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00일, 촛불미디어센터에서 보낸 하루

나의 화분 2009/05/08 14:03
참사 100일, 촛불미디어센터에서 보낸 하루
[현장] 활동가들의 노하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찍는다”
 
2009년 04월 30일 (목) 17:54:58 나난 uridle1981@naver.com
 

어 제 29일은 용산참사 100일째 되는 날. 추모집회에 참석했던 한 참가자는 “100은 기념으로 쓰이지만 용산참사 100일을 맞은 오늘은 아프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서 “100일간 무엇을 했는지 반성이 되는 날”이라는 말을 남겼다.

1월20일 발생한 용산참사는 6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그뒤 용산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경찰은 유가족들의 동의도 없이 부검을 실시했고, ‘폭력’을 앞세워 전철연이라는 배후설을 문제 삼았으며,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의 사퇴 등을 요구하는 촛불이 일어서자 이를 탄압하는 것은 그저 시작이었고 ‘용산’이란 말만 들어가도 집회는 허가되지 않고 있다. 또한 당시 요구사항 중 가장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을 뿐더러 오히려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용의자가 잡히자 그것을 이용해 용산참사를 덮으려고 했던 청와대의 행각이 드러났다. 그리고 검찰은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이 사인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유가족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검찰에서는 결론을 내렸는지 모르지만 유가족들의 의혹은 여전하다. 때문에 ‘진상조사’, ‘책임자처벌’, ‘이명박 대통령 사과’, ‘명예회복’이라는 요구 역시 그대로인 상황이다.

   
  ▲ 4월 29일 용산참사가 발생했던 남일당 건물 옆에서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나난  
 
그렇게 찾아온 용산참사 100일. 용산에서 붙박이로 유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용산관련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는 촛불미디어센터 활동가들은 용산 참사 100일을 어떻게 기록할까? 그들은 어떻게 취재를 하고 그들이 만드는 뉴스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지 궁금했다. 그래서 용산참사 100일. <미디어스>는 용산참사 100일 행사를 비롯해 촛불미디어센터 활동가들의 모습에 집중했다.

용산참사 100일은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참사가 발생한 남일당 건물 앞 추모 현장에 도착해 보니 참사 100일에 맞춰 준비된 꽃 화분 100개가 참가자들 앞에 놓여있었고 사회자가 일정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촛불미디어센터와 연계하는 활동가들의 현장에 대한 생중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의 카메라는 용산참사 추모 100일 그 전부를 담아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살인자는 없다”는 유가족들의 애달픔도 “살인적인 재개발은 다시는 안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추도식을 진행하는데 경찰의 경고방송이 들렸다. 용산경찰서 수사과장이라는 사람은 “현재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 경고합니다”라며 사회자, 발언자 등은 현행범으로 즉각 체포될 수 있다고 했다. ‘현행범’, ‘체포’, ‘벌금’, ‘징역’ 등등을 언급하던 경찰은 급기야 “언제 어디서든 체포될 수 있음을,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법을 모른다고 해서 처벌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는 내용으로 경고방송이 끝났다. 점점 더 경찰의 탄압이 심해진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기존의 경고방송과는 그 과격도 등에서 매우 큰 차이가 났다. 그리고 이러한 경찰의 행태는 이후 곳곳에서 드러났다.

점심시간이 되어 촛불미디어센터를 찾아 오늘 취재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지만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은 각자가 맡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뿐 따로 누가 취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의아했던 말은 용산추모 100일 문화제가 한창 진행 중일 오후 9시에는 각국의 미디어활동가들이 참석하는 ‘철거’에 관한 스튜디오 촬영이 있을 것이라는 예고였다. 용산의 상황을 잘 알려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인 촛불미디어센터가 따로 취재를 하지 않는단다. 고개가 갸우뚱했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각자 들 피켓을 만들고 만화가 김대중씨의 그림에 색을 입히는 작업들이 시작됐다. 그 순간에도 생중계 카메라는 완성되어가는 그림에 맞춰져 있었다.

