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처럼 높아 보이는 그 산들

평화가 무엇이냐 2005/10/25 02:02

 
요즘 내 모습이 위 그림같다.
 
삼성공화국을 끝장내고 싶어서, 새만금 방조제를 싹 허물어버리고 갯벌을 살려내고 싶어서, 미군기지 확장을 막아내고 팽성의 땅을 지키고 싶어서, 피자매연대의 활동을 더욱 줄기차고 활기차게 만들고 싶어서, 그리고 이것들을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녹여내고 싶어서 어떤 날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리 뛰어다니고, 저리 뛰어다닌다.
그래서 활동가가 되길 참 잘 했구나, 싶다.
내가 원하는 활동들에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붇고 싶은 요즘, 얽메이는 것 없이 그렇게 활동을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일찌감치 일어나 표고버섯을 굽고, 김치와 김과 콩자반과 연근조림을 꺼내 배불리 밥을 차려 먹고 아침 9시 45분에 삼성본관 앞에 자전거를 타고 도착했다.
'기도'처럼 보이는 삼성의 보안요원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본관 주변을 감시하고 있다.
조금 후 별이아빠가 도착하고, 또 삼성 바로보기 문화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도착한다.
상용도 자전거를 타고 온다.
순례단이 거제로 구미로 울산으로 광주로 천안으로 그리고 수원을 돌아 서울로 오는 5일간의 힘든 순례일정을 시작하는 날이 오늘이다.
곧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이티 같기도 하고, 고릴라 같기도 한 이건희의 탈을 쓴 자가 돌아다니며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만원짜리 지폐를 뿌려대고, 그곳에 모인 활동가들은 구호를 외친다.
피켓을 들고 서있는 우리들에게 다가와 돈다발을 건네는 이건희의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난 그놈의 뒤통수에 사실 침을 퇘! 뱉어주고 싶었다.
 
순례단의 일원인 주맹에게 힘든 순례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어보니 "여행 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활짝 웃는다. 용욱이도 이틀 간 순례에 결합한다길레 물어보니 별로 힘들 것 같지 않다면서 자기는 이틀만 한다고 한다.
보라돌이는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의 어깨에 놓여져 있는 짐의 무게가 나에게까지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나도 올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힘 닿는데까지 달려들기로 했다.
이건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물음에 해답을 주기 위함이다.
 
"넌 왜 이런 활동을 하니?"
 
기자회견 가운데 어떤 분이 나와서 삼성 바로보기 활동은 삼성재벌이 망하기를 바라는 활동이 아니라고 혹시 기자들이나 우국충정에 불타는 사람들이 삼성 바로보기 문화제를 오해(!)할까봐 강조를 하며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난, '어? 난 솔직히 삼성재벌이 망하길 바라는데?'
 
나만 그런줄 알았더니 옆에 서있던 친구 역시 눈을 찡긋하며 자신도 삼성이 망하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나도 빙긋이 웃었다.
그래, 난 삼성이 망해야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전제왕정인 삼성이 망하고 노동자들이 주인된 민주화된 삼성이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70-80년대에 독재권력에 맞서 민주화투쟁이 일어났듯이, 삼성 바로보기 문화제를 계기로 이씨 족벌에 맞서 기업주를 없애고 노동자들이 직접 경영을 담당할 삼성 민주화 투쟁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힘든 산을 지금 넘고 있는 친구들에게 나는 깊은 지지와 존경을 보내며, 야무지게 주먹을 불끈 쥔다.
 
자전거를 타고 청와대 앞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새만금 갯벌을 살리려는 단 하나의 소망을 품은 계화도 어민들이 올라와 1인 시위를 시작하고 있다.
방조제를 만들어 해수유통을 차단시키고 결국 갯벌을 모두 메워 토지로 만들어 개발을 하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챙기려는 가진자들의 심보를 널리 알리고 싶어서, 7천년을 살아온 갯벌이 바로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안타깝지 않을 수 있냐고, 그 지역에서 살아온 어민들은 절규를 하고 기어이 눈물을 뿌리고 만다.
나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은 너무나 착잡해져서 고개를 떨구었다.
 
걸어서 가도가도 끝도 없는 그 드넓을 갯벌을 메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토사와 돌덩이가 필요할테고, 개발업자들은 산을 깎아서 기어이 갯벌을 없애려 할 것이다.
그곳에 골프장이니 농지니 비행장이니 하는 복합산업단지를 짓는다는데, 단지 사람들만의 땅이 아닌 모든 생명이 공유해야 할 갯벌이 그 순간 극소수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재산으로 둔갑을 하게 된다.
모든 개발업자들, 투기꾼들, 자본가들이 날벼락을 맞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판에 과거 새만금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환경운동가들도 이제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언론의 관심도 없고, 남은 것은 어민들의 절규와 그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들의 안타까움 뿐이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며 무슨 일이든 해봐야겠다고 다시 주먹을 불끈 쥐며 자전거를 타고 아랫집으로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날 찾는 전화가 요란하게 울려댄다.
오늘은 일정들이 겹치고 겹치는 날인가보다.
피자매연대의 활동을 직접 듣고 싶다고 명지대 학생 2명이 아랫집으로 찾아왔다.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던 터라 물리칠 수는 없고, 그들과 마주 보고 앉아서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는다.
피자매연대의 활동을 조목조목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자세하게 그러나 중요한 흐름들을 놓치지 않도록 일관성을 유지해가며 설명해간다.
평택 촛불문화제에 가서 노래를 부르기로 되어 있었던지라 시간은 없는데, 한 번 피자매 이야기를 시작하면 쉬 멈추기가 힘들다.
 
