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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난 뒤에 세상은

[전교죠선생님이 안갈켜준 공부법]  내가 떠난 뒤에 세상은

 

 

 

[하종강-고속도로의등대.mp3 (3.31 MB) 다운받기]

 

[하얀 등대 (song for jiyeon 지연의 노래).mp3 (7.25 MB) 다운받기]

 

 

 

  20여일 만에 전에 일하던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시설물에 대해 후임자에게 설명하기 위해서요.   찾아간 학교엔 늘 그랬듯이 학생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엄숙한 수업이 교실마다 진행되고 친구들 합창소리가 간간히 들려왔습니다.  이제 방문자이니 방문증을 착용하고 늘 그래왔듯이 천천히 학교의 풀들과 주변의 모든 것들에 귀기울이며 천천히 걸어 후임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일부 시설물은 벌써 고장불을 띄우고 있었고 애지중지하던 각종 도면 책자들은 창고로 옮겨 놓여져 있었습니다. ㅠㅠ

 

  시설물은 담당자가 바뀌면 다시 새 주인?에게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기도 하고 못버티고 고장나버리기도 합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 것도 같아요.  암튼 시설물은 관리하는 사람이 자주 바뀔 수록 더 빨리 망가집니다.  비상문자동개폐기를 고치고 하루종일 구석구석 시설물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왔습니다.

 

  시설을 다루는 노동자들은 한 5년 이상 같은 시설물들을 다루다보면..  마치 내가 그 시설물의 주인인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연장을 놓고 언제 있었냐는 듯이 훌쩍 떠나야하는게 기술밥 먹는 사람들의 숙명입니다.  아니 모든 노동자의 공통사항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저 노동력을 팔아먹으며 한달 한달을 근근히 살아가는 노동자이죠.   얼른 착각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나는 그저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사는 노동자일 뿐이라고 되뇌어도 여전히 내가 만지던 공구들이며 땀 깨나 쏟아냈던 손때뭍은 시설물들이 눈에 밟힙니다.  마치 어르고 달래던 어린아이를 외딴 곳에 뚝 뗘놓고 온 느낌이랄까요? 

 

  그러나 세월은, 세상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굴러가고 친구들은 다시 웃고 뛰어다니고 저는 이방인이 되어버립니다.  아니 이제 명백한 이방인입니다.  '아..  시로코팬에 올해도 구리스를 쳐줘야하는데..  녹슬지 말라고 사놓은 스토퍼 앙카를 박아놓아야하는데...  지하수탱크에 EM 자동공급기를 달아놓고 나왔어야했는데..' 하는 생각들을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죠.   친구들이 때가되면 졸업을 하듯이 아저씨도 때가되어 연장을 놓고 나와버린 샘이죠.  아저씨가 없으면 잘 안굴러 갈거 같은 학교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잘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연장을 놓고 나왔지만..   손때묻은 시설물과 함께 남은게 있었습니다.   바로 아저씨가 설치해놓은 각종 문구나 경고 표지판들이었지요. 

  '보호구를 착용하시고...' 하며 달아놓은 안전모,

  '등사잉크는 발암물질이니 등사실을 다른 용도로 이용하지말고...' 

  '22900V 특고압..' 

  '조리흄 제거를 위해 조리땐 123번,  배식땐 1 번 휀을 가동하시고...'

  '동파예방을 위해... 침수방지턱...  '

하는 문구들만이 아저씨가 '여기' 일했었다고 증언?하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평소 귀찮아 붙이지 않은 아래 안전문구가 후회로 남았습니다.

  '지하기계실이 물에 잠겼을때 들어가면 감전사망하게 되니 절대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아저씨가 깩하고 죽어도 세상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굴러가겠지요? 세상은 그런거라는 걸 오늘 새삼 느끼고 왔습니다.  시설관련 노동자들은 시설로 이야기합니다.  예전 유럽 석공들이 자기들만의 조형물로 소통했다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습니다.  내가 얼마나 오만하고 부질없이 일했었나를 깨달은 하루 였습니다.   제가 기초를 닦아놓은 그 학교는 수십년 수백년? 이어질 것이고 친구들은 그 공간 속에서 배움을 이어가겠지요.  

 

  함께 사는 건강한 노동자로 살게될 친구들을 언제나 응원합니다.   친구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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