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토가 쓴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70건

  1. 오욕의 세계사 2004/04/30
  2. 우리나라 만세 2003/10/10
  3. 광기의 자존심 2003/04/07
  4. AM 06 : 30 2002/09/03
  5. 방문 2002/07/29
  6. 2002/07/08
  7. Logical Affairs 2002/05/17
  8. 짧은 사랑 2002/03/22
  9. 황사 2002/03/22
  10. 유혈극 [혈녀] 2002/02/12

오욕의 세계사

from 2004/04/30 22:23

고환을 씹어먹는 더티 메리

1864년 런던의 검뎅투성이 골목에서, 그녀가 평등하게 골고루 사랑을 나눠주었고, 또 보살펴왔던 15명의 고환 없는 남자들에 둘러싸여 24세의 젊은 나이로 죽기 전까지 더티 메리에게 함부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악행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죽은 것은 오히려 그녀의 아버지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 10배의 힘을 가졌지만, 하나뿐이어서 여러 가지 불편함과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게 만든 자신의 팔에 대해 비뚤어진 자부심과 자괴감을 평생 지니고 살았다. 여느 가정에서나 흔히 볼 수 있듯, 그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은, 툭하면 기침이나 해대고 갈수록 야위어 가는 부인을 죽도록 팬 뒤에 나무토막같이 굳은 그녀의 몸에 성기를 쑤셔대다가 술기운에 지쳐 잠들곤 했다. 그런 와중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어머니의 몸에서, 냄비 바닥에 말라붙은 국물 한 방울까지 박박 긁어내듯 가능한 모든 기운을 빨아들여 4Kg의 거구로 더티 메리가 태어났을 때 당연하게도 그녀의 어머니는 남은 피를 모두 쏟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부인을 사랑했었는지 깨달았고, 자신의 사랑을 산산조각 낸 더티 메리가 얼마나 끔찍이 먹어대고 빽빽대는 악마인가도 동시에 깨달았다. 더티 메리는 아버지의 속옷쪼가리나 빨아먹으면서 자랐는데도 남들보다 2배는 성장이 빨랐다.
7살이 되던 때 <뒷골목의 개장수들>을 만든 그녀는 동네 꼬마악당들을 모아 하수구나 시궁창 주변에 사는 착한 눈의 겁먹은 개들을 구석진 곳에 몰아넣고 개를 사는 어른들과 당차게 협상을 하여 모든 아이들에게 1펜스씩이 돌아가도록 수입을 올리곤 했다. 물론 1펜스씩 돌리고 남는 돈은 그녀가 잘 보관했다. 그녀의 천재성이 개장사로 시작해 개장사로 발현되는데 그쳤다는 점이 그녀의 신비감을 반감시킬 만큼 대단한 문젯거리는 아니다.

12살에 이미 몸도 정신도 성숙할 만큼 성숙한 그녀는 아버지와 잠을 자기 시작했고,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맞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차츰차츰 기분이 더 나빠진 것이었다. 18살이 되던 해 그녀는 아버지보다 더 힘이 센 팔과 경제력과 거대한 개시장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와 잠자리를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아버지를 그저 증오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쓸모 없는 인간에 대한 측은함 때문에 그녀는 그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고환을 씹어 먹는 더티 메리라는 별명이 그녀를 잔인한 여자로 느끼게 할지도 모르나, 사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을 적당히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녀 주변에는 항상 그녀를 추종하는 다른 남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녀의 외모가 일반적인 기준의 매력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꾸지 않은 탓에, 특히 그녀의 피부는 이미 15세에 30대 중반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늘 어두침침하기만 한 런던의 하늘도 거리를 활보하고 돌아다니는 동안 자외선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주지는 못해서 주근깨와 기미와 깊은 주름이 그녀의 얼굴을 산만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웃을 때면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것처럼 검은 이들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 주변의 남자들의 그녀의 사업능력과 돈만을 바라보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눈은 어둠 속에서 보면 엄청난 깊이를 느끼게 해서, 사람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어쨌든 그녀가 고환먹는 더티 메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 바로 그 18세 때이며, 첫 번째로 그녀가 먹은 고환은 다들 아시다시피 그녀 아버지의 것이었다. 그녀는 합리적으로 생각했고, 아버지를 죽일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옆방에 의사를 불러놓고 그 일을 진행했다. 대낮에 살며시 들어가서는 아버지를 유혹해서 아랫도리를 벗게 만들고 성기를 애무해 주다가 전날 밤 숯돌에 날이 잘 서도록 갈아서 가슴 사이에 꽂아두었던 날이 접히는 단도를 꺼내어 아주 작은 '철컥' 소리도 내지 않고 편 다음 단숨에 잘라 버렸다. 의사에 말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집이 무너지도록 큰 소리로 마치 황소처럼 울부짖었다고 한다. 피가 순간적으로 분수처럼 솟아서 얼굴은 온통 뜨끈한 피범벅이었지만,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옆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대충 수건으로 얼굴을 씻은 다음 성기와 함께 잘린 고환을 매운 고추와 함께 요리해 먹고 성기는 개들에게 주어버렸다.

