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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갈쳐주는 공부법] 학교 건강성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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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선 이런저런 문제해결을 위해 선택 하거나 무슨 계획을 세울 일들이 수시로 벌어집니다.  그럴때 학교 구성원 대부분은 보여주거나 성과를 내서 인정받기 위하여 일이 진행합니다.  그러한 선택들 속엔 학교 존재이유가 되는 학생에 대한 고려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가 생겨난 이후로 등교연기, 교차등교 같은 일들은 누구나 처음 경험하고 있는 사태입니다.  교직원들은 학생들이 없는 '학교'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왜 지금껏 교직원들은 깨닫지 못하였던 것일까요?  그럼 깨달은 교직원들은 이제부터는 학교일에 모든 판단기준을 학생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로 결정하고 있을까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뀐게 있다면 잠시 스스로들 생각한 호의를 어거지로 등교한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그러다가는 그 호의 조차 없어지고 다시 예전의 모습들로 회귀들 하겠죠.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선택 기준은 그것이 학생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해로울건 없지만 별로 득이되지 않는가 입니다.  이것만 자신 앞 모니터에 포스트잇으로 붙여놔도 학교는 변합니다. K에듀파인? 바탕화면으로 깔아만 놓아도 그럴겁니다.  교육의 질이 높아지려면 교직원의 질이 높아져야만 가능한 하다는 사실은 '공리' 입니다.  종종 교육관련 고위공직자를 TV에서 보게됩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 존나 재수없게 생겼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런 고위직에 올라갔다는게 얼굴과 말투에 씌여있기 때문입니다.   줄대며 짜웅하며 인생들 잘못들 살으셨다는게 보기만해도 그냥 느껴집니다.   TV에서 보게되는 교육관련 고위직들 중에 제대로된 사람을 못봤습니다.  보이는 족속 맑지도 않고 신념, 헌신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생김도 말하는 것도 한마디로 다 존나 재수없습니다.

 

  현재 교육조직은 간신히 굴러갑니다.  조직이 유지되는 이유는 아마도 3%의 소금같은 구성원들의 헌신이라 생각합니다.  80%이상 구성원이 여성이며 학생들이 남자 담임선생님을 만날 확률은 12년간 한두번밖에 되지 않습니다.  학교는 대형화되며 시설들도 복잡해졌습니다만 교육조직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육조직이 얼마나 건강한지, 지속가능할지를 알아보는 척도는 학교에 대한 시설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냐를 보는 것입니다.  학교 시설을 용역회사에 맡겨버리기도 하고, 정규직/계약직을 뽑아 기술교육은 시키지도 않고 잡무나 풀을 깍게하고, 연금받고 있는 퇴직공무원을 돈벌이용 임시 일자리로 고용하기도 하고,  골치아픈 시설관리 일은 고시공부하다 갖들어 온 여성 행정공무원에 맡겨버리는가하면 승진자리를 늘리려 시설관리 기술인력을 없애고 행정인력을 대폭 충원해서 그냥 매꿔버리기도 합니다.  

 

  어떠한 화학물질이 유독물질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그 물질로 인해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해야만 해로운 물질로 분류가 됩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아는 삼성반도체서 젊은이들 눈을 멀게한 메탄올의 위해성을 수백명 노동자가 먼저 눈이 멀었기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안전한 화학물질은 없습니다.  소극적이나마 아직까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까닭입니다.  유전자조작 식물을 먹었을때 무슨일이 벌어질까? 수백년은 지켜봐야만이 알게되는 사실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아직까지 방사능에 대한 인체 노출 유해 기준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수백명이 죽은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학교 시설관리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해나가느냐는 학생들의 목숨과도 직결됩니다.  정규 시설관리 노동자를 채용하지 않은 댓가는 고려하건 고려하지 않건 오롯이 학생들이 받게됩니다.  교육관계자는 많은 학생들이 불안정 시설물에 죽으면 그제서야 학교 시설관리 업무와 정규직 시설관리 노동자 중요성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학교는 학생이 중심이 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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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전교조 선생님은 모두 인사를 잘 해야하는가?

