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수감자들에개 보내는 편지

평화가 무엇이냐 2004/09/23 14:12

평화수감자에게 보내는 편지

 

저는 병역거부자들을 처음에는 먼 발치에서 지켜보았더랬습니다. 그러다 차츰차츰 이들과 가까이서 만나볼 기회를 갖게 되었죠. 그런 친구들이 이제 차가운 감옥으로 하나둘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 각자가 가진 다양한 생각들과 신념들을 일일이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결코 총을 들지 않겠다는, 가장 인간적이고 평화로운 신념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을 가야 하는 이 끔찍한 야만의 국가는 나와 평화수감자들을 천 갈래로 갈라놓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갈려진 우리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혀보고자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에 잘 하지 않았던 내 이야기를 좀 해볼께요. 조약골이 생각하는 병역거부에 대해 편하게 풀어놓고자 합니다. 이제는 제게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기회는 없어졌어요. 다시는 그 지긋지긋한 무거운 군복과 신고 벗는데 불편한 군용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하네요.
오늘은 지하철에서 군인 4명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답니다. 저는 옛날에 무더운 여름에도 그 '전투화'라고 하는 정강이까지 차오르는 두꺼운 신발을 신고 하루종일 지내다보니 발에 온통 무좀이 걸려버렸어요. 내 앞에 앉아 있던 그 군인들도 아마 모르긴 몰라도 늠름해 보이는 군복을 한 자락만 벗겨보면 각종 질병과 고통스런 증상들로 힘들어하고 있을 거예요. 매일같이 입어야 했던 그 군복을 마음대로 벗을 수 있었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무좀이 절 괴롭혀왔으니 저는 그 무좀에서 벗어나는데 꼬박 10년이 걸린 셈이네요. 그 10년은 사실 제가 군대의 독소들을 내 온몸에서 하나씩 끄집어내온 기간이기도 해요. 내 정신에, 육체에 각인되어 있던 그 무서운 독소들이 이제는 거의 빠져나간 것 같아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년에 몇 번은 여전히 그 갑갑한 군복과 군화를 신고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떼었어야 했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군대란 것이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내 몸 속에 잠복해 있으며 날 병들게 했는지 이제와서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막과도 같았던 것 같아요. 완전히 메말라버렸던 평화적인 감수성이 이제 조금씩 나의 밑바닥에서 솟아나고 있거든요. 그래서 비로소 이제 저도 뒤늦게나마 병역거부라는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내게 병역거부는 자동차 거부와 아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우리들에게는 각각 자신만의 고귀한 양심이 있고, 병역거부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법이잖아요.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을 딱 하나 꼽아보라면 저는 제일 먼저 이것을 들어요. '난 차량을 운전하는 법을 모르며, 앞으로 운전하는 법을 배울 생각도 없다.'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이 제겐 여간 커다란 자랑거리가 아니랍니다. 운전을 배워보지 않았다는 것은 마치 총 쏘는 법을 아예 처음부터 배워보지 못한 것과 제게는 똑같게 느껴져요. 내게 운전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은 총을 쏠 줄 모른다는 것과 같은 가치예요. 그래서 예를 들어 갑자기 어느날 이 국가가 법을 개정해서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운전면허를 따게 만들고, 강제로 운전 학원에 들여보내고, 몇 년 동안 운전 기술을 습득케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보았답니다. 그러면 나는 여러분들처럼 운전을 거부하고 감옥에 갈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잘 나서도 아니고, 어떤 위대한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어서도 아닙니다. 단지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거예요. 운전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듯이 아마 평화수감자 여러분들도 총을 든 모습을 떠올릴 수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역거부와 운전 거부를 연관시키는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총을 들지 않는 것은 분명 평화의 길이지만 내게는 분명히 자동차를 몰지 않는 것이 평화의 길이거든요.
누구나 하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전쟁의 체험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 국가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을 군대로 보내고 그곳에서 전쟁의 체험을 반복적으로 주입시킵니다. 오늘도 그들은 바로 옆에서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함성을 지르며 봉우리 정상에 있는 진지를 향해 돌격을 하지요. 전쟁을 막는다면서 그런 전쟁을 일상화시킨다는 것이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병역거부와 자동차 거부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악몽 같던 전쟁의 체험,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아픈 기억들은 바람에 흩어져 없어지고 내 속에서 평화의 감수성이 조금씩 자라날 무렵, 기억하고싶지 않던 전쟁의 체험이 내 주위를 쌔앵~하고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에요. 될 수 있는 한 기계에 의존하지 말자, 기름과 전기로 굴러가는 저 중앙집중적 산업문명의 발명품에 예속되지 말자,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하려면 빨리 가려하지 말고 내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걷기를 생활화했어요. 그런데 사실 서울이라는 공간이 인간이 걷기에는 참으로 부적당한 곳이라는 것을 나는 걸으면 걸을수록 느끼게 된답니다. 바로 위에서 전쟁의 체험이 되살아났다고 했죠?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은평구 녹번동으로 몇 번 걸어온 적이 있었는데요, 그렇게 오려면 중간에 북악터널이라는 곳을 지나치게 된답니다. 이 터널은 자동차 전용도로에 있는 터널말고 보행자가 도보로 통과할 수 있는 서울 터널들 중에서는 아마 제일 긴 터널 축에 속할 거예요. 평화수감자 여러분들도 혹시 기회가 닿으면 밤에 그 북악터널을 한번쯤 걸어서 통과해보세요. 어떤 느낌이 드는지, 내가 왜 전쟁 체험을 들먹였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거예요. 신호가 바뀌자마자 뒤에서부터 무섭게 달려오는 자동차들의 행렬이 내뿜는 그 굉음은 탱크와 비견될 만하고요, 좁디좁은 터널 안에서 울려퍼지는 그 소리와 더러운 공기와 강한 바람은 마치 바로 옆에서 미사일이 터지는 것과 흡사해요. 게다가 그 긴 터널 안은 한 번 들어서면 좀체 끝이 보이지 않죠. 돌아갈 수도 없고, 끝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동차와 탱크와 미사일의 폭격이 귀를 때리고, 자욱한 먼지 때문에 숨이 막힌 답니다.
