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꼬뮨 현장에서 2006/04/09 09:38
아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는 온몸에 문신을 열군데도 더 했다.
부러진 총이나 아나키 마크 등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확연히 드러내는 문양들도 있고, 나비처럼 그 자체로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들도 있으며,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없는 추상적인 기호도 있고, 좋아하는 구절을 글씨로 적어놓기도 했다.
문신이란 게 실은 굉장히 아프다고 한다.
그 고통을 어떻게 참았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는 자신은 고통을 즐기는 편이라고 답했다.
 
다른 친구도 있다.
그남도 역시 문신이 제법 있는 친구다.
오래 전에 그남에게도 문신에 대해 물었었다.
그남은 이랬다.
 
요즘엔 문신을 하기 전에 통증을 줄이기 위해 부분 마취를 하고 문신을 새기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가짜에요.
문신은 어떻게 보이느냐 보다는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인데,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서 문신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실제로 그남은 자기 손으로 직접 새기는 문신 세트 (DIY 문신 킷트)를 사서 매일 조금씩 자기 몸 곳곳에 원하는 그림을 새겨넣었다.
예를 들면 발목에 조그만 글씨를 매일 조금씩 새겨넣는 식이었다.
물론 잉크를 먹인 바늘로 생살을 조금씩 찌르는 것이기에 피도 났고, 또 상당히 아프기도 했을 것이다.
채 아물지도 않은 상처에 그는 연신 문신을 해나갔다.
그리고 난 그 모습을 보면서 고통을 즐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실은 난 얼마 전 4월 7일 평택 황새울에서 있었던 일을 들춰내기 위해 문신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그날 황새울 들녘을 파고 있던 불도저를 멈추기 위해 한 친구가 그 위로 기어올라갔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문정현 신부님이 점거한 불도저 위에 서있었는데, 멀리서 한 친구가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불도저 위로 득달같이 달려 올라가는 모습을 불현듯 보게 되었다.
그 친구는 바로 경찰에 의해 내동댕이쳐져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내가 잘 아는 친구였다.
그리고 그는 불도저 위에서 경찰에 의해 강제로 떨궈지는 과정에서 손에 부상을 입었다.
그는 불도저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한쪽 손을 끼워 걸었던 것이다.
경찰은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강제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땅 아래로 던져버렸다.
끼워 걸었던 손이 크게 다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사람들이 응급치료사를 애타게 찾았다.
얼마 후 박애병원에서 나온 사람이 응급의약품 상자를 들고 우리가 있던 들녘에 왔다.
그 응급치료사는 내 친구의 다친 손을 보았다.
내 친구는 약간 까졌을 뿐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더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
그랬다.
그의 손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난 부목을 해야 한다고 그 응급치료사에게 말을 했는데, 의약품 상자에는 부목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그는 아픈 손을 움켜쥐고 응급차에 올랐다.
나도 같이 갔다.
 
한참 후 응급실에서 진단 결과가 나왔다.
손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온몸에 문신을 열군데도 더 한, 고통을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던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 문신을 한 친구가 한번은 기찻길을 건너가다가 잘못해서 넘어져 손뼈가 부러질 정도로 다친 적이 있었는데, 손뼈는 인간 신체의 뼈 가운데서도 가장 단단한 뼈 가운데 하나라서 다치기도 힘들 뿐더러 한번 부러지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 극한의 고통을 느껴볼 수 있다고 내게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황새울을 지키기 위해 불도저 위에 올라갔다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손뼈를 크게 다친 친구는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눈물이 났다.
4월 7일 그 활동가 친구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그만큼의 고통은 아니었지만 그날 나 역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도두리에 들어온 포크레인이 논둑에서 흙을 퍼담아 수로에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얼마 전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그 저주스런 기계덩어리가 물이 흐르고 있는 곳에 토사물을 쏟아붓던 참혹한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새만금에서 보았던 그 죽음의 포크레인이 다시 도두리에 나타난 그 모습을 차마 눈을 뜨고 지켜볼 수가 없었다.
묵묵히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속이 뒤틀렸다.
분명, 악몽으로 되돌아올 그 모습을 얼마간 지켜보다 난 내리쪽으로 가보았다.
그리고 내리쪽에서 불도저를 점거한 채 그 위에 올라 앉아있는 문 신부님을 보았고,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활동가 친구가 손을 다치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그날은 길고 긴 날이었다.
이 고통을 잠재우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황새울을 지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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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9 09:38 2006/04/0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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