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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초점>통합진보당 부실·부정 선거 사태가 던져주는 교훈

통합진보당 부실·부정 선거 사태가 던져주는 교훈

 

핫이슈로 떠오른 통진당 사태

 

통진당 비례대표 부실·부정선거가 거듭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다. 통진당 내 당권파 대 비당권파의 대립과 투쟁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가 하면, 민노당부터 시작되는 통진당의 역사 및 당내 계파구도는 이제 전국민의 상식이 되었다. 노동현장에는 다시 정치적 냉소주의가 퍼지고 있다. 4.11 총선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에 의해 사실상 통진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강제당한 민주노총은 대혼란에 빠졌다. 진보정치를 지지했던 대중들의 실망과 항의도 확산되고 있다. 통진당 홈페이지에 실린 “부패를 일소할 개혁정치를 해나갈 것”이라는 이정희 대표의 글은 이제 웃음거리가 되었다.

 

대표적인 자본가정당이자 부패·보수정당인 새누리당마저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라듯 통진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비례대표와 지도부는 총사퇴해야 한다고, 나아가 사퇴하지 않을 시 국회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검찰은 부정선거에 대해 즉각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제 진보정당이 보수정당과 구별되는 정체성으로 여겨졌던 미덕(당내 민주주의와 투명성, 도덕성)은 완전히 땅바닥에 떨어졌다. 부실·부정선거를 둘러싼 통진당 내 논란과 분쟁, 특히 당권파의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전면 부정이라는 태도를 두고, 통진당에 대한 회의와 실망을 진정되기는커녕 겁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부실·부정선거, 새삼스런 일인가

 

이렇듯 통진당의 부실·부정선거는 자칭 진보정당이라는 통진당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통진당의 부실·부정선거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관악을 야권후보 단일화과정에서 이정희 후보 쪽의 부정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이정희 대표가 후보에서 사퇴한 바 있다. 게다가 이미 비례대표 경선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당 내에서 제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통진당은 이를 총선까지 덮어두었다. 총선 이후 당원이 당 게시판에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이고, 진상조사위가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 파장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당권파의 당권 장악을 위한 비민주적 행위는 이미 민노당 시절부터 관행처럼 있어왔다는 것은 운동사회에 알려진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단 이것이 진상조사위와 5월 5일 전국운영위의 결정으로 만천하에 공개된 것 뿐이다. 따라서 당권파가 진상조사위 결과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조사이자 당권파를 죽이려는 정치공세이며 당원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주장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주장에 불과하다.

 

패권주의 척결과 당내 민주주의가 근본 답인가?

 

진상조사위 결과가 발표되면서 통진당 내에는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에 진상조사위 결과를 놓고 팽팽한 대립이 연이어 벌이지고 있다. 비당권파는 5월 5일 전국운영위의 결정(지도부 총사퇴, 비례대표 당선자와 후보자 전원 사퇴, 선거 관련자 전원 당기위 회부 등)으로 통진당의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패권주의를 종식시켜야 하고, 당내 민주주의가 살길이라 얘기한다. 패권주의를 척결하고 전국운영위 결정이 통과되면 통진당의 위기는 해결되는가?

 

통진당의 부실·부정선거 사태를 불러온 핵심원인은 단순히 특정 정파(당권파)의 패권주의·종파주의의 산물로만 협소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이는 물론 문제를 증폭시킨 힘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은 통진당 사태의 원인을 ‘특정세력=악의 세력’이라는 감성적 접근법이다. 마치 ‘MB=악’이라는 단순하고 감성적 접근이 ‘무조건 야권연대’라는 탈계급적 정치적 대안을 불러왔듯이 말이다.

 

통진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도부의 얼굴을 바꾸고 당내 민주주의질서를 세워나가면, 이른바 진보정치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는가? 당내 민주주의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당내 민주주의의 문제는 민노당으로부터 통진당으로까지 이어진 이른바 진보정치에 대한 발본적 평가와 결합되지 않는다면 그 한계가 분명하다.

 

왜인가? 이른바 비민주성과 부실·부정행위는 제도권정당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지금 통진당 사태를 목소리높여 비판하는 새누리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돈정치, 밀실 야합 정치, 동원정치가 그들의 기본속성으로 되어 있다. 당내 민주주의는 허울이다. 새누리당, 민주당과 내세우는 기치와 그 지지기반이 좀 다를 뿐이지, 통진당은 의회 진출을 통해 제도권 정치의 단 맛을 본 부르주아 제도정치권에 완전 편입된 정당이다. 통진당이 아무리 당내 민주주의를 외친다한들, 보다 많은 의회 진출과 권력 분점(장악)이 최고의 가치가 된 이상, 부르주아 정치의 기본속성인 돈정치, 밀실 야합 정치, 동원정치는 완전 끝내지 못한 채 이벤트성 쇄신으로 끝날 것이다. 오직 정당(또는 소속 정치인)의 국회 진출과 행정부 진출이 최고의 목표가 된 의회주의 정당은 ‘노동자민중이 정치의 주인이라는, 당원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본래 정신을 절대로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줄세우기·동원정치·비민주성은 부르주아정치(제도권 정치)의 쌍생아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정치를 퇴행시킨 의회주의 진보정당운동의 위기

 

따라서 통진당의 부실·부정선거 사태로 드러난 진보정치의 위기는 단순히 당내 민주주의 위기로 협소화될 수 없다. “이번 사태로 드러난 ‘진보정치의 본질적 위기’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로, 노동자의 계급적 정치운동을 진보정치 운동과 동일시해온 것에 있다.”