모르긴 몰라도 미국이 첨단 무기라며 각종 미사일들을 총동원해 이라크 시가지와 민가들을 무차별 폭격할 때 숨죽이고 숨어있어야 하는 이라크 민중들이 어떤 기분일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답니다.
아마 이런 경험들로 인하여 저는 운전면허를 배우라면 감옥행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에요. 자동차가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나는 느낀 것이 있기에 내가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같은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것은 무슨 외부의 거창한 사상이나 그런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예요.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물이 흐르듯 자연히 흘러가는 길이죠. 평화수감자들이 총을 들 수 없다는 것도 아마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지율 스님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천성산을 살리기 위해 힘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제가 이해하는 한에서는 그래요.
그런데 이 길은 명예로운 길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길도 아니에요. 성공을 좇는 길도 아니고 이것을 통해서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길도 아니죠. 병역거부의 길은 그래서 길고 긴 여정인 것 같아요. 대박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혁명'을 찾아가는 길고 지루한 여정이죠. 가진 권위가 있다면 모두 벗어 던지고 가는 길이에요.
이렇게 훌쩍 떠나가는 것을 우리들은 평화운동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 길에서 우리들이 만나고 어느새 옆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고 있어요. 여러분들도 그 친구들이 보이시죠? 제가 평화수감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이것이에요.
나는 평화운동이 국가라는 틀을 넘어설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저 국가라는 것은 적을 상정해야 자신의 존재 이유가 생기는 법이죠. 냉전이 끝나니 미국이 이제는 테러리즘이라는 적을 새롭게 구성해내기 위해 요즘도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죠? 한국은 이에 맞장구를 치면서 군대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 별 수사를 다 동원하고 있고요. 하지만 평화운동은 국가가 만들어내는 적이 얼마나 허구인지 가장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이죠. 지금 미국은 자신의 적을 인류의 적으로 만들어내는 공정을 벌이고 있고요, 이렇게 가공해낸 적을 무력화시키고 제거하는데 국가의 존립 근거를 삼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적은 애초에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된 것이었으니 전쟁이라는 최고이자 최악의 국가 폭력의 피해는 애먼 여성과 노약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요. 결국 평화운동은 적을 사라지게 하는 운동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평화운동은 국가 간의 장벽마저도 무너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답니다.
사실 요즘 세상 살아가기가 참으로 고통스러우니 '안녕하세요'로 시작되는 편지를 차마 쓰지 못했네요.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며 노예 노동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요, 농민들 역시 쌀시장 개방 정책을 통해 농업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고, 삶의 터전마저 뿌리 째 뽑힐 위기에 놓여있는 상황이고요.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무한 경쟁의 사회가 이대로 유지되는 한 우리들 평화운동가들은 여전히 외로운 길을 걸을 것이며, 평화를 가장 갈망하는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계속되겠죠.
저는 손수 길러낸 쌀과 채소로 따뜻한 밥을 만들어 모두가 조금씩 나누어 배불리 먹을 세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려고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과 함께요.

 

2004년 9월 중순에 조약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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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3 14:12 2004/09/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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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류 2004/09/24 17:23 Modify/Delete Reply

    우와, 부끄럽지만, 저도 운전면허가 없다는 걸 자랑거리로 삼는답니다. 반갑당~ 물론, 조약골님처럼 적극적이지는 못하지만 왜이리 반가울까 ^^;

  2. kanjang_gongjang 2004/09/25 06:45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 입니다. 붕어씨는 잘 지내는지 궁금하군요...

  3. 돕헤드 2004/09/25 14:01 Modify/Delete Reply

    붕어는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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