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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2호>거품으로 연명하는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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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의 예고편, 저축은행 사태

 

거품으로 연명하는 자본주의

 

저축은행 사태로 인한 공포가 진정될 줄 모른다. 그리고 집단 영업정지 사태로 시작된 공포는 날마다 밝혀지는 각종 비리 사건으로 인해 가진 자, 그리고 가진 자만을 위한 세상에 대한 분노로 발전하고 있다.
 

온갖 비리 - 가진 자만을 위한 더러운 세상

 
불법대출,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특혜인출, 그리고 금감원의 사태 은폐 등, 비리 사건의 종류는 다양하기도 하다. 이러한 비리를 통해 자본가들이 취한 이득은 조 단위를 넘어선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은 박연호 회장 등 대주주들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120개 법인에 4조5942억 원을 대출했다.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조차 보장받지 못해 삶이 파탄나는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계산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돈놀이를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다. 자본가들의 불법적인 돈놀이로 인해 터진 현재의 사태에서도 피해보는 것은 소액 예금주들뿐이다. 자본과 권력층은 특혜인출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한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위기가 감지된 상태에서 정보력 있는 자본과 권력층은 영업정지 이전에 미리 돈을 빼놓았다. 영업정지 전날인 2월 16일 영업이 마감된 이후에만 이들은 특권을 이용하여 1077억 원을 인출했다. 돈과 권력만 있으면 못 할 일이 없다. 정말이지 가진 자만을 위한 더러운 세상이다.
 
여기에 더해, 금융감독원이 사태의 위험성을 예전부터 알면서도 숨겨왔다는 사실은 국가권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중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주었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밖에 없는, 있어봤자 약간의 예금뿐인 노동자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비리의 원인 - 거품경제를 지켜야 하는 자본가계급

 
문제는 이러한 비리가 단순히 ‘몇몇 관계자의 부도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오늘날 자본가계급이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경제정책’에 가깝다. 금감원 간부들이 저축은행 사태를 숨긴 것은 단순히 그들이 저축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았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다. 그러나 돈을 안 받았으면 금감원이 사태의 위험성을 미리 밝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가 실물경제의 성장이 아니라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등에서의 거품에 의존하여 연명하고 있다는 것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이후 이어진 미국발 금융위기, 세계경제위기 등으로 인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만 하더라도 끊임없는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 등으로 거품을 키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사태에서 핵심적인 문제로 지적된 PF대출 또한, ‘사업 계획’ 하나를 담보로 대출을 가능케 하는 제도이다. 대부분 건설업 등 부동산개발 사업에 이뤄지는 PF대출은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확대하는 핵심 제도이다. 저축은행들 또한 이러한 PF대출 제도를 바탕으로 불법대출을 일삼아왔다. 부산저축은행도 대규모 건설사업 계획을 담보로 대주주들이 소유한 기업들에 대출을 해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량대출된 자금, 즉 거품으로 형성된 경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었다.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무한히 확대될 것을 전제로 불량대출을 일삼던 저축은행들이, 부동산경기가 침체되고 대출금의 회수가 원활하지 않게 되자 부실화와 영업정지를 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작년 9월 저축은행들의 PF대출 연체율은 24.3%에 달했다. 보통 은행의 일반대출 연체율이 1~2%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한번 거품이 터지면 위기는 금세 확대된다. 저축은행 사태와 유사한 형태로 일어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한 곳에서의 파산이 자본의 흐름을 막기 시작하자 연쇄 파산을 낳았고, 급기야는 금융위기 및 세계경제위기로까지 확대되었다. 금융감독원이 사태의 위험성을 드러내지 못했던 이유, 그리고 사태가 터진 후에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축은행의 부실화를 말하는 순간 위험을 감지한 예금주들이 은행에서 집단적으로 예금을 인출하는 사태(뱅크런)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감히 이를 말할 수 없었다. 뱅크런은 자본의 흐름을 원활하지 못하게 할 것이고, 그 결과 경기침체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부 또한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도 PF대출 금지와 같은 조치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거품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예를 들어 금리 동결과 같은 조치만을 취할 뿐이다. 현 사태가 단순히 비리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자체의 위기를 드러내는 사건’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본격적인 위기의 전조, 이번에는‘경제위기 고통전가’을 막아내야 한다

 
자본가계급은 결코 이러한 거품을 꺼뜨릴 수 없다. 거품의 붕괴는 경기침체와 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이며, 더 중요하게는 그 거품이 자신의 이득(이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품경제를 지켜내는 과정, 그 곳곳에는 비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선 무리수(비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사태는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의 예고편이다. 정경유착이 심한 한국에서, 사태는 다른 나라에서보다 비리라는 부차적 요인이 훨씬 많은 형태로 터졌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이것은 거품으로밖에 자신을 유지할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위기’ 그 자체이다.
 
서브프라임 때도 위기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문에서 먼저 터졌다. 한국에서도 우량대출을 담당하는 시중은행이 아니라 ‘비우량’ 대출을 담당하는 저축은행에서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문제는 저축은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월 말 국내은행 부동산 PF 연체율을 5.30%로 지난해 말 4.25%에 비해 1.05% 급증했다. 부실채권비율도 18.35%로 지난해 말 16.44%에 비해 1.91% 올랐다. 저축은행이 전체 금융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작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전체 부동산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저축은행보다 더 작았지만, 이는 금융위기, 경제위기로 확대되었다.
 
위기는 이미 예고되었다. 문제는 언제 터지는가이다. 그리고 위기는 곧바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불러올 것이다. 자본주의가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은 바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이다. 이는 ‘거품경제’보다도 훨씬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더 이상 경제위기 고통전가를 용인하자 말자. 지금부터 당장 막아내자. 엄청난 물가폭등으로 인한 실질임금 삭감을 만회하기 위해 대대적인 임금인상, 실질임금 쟁취 투쟁으로 나서자! 저축은행 사태가 아무리 큰 경제위기로 발전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자. 한국은 작년 6%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혜택은 모조리 자본가의 것이었다. 노동자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오히려 금융기관의 몰수·국유화를 요구하고 이에 대한 노동자통제를 실시하자! 소액 예금주를 보호하고, 노동자의 삶이 자본가계급의 돈놀이, 거픔경제에 휘말리지 않게 만드는 것, 노동자를 위한 경제, 노동자 세상, 즉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투쟁,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이러한 투쟁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조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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