그 뒤로 그녀는 손수 흰색 벽의 문이 많고 큰집을 지었고 아버지와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더티 메리가 죽기 전 까지 6년 동안 그 집에서 살거나 혹은 잠시 지내다 간 사람들은 대충 세어도 100여명은 넘었다고 하며 그 사이에 그녀는 마음에 드는 남자 15명의 고환을 잘라서 요리해 먹었다.
그녀의 죽음은 비열한 배신의 결과였다. 이른 새벽 여느 때처럼 개시장으로 가던 더티 메리를 호위하던 고환없는 15명의 남자들이 그녀에게 15개의 칼침을 놓았던 것이다.

여기 적힌 내용은 그녀의 집에 잠시 머물렀던(아마도 일시적인 방탕 때문에) christopher Mann이라는 작가가 소설의 소재로 삼기 위해 메모해 두었던 노트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결국 작가로 유명해지지는 않았지만, 후에 출판사를 차릴 수 있었던 그는 노트의 내용을 소설처럼 발표했었고 그 책이 우연히 한 헌책방을 통해 내 책꽂이에 꽂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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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30 22:23 2004/04/30 22:23

우리나라 만세

from 2003/10/10 13:43
한 아이가 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리고 작고 힘없고 그래도 어른처럼 대접받고 싶어하는 평범한 아이다.
이 아이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게다가 가족이 함께 사는 집도 있다.
그리고 옆집도 있다.
아이는 또래 친구인 옆집 아이와 친하고 싶었다.
집도 가깝고, 얼굴만 봐도 괜스레 친근감도 느껴지고 그랬다.

그런데,
아이의 아버지는 옆집 이야기만 꺼내도 아이를 마구 패대기 친다.
따귀도 때리고 밟고 심할때는 목도 졸라서 아이는 몇번을 까무라쳤다.
옆집 아저씨는 '개새끼'고 아줌마는 '미친년'이란다.
옆집 아저씨는 옆집 아이를 맨날 굶긴단다.
옆집 아이는 그런 부모밑에서 자라서 미친개같은 새끼란다.
곁에 가지도 말고 말도 걸지 말고 모른척 하란다. 아예 죽도록 미워하란다.

지난 가을에는 아이네 집 뜰에 있는 감나무가 감을 주렁주렁 매달았더랬다.
담밖으로 튀어나간 감을 누군가 따려다가 감나무 가지를 크게 꺾어놓은 것을 본
아이의 아버지는 옆집 아이가 얼마나 악마적인 성격의 소유자인지
아이와 아이의 집안에 얼마나 적대적인 존재이며
그 아이의 아버지가 얼마나 극악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의 귀가 멍해지도록 며칠 동안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아이가 무서웠던 것은,
아버지가, 옆집 아이의 그 악날한 소행과 자신을 연루시키는 것이었다.
툭하면 때리고 소리지르는 아버지가 지겨워서 어쩌다 대들라치면
아버지는 아이가 옆집 아이와 만나서 나쁜 것만 배운 것이 틀림없다고
옆집 아이가 무슨 짓을 시켰냐고 다그치고 괴롭히고
결국은 매질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가끔 옆집 아저씨를 만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술도 얻어먹고 오고 그런 날은 옆집 아이에게 과자도 한개씩 사주는 것 같았다.

