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초점] 그리스, 경제위기와 총선의 쟁점
그리스 부채위기의 원인을 둘러싼 공방
지난 10여 년간 GDP 대비 100% 미만이었던 그리스의 부채율이 2008년 세계공황을 계기로 113%(2008), 129%(2009), 149%(2010), 167%(2011)로 급등하였다. 부채가 생성된 원인과 급등한 원인에 대하여는 다양한 입장과 설명이 있다. 좌파는 30여 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와 2008년 발발한 경제위기의 필연적 결과이자 금융자본의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인 반면, 우파 혹은 자본측은 그리스의 특수성과 그리스의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보면 1991~2000년 2.36%, 2001~2007년 4.11%, 2008~2011년 –3.45%이고, 그리스의 일인당 GDP는 19,000유로(2011년)인데, 산업별 구성을 보면, 2차 산업은 12%, 농업은 3%인 반면 서비스업이 85%를 차지한다. 특히 관광과 해운(그리스는 세계적인 해운대국이다)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종사자수(총 497만 명)가 각각 18.2%와 84만 명, 15%와 16만 명에 이른다. 또한 조세 회피율은 40%를 넘고 있다.
사회복지 관련 지출을 보면, 교육부문을 제외하고도 보편적인 의료와 연금이 국가예산의 31.6%(2012년)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지난 10여 년간 양호한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재정위기에 처한 것은 취약한 경제구조 때문이라거나, 낙후된 제도와 PASOK(집권 사민당)의 포퓰리즘적인 정책, 또는 무리한 유로존 가입 때문이라는 설명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므로 국가지출(결국 복지관련 지출과 공공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고, 노동을 유연화(임시직, 비정규직 등 고용조건의 완화와 집단교섭권과 중재, 최저임금 관련 규제 완화 등)하고, 규제를 완화하고 공공재를 사유화하여(발칸반도에서 가장 큰 그리스 국영 통신회사인 OTE가 2011년 Deutsche Telekom으로 넘어갔다), 국제경쟁력을 회복하고 낮은 금리로 국제투자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채위기 이전에 그리스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PASOK의 계속된 신자유주의적 공격으로 많은 것을 잃은 상태였고, 연료 등 소비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수출산업이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경쟁력 운운하면서 1%가 아닌 99%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구조조정과 노동자민중의 투쟁
아무튼 위와 같은 자본측의 논리 하에 모두 5차례에 걸쳐서 트로이카(EU, ECB(유럽중앙은행), IMF)의 구제금융이 참으로 가혹한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시행되었다. 실업율은 2010년11월 13.9%에서 2011년 11월에는 20.9%로 치솟았고(피고용자는 390만 명, 실업자는 103 만명, 비경제활동인구는 442만명), 청년실업율은 48%, 여성 실업율은 24.5%에 달하였다. 이러한 실업의 증가는 공공부문에서 해고된 15만 명을 포함한 중소회사의 도산에 기인한다.
임금은 2009년 이후 25%가 삭감되었는데, 공공부문과 공공관련 부문의 임금은 각각 15%와 30%씩 삭감되었다. 2012년 2월 트로이카가 강요하여 시행된 최저임금 삭감은 22%(청년노동자는 32%)이고, 공사부문의 연금은 10~12% 삭감되었다. 사회복지지출은 50% 감소할 예정이고, 부가세는 23%로 치솟았다. EUROSTAT에 따르면 사회빈곤층은 28%(303만명)에 달한다.
이처럼 국제금융투지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트로이카의 강요한 가혹한 구조정은 그리스 민중이 감내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그 결과 이에 대한 저항이 2010년 5월, 2011년 2월, 2011년 7· 10월, 2012년 2월에 노동자계급의 총파업과 점거투쟁으로 분출하였다.
이러한 대립전선에서의 쟁점은 무엇인가. 자본과 빚(대부금)은 신성하며, 빌려서 흥청망청 썼더라도 어떠한 경우에도 갚아야 한다는 금융자본의 논리와, 성실하게 노동한 그리스의 노동자민중은 책임이 없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맞서고 있다. 즉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논리이다. 또 한편으로 좌파들은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남부의 부채 위기는 투기적 금융자본에 봉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가 낳은 필연이기 때문에 위기의 탈출비용을 투기적 금융자본이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즉 1970년대 축적위기에 빠진 세계 독점자본은 위기의 탈출을 위해 노동자투쟁의 결실인 일자리와 복지의 성과를 공격하면서, 합리화와 효율의 논리를 앞세워, 자본을 위한 투기와 투자시장의 개방,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을 강요하였다. 일자리와 복지에 대한 공격이 대중의 소비력을 축소시키자 낮은 금리로 대출을 강권하였고, 이에 따라 노동자민중들은 빼앗긴 복지를 능력을 넘은 대출로 메꾸었다. 이것이 2008년 경제위기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비롯하여 지구상의 곳곳에서 일어난 부동산 투기 열풍이고, 그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이주노동자가 값비싼 외제차를 사고 고급주택을 구입하는 일은 그리스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일자리를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빈곤층이 되어버린 것이다.
