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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세력에게 포위된 '진보'를 버려라!
통합진보당 내 혁신파와 구당권파의 지리한 대립과 갈등은 이제 통합진보당 차원을 넘어 진보운동과 노동정치 전체에까지 평가/전망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현장의 노동자계급은 이 논쟁에서 기권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통합진보당 사태로부터 ‘새로운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교훈을 적극 끄집어내고 실천해야 한다.
논의에 앞서 두 가지 점은 미리 확인하자. 검찰의 통합진보당 회원명부 압수수색과 이를 빌미로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공동의 대응을 하자. 그리고 통합진보당 사태를 ‘종북주의’ 논쟁으로 이끌어 가려는 지배세력의 시도에 대해서도 경계하자. 그건 별도의 논쟁 사안이다.
민주주의는 저들의 것이 아니다
먼저 우리는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로부터,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계산에 따라 ‘급조된 상층 중심의 당 통합’이 어떤 귀결에 이르게 되는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 당원 전체의 민주적 토론과 합의, 공동의 실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적 리더쉽을 창출해내지 못했을 때, 결국 상황이나 조건이 바뀌면 서로에 대한 이질감과 불신이 극대화돼서 표출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진보정당이나 노동자계급정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음으로 구당권파의 행태를 통해 드러난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경시’에서 볼 수 있듯이,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지 않았을 때 ‘정치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적 절차’가 항상 절대적인 정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도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집권했고, 격변하는 정세에서는 대중들의 투쟁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뛰어넘기도 한다. 그러나 목적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과정과 절차를 밟느냐도 중요한,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진보정치가 보수정치의 행태와 다를 게 뭐 있나, 똑같다”는, 일반 시민과 현장노동자들의 냉소와 분노는 이런 ‘상식’의 표현이다. 진보운동이 내부 혁신을 통해 당내 민주주의를 확고히 정착시켜내지 못한 채 ‘자유주의’세력의 힘에 의해 혁신이 강제되고 있다는 점이 통합진보당 사태를 통해 드러난 진보운동의 비극이다. 노동자계급정치는 이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강제된 진보정당의 혁신
그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 몇 몇 자유주의좌파 지식인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진보 시즌2’ 운동이나 ‘오큐파이(점령, Occupy) 통합진보당’ 운동이다. “통합진보당 내 다수파의 재구성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민주적으로 개조하자”는 이 운동은 한편으로는 진보정당 정파들의 낡은 관행과 관습, 패권적 조직문화 등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비판의 칼끝을 “현실과 유리된 ‘노동 중심성’”, ‘저항의 민주주의’에 겨냥하고 있다. 진보운동을 낡은 노선과 이념, 조직문화로 규정하면서, 진보를 자유주의적으로 개조하려 하고 있다. ‘개혁적 진보’라는 이름으로. 만약 노동자계급정치 운동진영이 이에 대해 분명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노동자계급정치는 다시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갇혀버릴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제 더 이상 통합진보당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합진보당으로 대표되었던 진보운동의 재편의 문제이자,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에 의지해 정치세력화를 꾀해왔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재구축의 문제이다. 그 방향은 ‘자유주의적 재편’이냐? ‘노동자계급적 재편’이냐이다. ‘닥치고 통합진보당’을 밀어붙였던 민주노총 상층지도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조건부 지지 철회’로 책임을 피해가려 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정치운동에서 후퇴해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치적 비관주의와 패배주의 또한 주장되고 있다.
‘진보 시즌2’운동이 아닌 ‘노동자계급정치 시즌2’운동을!
노동자계급정치운동은 지금 여기에서 후퇴해서는 안된다. 다시 기존과 같은 방식의 노조상층부의 조합주의적 정치를 되풀이 해서도 안된다. ‘노동 중심성’은 진보정당에서 노동의제를 다루는 것으로, 혹은 노조상층지도부가 진보정당에 결합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에 기댄 노동자정치세력화’, ‘노조상층부 중심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현장과 지역의 노동활동가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서, 반자본/사회주의적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 ‘노동자계급정치 시즌2’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사태 때문이 아니라, 2012년 대선을 통해 어떤 정권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임박한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격화될 계급투쟁을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으로 이끌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 중심성’은 이 속에서 현실화되어야 한다.
박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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