   
  ▲ 조약골 활동가가 용산참사 추도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나난  
 
촛불미디어센터 건물 근처를 배회하던 중, 촛불미디어센터의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에서 활동하는 조약골 활동가가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을 취재하는 모습이 보여 냉큼 따라갔다. 그는 라디오 방송에 쓰기 위해 용산참사 100일 참가자들의 ‘말말말’을 따는 중이라고 했다. 참, 현재 용산에서는 매일 매일 용산라디오가 전파가 아닌 ‘엠프’를 타고 방송되고 있는 중이다. 이를 두고 조약골 활동가는 “그래도 엠프가 좋은 거라 꽤 멀리서도 들린다”고 자랑이다.

“용산참사 추모 100일, 어떻게 참석하게 되었나요?”라는 그의 질문에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다. “전교조 서울지부 식구들과 같이 왔다”는 선생님들은 “작년 촛불이 일어났듯이 용산문제를 가지고서 다시 촛불이 일어나길 바란다”며 “끝까지 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일제고사 거부로 파면 당했다던 김영승 선생님. 그 역시 “너무 슬프고 분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참석하게 됐다”며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경계를 넘어’ 수진 활동가는 인터뷰에서 “오늘 하루만큼은 용산참사 희생자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참석했다”며 “당장 오늘 하루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길게 탄압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당차게 말했다.

추모현장에서 만난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참담하다. 개발업자들만을 위한 용산재개발도 그렇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희생자들이 결국에는 가해자로 몰려 법적 심판을 받고 있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촛불은 보이지 않고 대중은 침묵하고 있는 그런 현실이 안타깝다”라는 말을 남겼다.

“저 안에서의 공포감, 외로움들이 느껴진다”는 참가자, “결자해지로 이명박 정권이 해결해야 한다”, “같은 철대위로써 당연히 연대하러 왔다”는 타 지역의 철거민들…. 전남에서 왔다는 한 참가자는 “이명박 정부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돈과 재산 그리고 실적만 보이는 것 같다”며 “그렇기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을 불로 태워 죽이고 사과 한마디 없는 것”이라고 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분당에서 오신 한 할머니는 경고방송에 대해 “아까 들었죠. 미친XX 여기서 집회한다고 지랄하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입닥치라 그랬어”라면서 한참 욕설을 퍼부었다.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에 이 분당 할머니는 “나 잡혀 가는 거 볼라고?”라고 사양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조약골 활동가를 쫓아다녀보니 새삼스레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지역의 철거민들, 분당과 전남에서 왔다는 참가자들, 수많은 사회단체 활동가. 그리고 일제고사 거부로 파면당한 김영승 선생님을 비롯한 전교조 선생님들과 민교협 손호철 교수…. 모두 다 함께 용산참사 100일 추도식에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당연한 일이지만 머리를 울리는 느낌이랄까? 메인 무대 앞에서만 귀를 쫑긋했다면 결코 들을 수 없는 참가자들의 소중한 응원의 목소리들이었다. 진정 용산참사 100일 추모현장에는 유가족들을 응원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 광장으로 이동한 사연

잠시 앉아서 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뒤쪽에서 일이 생겼나 보다.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인권활동가가 뒤쪽에서 명도소송으로 강제 집행돼 강제 이사가 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일단 조심스레 가보았다.

   
  ▲ 명도소송으로 강제 집행 이사시키는 모습ⓒ나난  
 
“철거공사로 인하여 거주 및 영업하시는 주민께 불편을 드려 최송합니다”라는, 맞춤법도 틀린 호람건설의 펼침막이 걸려 있는 그곳에는 용역들이 한 줄로 등지고 서 출입을 막고 있었고, 그 뒤편에서는 사다리차를 이용해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다. 심장이 떨려 죽는 줄 알았다. 철거촌에서는 경찰보다 용역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는데 그곳에서 그들과 맞닥뜨렸던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이 말을 듣질 않았다. 사진을 찍는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옆에서 한 아저씨가 “저 이삿짐도 주인이 안 찾아가면 그냥 버리는 거야”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 아저씨는 철거로 인해 집을 잃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저씨는 “그때 짐을 찾아가라는 연락을 듣지 못하고 나중에 알아서 소중했던 ‘사진앨범’, 그동안 수집했던 ‘옛날지폐’가 모두 없어졌다”고 말했다. 철거는 사람들의 ‘추억’을 빼앗기도 한다. 그 아저씨는 어린 시절의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그때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촛불미디어센터에서 운영하는 촛불방송국의 김준호 PD. 그가 카메라를 들고 찾아왔다. 이제 촛불미디어센터 방송팀의 본격적인 취재가 진행되는 것일까?

