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세상

나의 화분 2010/10/14 16:41

날씨가 추워졌다.

어느곳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두리반 같은 철거농성장에서는 실제 온도와는 별개로 체감온도는 더 낮다.

 

얼마전 두리반에 연탄이 들어왔다.

유채림 선생이 연탄난로를 구한다기에 내가 대신 연탄난로를 알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연탄난로 종류도 별로 다양하지 않았고, 가격대 역시 그리 낮은 것 같지 않았다.

동네를 찾아보기로 했다.

철물점들을 돌아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마치 선거기간에 후보자들이 바닥을 훑으면서 유세를 하듯 은평구와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를 훑으면서 연탄난로를 찾아다녔다.

파는 곳이 별로 없었다.

한 주인은,

 

"요즘 누가 연탄난로를 때요?" 란다.

 

그렇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연탄난로를 때겠는가.

더군다나 서울 같은 도시에서 말이다.

전기가 끊어진 철거농성장이 아니면 잘 보기 힘든 풍경이다.

용산 레아에서는 도시가스관을 연결해 가스난로를 사용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가스난로들은 어데로 갔는지 궁금하다.

 

두리반은 전기난로도, 전열기도, 전기장판도, 전기보일러도, 전기주전자도 아무것도 없다.

추운 겨울을 이제 연탄난로 하나에 의지해 나아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커다란 철물점에서 연탄난로를 팔았다.

주인 아저씨가 좋아보였다.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인터넷 배송시 난로 안에 든 황토관이 깨질 염려가 있는데, 가까워서 좋았다.

 

요즘은 거의 매일 두리반 텃밭에 간다.

하루 중 가장 보람있는 순간이, 일 마치고 밤에 두리반 텃밭 가서 흙살림표 천연비료와 제초제를 넣고 섞은 비료물을 배추, 얼갈이, 열무, 시금치, 쑥갓 등에 뿌려줄 때다.

뭔가 뿌듯하고, 농민이 된 기분이다.

식물들과 대화도 한다.

텃밭을 점점 넓히고 있다.

우리의 공유지가 늘어난다.

여기에 또 보리를 심어볼 궁리를 하고 있다.

 

자전거를 또 하나 샀다.

이번엔 RCT 2.4라는 모델이다.

무엇보다 가볍고, 예쁘다.

변속기도 없고, 바퀴도 얇고, 불혼바라서 여러모로 볼 때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편하겠지만 나에겐 딱이다.

앞이빨이 50T, 뒷이빨이 14T인데 높은 언덕을 올라갈 때도 약간 힘이 들 뿐 그리 어렵지 않다.

나도 자전거 종류별로 타고 다닐 수 있게 됐다.

하이브리드도 있고, 로드바이크도 있고, 엠티비도 있고, 이제 싱글기어도 생긴 셈이다.

사치다, 사치.

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 친구를 꺼내들고 도로를 달릴 때면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제는 하늘색 RCT 2.4 자전거를 타고 기륭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다시 단식을 시작한다고 했다.

세번째 단식, 이번에도 역시 목숨을 건 단식이 시작된다.

농성을 시작한지 1871일째.

그리고 정문 옥상에 올라가 천막농성을 벌인지 60일째.

원직복직 하는 것이 이리도 힘든가.

하루 일을 마치고 회사 문을 나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피곤한 몸을 누이고 기분 좋은 잠을 푹 잔 뒤 다시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그토록 불가능한 꿈인가.

추워져서인지 노래가 잘 됐고, 쏭이 만든 회전초밥식음기를 불렀더니 다들 좋아하셨다.

잘 먹어야 농성도 잘 하는 법인데, 가사로나마 맛있는 회 드시라고 불렀더니 입맛을 다시는 분도 있다.

내 힛트곡 기타와 자전거도 부르고, 호보도 부르고, 이주노동자의 노래도 부르고, 평화가 무엇이냐도 불렀더니 앵콜이 쏟아졌다.

희망을 노래하라를 불렀더니 또 앵콜이다.

태어나 두 번 앵콜을 받긴 처음이다.

아마 희소가치가 있을 것이다.

두리반에선 매일같이 노래를 하지만, 기륭에서 노래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지 않은가.

반갑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활동가 친구에게를 불렀다.

이 가사에 공감하는 활동가들이 기륭 농성장에는 많았다.

노래 중간중간에 서로 니 얘기라면서 콕콕 찌르기도 하고, 웃고 그러시더라.

국경도 없고, 빈부차도 없는 혁명의 그날이 어서 빨리 오길 바랬다.

김소연 분회장, 유흥희 조합원과 천막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빨리 복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나는 또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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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4 16:41 2010/10/1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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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니나 2010/10/14 20:23 Modify/Delete Reply

    밀과 보리가 자라는 두리반~
    난 오늘 사무실 옆 텃밭에 무를 엄청 솎았어. 무싹들이 지들끼리 얽혀서 바로 자라지 못할 지경....ㅠㅠ

  2. golfgti 2010/10/15 13:02 Modify/Delete Reply

    사이클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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