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나의 화분 2009/03/22 02:47
안녕하세요?
시간을 내서 몇 번 찾아뵈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런저런 일로 번번히 미루게 되네요.
찾아오기 힘든 형편이니까 제가 찾아가뵈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일단은 편지로 안부를 물어야겠어요.
잘 지내세요?
건강은 좀 어떤가요?
 
전 실제로 몸이 약한 편이라, 좀 무리를 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감기에 걸리고, 몸이 움직이질 않아요.
한 이 주일 정도 바쁘게 살았다 싶더니, 어김없이 몸이 위험신호를 보내더라고요.
그래서 월요일과 화요일은 좀 몸을 돌봤더니 이제 좀 지낼만 해요.
 
피자매연대에서 대안생리대 만들기 공개워크샵을 한 달이나 두 달 정도에 한 번씩 하면 사람들이 보통 20명에서 30명 정도씩 와요.
그 사람들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정보를 보고 오는데, 용산 참사가 무엇인지 관심 없는 사람들도 많고, 또 들어본 사람도 요즘엔 용산 문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용산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도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죠.
정치엔 무관심해보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데 대안생리대 워크샵은 참 좋은 공간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용산 철거민 참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발인으로 참여해달라는 말을 살아가면서 듣게 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워크샵 중간에 사람들이 한창 바느질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제가 나서서 슬슬 용산참사며, 여러 가지 현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놓는답니다.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가면 더욱 더 강하게 참가를 유도하는 발언들을 하고, 선전물을 나눠주고 그렇게 해요.
어찌 보면 여행사를 통해서 관광을 간 사람들이 여행사 가이드 따라서 물건 사러 시장에 들어가는 그런 분위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듣고 넘기는 것 같고, 그중 한 10% 정도는 '몰랐어요. 그런 상황이군요. 유가족들의 빚이 2억원이 넘는군요' 하면서 나름 관심을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집중을 하는 것이죠.
 
그나저나 고발인들은 많이 좀 접수가 되었나 궁금하네요.
오늘은 수요일이라서 홍대 앞에서 또 마포촛불문화제를 했답니다.
그래도 2시간 이상 노래하고 공연하고 발언하면서 용산 문제에 집중을 해서 알린다고 알렸는데, 이게 어떻게 현실적인 힘으로 전환될지 잘은 모르겠어요.
 
지난주 토요일 집회 말미에 상황실장이 나와서 '이 싸움 장기전이 될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 말을 듣고, 저 역시 꾸준히 질기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바깥에서 지켜보기만 하고, 안에서 돌아가는 사정은 잘 모르긴 하지만, 그저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자는 다짐을 해보고 있어요.
 
요즘에는 저보고 노래를 부르러 와달라는 요청이 잦네요.
사실 작년에도 거의 한 주에 3일 이상은 여기저기서 와서 노래해달라는데 가서 노래하고 그랬는데, 요즘에도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용산 관련된 노래들을 제가 만든 반주를 틀어놓고 노래만 부르는 것과, 내가 기타를 치면서 어쿠스틱으로 부르는 것이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가능하면 어쿠스틱으로 하려고 해요.
혼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 것이, 잘만 한다면 분위기가 제일 자연스럽고 좋거든요.
문제는 내가 노래를 잘 못한다는 것인데...
이건 뭐 하루이틀 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 저도 장기적으로 연습을 계속해서 더 나아지도록 할 생각이에요.
 
'평화가 무엇이냐' 음반을 낸 것이 2007년 2월인데, 그 때는 이미 대추리 주민들의 이주가 결정된 뒤였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대추리에서 노래를 만들면서 이 노래들이 조금이라도 투쟁에 도움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작업을 하다보니까 앨범이 나왔을 때는 이미 투쟁이 끝나버리는 끝물이 되었던 거에요.
그게 실은 제게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에요.
이미 투쟁이 끝나버려서 노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투쟁의 기록'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거 말이에요.
 
용산 참사가 나고, 노래를 만들면서 새로 음반을 하나 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또 시간이 흐르면서 만약 지금부터 한 달 후에 음반이 나오면 이미 용산 싸움이 끝나버린 뒤가 아닐까 그런 고민이 또 들엇어요.
최소한 투쟁기금을 모으는데라도 기여를 했으면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지금 거의 음반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라서 좀 막막하네요.
 
용산 투쟁이 빨리 해결되어서 유가족들의 고통이 좀 줄어들길 바라는데, 저로서는 앞으로 이 싸움이 또는 이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어요.
고삐는 점점더 조여오는 것 같고, 숨통이 막히기전에 돌파구를 찾아야하는데 말이에요.
 
어떻게든 잘 버텨보겠지만, 문제는 버티는 것 만으로 충분하지가 않다는 것이죠.
하여튼 잘 지내시고,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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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2 02:47 2009/03/22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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