용산참사 현장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이제는 서울역 광장에서 열리는 ‘용산참사 100일 범국민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가야 할 시간이 왔다. 그러나 경찰은 인도를 내어주지 않았다. 옆에서 들어보니 경찰은 “만장을 내려놓고 삼삼오오 가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만장을 들고 가면 그것은 집회라는 논리였다. 집회에 그런 규정도 있나? 옆에서는 말싸움이 벌어졌다. 보내달라던 한 인권활동가에게 경찰이 “너 꼭 검거한다”, “얼굴 기억한다”고 말한 것.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만으로 위험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미신고(미허가) 집회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검거하겠다는 말에는 오만함이 실려 있었다.

경찰의 막무가내로 인해 결국 유가족들은 만장을 포기하기로 했고 그제야 경찰은 ‘인도’를 열어주었다. 이제 가나보다 했더니 조금가다 경찰은 이제 인도까지 막아섰다. 왜 가지 못하게 하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경찰은 “이제부터는 지하철 타고 가세요”란다. 어이가 없었다. 통행권은 엄연한 시민들의 권리이거늘.

추모제 참석을 위해 이동하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나와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에게 인도로 가겠다고 약속했으니 다시 인도로 올라가자”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10~20m정도 차도를 이용하던 사람들은 다시 인도로 올라왔다. 딱 인도를 막아섰던 경찰만을 제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에는 인도를 막아서는 동시에 차도로도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 유가족 한 분이 인도를 터달라며 차도에 앉아있었지만 경찰은 차에 치이라는 듯 그냥 두었다ⓒ나난  
 
그러나 차도에는 경찰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유가족 두 사람이 남아 있었고, 경찰은 인도로 가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그 두 사람을 인도로 올라가라고 했다. 그러나 인도를 열어주겠다던 경찰은 요지부동. 유가족들이 “인도 열어준다고 약속했잖아요?”라고 따져 물었지만 경찰은 “대답하지 말고 채증해!”라고만 말한다. 경찰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어도 이들의 대답은 “잘 모르겠습니다”였다. 그러다 한 경찰이 “피켓을 든 것은 집회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말을 뱉어 놓는다. 이에 참가자들이 “우리가 뭐만 하면 집시법 위반이라고 하는데 집시법 어디에 나와있느냐?”라고 물었고, 그 경찰은 “집시법에는 없지만…”이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막혀 있는 내내 경찰은 “체증해”, “체포해”, “경고했습니다”라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람들은 결국 지하철을 이용해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용산참사 유가족들에게는 인도를 맘껏 걸어갈 권리도 허용되지 못하는 것일까?

김준호 감독, “기본대로, 당연한 것이기에 당연해 보이도록 찍는다”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참사 100일 범국민 추모제’가 시작됐다. 시청광장에서 진행하려고 했으나 경찰이 전경차로 막아서는 바람에 서울역으로 급하게 장소가 바뀌었던 것이다.

이날 추모제는 불교, 기독교, 원불교, 천주교 4대 종단에서 각각 추모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마련됐다. 불교의 천도의식은 ‘아미타불’까지밖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공명한 목탁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고, 개신교 목사의 “기도합시다”라는 기독교의 추모의식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으로 끝이 났다. 이어 원불교와 천주교의 추모의식도 모두 끝났다. 사회자는 추모의식에 앞서 “서로 종교가 다를 수도 있고, 무교일수도 있지만 추모의 마음을 모으자는 의미를 가지자”고 했다. 그곳에 모인 참가자들은 모두 ‘촛불’을 높이 들어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간절히 빌었다.

