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을 잡았다

꼬뮨 현장에서 2009/10/20 02:47

안녕.

용산참사 현장은 정말 하루도 사건, 사고가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는 것 같아.

 

오늘은 특별히 더 추워진 날씨에 낮부터 레아 앞에서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종교인들의 세계행진 행사가 열렸어.

국가폭력의 잔인한 실상을 만천하에 드러낸 용산참사 현장에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기도와 함성이 울려퍼졌단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평화활동가들이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온다기에 나도 반가운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했던 거야.

사실, 생명평화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나 비폭력을 부르짖는 사람들 가운데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벌어지는 극악한 폭력과 그런 폭력이 가능해지는 사회적 구조 그리고 그런 억압적인 구조에 의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고리타분하고 관념적인 생명이니 평화니 부르짖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불만이 많던 참이었어.

평화활동가란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한다는 주제가 과연 2009년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그래서 가장 고통받는 평화와 무슨 연관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말야.

무릇 생명평화운동을 한다는 사람이면 약자의 고통에 가장 민감해야 할텐데, 입으로는 그렇다고 하면서 실천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실망스러운 경우를 나는 많이 봤거든.

 

평화가 그렇게 복잡하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인가?

적어도 나에겐 그렇지 않아.

폭력이라는 본성을 남김없이 까발리는 야만적 국가체제의 진상을 매일 경험하는 용산참사 현장 같은 곳에서부터 일궈내지 않는 평화라면 난 그게 거짓처럼 느껴지는 거야.

이번에도 역시 누구의 평화냐고 난 묻고 싶은거야.

누구의 평화냐?

누구를 위한 평화냐?

권력자, 가진자들은 항상 그리고 지금도  평화로울테니까 말야.

 

그런 마음으로 용산 현장에 온 평화활동가들을 나름 소중히 맞이한 것이지.

발언과 노래와 고백이 이어졌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퍼포먼스'로 마무리 되었어.

최헌국 목사님이 찍어준 사진을 올려볼까?

 

 

가장 힘든 곳에서 언제든 고통스럽게 버티는 평화야, 박기범의 말처럼, 힘내.

내가 언제나 함께 할께.

 

이 행사가 끝나고는 행동하는 텃밭 인터뷰도 했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온 학생들이 용산에 관한 다큐를 만들고 있나봐.

텃밭에 대해 묻길레, 한동안 장황하게, 몇 가지 이념과 몇 가지 의미와 몇 가지 신념들에다가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좀 버무리고, 나의 아쉬움도 좀 양념으로 첨가해서 설명을 해주었어.

 

그러고 있는데, 서울시청 앞 집회에 간 사람들이 경찰로부터 불법 감금을 당하고 있다는 연락이 속속 날아오기 시작하는거야.

합법적으로 허가가 된 집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대문 경찰서 경찰들이 2시간 30분동안 유가족을 고립시켜놓고 풀어주지 않았다네.

그래서 또 철거민, 활동가들이 남대문서로 항의방문을 갔지.

나는 레아 카페에서 인터넷 생중계를 보면서 일을 하고 있었어.

라디오 준비도 하고, 응원도 보내면서 말야.

마침내 그 추운 날씨 속에서 항의방문을 간 사람들이 레아로 돌아오고 밤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하고 있는데, 또 소란스러운 일이 발생을 한 거야.

 

용산4구역에서 용역의 행동대장쯤 되는 **건설의 상무라는 작자가 우리 미사랑 행사 때 사용하는 스피커와 전등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데.

그래서 우리가 쫓아나가서 경찰에게 항의하고, 신고를 해서, 겨우겨우 그 깡패 같은 놈을 용산경찰서로 보냈어.

그 용역깡패는 지난 5월과 6월 철거작업이 한창일 때 우리 식구들에게 곡괭이를 휘두르고 된장찌개를 끓이는 뚝배기를 휘둘러 전치 6개월의 중상을 입히는 폭행을 가하고도 경찰의 묵인하에 당당하게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이 지역을 활보하고 다니던 자야.

그러니 그 작자를 향해 철거민과 유가족들이 쌓인 분노가 얼마나 컸겠니.

그리고 그 용역을 비호하는 경찰에 대해서도 얼마나 화가 나고 원통했겠니.

우리는 혹시나 경찰들이 몰래 용역을 풀어주지나 않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생각으로 용산경찰서까지 쫓아간거야.

그랬더니 역시나 경찰은 그 용역을 싸고돌더만.

하여간 몇 시간 동안 항의를 하고 고함을 지르고 해서 마침내 그 깡패가 경찰에 의해 형사사건 피의자로 차에 태워질 때 우리는 오랜만에 환호를 하기도 했어.

 

그 철거용역이 경찰서로 끌려갔다고 해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란다.

공무원과 경찰과 용역과 재개발조합과 시공사의 검은 커넥션은 너도 잘 알고 있을거야.

재개발로 얻어지는 그 막대한 수익 -- 그 돈이 과연 어디서 나왔겠니? 자연에 대한 수탈, 중하층 시민들에 대한 착취로부터 나왔겠지 -- 을 나눠 먹는 그 더러운 오각동맹은 용산 현장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  

대부분의 재개발 현장이 그런 모습이지.

내가 사는 지역도 마찬가지고.

그런 살인적인 재개발, 생태계를 망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는 재개발을 우리가 막을 수 있을까?

막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그렇게 보내는 현실은 참 암울하고 미래는 더욱 암담해.

나, 언제부터인가 너무나 비관적이 돼버린 것 같아.

 

슬프다.

그래도 힘을 낼께.

건강,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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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0 02:47 2009/10/20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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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풀 2009/10/20 09:06 Modify/Delete Reply

    힘내세요 곱하기 무한대~~~

  2. 디디 2009/10/20 10:10 Modify/Delete Reply

    추워져서, 마음이 아프다. 너무 많이 슬프지는 마 돕.

  3. kkamaki 2009/11/25 13:57 Modify/Delete Reply

    같이 있고 싶어도 숨어서 끆끆 거리는 사람도 있어요.
    미안합니다. 잘 지내라고 숨어서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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