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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9/20
    진의 노래
    외딴방
  2. 2010/09/19
    혜정의 친구들
    외딴방
  3. 2010/09/17
    혜정의 친구들
    외딴방
  4. 2010/09/08
    창작 중....
    외딴방
  5. 2010/08/25
    추억들
    외딴방
  6. 2010/08/25
    혜정의 친구 이야기
    외딴방
  7. 2010/08/25
    혜정의 친구들
    외딴방

진의 노래

해마다 삼월이 오면 미처 답하지 못 한 편지를 숙제처럼 안고 있었다.

윤 진이 그 애를 안 것은 중학교 들어가자 마자 바로였다. 교실 뒷문에서 빼곰히 고개를 내밀던 수줍음 많던 그 애는 늘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작은 어깨 만큼이나.

복도의 반대편 끝에 있는 그 애의 교실에 갈 일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닥 중요하지도 않았다. 친구들은 함께 졸업한 동창생들에서 새로운 학교의 새로 사귄 아이들로 교체되어 가고 있었고 이상하게도 주변은 친하지 않아도 항상 아이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윤진이 보기에 자기 반에 있는 그애의 동창생은 그애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타입이었다. 터울 많은 언니, 오빠 그리고 강아지 얘기를 엄마 얘기보다 더 많이 늘어놓는 그 애의 동창생은 늦동이 막내답게 마냥, 밝고 화사했고 꼭 그만큼 철이 없었다. 담임의 수학수업을 좋아했고 그보다 더 신출내기 남자영어선생을 좋아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아 시험날에는 싱글벙글 웃고 있다가 한참 뒤 성적표를 나눠주는 날에 눈물을 찔금거렸다. 대체로 자신과  비슷비슷한 부류의 아이들 속에서 총각선생들 중 누가 가장 멋진가를 두고 열을 올렸으며  하교 후에는 정문 앞의 떡볶이집에서 한참을 떠들다가 버스를 타고 사라지곤 했다.  혼자 있거나 책을 읽는 것은 본 적이 없었지만 체육시간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부진했다. 윤 진은 같은 학교 출신으로 무척 친한 듯 보이는 그 애의 교실에 갈 때마다 혼자 오도카니 앉아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는 그 애가 눈에 들어왓고   같은 시간대에 운동장을 나와 체육수업에 참여하는 그 애가 전력질주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오래 매달려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 제법, 악바리야... "

윤진은 그 애와 마주 서서 손을 흔드는 그 애의 동창생 뒤에서 중얼거렸지만 뒤를 돌아본 그 애의 동창생은 무심히 윤 진을 지나쳐 소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네들의 왁자한 수다 속에는 그 애도, 윤 진도 감히 스며들기 어려운 험담의 릴레이와 자기 변호에 교묘히 섞인 자화자찬, 그리고 방어적인 집단주의가 있었다. 윤 진의 주변에서 기쁜 듯 웃고 얼굴 붉히면서 친하고 싶다고 말하는 솔직함,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감의 표현을 그네들에게선 느낄 수 없었다. 마치 공동주택의 연합한 주부들처럼 경쟁과 시기와 질투를 이면에 둔 채 우리는 하나라며 손 잡고 연대를 과시하며 다른 모든 타인들을 자신들과 맞선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그런 집단주의가 있었다. 아무도 그네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주시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랬다.

오히려 그 애가 울음을 터뜨려 흐느끼고 있는데도 그 애의 동창생은 공연히 쪽 팔리고 있다는 표정으로 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애매한 몸짓으로 엉거주춤했다.