동네에는 아이보다 훨씬 크고 힘도 센 아이도 있었다.
아버지는 힘센 아이의 아버지가 돈도 많고 교육도 많이 받았으니
힘센 아이하고만 놀라고 했다.

아이는 힘센 아이가 잘난 척 하는 것도 보기 싫고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것도 싫었다.

아이도 어른이 된다.
어른에게 아이가 생기고 동네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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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10 13:43 2003/10/10 13:43

광기의 자존심

from 2003/04/07 15:35
눈은 투명한 꿈으로 막히고
귀는 찢어질 듯 굉음으로 막히고
입은 토할 것처럼 욕정으로 가득 막힌
광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내 구멍의 바닥의 바닥의 바닥에서
간신히 피와 살과 증오로 연명하며
단단한 쇠꼬챙이가 되어가다가

이성이
광기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보이지 않는 깊은 곳까지
무겁게 가라앉았던
족쇄의 추를 공중으로 날리면서

이성의 순차성과 지구력에
비웃음조차 건네지 않고
뛰어올라보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볼 수 없고
목구멍에서는 곧 죽을 사람의 목에서나 나올 듯한
들리지않는 흐느낌,
귓속으로 파고드는 극단의 차가운 빛...

잠깐 동안의 초라한 등장만으로
죽음과 같은 잠에게 돌아가고 싶은 초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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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07 15:35 2003/04/07 15:35

AM 06 : 30

from 2002/09/03 18:48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있다
사랑받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붉고 가늘고 짧아보이는 대롱의
작고 시커먼 구멍으로
한 쪽 눈을 가져다 대면 온 몸이 스윽-
아무리 깊숙히 들어가도
간질간질하고 부드럽고 현기증나는

아, 이것이 바로 그
Basic Instinct.

100% 식욕을 자극하는 눈빛과
어깨뼈에 닿는 단단한 앞니의 굶주림,
부드럽게 침을 발라
잘근잘근 씹는대도

내 뜨겁고 빨간 위장에 뚫린 구멍은
소용돌이처럼 빨아들이고 또 빨아들여

몸 전체가 작은 소용돌이가 되어서
밤이 지나고
하늘과 구름이 섞이는 시간인데도
나는 아직도 잠이 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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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3 18:48 2002/09/03 18:48

방문

from 2002/07/29 19:29
아침에 일어나니 온 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하고 생각했지만
이미 무겁고 깊은, 땅속같은 잠은 어디론가 가라앉아버렸고
기분나쁘게 둔중한 느낌이 머리를 중심으로 온 몸에 남아있었다.
게다가 목 안에는 가는 쇠가루가 뭉쳐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침을 삼켜도 쇠가루 뭉치같은 그 느낌은 개운하게 넘어가지 않고
끈적한 가래만 조금씩 올라올 뿐이었다.
너무 더웠다.

어제 너무 고생을 한 덕분이다.
지하3층과 옥상에서 벌어진 2개의 행사를 번갈아 가며 치뤄야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다.
위아래로 몇번을 왔다갔다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일요일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도 고치러 오는 사람이 없다.
행사에 온 사람들은 좀 투덜대긴 했지만 또 뭐 엘리베이터를 고치게 할 만큼 분노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한번씩만 오가면 되는 거니까.

