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인권운동단체의 상임활동가이며 여성이다. 당연히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인권침해임을 알고 있다. 내가 위의 외모차별 지수를 체크하면 당연히 ‘아주 훌륭한 당신’의 점수를 얻을 자신이 있다. 적어도 그것이 차별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실제 모습은 ‘아주 훌륭’하기는커녕 ‘외모차별에 물든 당신’의 자리에 있다.
얼마 전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는 큰 광고판에 세계 굴지의 스포츠용품 회사 나*키의 여성 브랜드 광고가 걸렸다. 발을 힘차게 구르고, 한쪽 팔은 한껏 위로 뻗으면서 운동을 하고 있는 그녀들. 예쁜 보라색 스포츠웨어를 입고 힘차고 밝은 표정으로 ‘따라해보세요’하고 유혹한다. 같이 그 광고를 보고 있던 선배언니의 한마디.
“참 내. ‘예뻐져라’, ‘날씬해져라’도 모자라서 이젠 ‘강해지라’고 까지 하네? 그만 좀 시켜라. 어디 여자들 힘들어서 살겠냐.”
피식 웃어버렸지만 맘 한구석에서는 날씬하고 당당해 보이는 모델들의 모습에 압도되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15년 가까이, 딱 두 번 정도를 제외하고 나는 늘 짧은 커트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긴 머리인 채로 관리하기에는 귀찮은 곱슬머리이기 때문에, 라고 변명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여성적인 외모를 타고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준보다 큰 키, 건장한 체격, 그리고 잘 봐주어도 ‘예쁘다’는 평가보다는 ‘잘 생겼다’는 평가를 받는 강한 인상, 55(여성 옷 사이즈, 여성 의류 S 사이즈 정도? 여성 의류는 S와 M 이상의 사이즈를 찾기 쉽지 않다.)사이즈의 옷이라고는 한 번도 입어본 기억이 없고, 66사이즈의 옷을 찾으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상황이다. 맞는 옷을 찾으면 위안이 된다. 아직 나는 ‘표준’이구나 하는 그런 위안.
특히 건강한 외양 덕택에 남성으로 종종 오인되는 경우까지는 참아줄 수 있지만, 뒤따르는 평가들은 나를 아주 맥빠지게 만든다.
‘머리를 길러보지 그러냐’
‘옷 입는 스타일을 바꿔봐라’
마치 ‘여성적 외양을 가지지 않은 내가 사회에서 차별당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나는 타인에게 외적 기준을 적용하여 판단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나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거나 더 남성적인 외모를 지닌 여성이라고 해서 사회적 가치가 떨어진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사실, 이제 내 주변 사람들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외모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나’일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회에서 불편하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도 한국여성 표준(대부분 과소체중)의 몸무게를 가지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고, 다이어트 관련 기사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혼자서 거울을 보고 있을 때는 성형수술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게 될지를 고민한다. 차마 입 밖으로 드러내지 못했지만, 복권에 당첨된다면 눈/코/입/턱/가슴/지방흡입 등의 전신 성형을 하는 것이 절실한 소원이고, 성형 전/후를 보여주는 광고나 성형수술에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눈을 떼지 못하며 성형수술 당사자들을 품평한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나는 몰래 **씨의 요가 비디오동작을 따라하면서 ‘완벽한 몸매’를 꿈꾸고 있다.
외모로 인한 차별이 인권침해라는 사실은 이젠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외모를 기준으로 취업시 불이익을 주는 것은 평등권 침해에 위반된다는 국가인권위의 권고까지 있었던 것을 보면 외모차별은 확실히 인권침해가 맞다. 하지만 누구도 이 인권침해에 대해 쉽게 개선의 노력을 보이거나 혹은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도 사실이다.(주변에서 흔히 오고가는 농담 중에 외모를 소재로 삼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요즘 ‘착하다’는 표현은 심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를 평가하는 말로 쓰이고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의 외모차별주의는 그 뿌리가 깊다. 특히 남성들보다 높은 사회 진입장벽 앞에 허우적대는 여성들에게 ‘날씬한 몸매’와 ‘호감가는 외모’는 ‘능력’으로서 이 시대 꼭 갖추어야 할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차별받지 않을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뒤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외모를 품평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나 자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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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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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외모를 기준으로 평가를 하죠.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나도 (레이와는 다른 경험을 통해서이지만) 잘 알아요.그리고 난 레이가 참 예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탁인데, 설령 복권에 당첨되더라도 성형은 하지 말길 바래요.
(그돈으로 차라리 아랫집에 보일러 놔주는 건 어때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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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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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 // 성형하고도 아랫집 보일러 놔줄만큼 많은 당첨금을 받을거에요! ㅋㅋ (농담인거 알죠?)부가 정보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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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그냥 성형하지 말고 보일러 놓고, 온수기도 놓고, 컴퓨터도 사줘... 그리고 돈이 남는다면 오리꺼같은 실내화 한짝만 사줘...참, 벽지도 새로 해줄꺼지?부가 정보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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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 두번하면 재미 없는거 알지? ㅋ부가 정보
뎡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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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뚱뚱해서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바지를 입으면 안 예쁜 거에요~ 반바지는 괜찮은데 긴바지 입으면 가랑이가 똥꼬같아져서-_- 살 빠지면 사야지 하고 바지가 몇 개 없어요ㅠ_ㅜ 옷사러 가면 맨날 입어보고 '살 조금만 빼면 되겠다'싶어서 다음으로 미루고(혹은 사놓고 다신 못 입..). 싸이즈를 큰 걸 입으면 모양이 잘 안 나고요. 그리고 가끔 싸이즈가 커도 괜찮은 것들이 있는데 작은 싸이즈를 입고 싶은 강박관념으로 작은 걸 사든지 안 사든지 그래요.부가 정보
뎡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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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히 남의 외모도 평가해요. 못 생겼다고 격하하지는 않지만 너무너무 싫어하는 사람이 못 생겼으면 "그따위로 생긴 게" 등등으로 역시 외모를 가지고 욕하지요.아주 나는 스스로를 부끄러운 줄 알고 약 30년간 반성해야만 해요. 그런데 반성은 잘 하는데 개선이 안 돼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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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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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난 외모에 무관심한가봐. 그래서 누가 아프다고 하면 미안해.부가 정보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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뎡야핑 // 저도 개선은;;동동이 // 아프다고 하면 왜 미안한거지? ㅇ_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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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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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동동이/ 얼굴에 드러난 아픈 모습조차도 잘 알아차리지 못해서?부가 정보
bel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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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 // 오호! 그런 해석이 있었구랴.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