2012년 5월 총선결과 분석
2012년 5월 6일 실시된 총선은 투표 참가율은 62.7%(2007년: 72.1%, 2009년: 68.9%)로 이전과 비교해 감소추세를 보였는데, 선거 결과는 보수적인 신민주당New Democracy(ND)과 집권 사민당 PASOK의 양당체제를 끝장내었다. 또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SYRIZA)와 극우 나치당인 황금새벽당의 비약을 가져왔다. 2009년 총선과 대비하여 각 당의 지지율은 ND 33.47->18.85%, SYRIZA 4.6->16.78%, PASOK 43.92->13.18%, ANEL(Independent Greeks, ND로부터 떨어져 나온 우익민족주의) 0->10.6%, KKE(그리스 공산당-스탈린주의) 7.54->8.48%, XA(황금새벽당) 0.29->6.68%, DIMAR(Democratic Left, SYN의 우파가 독립) 0->6.11%이다.
이외에 지지율 3% 미만으로 의석확보에 실패한 정당은 극우LAOS 5.6->2.9%, Green Ecologists 2.5->2.9%, 세 개의 신자유주의 우파당인 Democratic Alliance(DISI) Dimourgia xana, Action(Drasi)으로 각각 2.6%, 2.2%, 1.8%를 얻었다. ANTARSYA(전복을 위한 반자본 좌파동맹-10개의 반자본 혁명조직이 결성) 0.36->1.2%, 노동자혁명당 EEK(트로츠키 경향) 0.1% 등이 있다.
현재 우파와 좌파 모두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고, 연정구성에 실패함으로써, 6월에 재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구제금융조건 재협상을 주장하는 SYRIZA의 집권이 점쳐지고 있다. 한편으론 유럽 우파들은 유로존에 남을 것이냐 아니면 유로존을 떠나 파국을 맞을 것이냐로 협박하고 있고, SYRIZA는 재협상을 주장하는 것이지 유로존을 탈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좌파의 진출과 신자유주의 세력의 참패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신자유주의 세력은 40%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고 있고, 극우의 성장도 괄목할만하다. 경제위기는 히틀러의 집권을 위한 기회였듯이 좌파와 함께 극우의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SYRIZA에 대한 평가
한편 SYRIZA의 성격과 성공에 관하여 국제 좌파들의 평가는 다양하다. SYRIZA는 Synaspismos가 주축이 되어 만든 ‘반신자유주의 선거연합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SYRIZA가 제시한 10개항으로 된 선거강령은 트로이카의 대리인인 PASOK과 ND의 정치가 그리스 민중의 삶을 파괴했다고 주장하면서 ‘부채 재협상(지불 중지와 부채조사 후 부당한 부채의 취소), 재산가와 고소득자에 대한 높은 과세, 군축, 반부패’가 선결조건이며,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사회적 생태적 기준에 맞는 그리스 사회와 경제의 회복과 재건에 착수할 것’이며, 취약자, 실업자, 연금수령자, 무주택자를 우선할 것이며 공공재를 방어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Synaspismos는 자신들의 소개에 따르면, 1989년 출발한 Synaspismos(좌파와 진보세력의 연합Coalition of the Left and Progress)에서 1991년 KKE(스탈린주의)가 탈퇴하자, 1992년 출범한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급진좌파renovative, democratic and radical left의 정당이고, 2003년 운동과 생태의 좌파연합Coalition of the Left of Movements and Ecology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특히 Synaspismos는 민주적 사회주의, 생태, 여성주의, 반군국주의의 이상과 가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으며, 다원주의와 인권을 타협할 수 없는 신념으로 삼는다고 밝히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좌파와 KKE가 EU와 유로존(화폐동맹)을 독점자본의 도구로 보면서 원칙적 반대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SYRIZA는 유럽민중을 위한 개조를 제출하였다. 부채 재협상, 유로존 잔류를 제출한 SYRIZA의 성공에 대하여 좌파의 성공으로 환호하는 좌파도 많은 반면, KKE는 총선 당일 중앙위원회 성명에서 유로존 탈퇴와 ‘대중권력’을 제출하면서 SYRIZA와의 어떠한 협력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ANTARSYA(제4인터내셔널 계열)는 SYRIZA의 행보에 대해 대중을 의회주의에 대한 환상으로 이끌 우려와 트로이카와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올랑드와의 협력을 기대하는 등 단호하지 못한 기회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비판적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최근 성장하고 있는 포르투칼의 Left Bloc과 SYRIZA, Synaspismos는 계급운동 좌파와 사회운동 좌파(여성주의, 생태주의 등)가 연합한 반신자유주의 혹은 반자본 공동전선(선거연합일 뿐만 아니라 일상적 투쟁동원체)으로 모두 정파적 입장보다는 가치를 중심으로 연합하고 있다는 점과 대중의 동원과 운동에 충실하면서도 선거의 장에서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2010년부터 분출한 그리스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은 본질적으로 현단계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에 대한 도전이자 국제금융독점자본과 최전방에서 벌이고 있는 투쟁이다. 이 투쟁의 향배에 따라 스페인을 비롯한 남부유럽의 노동자계급과 민중 그리고 소위 ‘긴축’과 구조조정이라는 미명으로 신자유주의세력의 공격에 질식당하고 있는 유럽과 전세계의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런만큼 그리스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대한 연대와 단결은 전세계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의무이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