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따스하고 고요한 것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다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4/09/23 03:262004년 1월 26일에 쓴 글이군요.
http://www.joycine.com/service/section/media/media.asp?id=6929
마이너리티 에세이
--'나는 재야가수'다
아는 사람은 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가수다. 가수라고는 하지만 나의 노래들이 방송을 통해서든 음반판매를 통해서든 일반 대중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다가갈 가능성은 아예 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도 뚜렷하고 노골적으로 나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투박한 가사들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며, 다듬어지지 않은 채 제멋대로인 내 음악을 사람들이 돈주고 사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돈을 매개로 하지 않은 음악의 생산과 소비를 노린다.
다른 진짜 가수들에게 무대는 방송국의 스튜디오이거나 라이브 클럽이거나 야외 공연장일테지만 내가 가수로 서는 무대는 이들과는 좀 다르다. 나는 주로 각종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예를 들면 반전집회가 열리는 대학로나 시청, 파병을 반대하며 병역거부 선언을 한 현역군인 강철민이 농성하던 곳, 각종 서명운동 캠페인을 벌이는 곳, 이주노동자들이 합법화와 노동비자 쟁취를 요구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명동성당 같은 곳 등에서 나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나 역시 몇 장의 앨범을 내보았고, 클럽이나 축제 같은 곳에서 연주도 해보았다. 하지만 군대가지 말자, 대기업 제품을 사지 말자 등 생경하고 과격한 주장이 그대로 묻어나는 노래들에 많은 사람들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집회나 시위 현장을 주로 다니는 것은 그곳에서 나는 제일 편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또 사람들이 나의 노래를 이해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나는 사람들과 친밀감을 느끼며, 내가 노래를 부르는 목적을 비로소 실현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목적은 무엇인가?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내 꿈은 평생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그 꿈을 이뤄나가는 것 같아서 행복하긴 하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단지 자아실현이 이유라면 굳이 앨범을 내고 길거리 시위 현장으로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부르는 노래를 통해 이 세상이 바뀌길 바란다.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실은 내 노래를 통해 불평등한 현실에 조그만 균열이라도 낼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열망들이 쌓이고 쌓여 내 노래들로 만들어질 때의 그 성취감에 나는 깊이 중독되어 있다. 그 노래들에서 나는 아무런 검열도 하지 않은 채 맘대로 마음 속 가장 깊은 욕망들을 들춰낸다. 그 속에서 나는 때론 욕을 하기도 하고, 때론 선동을 하기도 한다. 함께 춤을 추자고 꼬셔보기도 한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기에 나의 노래들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재야가수’라고 부른다. 분명히 나는 주류와는 거리가 멀고, 홍대로 대표되는 인디씬과도 거의 관계가 없다. 주류와 비주류라는 이분법에서 나는 비켜나 있다. 집회현장에서 정치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통 민중가수라고 칭하고,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민중가요라고 한다. 하지만 나를 딱히 민중가수라고 부를 수도 없다. 왜냐하면 민중가요라고 지칭되는 노래들은 자본주의 체제 하의 노동문제를 다루거나 한반도의 통일을 노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의 노래들은 아나키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나키 운동은 일제 시대 이후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는데, 그렇기 때문에 조약골의 노래들은 갈 곳 없는 오리알 신세였던 것이다. ‘아나키 노래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솔로 1집 앨범부터 ‘여고생해방전선’이나 ‘재활센터’ 같은 밴드들을 거치며 줄곧 내가 추구한 음악은 아나키 음악들이었는데, 이런 나에게 재야가수 또는 ‘빈민가수’ 등의 호칭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가 도대체 어떤 음악을 하기에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직접 내 홈페이지(http://dopehead.net)에서 모두 다운로드받아 들어볼 수 있다. 컴퓨터 사운드카드와 마이크만을 가지고 하드레코딩 방법으로 만들어 후진 음질을 자랑하는 음악들부터 각종 샘플들을 현란하게 사용해 그럴 듯하게 들리는 곡까지 다양한 분위기가 있고, 단순한 펑크록에서 모던한 싸이키델릭, 힙합, 디스코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멋대로 공존한다. 제멋대로라고는 하지만 조약골 음악을 굳이 하나의 장르로 분류를 하자면 ‘타령롹’ 정도가 어울리리라. 타령롹이라는 말은 내가 예전에 속했던 밴드 여고생해방전선에서 보컬을 맡았던 친구 붕어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내 음악을 ‘빈민가요’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나름대로 해석해보자면, 타령롹이라는 말은 내 노래가 가사면에서 타령처럼 끝도 없는 장광설을 늘어놓으면서 결국에는 아나키 타령만 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 같고, 빈민가요는 돈주고 실력 좋은 세션맨을 초빙한다거나 시설 좋은 스튜디오에서 멋지게 녹음하지 못한 채 허접한 실력으로 작곡과 연주를 모두 커버하고, 빈티가 풀풀나는 후진 컴퓨터로 녹음을 하기 때문여 붙여진 단어 같다.
나는 없는 실력을 쥐어 짜내서 작사, 작곡, 연주, 편곡, 녹음 등을 모두 혼자서 처리해버리는데 이것은 내가 독재자적인 기질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고 DIY 원칙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DIY는 모두 알다시피 Do It Yourself 의 약자이다. 즉 스스로 하라는 뜻이다. 아득한 원시시대에는 인간이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나 사회가 발달하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모든 것은 분업의 원리에 기초해 달라지게 되었다. 즉 남이 만든 것을 입고, 남이 만든 것을 먹고, 남이 만든 것을 소비하며, 남의 서비스를 돈을 주고 이용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것은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있긴 하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부작용도 낳게 되었다. 우리는 남이 만든 것을 입고, 먹고, 소비함에 따라 남이 원하는 방식으로 끌려 다니는, 주인이 아닌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DIY는 돈을 벌어 남이 만든 것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도록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돈의 노예이기를 거부하는 철학이자 실천방식이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율적인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누구나 기쁨에 겨워 어깨춤을 들썩이고, 함께 마음껏 노래를 부를 때의 즐거움이 내 노래 속에 담기길 바란다. 복잡한 해방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들도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흥겨움이 없다면 거짓이 아닐까. 그래서 나의 음악 타령롹에는 항상 놀이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것 같다. 물론 즐겁게 노는 음악만 하다보면 음악을 만드는 자신이나 그것을 듣는 사람 모두 금방 식상해지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고, 특히 나같은 경우는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정말로 원하던 것들을 해볼 수 있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음악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품었던 것들을 다시 하나 둘씩 꺼내보는 재미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타령롹을 하는 재야가수라는 호칭을 듣기 시작하는 내가 실제로 하고 싶은 음악은 ‘평화의 음악’이다. 내가 2003년 들어 부쩍 반전 노래들을 많이 부르기 시작한 것도 나의 이 염원과 관련이 깊다. 나는 단순히 전쟁에 반대하는 음악을 넘어서 아직도 폭력과 파괴와 강권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부드럽고 따스하고 고요한 것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원하는 아나키적인 노래들이란 바로 폭력과 전쟁을 조장하는 국가체제를 평화로운 개인들의 따스한 목소리로 뒤덮어 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