전 녹초되는데, 이번 추석연휴는 짧아서 더 걱정되는 모양이다.

C씨에겐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어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놀거리인 듯싶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이번 추석부터는 C씨 형수가 곧 있을 아버지 제사 때나 모이자고 했단다. 그래서 추석에 저위 H씨를 비롯한 고향에 안가거나 심심한 동지들을 불러 고궁에 놀러갈 계획을 짜고 있다. 평소 부인에게 지배당한다고 말하는 C씨니까 물론 처가댁에 먼저 다녀온 뒤에 동지들과 놀 것 같다. 그리고 가족들과 모이면 뭘하고 놀지 고민하고 있다. C씨는 안팎으로 뭘하고 놀지가 관심사다. 명절에 남녀노소 함께 즐길수 있는 놀이로 윷놀이가 어떻겠냐는 내 이야기에 그닥 동의해주진 않았다. 어쨌든 C씨의 고민이 고민인지 아닌지 내가 고민하고 있다.

M씨는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이 보름달이라고 했다!? 장투사업장에서 전망하기 힘든 싸움을 하면서도 보름달이 떠오른다며 싱글대는 모습에, “아, 물론 추석에 보름달이 떠오르죠”하며 같이 싱글거렸다. M씨는 아버지에게, 되지도 않는 싸움일랑 접고, 집에 와서 노가다나 하라은 이야기를 이미 수차례 들었다고 한다. 당장에 그 말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M씨 고향집에도 M씨만의 그 싱글거리게 만드는 보름달이 떠오를 것 같다. 제발 그 동네만큼은 날씨가 꼭 화창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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