밖에 나가 점심을 사먹고 집에 들어오니 다시 잠이 올 듯했지만
지독한 더위에 잡념이 합세해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선잠이 든 상태로 누워있었다.
이렇게 남의 일을 뒤치닥꺼리나 해주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번 달 월급을 받아서 일단 자금을 투자하면
쉽게 돈을 벌만한 장사가 떠오른 것이다.
조금씩 생각을 구체화 시켜가면서 이생각 저생각 하던 중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 주인은 자주 벨을 누르지 않고 문을 두드리곤 해서
집 주인인 줄 알고 생각보다 무겁게 감긴 눈을 비벼대며
문에 다가가 의례적으로 '누구세요?'하고 물었다.
바깥에선 집주인 혼자가 아니거나 혹은 아예 집주인이 아닌듯 두세명의 목소리가 소곤대고 있었다.
'지나가던 노인네인데 계단에서 넘어졌어. 잠시 좀 들어가서 물좀 얻어먹으면 안될까?'
이거야 원, 안봐도 비디오였다.
분명 방문판매이거나 선교하러 다니는 신자일 것이다.
'지금 바빠요. 다른 집에 가봐요.'하는 순간 우리집 문이 살그머니 열렸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문을 잠그지 않았던 것이다.
'에이, 뭐 잠자던 모양인데, 물이나 한잔 줘.'
산발이 된 머리를 본 할머니가 황당하고 졸린 내 눈길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물을 요구했다.
비쩍마르고 골골이 주름이 진, 눈조차 하나의 주름으로 보일만큼 살갗이 주름으로 만들어진,
그리고 특유의 할머니 냄새가 멀리서도 맡아질 만큼
어딘가 괴상하게 할머니스러운 하얀 파마 머리의 할머니였다.
그 뒤로 굉장히 하얗고 붉고 뚱뚱한 한 할아버지가 연신 목과 이마의 땀을 닦아내고 있었는데
닦아내는 땀보다 도로 만들어지는 땀이 더 많아보였다.
땀때문인지, 뭔가를 발랐는지 듬성듬성 검은 머리칼이 보이는 흰머리가 젖은 것처럼 머리에 가지런히 붙어있었다.
옅은 옥색 남방은 겨드랑이부분이 잔뜩 젖어있었고
배부분과 가슴부분이 속 내의에 척 붙은 느낌으로 약간 젖어있었다.
할머니는 말과 동시에 머리를 불쑥 내밀고 집안을 슬쩍 살피더니
곧바로 문을 활짝 열고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할아버지도 천천히 그 뒤로 따라 들어왔고 나는 별달리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어 그냥 서있었다.
'물만 먹고 갈꺼야. 빨랑 좀 줘.'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어 잔에 따라 주니 둘 다 벌컥벌컥 잔을 비웠다.
한 잔을 다 마시고도 미적미적 하기에 한잔씩 더 따라주었다.
또 금새 다 비웠다.
'화장실만 좀 쓰고 갈께.'
대답도 듣지 않고 할머니는 화장실을 사용했고 나는 먼산을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를 잠깐 쳐다보다가
잔을 모아 싱크대에 담갔다.
너무 졸려서 쓰러질 것 같았다.
할머니가 나오자 두 사람은 현관으로 나갔다.
정말 물만 먹으려던 건가 싶어 문을 잠그러 나섰는데
나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등 너머로
아저씨 하나와 아줌마 하나가 나타났다.
'아차!'싶은 마음이 들기도 전에 아저씨와 아줌마는 아예
마루 곁의 방으로 들어섰고
너무 졸려서 무슨 이야기도 들을 수 없다고, 제발 나가달라고 이야기하면서
'이건 정말이야. 너무 졸려서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다고...'생각했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가방을 열어 뭔가를 꺼냈고
아줌마가 뭐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세상에 나보다 더 말도 안되는 인간은 없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너무 지쳐서 나가라고 할 힘도 없었다.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한 머리를 침대가 있는 큰방으로 돌리고
몸도 천천히 돌려 미끄러지듯 움직이다가
으스스한 기분에 뒤르 돌아다보니...

