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진짜 빨갱이구나'

꼬뮨 현장에서 2006/09/15 21:31
국방부의 마을파괴 공작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가 빈집철거 이후에 오히려 더 끈끈해졌기 때문이다. 고난을 함께 견뎌낸 사람들은 더욱 일치단결하는 법이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끝까지 갈 사람들이다. 포크레인이 와서 집 몇 채 부순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난 마을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 대화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그걸 느낄 수 있다. 더불어 나같은 지킴이들에 대한 마을 분들의 관심과 애정도 한층 더 높아졌다. 이제 마을 분들도 지킴이들이 함께 끝까지 갈 사람들이라는 것을 체감한 모양이다. 수만의 경찰과 거대한 기계 앞에서 맨몸으로 저항하며 내려오지 않았던 지킴이들의 모습이 그런 확신을 심어준 모양이다. 오늘은 낮에 찻집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데, 민의형이 들어왔다. 나는 바닥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고 있고, 민의형은 의자에 앉아서 내 뒷모습을 보고 있다. 별안간 이런다. "넌 진짜 빨갱이구나." (헉?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문화연대에서 저번에 후딱 지나가버린 월드컵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티셔츠에는 '자본, 발광을 멈춰라' 이렇게 씌여있었다. 그런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참, 사람들은 어디서 희한한 티셔츠도 잘만 만들어오네" 민의형이 날 보고 씨익 웃는다. 오후 무렵에는 빈집에서 텔레비전을 한 대 가져왔다. 이것도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다른 사람들보고 가져가라고 할 생각이다. 무거운 구식 텔레비전을 끙끙거리며 옮기는 날 보고 부녀회장님이 툭 한 마디 던진다. "그거 잘 나오는 거냐?" 부녀회장님은 호걸 스타일인데다가 친한 사람이 아니면 길에서 만나도 그냥 쓱 쳐다볼 뿐 별로 말도 많이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내가 인사를 해도 그냥 고개만 끄덕하고 지나가셨는데, 오늘은 나에게 먼저 말을 건다. 반갑다. 오늘은 월동준비를 마쳤다. 아직 9월 중순인데, 무슨 월동준비를 벌써 하냐고? 황새울은 바람이 제법 차다. 특히 밤에는 두꺼운 이불을 덥지 않으면 감기 걸리기 딱 알맞다. 오랜만에 빈집 나들이를 갔다. 나름 부서지지 않은 집들이 꽤 많다. 그런 빈집들에는 아직도 내가 필요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빈집이 아니란다, 요놈들아!) 여름 나절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들이 다시 찾아들어간 빈집에 쌓여있다. 전기장판도 줏어오고, 오래된 전열기도 줏어왔다. 낑낑거리며 킹사이즈 침대와 침대받침대도 들고 왔다.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내가 사는 방에는 창문의 유리가 완전히 깨지고 창틀만 남아 있어서 지난 7월 초에 고칠 때 창틀에다 그냥 비닐로 덮어놓았는데, 이제는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비닐창문으로는 한기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빈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유리가 성하게 끼워져 있는 창문들도 찾아냈다. 이제 추위가 찾아와도 마음이 든든하다. 내일부터는 다시 전국행진에 결합한다. 대구에서부터 9월 24일 서울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걱정도 되지만, 잘 해나갈 것이다. 오늘 황새울 벼 수확을 처음으로 했다고 한다. 지금 이곳은 황금색 물결이 굽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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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5 21:31 2006/09/1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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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ic 2006/09/15 21:45 Modify/Delete Reply

    그 유리가 있다는 창문들이 옆집에 맞을까 모르겠네...
    아무튼 늘 즐겁게 지내는구나.

  2. 디디 2006/09/15 22:10 Modify/Delete Reply

    아무튼 늘 즐겁게 지내심다! 일요일에 대추리 놀러갈꺼예요. 전번에 얻어먹은 야생깻잎김치볶음밥의 복수로 비지찌개거릴 준비해가려 했는데, 행진이라니. 억울하다! ㅋ 잘다녀오셈!

  3. navi 2006/09/16 08:10 Modify/Delete Reply

    크크, 민의아저씨의 애정표현.

  4. 에밀리오 2006/09/16 09:14 Modify/Delete Reply

    힘내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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