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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1호>야권연대의 본질을 드러내고 노동자계급정치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총선

빗나간 예상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4.11 총선이 끝났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우선 투표율이 예상보다 낮았다. 총선 투표율이 지자체 선거보다 높다는 전례와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성격을 볼 때 54.3%의 투표율은 의외였다.
의외의 결과는 또 있다. 새누리당이 지역구와 정당지지율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며 152석을 얻어 원내 과반을 넘었다. 야권이 승리하거나 새누리당과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대체적 예상이 뒤엎어졌다.
빗나간 예상 중 또 하나. 민노당의 후신인 통진당은 노동자정치(진보정치) 1번지라고 불리던 울산 북구와 경남 창원에서 모두 패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총선 결과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통하지 않은 닥치고 투표와 묻지마 야권연대
이번 총선결과를 두고 한 언론은 ‘화장한 박근혜가 맨 언굴의 한명숙에게 승리했다’로 표현했다. 정확한 표현이다. 박근혜의 화장은 당명 변경, 공천과정에서 친이계 정리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복지와 일자리,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새누리당이 MB와 다른 정당으로 새로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새누리당은 이른바 현상적 좌클릭을 통한 변화와 미래와 민생을 말했다.

이에 비해 민주당과 통진당은 ‘MB정권·새누리당 심판’과 ‘야권연대’를 전면에 내걸었다. 민주당은 “의석수가 부족해 MB와 새누리당의 잘못을 막지 못했으니 제 1야당에게 힘을 달라”며 오로지 표를 구걸했다. 통진당은 “모든 것을 버리는 자세로 야권연대를 이루겠습니다”라며 야권연대만 외치고 다녔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반MB’이고 ‘야권연대가 목표로 하는 정치적 전망’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야권연대가 만들어낸 필연이다. 또한 새누리당이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걸면서 공약상의 차이도 거의 없어졌다. 비록 겉치레일망정 혁신과 변화의 의지마저도 보여주지 못했다. 양당은 창당과정에서 정치공학적 통합과 정권 심판 외에 대중의 삶의 파탄을 해결하고 대중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끌어안을 미래전망을 전혀 제출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그놈이 그놈인 선거판’에 대중들이 열심히 투표에 참가할 유인은 없었다. 야권연대는 대중들에게 반MB의 대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동자 정치는 없었다.
이번 총선 결과 중 가장 큰 특징은 노동자정치의 ‘실종’이다. 민주노총이 추구한 제 2의 노동자정치세력화운동의 결과물인 통진당은 목표였던 20석을 얻지 못했지만 총 13석을 얻어 제 3당이 되었다.
그러나 제 3당으로 부상이라는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이제 통진당은 노동자 정치와는 만리장성을 쌓은 또 하나의 야당이 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통진당이 얻는 정당지지율 10.3%는 2004년 민노당이 처음 국회로 입성했을 때의 지지율 13%에 못 미친다. 최초로 수도권 지역구 당선이라는 성과도 국참당과의 통합과 민주당과의 야권단일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자력에 의한 성과라고 보기 힘들다. 게다가 통진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정당이었음에도 노동자정치(진보정치) 1번지라 불리던 울산 북구와 경남 창원에서 참패했다.

예정된 결론
이런 결과는 예정된 것이다. 통진당은 출범과정, 정강정책, 공천 및 선거운동 과정에서 노동자 정치와는 점점 멀어지는 우경화·탈계급화의 길을 걸었다.
정강정책과 공약은 민주당과 차별성이 거의 없었다. 민주당이 좌클릭했다면 통진당은 과거 민노당보다 우클릭했다. 통진당의 재벌공약은 새누리당·민주당과 비슷한 재벌의 골목상권 진입 차단이었다. 가장 급진적 것도 30대 재벌기업을 3천개 전문기업으로 바꾸는 것이어서,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만 문제삼을 뿐 독점자본의 지배력 그 자체는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서민복지·서민경제 공약 역시 식상했다. 초기 민노당 시절의 핵심공약인 무상복지조차 아예 없어졌다. 일해도 가난한 노동빈곤문제의 핵심인 비정규직문제는 비정규직 완전 철폐가 아닌 차별 철폐와 정규직화 유도였다. 간접고용 문제는 아예 거론되지도 않았다. 보수여야 정당과 차별적인 계급적이고 급진적 전망과 공약은 없었던 것이다.
공천 과정에서 부르주아정당과 다를바 없는 다양한 비도덕적 행태가 벌어진 것은 물론이고,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을 탄압한 이경훈마저 예비후보로 선출했다. 이정희의 ‘눈물’ 광고와 통진당 후보들의 ‘웃음’ 광고는 계급적 각성과 이해보다 감성과 유머를 전면에 내세우는 탈계급적 선거운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통진당이 광범한 미조직 노동자는 물론이고 조직노동자의 정치적 지지를 기대한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통진당은 의석수는 늘렸지만 새누리당·민주당과 질적으로 다른 정치적 전망과 희망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면서, 노동자정치를 실종시키고, 노동자정당·진보정당이 아님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4.11 총선의 교훈 
4.11 총선결과 중 또 하나 주의깊게 보아야 할 것은 총선 결과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보수양당의 독점구조를 강화시켰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화려한 화장술로 MB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전형적인 자본가정당·기득권 정당이라는 본질을 숨기면서 제 1당 지위를 유지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정치적 나락으로 떨어졌던 자유주의세력은 MB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 한국노총과 시민운동의 수혈, 민주노총과 통진당과의 연대로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대안인양 부활했다. 이는 민주당이 여당에 패했지만 18대 총선 때보다 의석수를 46석이나 늘리고, 수도권에서 승리한 것에서 드러난다.
제 3당으로 부상한 통진당의 승리는 노동자정치를 자유주의세력에게 팔아먹은 결과물이어서, 그 정치적 의미를 크게 부여할 수는 없다.

즉 이번 총선 결과의 핵심은 1%를 위한 사회체제를 99%를 위한 사회체제로 바꾸기 위한 노동자계급정치, 노동자민중의 경제적·정치적 해방을 위한 노동자민중정치의 실종이자 패배이다. 자유주의세력 집권 10년과 MB 집권 4년의 결과가 노동자민중의 고통을 강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광범한 정치 및 사회의 변화열망은 또다시 새누리당과 민주당(그리고 민주당의 아류인 통진당)으로 왜곡된 형태로 수렴되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새로운 노동자정치운동이 시작되지 않고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비 진보정당이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대안처럼 행세하는 구도를 파탄낼 수 없음도 드러났다.
노동자계급정치의 새로운 출발,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고 노동자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제대로 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절실히 제기되고 있다.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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