엄마, 아빠가 나를 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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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9 19:29 2002/07/29 19:29

from 2002/07/08 19:27
아주 오래 전은 아니고, 좀 오래 전에, 내가 아직 살아있던 시절,
나는 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별들 가운데서도 가장 밝고 아름다운 별이었던 만큼,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그 프라이드를 지구에서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지구인이나 혹은 그녀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저, 그들은 서로 좀 달랐던 것뿐이다.

그녀는 1573년 3월, 카시오페이아에서 요절했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천재는 요절을 해야 한다던가,
그런 것이 지구의 풍습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

두터운 음악소리를 밀어내고 큰 소리로 그녀가 물었을 때, 나는 좀 짜증이 났다.
그녀는 많이 취한 것 같았고, 혼자인 것 같았고,
아무것도 없어서 저돌적으로 무엇에든 매달릴 곳을 찾는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이야기 할 기분도 아니었고, 솔직히 그녀는 예쁘지 않았다.

술집 이름은 Tycho's Nova 였다.
주택가 한 귀퉁이 차고를 개조한 아주 작은 Rock Bar였는데, 테이블 2개와 바에 딸린 의자가 5개로 사람이 꽉 차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꽉 찬다해도 스무 명이 서로 꼭 붙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이사와서 짐을 겨우 정리해 두고 어스름해진 창문에 기대어 담배를 피워 물다가, 나는 내 방 창문에서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Tycho's Nova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밝은 노란색의 네온으로 별 그림과 Tycho's Nova라는 단어가 있었고, 벽은 온통 검은색에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냐구?]

그녀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귀찮아진 나는 짧게 대답했다. 이야기를 길게 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그 곳에서는, 나는 아주 예뻤어. 인간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구!]

마지막의 [않았다구!]는 그 앞의 문장보다 좀 더 큰 소리여서 나는 움찔했지만,
곧, 음악 속으로 그 단어도 묻혀져 버렸다.
나는 맥주의 상표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Nirvana 의 Milkit이 미친 듯이 Bar 안 곳곳에 부딪히며 내달리고 있었다.

[나를 건드리지 말아줘. 나는 지금 아주 피곤하다구.]

Tycho's Nova에는 말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주인 언니와 나, 그리고 그녀 뿐이었다.

[왜 피곤하지?]
[살아야 하니까. 날 좀 그냥 내버려둬 줘. 부탁이야.]
[나도 널 괴롭히려는 건 아니야. 외로워서 그래.]

다시 보니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특별히 예쁘진 않았지만,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나도 니가 미워서 그러는 건 아니야. 피곤해서 그래.]
[미안해.]

그녀는 내 곁의 둥그런 의자에 앉아 조용히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왜 모두들 그렇게 바쁜 걸까? 난 이제 떠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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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8 19:27 2002/07/08 19:27

Logical Affairs

from 2002/05/17 13:51
일하러 오는 길에는
눈이 부시리만큼
천박한
꽃분홍색의
장미들이
별다른 이유없이
피어들있었다.

친구놈은
대순진리회인지 대순진리교인지
나에게
사악한
기운마저 느끼게 하는
불투명한
믿음의 세계로
블랙홀처럼
스스로의 질량을 집중시켰고

며칠전에
나의 일터에
같은 규격의 다른 그림들
대여섯점을 들고 들어와
3만원에 사달라는
어느 미술학도의
요청을
나는
뿌리치지 못해
반추상 형식의 배그림을
사고 말았다

22살의 내동생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 낫씽

오후 1시 30분
구역질이 나서
밥을 먹고 싶지 않다
굶으면 일을 할 수 없을텐데

오전 6시 30분
에 잠이 들었던 나는
차가운 머리를 들고
오후 11시
에 일어나

그런 식으로 물쓰듯 쓰다가는
언젠가 바닥나버릴

수돗물을
20여분이나 틀어놓고
멍하게
뜨거운
물의 기운을
한참 동안
느껴야만 했다

역(逆)기시감
미래의 어디엔가
(혹은 다른 시공의 어느 곳에)
지금
나와
꼭 같은
내가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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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17 13:51 2002/05/17 13:51

