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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합니다.

marishin님의 [민주노총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에 관련된 글.

"약간의 희망만 있어도 대중은 들고 일어날 것이다."라는 문구를 제외하고는 marishin님의 글에 대부분 동의한다. 저 문구를 굳이 제외한 이유는 '들고 일어날 주체'로서의 대중에 대한 나의 생각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전략)...민주노총은 시작부터 개량주의적이었다고 하자. (나는 자세한 사정을 모른다.) 하지만 1996년, 97년 노동법 개악에 맞선 대투쟁이 개량주의적 투쟁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이 투쟁의 끝은 지도부의 개량주의 때문에 흐지부지 됐지만, 그것과 투쟁은 구별되어야 한다. (중략) 민주노총 깃발 아래 벌어진 많은 투쟁들은 결코 개량주의적이지 않았다. 문제는 지도부의 개량주의다. 이 둘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모독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느 쪽도 운동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것도, 정파를 이끄는 일부 운동가들만 눈에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략) 대중에 대한 무시 또는 무지, 관념성은 대안에서도 드러난다. “자본가와 질적으로 다른 새 인간으로의 노동자의 자기변혁”이라니... 최저 임금보다 10원 더 받는다는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은 모르긴 몰라도 매일 매일 자신들이 '자본자와 질적으로 다른 인간'임을 절감할 것이다. 어디 그들 뿐이랴. (중략) 과연 어떻게 자기변혁을 이룰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이 자기변혁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 최저 임금보다 10원 더 받는 사람들, 아니 최저 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서 그리고 일상적 삶과 활동에서부터” 무엇을 해야 이 자기변혁이 관철되는가? 진짜 문제는 “잘난 노동운동가들”이 바로 이런 구체적인 대안과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래서 문제는 운동가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 속에 매몰되어 다툼이나 벌이는 데 있지, 민주노총이 애초 한계가 분명했다는 데 있지 않다. 제대로 된 운동가들이 있었다면 민주노총의 태생적 한계는 벌써 극복되었을 것이다. 약간의 희망만 있어도 대중은 들고 일어날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도저히 더 버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그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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