월경을 하지 않는 남자가 피자매 활동을 하게 된 이유
피자매연대의 역사
바늘의 의미
상품의 대량생산의 문제와 수동적 소비로부터의 당당한 독립
월경권
소수자들과의 연대
민족주의와 군사주의의 문제
대안월경용품을 써야 하는 이유
피자매 달거리대 사용방법
서양의학의 문제와 식약청의 단속 문제
난립하는 면생리대 쇼핑몰들
지식 독점의 문제와 정보 공유 또는 카피레프트의 의의
그래서 이것들을 아우르는 구체적인 '대안'
 
이런 문제들을 요령있게 하나의 흐름을 갖고 30분 내에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저글링을 하는 기분으로 이것들을 버무린다.
공 5개로 저글링을 할 때의 기분을 연상하며 하나하나의 공들에게 똑같은 힘을 주어 공중으로 보내고, 다시 다음 공을 던져 올린다.
어느 궤도에 오르면 저글링을 하기는 쉬워진다.
문제는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적당한 힘을 골고루 5개의 공들에게 배분하는 것.
 
하나에 너무 많은 힘을 주게 되면 나머지 공들까지 복잡해져버리고 결국 공들은 모두 바닥에 떨어져버리게 된다.
그럴 경우에는?
다시 공 하나부터 시작해 차례차례 던져올리면 된다.
나는 지금 무슨 공을 던져올리고 있는가?
 
급하게 전철을 잡아타고 평택으로 달려간다.
평택 주민들과 노동자들이 오붓하게 모여서 평택역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평화가 무엇이냐를 부르고 언니들이 넘는 산을 부른다.
무대도 없이 기타도 앰프에 연결하지 않고 부르지만 오늘은 내가 만족할 정도로 노래를 했다.
 
노래를 부르고 나서 내가 만족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항상 무엇인가 아쉬운 적이 많았다.
아마도 내가 절박한 느낌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국방부가 강제로 팽성 땅을 빼앗으려 할테고, 주민들은 목숨과도 같은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힘든 산을 넘어야 할 것이다.
 
그 산.
절박한 마음으로 넘는 산.
언니들이 넘는 산.
평택 주민들이 넘는 산.
새만금 어민들이 넘는 산.
우리가 가진 힘을 끊임 없이 박탈해가는 저 거대한 산들을 넘어야 한다.
히말라야처럼 높아 보이는 그 산들을 기어오르고 있는 사람들을 오늘은 모두 만나고 온 기분이다.
실제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굳게 맞잡자고 나의 손을 내밀고자 한다.
곧 따스한 바람이 뒤에서부터 불어와 우리의 등을 사뿐히 밀어 올려줄 것이다.
산을 오르는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질 것이다.
나중엔 발을 앞으로 떼지 않아도 우리의 몸이 하늘로 두둥실 떠올라 눈 아래 낮은 산등성이들을 바라보며 느린 속도로 반대편 다른 세상을 향해 자유낙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산을 넘을 것이다.
그렇게 넘고 싶어서 난 이런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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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5 02:02 2005/10/25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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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닉 2005/10/25 09:26 Modify/Delete Reply

    돕의 로맨스는 멋지구나!
    나도 요즘 저글링을 하고싶어서
    낮은 지붕을 걷어치우고 있는 참이다.
    2월이고 팀장에겐 얘기했지 ^^
    요즘 아주 즐겁고나~~~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랄까!!

  2. 초희 2005/10/25 10:10 Modify/Delete Reply

    사실 나도 망하기를 바래ㅋ

  3. 돕헤드 2005/10/25 13:48 Modify/Delete Reply

    사실 나는 망하길 바라는 것들이 참 많아. 우리 그 목록 적어보기 놀이해보까???

  4. 수진 2005/10/25 19:04 Modify/Delete Reply

    가끔 생각이 꼬일때 돕블로그 오는데..생각이 엉켜버릴때 딴 사람들은 어떤가 살펴보고 날 정리하려고.. 고마우이..

  5. 마나스 2005/10/26 09:56 Modify/Delete Reply

    그런 이건희의 돈을 받아 복지운동을 한다던 사람들이 이번 안티삼성 문화제의 기획단으로 참여하고 있더군요. 참 재미있는 세상이에요.

  6. 돕헤드 2005/10/26 10:21 Modify/Delete Reply

    그런 일도 있었군요. 저는 잘 몰랐지만 그 사람들이 앞으로는 이건희의 돈을 받는 일이 없게 되길 바래야겠네요.

  7. 마나스 2005/10/26 17:23 Modify/Delete Reply

    너무 자주 경험했듯이...제 생각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이 더 들더군요. 요즘은 이슈 파이팅이 생기면 정체 불분명의 연대가 아주 쉽게 일어나던데요. 누구는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저에게 유아적이며, 관념적이라고 하더군요. 재미있어요.

  8. 보라돌이 2005/10/27 01:12 Modify/Delete Reply

    마나스-서로에게 긴장감 있는 비판과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화제를 준비하는 사람이기때문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긴장을 높여보죠. 그럼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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