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라트리를 경험하다

떠남과 돌아옴 2010/02/12 22:45

오늘은 포카라 시내에서 시바라트리(Shivaratri) 축제가 열렸어.

시바라트리는 시바신을 기리는, 힌두교에서는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가봐.

시기적으로 보면 추운 겨울을 보내고, 다가오는 따스한 봄날을 맞이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네. 

 

 

어떤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포카라에 있는 가장 큰 힌두 사원인 빈다바시니 사원에 가면 시바라트리 축제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 살아있는 동물을 두르가 여신 등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목을 치는 쇼킹한 장면도 볼 수 있을 것이라 하여서 나는 1시간 쯤을 걸어서 그 사원까지 갔었던 거야.

물론 살아 있는 동물의 목을 치는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이른 아침부터 사원에 나와 간단한 의식이라도 치르고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새삼 종교가 얼마나 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것 같더라.

매일 뿌자 예배를 드리는 힌두교도들에게 시바라트리는 엄숙한 종교 행사만은 아닌 것 같았어.

일단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보이고, 기대에 넘쳐 보이는 것이 다들 종교적 의식보다는 광란적인 길거리 축제를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어.

 

시바라트리가 무엇이냐고 네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긴 막대기를 바닥에 내려치는 시늉을 해보이더라.

나는 처음에 그게 살아 있는 동물의 목을 치는 시늉인 줄로 알아듣고 식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어.

하여튼 시늉을 보이면서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어.

그래서 포카라 시내 곳곳을 샅샅이 둘러보기로 마음 먹었어.

매우 종교적인 것 같은 이들에게 길거리 축제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거든.

일탈의 장일까, 해방의 공간일까, 광란의 도가니일까, 아니면 숙연한 반성의 시간일까.

 

사랑코트에서 내려와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어.

오후가 되자 비가 점점 그치고 날씨가 개였거든.

물가가 비싼 포카라인데, 우연히 친해진 티벳 음식점 주인 아저씨에게 현지인 가격으로 자전거를 싸게 빌리는 곳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바로 옆 가게를 알려주는데, 하루에 60루피만 내고 제법 괜찮은 자전거를 빌려 가라는 거야.  

참고로, 이곳에서 괜찮은 자전거의 기준이 뭔지 아니?

바로 브레이크가 잘 듣느냐 안듣느냐야.

일단 튼튼하고, 잘 굴러가고, 브레이크만 잘 들으면 시내를 며칠 쏘다닐 자전거로서는 더이상 바랄 것이 뭐가 있겠어.

게다가 나를 믿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여행자들을 믿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증금으로 돈을 따로 묻어둘 필요도 없다는 거야. 

그냥 이틀치 120루피를 내고 자전거를 맘껏 쓰다가 다음날 여섯시에 갖고 오면 된다는 것이었어.

그래서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포카라 구석구석을 다닐 수 있었단다.

 

그러면서 본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탕수수 한 줄기씩을 사들고 집에 가는 모습이었어.

장이 서있는 곳곳마다 상인들은 사탕수수를 수북하게 쌓아두고 팔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사탕수수를 하나씩 사고 있었던 거야.

가격을 물어보니 2미터가 넘는 긴 사탕수수 한 줄기에 50루피 정도라고 하네.

나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사탕수수를 저마다 하나씩 사가지고 집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어.

 

자전거를 몰고 길도 잘 닦이지 않은 골목길을 배회하다가 비포장 도로가 나왔어.

나는 혹시 자전거 바퀴에 빵꾸가 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는데, 왜냐하면 빵꾸패치도 없으니 스스로 때울 수도 없고, 근처에 자전거포도 없어서 비포장 자갈길에서 행여 튜브가 터지지 않을까 불안했던 거야.

돌아갈까, 하다가 아이들이 사탕수수를 잘라서 입에 물고 있는 것이 보였어.

달짝지근해 보였지.

아, 한국 부근에서는 사람들이 대보름에 부럼을 먹는데 이쪽 동네에서는 시바라트리 축제에서 사람들이 사탕수수를 깨물어 그 달짝지근한 맛을 즐기나보다고 멋대로 추측하고 말았어.

그러면서 후줄근한 동네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려는데, 그만, 아이들이 대여섯명씩 길 양쪽에 늘어서서는 긴 줄로 길을 막아버린 거야.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렸어.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중 영어를 곧잘 하는 아이 하나가 나오더니 시바라트리 축제 기간이니 통행료를 내라는 거야.

