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식 텃밭을 만들자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5/03/30 00:52
새로운 투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이들 게릴라들은 한 손에는 호미를 들고 다른 손에는 씨앗을 움켜쥔 채 농민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품고 녹색사회를 꿈꾸며 메마른 아스팔트 위를 누비고 다닌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인간의 삶은 자본주의 국가체제에서 뒤틀려지고, 뿌리뽑히고, 오염되고 말았다.
땅을 버리고 콘크리트 숲으로 돌진하는 것이 진보와 성장이라는 신화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저항하고자 도시 게릴라들이 총대신 호미를 들고 나선 것이다.
모래 없는 사막인 아스팔트를 갈아엎고 그곳에 희망의 싹을 틔우기 위해, 오래되어버린 우리의 미래를 복원하기 위해 어설픈 손으로 흙을 일구고 자동차 전용도로 한 쪽에 모종을 심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체험하기 위해, 자본주의 식료체계가 얼마나 자원낭비적이고, 화학물질친화적이며, 파괴적인지 체득하기 위해 이들은 보도블록을 들어내고 그곳에 거름을 주고, 식물을 키우는 것이다.
잡초를 뽑아주고, 물을 조절해주고,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주며 소중하게 가꿔나간다.
열매가 맺히고 결실이 보이게되면 그동안의 고생도 모두 잊는다.
비로소 자본에서 독립되어 제 먹이를 스스로 가꿔냈다는 해방감이 이들의 온몸을 타고 흐른다. 

자본주의 국가체제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는 않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체제가 남긴 강한 독소를 차츰 제거해가면서 게릴라 텃밭 일꾼들은 호미를 들고 철로 옆 공터에, 골프장 잔디에, 지붕에, 주차장에, 갈라진 아스팔트 바닥에 균열을 낸다.
혁명을 위해서, 이 사회를 본질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누군가는 영화를 찍고, 누군가는 신문을 내고, 누군가는 조직을 만들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머리띠를 묶는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땅을 파야 하지 않겠는가?
도시 속의 농민, 이들이 바로 게릴라식 텃밭 일꾼들이다.
이제 호미와 씨앗을 들고 모여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할 때다.
 
* '게릴라'라는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국가가 운영하는 정규 군대에 비해, 게릴라는 말하자면 비정규 오합지졸이라고 할 만하다.
적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치고 빠지는 식의 싸움을 하는, 소규모의 독립적인 전사들이라고 보면 된다.
혁명의 주력부대라는 노동자계급이 실상은 남성 중심적이고 위계적이어서 그 내부에서도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동자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 사회의 하층 소수자들은 그래서 총파업과 같은 전면전이 아니라 게릴라 투쟁과 같은 방식으로 국가와 자본이라는 거대한 적과 상대해나간다.
그 게릴라적인 싸움의 방식들은 정말로 다양하다.
한 무리와 다른 한 무리가 정면으로 맞붙어 승부를 건다는 식의 일반적인 싸움은 그 자체로도 힘센 사람이 필요하게 되어 폭력의 양상으로 치닫게 되고, 결국 엄청난 희생을 수반하게 된다.

그런데 몰래 숨어들어 조그만 행동을 하고 도망간다는 게릴라식 투쟁은 힘센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지 않아도 소수의 사람들이 고른 역할을 수행하며 의외로 놀라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남성 중심적이고, 차별적이며, 이윤과 성장 중심적이고, 지속불가능하며, 폭력적 체제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국가 체제를 본질적으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투쟁 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다양한 방식의 저항운동들이 동시에 여러 곳에서 끊임 없이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한번의 혁명으로 차별 없고, 순환적이며, 탈권위적이고, 고르게 가난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결국 어떤 혁명이 일어나도 그것은 부족하기 마련이어서 체제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은 중단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게릴라식 운동의 힘이 여기에 있다.
쉬 지쳐 쓰려지지 않기 위해, 쉽게 포기하지 않기 위해, 결코 항복하지 않기 위해 게릴라적인 싸움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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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30 00:52 2005/03/3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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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s 4 : Comment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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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2005/04/02 08:38 DELETE

    Subject: 텃밭 일구기

    <DIV>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텃밭을 일구게 될 것 같다.<BR></DIV><BR> <DIV>도시에서 할 수 있는 대안적인 행동을 생각해보다 <STRONG>텃밭</STRONG>
  2. Tracked from 2005/04/02 10:10 DELETE

    Subject: 텃밭 가꾸기

    Submitted by 멍청이 @ 04-02 [08:41 am]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텃밭을 일구게 될 것 같다.
  3. Tracked from 2005/05/13 13:37 DELETE

    Subject: a

    a
  4. Tracked from 2005/05/22 12:35 DELETE

    Subject: 아스팔트에 미친 도시

    길: 땅, 그 위에 콘크리트, 그 위에 아스팔트 아스팔트, 물만 아스팔트에 미친 도시...
  1. 미류 2005/03/30 13:24 Modify/Delete Reply

    아스팔트 농사는 전농이 거리에서 시위하곤 할 때 쓰던 말이었는데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
    쓰러지지 않기, 포기하지 않기, 항복하지 않기, 다시 새기고 갑니당~ ^^

  2. 돕헤드 2005/03/30 13:35 Modify/Delete Reply

    전농이 쓰는 말을 진짜로 실행에 옮겨보자는 취지에요.

  3. kanjang_gongjang 2005/03/30 19:17 Modify/Delete Reply

    저의 판단이지만 그람시적 기동전(게릴라 전술)과 진지전(바리케이트전)은 이미 패한 운동이며, 부문을 정치화에 있어 정치적 합일점을 찾는데 있어서 결코 유용한 전술(이미 시민사회 스펙트럼이 이를 한국사회에는 말해 주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시민없는 시민혁명과 대의적 운동론으로 이탈리아 상황과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였을때 결코 유용하지 않다는 판단을 가져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그람시의 수동적 혁명론이 이야기되어야 한다니 가슴한켠 싸합니다.
    계급적 힘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운동은 이벤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지지 않을까요. 무산계급에 의한 혁명이 의미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냥 읽고 지나갑니다.

  4. 느림 2005/03/30 21:51 Modify/Delete Reply

    돕, 얼마전 토종 씨앗을 지켜온 사람이 뉴스에 나왔어.
    전남 어디라든데.. 잘 하면 좋은 씨앗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음.

  5. 돕헤드 2005/03/30 23:33 Modify/Delete Reply

    간장공장님 댓글 잘 읽었습니다. 길게 답글을 달려다가 아예 새글로 올리는 것이 낫겠다 싶네요.

  6. 이러나 2005/03/30 23:34 Modify/Delete Reply

    일산 신도시에 살던 시절, 꽤 오랫동안 건물이 안 들어오고 비어있는 땅이 많았는데
    거기다 할머니가 부지런히 밭을 일구던 게 생각나네요.

    그게 동네 할머니들의 유행, 비슷했던 모양인데.
    그 땐 어려서 잘 몰랐지만, 참 재미있는 현상이었던 것 같아.

    몸에 배긴 생명력이랄까.

  7. kanjang_gongjang 2005/03/31 18:10 Modify/Delete Reply

    네^^ 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8. dakkwang 2005/06/14 00:58 Modify/Delete Reply

    개인적으로 세상서 가장 가치있는 직업이 땅을 일구는 농부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안마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
    저도 농부가 꿈인데,함께 사는 식물마다 죽이는 재주가 있어서 우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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