짧은 사랑

from 2002/03/22 14:03
얇은 이불에
몸을 감고
커튼도 없는 창문으로
햇볕을 등지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화장실의 작은
창문으로
어린 남자아이가 들어와
내 벗은 등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어
가로 줄무늬의 반팔 티셔츠와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은
머리가 반짝거리는
무지개처럼 일렁이는
어린 남자아이

창문 밖으로
자동차의 앞문이 닫히는 소리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발소리
달그락
문이 열리는 소리

내 짧은 사랑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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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4:03 2002/03/22 14:03

황사

from 2002/03/22 13:38
바깥에선
바람소리가 들린다
어찌들으면
서럽게 우는 것도 같아

창문으로는
뿌연
햇빛도 들어오는데

어제밤에는
거리가
온통
사막같은 황토색

아니
어쩌면
그렇게 많은 모래가
공중에
멈춘듯
가득할 수 있을까

먼 중국에서
거대한 바람과 함께
그 모래들은
긴 여행을
떠나온 것일까

그리고
낯선
공중에
멈추었던 것일까

황토빛의 어둠속
아스팔트에
아주 가볍게
뿌리박은

작은 아이는

그가 태어난
46억년 전의 우주를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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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3:38 2002/03/22 13:38

유혈극 [혈녀]

from 2002/02/12 21:01
#1
어두운 거리. 둥글고 커다란 귀걸이가 유난히 눈에 띄는
혈녀의 그림자가 노란 가로등불을 마주한 채로 걷고 있다.
혈녀의 발자국 소리.
화면 왼편에서 나타나는 다른 그림자와 무거운 발자국 소리.
혈녀의 그림자가 빨라지고 발자국 소리도 빨라진다.
다른 그림자가 혈녀의 그림자를 덮치는 순간,

혈녀 : "꺄악~!"

동시에 양쪽 귀걸이를 뽑아 날아올라 상대를 3동강 낸다. 모두 그림자로 처리.
화면을 돌려 불빛을 받은 혈녀의 얼굴을 클로즈 업.
귀걸이에 붙은 살점을 불어 떼어 내고 귀걸이를 다시 한 후 다시 걷는다.
화면 오른쪽으로 사라지는 혈녀의 그림자.

#2
지하철(좌석은 꽉 차있고 한 칸에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서있다.)
혈녀, 다리를 벌리고 앉은 아저씨를 본 다음 좌석 전체를 흩어본다.
7명이 앉을 수 있는 그 좌석에는 6명이 앉아있다.

혈녀 : 아저씨 700원 내고 탔어요?
아저씨 : 아니, 카드로 550원 내고 탔지.
혈녀 : 아자!

동시에 구두를 벗어 굽으로 아저씨의 머리를 내리 찍고 다리를 붙여 앉힌 다음
굽에 붙은 피를 털어 내고 다시 신는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혈녀 내린다.

#3
집에서 편하게 벗고 누운 혈녀. 코를 파고 사타구니를 긁으면서 드라마를 보다 눈물을 글썽인다.
반바지와 티셔츠를 주워 입고 문을 나서는 혈녀.

가게 안.

혈녀 : 아줌마 맥주 주세요.

맥주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혈녀, 버스정류장에서 멈칫하다가
바로 온 좌석버스에 올라탄다.
좌석에 앉아 라이터로 병을 따고 맥주를 마시는 혈녀.
갑자기 혈녀의 눈이 커진다. 클로즈 업.
시선을 따라 카메라 내려가면 옆자리의 남자가 혈녀의 반바지 안쪽으로 손을 넣고 있다.
병깨지는 소리.
혈녀는 맥주병을 좌석 팔걸이에 대고 깬 후
남자의 배를 찌른다.
옆자리로 옮기는 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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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2 21:01 2002/02/12 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