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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과 경계, 톱니바퀴로 퍼즐 맞추기.

** 이글은 "나무"님의 [MSN이 개인정보보호 1등이라는 소문에 대하여] 포스트와 관련이 있는 것 같지만 없습니다. ^^;
 
프라이버시가 뭐냐? 참 뜬금없는 질문에 답변하기도 난감하다.
 
최근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내가 생계비를 충당하고 있는 학원에서 대대적인 학생관리 DB 시스템을 만든다고 나선 것이다. (오우, 어감이 참. -_-a)
 
당연히, 앞뒤 재보지도 않고 거품부터 물었다. 다른건 다 몰라도 정보인권 때문에 억울한(!)일 겪어봤으니 얘기 듣는 순간 눈부터 뒤집히고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면서 애들한테 사회 문제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냐?"(=> 뭐라고 그랬는지 사실 잘 기억 안남 -_-a) 등등.. 무조건 반대 입장을 딱 세우고 출발했다.
 

사교육 시장이라는게, 결국 '교육적 가치'보다는 '시장적 가치'에 적응할 수 있는 인간형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 온 힘을 다해 교육적 가치를 구현하고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대학 합격증'이라는 성과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면 그 의미가 상실된다. 결국 학원에서는 학원 수강료 만큼의 '교육' 뿐만 아니라 경쟁력을 높여주기 위한 제반 시스템을 제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하여, 이제는 개인식별이 가능한 모드 정보중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이 없다. 아이들의 성적은 학원 마케팅의 자료로서 활용될 것이고, 아이들에 대한 평가는 적절한 '학교'를 찾아주고 그에 맞는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기 위한 소스가 된다. 따라서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것은 학원에게는 치명적인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보집적이 꼭 필수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필수적이다. 학원에서는 좀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타 학원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하고, '대학 합격증'의 레벨과 숫자가 학원의 생명을 결정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개별 학생들의 '자기정보결정권'은 '대학 합격 이후'로 행사할 수 있는 부차적인 권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유는, 결국 '판단의 기준'과 '조건'의 합의지점이 어디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중산층 이상의 고등학생들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선택할 수 있는 자아 실현의 범주란 상당히 좁은게 현실이고, 대학을 가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결국, 모든 것은 복합적인 상황에서 판단되고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활동에 있어서 여러 판단 기준들(원칙과 현실 사이의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판단은 오히려 내게 치명적인 칼날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고민들에 부딪힐 때 마다, 나는 늘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더 걸림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내릴 수 있는 모든 결정에 대해 내가 늘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따라서 판단의 근거도 변화한다. 나의 선택 기준은 최대한 위험성을 줄이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선택 기준 조차도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것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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