 

역사적인 96·97 총파업 때 외쳐졌던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 1기 지도부에 의해 ‘노동자 출신의 국회의원 배출’로 협소화되었다. 민주노총의 결의로 만들어진 민주노동당은 당원과 노동자를 선거 때 돈내고 표나 찍는 동원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2011년에는 민주노동당 강령에 문구로나마 남아있던 ‘사회주의적 이상과 지향’을 삭제해버리더니 급기야 반노동자적인 참여정부 출신이 주축이 된 국참당과 통합하여 ‘진보성’마저 탈각시켰다. 2012년 1월에 발표한 ‘5대 비전’에서는 ‘노동’은 없었다.

 

현재 통진당으로 결집한 이른바 진보정치세력들은 총선에서 보다 많은 의회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대선에서 행정권력을 민주당과 분점하기 위해, 노동을 버리고 신자유주의세력과 합당하고, 노동자계급정치를 실종시키면서 ‘묻지마 야권연대’를 추구했다.

 

“그 결과 현 통합진보당 사태로 드러난 진보정치의 위기는 ‘야권연대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려했던, 진보정당의 정치적 전망의 위기’이고, 이런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에 기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위기’이다. 비례대표 경선과정에서의 부실․부정사태 및 대립과 갈등은 이러한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의 귀결이자 위기의 집약적 표현인 것이다.”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에서 최고의 목표이자 덕목은 제도정치권에 보다 많이 진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은 목표를 위해 쉽게 합리화되고 돈 정치·동원 정치·패권주의가 재생산되는 토양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책임을 피할 수 없어

 

통진당 사태를 맞이하여 민주노총은 긴급히 산별대표자회의를 여는 한편, 현 통진당 사태를 “노동중심성이 약화되고 당내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는데 기인한 것이며, 진보적 가치에 대한 훼손”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대안으로 “재창당 수준의 고강도 쇄신을 단행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이 현 통진당 사태를 노동중심성이 약화되고 당내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는데 기인한 것이며, 진보적 가치에 대한 훼손으로 규정한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대안에서 현 통진당 사태를 불러온 것에 대한 자기책임과 반성은 없다. 더욱이 통진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통진당의 탄생과 현 통진당 사태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통진당 못지 않은 공동의 책임을 갖고 있다. 민노당의 강령개정 과정, 국참당과의 합당을 통한 통진당 출범과정, 통진당의 5대 비전에 대해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실상 침묵·방조했다. 야권연대를 통한 원내교섭단체 구성 및 연립정부 수립이라는 통진당의 정치적 목표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함께 했다. 민주노총의 투쟁계획은 선거에 종속되었다. 총선기간 동안 민주노총 지도부는 절박한 노동자투쟁을 외면한 대신 통진당 선거운동과 야권연대에 올인했다. 통진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에 대한 민주노총 내의 광범한 문제제기에 불구하고 민주노총 지도부는 다수의 힘과 상층 결정으로 강제해내면서 민주노총 내의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그 결과 노동자정치를 실종시키고 노동자정치에 대한 노동현장의 불신과 냉소를 확산시켰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제라도 자신의 책임과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통진당에 고강도 쇄신을 요구하는 통진당 틀 내에서의 해법 찾기라는 잘못된 궤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례대표 부실·부정선거를 통해 통진당이 진보정당이 아님이 다시 한번 입증된 지금, 민주노총은 통진당이 진보정당이 아님을, 더더욱이 노동자정당은 아님을 조직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상층 지도부에 의해 폭력적으로 강요된 통진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끝내야 한다. 민노당 출범 이후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진보정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프로젝트에 대한 근본적 자기반성과 성찰을 해나가야 한다. 노동자정치에 대한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민주노총 내에서 자유롭게 토론되는 것이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노동자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자기 책임 인정과 반성없이, 통진당의 쇄신을 통한, 통진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계속 추진한다면 민주노총의 위기 역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정치의 깃발을 다시 세워나가자

 

쇄신된(?) 통진당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노동자정치의 대안이 결코 될 수 없다.

 

“이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의회주의 진보정당’운동을 동일시 해왔던, 지난 15여 년의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역사를 매듭지어야 한다. 노동현장의 노동자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서, 반자본․사회주의적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생산현장과 거리와 일상생활과 의회에서 투쟁과 정치를 결합시켜나가는,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치’의 가능성을 현실화시켜내야 한다. 그런 정치역량, 조직운영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우리 노동자계급에게는 통합진보당 사태로 ‘계급정치’에 대해 냉소하거나 회의해서는 안된다. 그럴 여유도 없다. 이제 비로소 시작일 뿐이다.“(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에 대한 사노위 논평(5.9))

 

그렇다. 현 통진당 사태는 민노당 운동과 통진당 운동으로 왜곡되고 실종된 노동자계급정치를 바로 세우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의회주의 진보정당이 노동자정치를 대체해온 것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노동자계급정치를 위해 냉소와 회의가 아닌 새로운 전망과 결의를 다져나가야 한다.

 

계급성이 애매한 진보정치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정치를, 야권연대가 아닌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를! 의회주의 정치세력화와 의회주의 정치의 쌍생아인 대리주의 정치가 아닌 대중의 자기권력화와 직접정치를! 부르주의 권력의 한 자락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노동자민중 권력 수립을 위한 정치를. 자본주의를 좀 고치는 정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완전 끝내고 노동해방·인간해방 사회인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정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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