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해요

나의 화분 2006/04/12 23:16

레이님의 [혼자서는 못 해요] 에 관련된 글.

 

나는 혼자서도 척척 모든 일을 잘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면 돈을 내야 하거나 아니면 부탁을 해야 하는데, 둘 다 별로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자전거가 고장났을 때, 컴퓨터가 고장났을 때, 영어 번역할 일이 있을 때 혼자서 그냥 달려들었다.

원래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내가 그래도 이 정도까지 알게 된 것은 모두 그 '남에게 맡기기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이었다. 

 

지난 토요일에 래군이형이 아랫집에 왔다가 자전거 한 대를 타고 나갔다가 뒷바퀴에 빵구를 냈다.

그게 영은이 자전거였는데, 오늘은 그걸 고쳐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뒷바퀴를 자전거 몸체에서 분리해내고, 타이어를 떼어 낸 다음 튜브를 살펴 빵구가 난 곳을 때우고, 다시 역순으로 하면 끝나는 작업이다.

이게 말은 쉬운데, 실제로 하려면 그리 녹녹한 작업이 아니다.

영은이 자전거는 아테네인데, 이것이 내가 쓰는 RCT 2.5보다 바퀴 테도 더 두껍고, 타이어도 더 두꺼운 놈을 사용한다.

평소에 얇은 바퀴테와 타이어로 몇 번을 낑낑거리며 비지땀을 흘려 빵구를 때워본 경험을 믿고, 이놈도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이건 또 달랐다.

바람이 새는 곳을 찾아 때운 튜브는 다시 다른 곳에서 바람이 새서 또 때웠다가 여기저기 실빵구들이 많이 나있어서 때우는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튜브를 사왔다.

사온 새로운 튜브를 바퀴테와 타이어 사이에 넣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바퀴테도 두껍고, 타이어도 두껍다보니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갔다. 

오늘도 1시간 넘게 낑낑거렸다.

결국 튜브와 타이어를 테에 끼우고, 바람을 팽팽하게 넣은 다음 자전거 몸체에 끼우려고 하는데, 퍼어어어엉! 소리가 크게 나면서 튜브가 완전히 찢어져버렸다.

처음엔 몰랐는데, 타이어를 벗겨보니 안에 들어 있던 튜브가 타이어에 씹혔던 모양이다.

그래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커다란 구멍을 내고 찢어졌던 모양이다.

실망이 컸다.

 

하지만 포기하기는 싫었다.

기왕 시작한 작업이니 끝을 보고 싶었다.

튼튼한 놈으로 골라 새로운 튜브를 가져왔다.

이걸로 처음부터 다시 작업에 돌입했다.

영은이 즐겁게 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 도로를 돌아다니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역시 쉽지 않았다.

굵은 테와 타이어가 낯설었다.

최대한의 조심을 기울이며 튜브가 타이어 안에서 씹히거나 접히지 않도록 주의했다.

 

제일 처음 뒷바퀴 빵구를 때울 때가 기억난다.

타이어를 벗겨내고, 거기에 튜브를 간 다음 다시 타이어를 자전거 바퀴에 씌우는데, 그 작업이 너무도 힘들었다.

돌려가면서 조금씩 아무리 있는 힘껏 밀어 넣어도 마지막 타이어 남은 부분이 바퀴테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날 2시간이 넘게 비지땀을 흘리며 자전거 뒷바퀴 하나를 들고 어쩔 줄 몰라했었다.

그러다가 결국 포기를 하고 자전거 수리점에 뒷바퀴를 들고 갔더니 수리해주는 분이 너무도 쉽게 슬쩍 손으로 타이어 남은 부분을 밀어넣는 것이 아닌가...

나는 거기서 내가 그렇게 힘들어 하던 것이 이렇게 쉽게 처리될 수도 있다는 것에 허탈했었다.

아무리 내가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 해도 결국 내가 넘지 못하는 그런 한계가 너무도 명확하게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나오는 허탈함.

 

그래. 인정하자.

내가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어.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더 쉬워진다.

자전거 수리하는 것, 그까짓거 별 것 아냐!

그 후로 나는 별 어려움 없이 타이어를 들어내고, 새 타이어를 끼우고, 빵구를 때우고 그랬었다.

그리고 오늘.

영은의 자전거 뒷바퀴에 다시 도전했지만 뭔가 달랐다.

새로운 기종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약국에서 반창고를 사와서 림테이프도 세심하게 새로 감았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하면서 튜브가 타이어 안에서 잘 자리를 잡도록 밀어넣었다.

완성했다고 생각한 순간 바람을 넣었고, 그렇게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뒷바퀴를 다시 자전거 몸체에 끼우려고 하는 순간 다시 똑같은 이유가 빵구가 나면서 튜브가 찢어져버렸다.

 

이렇게 자전거 튜브 2개를 찢어먹고선 완전히 정신적으로도 지쳐버렸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포기해버렸다.

더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무래도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물어보고 새로 배워야겠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 것들은 남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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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2 23:16 2006/04/1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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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laming Lips 2006/04/14 03:12 Modify/Delete Reply

    배우는 기쁨

  2. slowpeace 2006/04/14 11:33 Modify/Delete Reply

    돕!! 이번에 자전거 수리 도와주면서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어. 상심하는 모습에 어찌할 바 몰랐으나.. 부디 돕에게 좋은 경험이었길 바랄뿐...^^;;;; 덕분에 한강을 신나게 달릴 수 있게 되었어. 고마워 아주 많이.

  3. 지음 2006/04/18 06:32 Modify/Delete Reply

    희한하네... 저는 저런 현상은 아직 본 적이 없는데요... 이유는 아셨어요? 아셨으면 가르쳐주세요. ^^
    저도 정석은 모르지만 제 경우에는 튜브를 타이어 사이에 끼워넣는 건 타이어를 완전히 뺀다음에 넣는 게 더 편하더군요. 그리고 튜브가 안에서 엉키지 않게(특히 밸브가 있는 쪽을 조심해서) 바람을 조금만 넣어서 자리를 잡게 하고 바람을 빼고난 후에 다시 바람을 넣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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