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자전거, 생태화장실 그리고 대안생리대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7/02/18 02:30

민중언론 참세상이 논평으로 한미 FTA 저지 싸움은 이제 그만하고, 이제부터 '결이 다른 싸움'을 하자고 제안한다.

사안, 사안에 대한 반대와 저지에 급급한 우리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고, 진정한 대안운동이 되기 위해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과 한국의 지배계급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면서 대다수 민중의 삶 자체를 대기업들의 이윤을 위해 팔아먹으려고 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저항이 전면적으로 벌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중들의 반발이 있음에도 지배계급이 자신 있게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내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은 요즘 인권활동가 박래군이 던지는 화두, 즉 진보운동의 길찾기에 대해 내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문제제기에 대해 내가 나름대로 답을 하기 위한 것이다.

생명평화를 노래하는 별음자리표 역시 나에게 '왜 누구나 입만 열면 친환경, 친환경 하고 떠드는, 그렇게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서 죽음의 환경재앙을 가져올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막을 힘은 나오지 않는 것인가'라는 화두를 제시한 적이 있다.

 

잘난 척 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이미 내 나름대로의 답을 갖고 있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생각한 그 답에 따라 실천을 하며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답은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으로 도출된다.

지금과 같은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한미 FTA 체결을 통해 더욱 공고해지는 대기업 자본주의를 막을 도리가 없게 된다.

새만금 갯벌에 죽음의 방조제가 들어선 것도, 황새울 들판에 최첨단 미군기지가 들어설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우리의 반대운동이 허약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운동이 삶 전체를 바꾸는 대안운동이 되지 못한다면 앞으로 대기업 자본주의는 더욱 강렬해질 것이며, 서슬퍼런 이윤의 칼날 앞에 대안의 가치들은 모조리 스러져버릴 지도 모른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2007년 진보운동권은 정치판에서 진보냐 보수냐의 대립구도를 다시금 만들어내는데 사활을 걸 태세이지만, 그 낡은 대립구도는 대기업 중심의 착취적이고 낭비적인 자본주의와 이에 대립하는 민중이라는 '대기업 자본주의 대 민중'이라는 구도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모든 영역까지 파고들어 더욱 공고해진 대기업 자본주의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그 체제를 전복할 힘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일상에서부터 전혀 새로운 체제를 딛고 일어서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그 힘이 나온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보급하는 달콤한 소비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나는 먹고, 자고, 입고, 똥누고, 소비하며 생활하는 것 전반에 스며든 대기업 자본주의를 총체적으로 뿌리뽑을 생명력을 획득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동네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어느덧 골목마다 대형할인매장들이 들어서고 있다.

먹는 것에 대해서까지 진보를 논의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상에서 편히 쉴 틈조차 주지 않는 것이 피곤한 것이라는 것 나도 잘 알고 있다.

노동운동을 하기에도 바쁜데, 거기에 무엇을 먹느냐까지 고민하라는 것은 운동을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들릴 수도 있다.

피곤한 일인 것 잘 알지만,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하는 것은 이를테면 대형할인매장에서 소비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이다.

그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에 서 있는 것이 자동차를 거부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다.

지하철 1대가 자동차 2,247대를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고 지하철에 나와 있던데, 그렇다면 자전거 1대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동차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까.

사람들이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세상에서 그렇고 넓고 아름다운 새만금 갯벌을 죽이면서 방조제를 건설하고 최첨단 산업단지를 만들 수 있을까?

자동차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 이후 지금까지 60만명이 넘는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낭비적 대기업 자본주의 체제의 총본산이다.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하는 것은 수세식 화장실 대신 생태화장실을 사용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오줌을 한 번 누고, 똥을 한 번 싸고 내려보내는 물의 양은 얼마일까.

오줌과 똥은 우리가 자연에서 얻은 음식을 먹고 나온 것들이 아닌가?

이것들을 거름으로 만들어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유익한 질소덩어리를 환경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더러운 분뇨로 만들어 폐기하는 수세식 화장실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며 얼마나 낭비적인 것이며, 그런 어리석은 일로 인류는 도대체 이 지구를 또 얼마나 착취해왔던가.

그렇게 착취가 길들여진 우리는 또 다른 생명을, 타자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맘대로 착취해왔던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끔찍한 차별은 그 뿌리가 어디에 있을까.

채식을 하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은, 생태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고 동네 구멍가게를 이용하는 것은 일회용 생리대와 일회용 컵과 일회용 젓가락들을 거부하고 대안생리대를 사용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불편한 일, 맞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애써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그 공고하고도 교묘하며 착취적이고도 폭력적인 대기업 자본주의에서 도대체 어떻게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 불편함은 곧 사라진다.

처음에 불편하던 것이 얼마 후엔 익숙해진다.

불편함이 편리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일상에서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혁명인데, 나는 가끔 그런 경험들을 하는 이 삶이 즐겁다.

 

또한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편리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KTX를 만들어 서울과 부산을 빠르게 왕복하는 것이 편리한 것인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돈을 주고 소비를 하면 척척 알아서 모든 것을 처리해주는 서비스가 편리한 것인가?

