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채식주의자

식물성의 저항 2004/12/04 23:15
일본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국에 돌아와보니 내가 일본에서 얼마나 인간 이하의 생활을 했나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가난한 채식주의자로서 낯선 땅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일본은 생선류를 많이 먹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란 더욱 어렵다. 특히 내 일본어 실력은 형편 없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되면 난 더욱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냥 가져간 채식주의 라면을 끓여 먹거나 맨밥을 사서 먹거나 했다. 아니면 값이 싼 땅콩이나 식빵을 사서 두유와 함께 먹고 배고픔을 참는 경우가 많았다. 200엔짜리 유부초밥이 저녁 8시가 넘으면 처분을 하기 위해 가격이 30% 내려가는데,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잘 잡아야 한다. 그래야 140엔짜리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다가 비참함을 견딜 수가 없으면 음식점에 들어가 야채볶음밥을 600엔에 사먹기를 두 번. 그렇게 5일을 지내고 나니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목이 붓고 노래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열이 나고 몸에 힘이 없다. 이제는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일본에서는 잠도 많이 자지 못했다. 그것은 내 습성 때문인데, 나는 다른 사람이 가까이 있을 경우 잠을 깊이 자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고, 지도를 펴들고 계획을 세운 뒤 하루를 시작했다. 나와 같이 일본에 간 한국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부지런하다'고 했지만 실은 내게 선택의 여유라는 것이 없었다. 아마 일본에 다시 갈 여유가 별로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기 때문에 한번 일본에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낮에는 시위에 참가하고 밤에는 도시를 돌아다녔던 것이다. 며칠 배고픈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몸이 좀 고생해도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면 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경험한 것을 이제부터 몇 번에 걸쳐 '가난한 아나키스트 채식주의자의 일본 여행기'라는 이름으로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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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4 23:15 2004/12/0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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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2004/12/05 12:04 DELETE

    Subject: 채식주의?

    * 이 글은 돕헤드님의 [가난한 채식주의자] 에 관련된 글입니다. 채식주의자가 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왜냐면 대게의 대중음식점(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음식)들이 그렇고
  2. Tracked from 2004/12/05 12:04 DELETE

    Subject: 채식주의?

    * 이 글은 돕헤드님의 [가난한 채식주의자] 에 관련된 글입니다. 채식주의자가 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왜냐면 대게의 대중음식점(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음식)들이 그렇고
  1. tashi 2004/12/05 01:52 Modify/Delete Reply

    한국에 진정으로 채식의 의미를 알고 채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웰빙이니 뭐니 몸에좋다면 무엇이든 쳐먹을라고 발광하는 보신문화로 채식이 받아들여진다면 정말 슬픈일일 것입니다.
    저같은경우몇번시도해봤지만 역시나 힘들더군요. 지금은 포기보류

  2. 돕헤드 2004/12/06 00:10 Modify/Delete Reply

    힘들지만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실천해보세요.
    저는 1년이 넘게 채식을 해오고 있습니다. 채식을 가로막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육식문화에 좌절하지만 이에 타협할 수 없다는 각오로 버티고 있죠.

  3. yayar 2004/12/08 21:13 Modify/Delete Reply

    처음 몇달은 완전채식에 가깝게 실천하고 있다가 지금은 짝퉁채식(해물은 가끔 먹는...)을 하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먹고 살아야 하다 보니... 채식하기 정말 힘들더군요.
    어쨌든... 처음 완전채식에 가깝게 채식하던 시절은 정말 만족스러웠었습니다. 체중은 좀 빠졌었지만 몸이 무척 건강해지고 있다는걸 느낄수 있었거든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4. 돕헤드 2004/12/08 21:55 Modify/Delete Reply

    해물을 먹어도 짝퉁채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훌륭한 채식이죠. 완전채식이라는 말도 저는 사실 별로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에요. 그러면 우유나 달걀 또는 생선을 먹는다면 불완전채식이 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냥 나누지 말고 '나는 채식을 한다'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저는 생선이나 달걀, 우유도 '거의' 먹지 않지만 한국에서 고기를 먹지 않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5. masterofdespair 2004/12/11 23:24 Modify/Delete Reply

    저도 유제품과 생선은 어느 정도 허락하고 있는(그렇지 않으면 서울에서의 사회생활은 거의 불가-_-;) 3년차 채식주의자입니다. 저는 채식주의자의 수만큼의 다양한 채식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채식주의를 발견하고 실천하면서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참 반갑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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