윤 진은 그 애가 눈에 자꾸 걸렸다. 하지만 같은 반이 아니었고 눈에 걸린 횟수만큼 말을 나눠볼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왜 그 애가 자꾸 눈에 띄지? 하고 윤진은 잠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지나가는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기엔 그 애는 항상 너무 멀찍이 있었다. 복도의 저 뒤에서 걷고 있거나, 운동장의 저 끝에 서 있거나,  강당 근처의 구석진 화단 옆에 앉아있거나 하는 그 애를 볼 때마다 윤 진은 ' 재가 혼자 저기서 뭐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눈길이 마주쳐 아는 체라도 한 번 할라치면 이미 그 애는 다른 데를 쳐다보거나 생각에 잠긴 듯 아래를 보고 있거나 들고 있던 책을 펼치곤 했다.  ' 뭐 딱히 할 말도 없는 데...' 윤 진은 애써 그 애의 근처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윤진의 손을 잡고 있는,  팔짱을 끼고 있는 동급생들이 항상 너무 많았다. 윤진은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에게 관대했고 그들의 히어로가 되는 것에 나름 보람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기대감을 갖고,  사소한 친절에 행복해하는 걸 보는게 즐겁고 뿌듯했다. 여자아이들이 자신의 보이쉬함을 크게 보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뭐 어떠랴 싶었다. 윤진이 생각하기에 예쁘장한 여자아이들은 충분히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하며 그 섬세하고 보드라운 정서를 맘놓고 표출하며 사는게 좋을 것 같았다. 케사르가 제대로 했다면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가 굴욕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그 아름다운 처자가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한 것도 모자라 죽음에까지 이르렀겠는가...로미오가 우물쭈물하지 않았다면 오드리 헵번으로 하여금 어둠침침한 무덤에서 일어나 독약을 먹는 일 역시 없었을 것이다. 윤진은 얼마전에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나온 비비안 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그녀가 사랑을 하는 모습은 얼마나 귀엽고 애달펐는지 !   윤진은 애슐리같은 타입이 정말 싫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이 멜라니라구? 그건 자기기만이었다. 그는 그저 용기가 없거나 아니면 안주적일 뿐이었다. 레트 버틀러가 속좁게 굴지 않았다면 비비안 리는 정말 행복하게 자신의 우수성을 조잡한 남편만들기작전에 허비하지 않고 탁월한 농장경영주로서 발휘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윤진이 들어본 금언 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말은 "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 그러나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 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알 수 없는 것은 '여자들' 이었고 사랑스러운 것은 자신의 감정과 능력을 표현하는 '그녀' 였다.  윤진은 자신이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안된다? 그런 말을 엄마한테서 들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윤진은 아들과는 다른 딸로서 키워지지도, 그렇게 대해지지도 않았다. 그가 재능을 보인 피아노를 엄마는 아주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죽 하게 해 주었지만 그걸 공부와 연관지은 적은 없었다. 성적을 잘 받아오면 칭찬을 해 주셨지만 못 했다고 해서 꼭 잘해야 한다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윤진은 공부나 독서에 열의나 흥미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 하고 싶었다.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러고 싶어서였다. 자신이 아는 한, 위인전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꼭 학교성적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그것에 힘입어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항해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도 열심이었으며 또 당당했다. 비록 연인을 잃거나 사랑의 보답을 받지 못 하는 일도 없지 않았으나 그건 그들이 정직하고 성실한 노력을 다 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윤진은 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었고 엄마도 그리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이혼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도 그건 별로 흔들림이 없었다.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온 것 같았다.  이혼하기 수년 전부터 별거가 계속 되었고 아빠에겐 아빠의 인생이 있는 거니까라고 엄마는 말해왔었다. 아빠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야하게 되었다고 엄마가 말하면서 이혼수속을 밟을 때 엄마는 좀 힘들어보였다. 윤진은 왜 자신이 엄마의 상담자가 되지 못 하는 지를 알 듯 하면서도 몹시 서운했다. 엄마에게 자신은, 학교에서 발렌타인쵸컬릿을 선물하는 여자애들에게보다 더...든든한 기사가 되고 싶었다.

발렌타인데이, 윤진은 지금도 책상 서랍 안 고즈넉히 잠자고 있는 발렌타인데이의 초컬릿상자와 편지를 생각했다. 그 애는 자신의 집을 어떻게 알았을까...한번도 마주 앉아 얘기해 본일이 없는데...그렇게 늦은 밤까지 그 애는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를것인가 말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던 것일까? 추워보였던 얼굴, 찬기가 확 끼쳤던 손가락, 그 애는 윤진이 얼결에 초컬릿상자를 받아들자 마자 휙 돌아서서 어두운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아...혼자 가기엔 위험한데...윤진은 그리 생각하여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방학이 끝나고 바로 이어진 졸업식 후 그 애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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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들

열 다섯에서 스물 하나가 되던 가을까지 사랑을 갈구하는 여정이 계속되었다.