뭥미???

나는 황당했지만 짐짓 모른 척 하고 시바라트리가 뭐냐, 난 그런 것 모른다, 어서 날 통과시켜다오 말했거든.

아이들은 외국인인 내게 시바라트리 축제를 설명하고자 무척 노력하는 것 같았어.

사탕수수를 든 아이들과 그냥 빈 손인 아이들이 저마다 길바닥에 긴 막대를 내려치는 포즈를 연속해서 취하면서 네팔의 가장 큰 시바라트리에서는 통행료를 내야 한다고 재잘대는 거야.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어른 한 명이 아이들에게 이제 장난은 그만 치고 어서 저 사람을 통과시키라고 소리를 냅다 지르니까 그 아이들은 또 어느새 잡고 있던 줄을 놓고 나보고 통과하라고 하네.

 

또 한 십분 정도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데, 다시 한 무리의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길을 막더니 나보고 시바라트리라면서 통행세를 내라고 하는 거야.

이번엔 나도 지지 않고, 나 역시 시바라트리 축제를 위해 이곳에 왔으며, 지금은 빈다바시니 사원에 가는 길이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었어.

사원에 간다고 하니까, 그리고 그 이름을 정확히 말을 하니까 아이들은 금방 나를 보내주더라.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는데, 시내 곳곳에는 불을 피울 땔나무들이 곳간에 장작 쌓아두듯 쌓여 있는 모습이 보였어.

레이크 사이드로 돌아왔는데도 역시 그곳에도 장작이 쌓여 있더라.

곧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사람들은 그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어.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자 마침내 각자 하나씩 갖고 있던 사탕수수를 그 장작불 속에 찔러 넣기 시작하는 거야.

곧 이어 이곳저곳에서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라.

중국 춘절에 터지는 폭약 소리 같기도 하고, 옛날 길거리에서 시위를 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난 파란색 페퍼포그가 지랄탄을 쏠 때 나던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우습게 터지는 소리가 나는가 하면 어떤 소리는 심장을 찢어놓듯 우람하게 들리기도 하는 것이야.

온 천지가 폭탄이 터지는 소리들로 파묻히기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불에 달군 사탕수수를 꺼내 땅바닥에 있는 힘껏 내려 치면 그렇게 펑펑 하는 커다란 폭발음이 나는 것이더구나.

그것이 재미 있어서 사람들은 50루피를 내고 또 사탕수수를 사서 장작불에 넣어 달구고 기다렸다가 있는 힘껏 땅바닥에 패대기를 쳐서 펑펑 소리를 연신 내고 있어.

처음엔 터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는데, 이제는 귀도 안멍멍하고 적응이 되는지, 소리가 작은 사람에게는 다시 해보라는 응원을, 엄청 큰 소리를 내는 사람에게는 엄지 손가락을 내밀 여유도 생기더라.

흥겨웠어.

 

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고통도, 외로움도, 슬픔도 없이 사탕수수 막대기를 터뜨리고, 남은 막대를 씹어 먹으며 입안 깊숙이 젖어오는 설탕의 달콤함만을 느낄 수 있을까.

달콤함만을?

 

포카라에서 내가 이틀 동안 타고 다닌 자전거

이 자전거를 타고 포카라 시내를 이틀 동안 쏘다녔다. 사진을 찍은 곳은 안나푸르나 지역 박물관.

 

시바라트리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훨훨 타오는 장작불을 둘러 싸고 사람들은 저마다 소원을 빈다. 

 

저마다 사탕수수를 불 안에 찔러놓고 적당히 가열되기를 기다린다. 불은 무척 뜨겁다.

 

적당히 가열된 사탕수수를 바닥에 힘껏 내려치면 펑하는 커다란 폭죽음이 나며 가열된 부분이 터진다. 

 

터뜨리고 남은 사탕수수는 그냥 씹어서 단물을 빨아먹으면 된다. 물론 단물이 빠지고 남은 뻣뻣한 부분은 다들 바닥에 버린다.  

 

장작불 한 켠에선 사탕수수를 무더기째 쌓아두고 팔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10/02/12 22:45 2010/02/12 22:45
tags :
Trackback 1 : Comment 1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dopehead/trackback/810

  1. Tracked from 2010/03/08 10:56 DELETE

    Subject: 조약골 네팔

    돕님의 [시바라트리를 경험하다] 에 관련된 글.
  1. 비밀방문자 2010/03/03 00:46 Modify/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