 

 

 

[아침을 여는 노래1 앞05 - 연주곡 - 참교육의 함성으로.mp3 (9.76 MB) 다운받기]

 

 

  가만 생각하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잘하면 좋겠지만..  그래야한다는 발상 자체가 노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씹기위한 불순함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노조원은 도덕적으로 완성체일 이유가 없습니다. 노조원이 반드시 옳아야할 이유도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떨땐 속터지게 엉뚱한 결정을 할때도 많이 있습니다. 지극히 감성적으로 판단할 때도 있고..  본인들의 아주 작은 이익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노조를 혐오스런 조직으로 맨들기 위해선..  노조원들을 도덕적으로 까는 것 만큼 지속적인 효과를 내는 방법이 없어요.  노조원에게 도덕적이거나 조합원이 아닌 회사나 기타 권력자의 시각으로 욕을 하는건 본인들의 입장은 항상 법이라 생각하는..  존나 무식하고 노조원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럼..  도덕적으로도 옳지않고 어떨땐 별로 정의롭지도 않으며..  순간의 이익에 넘어가는 일부 정신줄 놓은 노조원을 보면서 왜 누군가는 계속해서 노조원이 되는 걸까요?  도데체 노조원이 되면 뭐가 다를까요?

 

  노조원이냐 아니냐의 가장큰 차이점은..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느냐.. 아니면 조금 바꿔보고 싶은 내 생각대로 살겠는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노동을 제공하는 입장의 차이랄까요?  비노조원은 영혼없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노조원은 영혼을 갖고..  본인의 생각을 노동을 제공할때 투영시킵니다.  본인의 생각대로 맡은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면 그 뿐입니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영혼없이 사는 선생님보다 인격적으로 개차반으로 사는 전교조 선생님을 저는 더욱 존경합니다.ㅋ

 

 노조는 조합원의 이득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입니다.  노조원의 이득을 본인의 생각대로 주장하다 그 이득이 국가나 사회의 시스템과 맞닿아 있으면 국가나 사회에 본인들의 주장을 얘기하게도 됩니다.  수신재가 치국평천하라고나 할까요? 문제의 원인이 국가나 자본가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노조원은 힘은 별로 없지만 국가나 자본가에게 목숨을 걸고 본인들의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다시 전교조 선생님들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들은 도덕적으로 항상 옳지도 않고..  잘못된 전술을 선택하기도 하며..  학교의 다른 노동자에게 막말하거나 인격적으로 개차반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노동자로서 노조원이 되는데에 다른 누가 막거나 훼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이들은 최소한 시키는대로 감정노동을 하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할말을 하겠다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노동자들이니까요.  모두들 제잘난 멋에 살고있는 인생들에 대하여..  과연 그 누가 타인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고 간섭할(책임질) 수 있을까요?  연세드신 비조합원 선생님들조차 전교조 때문에 선생님들의 복지가 향상되었음이 자명한 사실이라 20여년전부터 고백하고 계십니다.  담배 한 대 빨고 오겠습니다.

 

 

  교원의 이득을 위해 학생을 이용만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러나 최소한 전교조 선생님들은 학교내 모든 선택의 변수에 '학생'을 염두에 둬야합니다. 왜냐면 학교라는 집단의 존재이유는 학생이니까요. 낡고 칡칡한 건물을 학교이게 하는건..  배우기 위해 아침밥먹고 부모님께서 사주신 책을 꼼꼼히 넣어 묵묵히 학교에 모여드는 꽃같은 학생들이니까요.  학교는 학생들이 있으므로 '학교'가 되는거니까요.  체험학습을 활성화하자는 교직원 전체 회의에서 최소한 전교조 선생님들은 교장교감선생님의 의중을 공개적으로 물어볼게 아니라..  이러한 선택이 과연 학생들에게 득이 될 것인가 실이 될 것인가를 다각도로 숙고하여 공개적으로 물어봐야 했습니다.  체험학습의 확대가 교사들의 업무과중 이전에 자본주의를 뚫고 배겨나갈 학생들에게 과연 득이되는가 실이되는가, 시골학교이므로 체험학습보다는 학습능력을 증가시키는데 매진하는게 좋게다 등등..  학생들에게 어떨까를 공개적으로 물어보셨어야 합니다.  모든 선택기준에는 '학생'이 존재해야만 학교에서는 옳은 선택을 할 수가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주장했어야 합니다. 당신들이 전교조라면.

 

 본분을 망각하고..  이런 저런 타협을 한다면 전교조는, 조직은 망가질 것입니다.  이건 짐을 지우는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로서 선생님의 정체성 문제입니다. 전교조가 항상 옳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전교조 1세대 선생님들께 배웠던 사람이 보자면..   모든 선택에는 '학생'이란 잣대가 들어가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제가 보았었던 전교조 선생님들의 존재이유와 맞닿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거시적인 투표나 하고.. 법외니 어쩌니 허송세월 할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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