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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25호>불복종에 대한 두려움, 희망버스 손해배상청구

희망의 버스에 국가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손해배상을 청구한 원고는 대한민국(법률상 대표자 법무부장관 권재진)과 희망의 버스로 인해 다쳤다고 주장하는 경찰 14명이다. 피고는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비사단법인) 외 5명이다. 국가는 물적 피해 430여 만원과 인적·정신적 피해 1천여 만원을 더해 1,500만원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재산적·정신적 손해배상을 받기 위한 목적 뿐 아니라, 자유에는 책임, 불법행위에는 그에 상응하는 제재가 반드시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하여 평화적이고 선진적인 집회 시위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데에 그 취지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의 본질이 참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소송이다.

 

희망의 버스는 평화기조임을 수차례에 걸쳐 밝혔고, 국가가 주장하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집회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 집회신고를 말도 안되는 이유로 반려하거나 보완이 불가능한 보완통보를 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낸 집회신고는 너무나 쉽게 인정되었다. 그 보수단체들이 심지어 ‘똥물’을 준비하는 폭력적 단체라고 하더라도 기업을 옹호하는 집회라면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는 적극 보장받아야 할 행위로 인정된다. 반면 노동자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집회는 불순한 것으로 간주되어 정부는 일단 막으려고 든다. 국가의 공권력이라는 것이 자본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이 너무나 명확하지 않은가.

희망의 버스에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사람을 살리고 정리해고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불법’이라는 딱지를 무릅쓰고 집회를 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그러나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이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자본가들은 그 위에서 돈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법’을 선택했다. ‘불법’을 선택한다는 것은 법과 제도가 문제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법과 제도가 결코 정의롭지 않으며 공정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강압적인 소환과 벌금, 체포와 구속에도 굴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 정리해고를 없애고 사람을 살리는 길에 동참해왔던 것이다.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경찰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가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노력했다. 밀면 밀리고 막히면 돌아갔다. 이것이 정부로서는 너무나 두려웠을 것이다. 국가라는 이름을 독점하고 경찰과 법 등 공권력의 기반 위에 서 있는 정부로서는, 비록 큰 실천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더 많은 이들이 권력의 불공정함을 인식하고 그에 불복종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평범했던 많은 이들이 국가가 결국은 자본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인식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는 권력에 대항하여 작지만 불복종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자본의 편을 들면서도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위장하고 살아남는 구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희망의 버스에 함께한 이들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항상 저항의 길을 걸어왔던 이들은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큰 위협이 아니다. 그런데 불복종을 시작한 평범한 이들은 너무나 큰 위협이다. 그래서 정부는 400명이 넘는 이들에게 소환장을 보내고 강압적으로 굴종을 강요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오히려 의연하게 그에 맞서고 있으니 이제는 국가의 이름으로 개인들에게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면서 ‘불법행위에 상응하는 제재’ 운운하고 있다. 정부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그들의 공고한 법질서가 무너질까봐 얼마나 전전긍긍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참으로 즐겁다. 희망의 버스는 사람 하나 살려보자고 매우 소박하게 출발했으나 그 속에서 정리해고제도가 얼마나 문제인지를 알게 되었고, 재벌들이 노동자를 얼마나 파렴치하게 착취하는지 알게 되었고, 정부와 법과 제도와 공권력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알게 되었다. 너무 공고하여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이 거대한 자본의 카르텔에 웃으며 저항하는 방법을 우리는 배우고 있다. 두렵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것, 그들이 요구하는 법과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것, 깨지고 다치고 조사받고 벌금물고, 때로는 손해배상까지 당하더라도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서 연대의 힘을 믿고 중단 없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우리의 힘임을 알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기고 있다.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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