그 편리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더 깊은 자본주의의 강요된 노동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일회용 생리대를 쓰고 버리기 위해 그것을 구매할 돈을 벌어야 한다.

자동차를 굴리기 위해, 거기에 넣을 기름을 가져오기 위해 우리는 힘들게 노동을 해야 한다.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내려보내는 물값을 대기 위해 우리는 원하지 않는 노동을 해야 한다.

고기를 먹기 위해 대량으로 사육되는 동물들은 또한 얼마나 많은 물과 토지와 곡물을 낭비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얼마나 심한 굶주림과 환경파괴가 자행되고 있는가. 

결국 우리는 편리함을 위해 스스로 자본주의를 지속시키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나는 '신념에 의한 소비거부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기업 자본주의 유혹을 용케 벗어나, 처음엔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자립과 공생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 말이다.

 

나는 자본주의가 암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 대기업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산업문명은 말기 암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서양의학이 시술해온 것처럼, 암세포를 도려내는 것으로 치유가 가능할까?

레이져를 쏴 암세포만 골라 죽여버릴 수 있을까?

돈을 벌어 의료보험에 들고, 더좋은 병원에 가서 특진을 끊어 치료를 받아야 할까?

우리의 이런 태도가 삼성재벌로 하여금 병원과 의료보험을 통합해 더욱 지랄맞은 대기업 의료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다고 해서 우리의 몸이 원래의 건강함을 회복할 수 있을까?
만약 골수까지 암세포가 스며들었다면 골수까지 모조리 도려내야 할까?

나는 암세포가 인체에서 아예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채식 위주의 적절한 식생활과 운동 등 생활방식을 바꿈으로써 몇 년에 걸쳐서 서서히 암세포가 인체 내부에서 살아갈 수 없도록 체질을 바꾸는 모습을 나는 본다.

자본주의를 절멸시키는 방법이 나는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을 조직해 혁명을 일으킨다고 해서 우리 골수에까지 스며든 대기업 자본주의 산업문명을 완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식 생활방식은 바로 전 세계적으로 미제국이 표준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대기업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전형이다.

우리가 이 길을 따르는 한 아무리 열나게 WTO 반대를 하고, FTA 반대를 하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싸움을 하고,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막기 위해 죽기살기로 운동을 해도, 그 결과는 기대했던 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일쑤다.

 

채식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생태화장실을 사용하고, 대안생리대를 쓰는 것은, 그리고 그밖의 많은 생태주의적, 여성주의적, 평화주의적 실천들은 마치 자본주의라는 암세포가 지구라는 인체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것과 같다.

이것이 내가 내린 답이다.

중요한 것은 물론 실천이다.

미국식 생활방식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달콤한 편리함의 유혹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그것과는 완전히 갈라선 길로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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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8 02:30 2007/02/18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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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모든 일에 자비를 2011/03/22 05:02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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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 자전거, 생태화장실 그리고 대안생리대 민중언론 참세상이 논평으로 한미 FTA 저지 싸움은 이제 그만하고, 이제부터 '결이 다른 싸움'을 하자고 제안한다. 사안, 사안에 대한 반대와 저지에 급급한 우리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고, 진정한 대안운동이 되기 위해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과 한국의 지배계급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면서 대다수 민중의 삶 자체를 대기업들의 이윤을 위해 팔아먹으려고 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저항이 전면..
  1. 에밀리오 2007/02/18 03:01 Modify/Delete Reply

    와... 역시 돕님 말씀은 읽을 때 마다 입이 딱 벌어진다는... 지금껏 대추리 들어가서도 한 번도 인사도 못 드린거 같은데... 이번에 가면 뵐 수 있으련지; 여튼 잘 배우고 갑니다. 우리 삶 전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완전 공감하고 간답니다~

  2. 달군 2007/02/18 08:56 Modify/Delete Reply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세계가 어느날 갑자기 되는것도 아니고.. 정말 동의.

  3. 당신의 고양이 2007/02/18 10:24 Modify/Delete Reply

    맞아요. 가장 적극적인 실천은 어쩌면 자신의 노동을 자본에 팔지 않고, 소비를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4. 디디 2007/02/18 19:14 Modify/Delete Reply

    완전 공감 + 노동을 팔지 않고,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함께 살 친구들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단 생각이 부쩍 더 많이 드는 요즘이라는.

  5. navi 2007/02/18 23:27 Modify/Delete Reply

    맞아 돈을 쓸일이 없으면 벌 필요도 없지.
    나도 그렇게 살고파>_<

  6. 아침 2007/02/21 10:15 Modify/Delete Reply

    아랫집 화장실을 개조해볼까나? 채식, 자전거, 대안생리대에 이어서... 아랫집이 이사가야 가능하려나???

  7. 2007/02/21 10:24 Modify/Delete Reply

    개조하면 좋은데, 문제는 퇴비장을 마련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퇴비장이 없으면 생태화장실을 만들 수가 없거든. 물론 우리 건물 주변에 퇴비장으로 쓸 만한 곳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단체나 그런 사람들이 탐탁치 않게 생각할 수도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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