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아나키스트의 직접행동

경계를 넘어 2005/03/14 00:06
미국 코네티컷 주 출신의 19세 아나키스트 모병센터 방화 혐의로 기소, 재판 진행중
2005년 3월 7일

1월 31일 브롱크스에 있는 미 육군 모병소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경찰이 긴급 출동해 현장에 있던 시걸을 잡았다고 한다, 대학에서 정부학을 전공하던 시걸은 경찰에 연행되어 현재 구속 수감되어 있는 상태이다. 경찰은 합동테러대책반을 구성해 시걸이 살고 있던 맨해튼 대학 '재스퍼 홀' 기숙사를 압수수색하고, 더 많은 증거자료의 수집에 나섰다.
친구들에 의하면 시걸은 학내에서 유명한 정치활동가였다고 한다. 그는 친구들에게 각종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동참을 호소했는데, 시걸의 활동이 없었다면 맨해튼 대학은 그저 조용한 학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방화를 저지를만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주위 친구들의 증언이다.
미국 대선을 몇 달 앞둔 2004년 9월 첫 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렸고, 19살의 아나키스트 시걸은 이를 반대하는 행동을 벌였다. 이미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노동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다녔고, 고등학교 신문에는 민중을 선동하는 기사를 써서 널리 퍼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비판하는 기사를 신문에 투고했는데, 당시는 2001년의 9.11 테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서 그의 글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당시 90 퍼센트 이상이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던 상황에서 그는 정확한 정보들을 통해 미국 정부를 비판하는 주장을 폈지만, 좌익 학생으로 분류되어 소수자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시걸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만다 워너는 "그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시걸은 친구들과 함께 '미쳐가고 있는 이 세상은 절실한 구원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짧은 영상을 제작해 지역 케이블 방송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에 보내기도 했고, 이것이 방영되기도 했다.
대학에서 시걸은 '래디컬 재스퍼'라는 잡지를 발간하며, 탄압받는 정치인들과 대통령 선거 그리고 성정체성 등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대학 당국이 이 잡지를 보고 탄압을 가하자 시걸은 친구들과 교수들을 조직해 탄원서를 받아내며 활동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학은 한 발 물러났고, 시걸의 정치 활동은 활발히 이어지게 되었다.
시걸의 친구인 크리스 모리노에 따르면 맨해튼 대학 학생들은 정치적 이슈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며, 밤이 되면 도시로 나가 유흥을 즐기거나 스포츠 게임을 보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고 한다.
시걸은 미국 대통령 부시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는 활동을 벌였고, 결국 모병센터를 통해 미국이 군인들을 모집하고, 전쟁을 일으킨다며 이에 반대하는 직접행동을 펼친 것이다.
검찰은 시걸을 기소했으며, 그의 첫 번째 심리가 3월 7일 열린다. 시걸이 불을 지른 미 육군 모병센터는 오래된 쇼핑몰에 위치해 있으며, 옆에는 던킨 도넛과 네일 살롱이 영업 중이다. 군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가서 전화를 걸어 정보를 얻거나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세워진 곳이 모병센터인데, 안에 들어가 보면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미국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며 열심히 '텔레마케팅'을 하고 있다. 맨해튼 대학으로부터 약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브롱크스 모병센터에는 바닥에 깔린 녹색 카페트에 축구공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어 불이 났음을 짐작케 한다.
1월 31일 새벽 3시 30분 경 쾅하는 커다란 소리를 듣고 출동한 뉴욕시 교통경찰은 시걸이 모병소 앞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경찰 진술서에 따르면 시걸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있었고, 등에는 가방을 메고 있었으며, 모병소 정문 유리창이 파손되었고, 근처에서 망치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시걸을 구속한 경찰은 증거 확보에 나서, 그의 몸에서 접착제를 발견했는데, 경찰에 의하면 시걸은 모병센터 정문에 접착제를 발라 문을 봉쇄해 불이 나도 소방관들이 진입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시걸의 몸에서는 모병센터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도 발견되었으며, 액체 촉매제로 추정되는 물질이 담긴 플라스틱 병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시걸은 자신의 정치적 구호가 담긴 문서를 현장에 놓아두었는데, 검찰은 이를 통해 단순한 방화가 아니라 정치적 행동이라고 결론지었다. 결국 시걸은 악질의 반정부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데이비드 시걸의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지자 전 세계에서 그의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미리 제대로 된 계획을 짜지 못한 채 성급한 행동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어떤 아나키스트 성향의 네티즌은 인포샵 홈페이지 http://www.infoshop.org 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아나키스트들은 매우 구체적이며, 그들이 벌이는 투쟁 속에서 새로운 아나키스트들이 계속 태어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의 소식을 듣고 나는 자신이 아나키스트인 것이 매우 자랑스러웠어요. 당신을 지지합니다."
과연 데이비드 시걸의 재판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가? 1999년 2월 영국의 핵잠수함 트라이덴트(Trident) 호에 잠입해 시설을 망가뜨리고, 다시 1999년 3월 핵잠수함 연구실에 기어올라가 핵실험 장비들을 모두 호수에 집어던진 비폭력직접행동 활동가 모임인 '트라이덴트 플라우쉐어'처럼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을 것인가?
* 트라이덴트 플라우쉐어 Trident Ploughshares 는 '핵잠수함 트라이덴트를 평화의 농기구 보습으로 바꾸자'는 취지로 활동하는 단체이다. 영국에는 핵잠수함이 모두 4척이 있는데, 이 잠수함들은 총 12기에서 16기에 이르는 핵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고 한다. 미사일 한 기는 백톤 가량의 핵탄두를 장전할 수 있다니 그 자체로 평화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트라이덴트 플라우쉐어는 1998년 평화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천오백 번 가량 경찰에 연행된 바 있고, 220번 재판을 받았으며, 활동가들이 수감된 일수를 모두 더하면 천사백일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은 영국의 판사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쳐 결국 판사들 역시 "영국이 핵잠수함을 운용함으로써 주변국들에게 위협이 되며, 이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3명의 활동가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 트라이덴트 플라우쉐어의 홈페이지  http://www.tridentploughshares.org/
조약골 번역,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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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4 00:06 2005/03/1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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