   
  ▲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된 용산참사 100일 범국민 추모제의 모습ⓒ나난  
 
문정현 신부는 추모미사를 마치고 “신부인 저는 할 것이 없어서 한 달동안 용산참사 현장에서 미사를 했습니다”라며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춤을 잘추는 사람은 춤으로, 무엇이든 각자가 하실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용산으로 오셔서 유가족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밤 9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촛불미디어센터에서 진행한다던 스튜디오 촬영. 서울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추모제가 시작할 무렵 서울역 광장에서 나눈 김준호 PD와의 대화로 인해 더 이상은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김준호 PD : 저는 이제 ‘길’ 시사회가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나 : 네.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용산관련 영상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요?
김준호 PD : 기본대로 찍는 거죠. 싸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해 보이도록 찍으면 돼요.
나 : 그렇다면 오늘 찍으신 영상은 언제 완성된 화면으로 볼 수 있는지?
김준호 PD : 아마도 안만들 것 같은데요.
나 : 예?
김준호 PD : 오늘은 용산참사 100일이라 많은 매체에서 취재를 나오고 영상을 찍고 해서 저희들이 굳이 만들지 않더라도 될 것 같아요. 촛불미디어센터에서 연대하는 곳에서는 여전히 생중계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게 김준호 PD는 서울역 광장을 떠났다. 생각해보니 각 언론매체에서 용산참사를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화했다면 촛불미디어센터는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갈 길도 정해졌다. “그래, 결심했어. 다시 촛불미디어센터로 가서 아시아 미디어활동가들을 만나는 거야.”

   
  ▲ 촛불미디어센터에서 아시아 미디어활동가들과 스튜디오 촬영을 하는 모습. 오른쪽에서 세번째 앉은 사람이 에일리 압둘라이다ⓒ나난  
 
9시 20분경에 용산 촛불미디어센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벌써 필리핀, 방글라데시, 호주, 태국, 일본에서 온 미디어활동가들이 도착해 분향소를 들른 상황이었다. 이들은 한국노동네트워크 주최 ‘2009 아시아 노동미디어’ 참석차 한국을 들렀다 용산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용산참사 영상을 본 한 활동가는 “그런데 왜 경찰들이 저렇게 막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져, 대답을 해줘야 하는 우리나라 미디어활동가가 순간 당황하기도 했다. 한국사회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탓이다.

그곳에서 만난 에일린 압둘라 미디어활동가의 얘기는 흥미로웠다. 그는 “필리핀에서 역시 강제철거가 이뤄지고 있고 도시보다는 지역이 더 심각하지만, (용산참사) 영상에서 불이 나고 사람들이 죽고 하는 것을 보니 한국이 더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용산참사로 인해 고인이 되신 분들의 조의를 빈다”며 “사회정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함께 싸웠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 “필리핀 정부의 재개발로 인해 쫓겨난 사람들의 많은 수가 이주노동자로 일본 한국 등으로 오고 있으나 이들 역시 불법체류자로 강제출국 위협에 놓여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본 미디어활동가들은 “메이데이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용산 참사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재개발문제도 노동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므로 함께 싸워야 할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호주 미디어 활동가는 “불의에 맞서 싸우다 희생이 있었지만,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없다”며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용산참사 100일. 촛불미디어센터는 밤늦게까지 카메라를 돌려야만 했다.

다른 매체에서 모두 전하는 것을 같이 전하는 것이 아니라 알려져야 할 것들에 대해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촛불미디어센터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촛불미디어센터가 그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미디어활동가들과의 연대 때문이었다. 방송에 쓸 영상의 많은 부분을 활동가들로부터 받는다고 했다. 김준호 PD는 서울역 광장에서 헤어지기 전에 “오늘은 영상보다는 사진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사진 찍은 거 괜찮으시면 보내주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영광이지요.”

용산 100일이던 4월29일, 김준호 감독이 연출한 독립 다큐멘터리 <길>이 개봉을 앞두고 인디스페이스에서 시사회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길>은 미군기지확장 이전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투쟁을 담은 영화로 5월14일 정식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촛불미디어센터 방송국에서는 유능한 감독을 PD로 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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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8 14:03 2009/05/0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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