동급생들에 비해 항상, 너무 나이가 많은 축이었던 나의 사랑은 친구를 가질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에 댓가를 요구하듯 과중한 기대와 의미를 상대에게 부여하였다. 결국 실재하는 인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보다, 자주 심각한 대상화의 오류에 빠졌으며 그들이 나를 이해하는 경우는 거의 한 번도 없었다. 그랬을 것 같다.

그가 나의 설정대로 움직여준다는 것? 그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으며 대부분의 상황은 사춘기적 감수성에 침몰한 소녀와 그 외연화한 모습에서의 소심함, 냉정함, 어설프게 맘을 읽히는 순진함에 눈길을 주는 동급생 사이의 조금 진한 우정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 경계선의 사랑은 공상의 나래를 접는 일상의 현실인식과 혼자만의 산책, 혼돈의 글쓰기, 그리고 밤의 퇴폐를 병행하는 이중성 속에서 위태롭게 계속되었으며 미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청소년기의 자아는 가히 분열적이었다.  

 

의식과 현실세계의 이질감이 심해질 수록 혜정은 입을 꾹 다물었고, 열 일곱과 열 여덟 사이에서 치열했던 마음의 내적 암투는 청춘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현실세계의 승리와 함께 명백해진 첫사랑의 상실을 통해 혜정을 종국적으로 쓰러뜨렸다..... 87년 6월 항쟁으로 봇물되어 터져나오기 직전의 1, 2년, 그 시대의 우울함은 일종의 풍조였고 사조였으며 어른도 아이도 사로잡혀 절망으로 추락한 고름덩어리였다.

 담임은 교련과목을 맡고 있었다. 학년상 3년 터울인 오빠의 검정색 개구리 무늬의 교련복을 떠올리게 하는 여자교련은 그러나 그런 비슷한 무늬의 옷을 입고 교실을 들어서는 일은 없었다. 여느 선생들보다 균형잡힌 각선미를 자랑하며 그녀는 깔끔한 투피스와 굽높은 구두, 그리고 끄트머리만 컬 진 헤어를 단정하게 묶어올린 모습으로 교단에 서곤 했다. 그리고 6월이 되기 전 어느날 칠판 가득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를 적어주었다. 혜정은 중학시절 국사선생님이 한일합방에 대해 열강하는 걸 들었을 때 치올라왔던 분노와 격정의 느낌, 비슷하게 감동받았지만 뭔가  서걱거리는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같은 민족에 대해 원수라고까지 표현되는 적개심? 죽음에 대한 지나친 수용? 그토록 뛰어난 희생정신을 공감하기에 열 일곱, 열 여덟의 정신들은 세상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개교 3년 밖에 안된 공립고등학교였지만  철칙처럼 지켜지는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그리고 제 1 회 졸업생의 서울대 진학률을 초미의 관심사로 한 입시경쟁의 무드는 변함없이 전 교정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교정에서 혜정은 점심시간이면 채 나무심기도 마치지 못 하여 맨 모래와 흙먼지 밖에 없는 운동장 갓길을 빙 둘러 걸으며 혼자 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담장을 높게 둘러올리기는 하였으나 막을 수 없는 개천가의 연탄공장에서 끊임없이 미세한 검정가루가 날아들었지만 주거용건축이 불가한 지역에 들어선 공립학교 덕분에 완충지대를 가지게 된 주민들 대신, 아침마다 책상을 닦는 수고도 깔끔한 성격으로 오해되는 탓에 불평할 생각은 나지도 않았다.

그 산책에 동행이 생긴 것은 1 학기가 다 가기 전이었다. 교련 담임이, 입학할 때 학급석차 5등이 중간고사 40등이 뭐냐며 교무실로 불러 불안과 불만의 눈초리로 혜정을 쳐다보던 면담이 있고 난 후, 혜정은 더욱 신물이 난 교과공부에 아주 손을 놓아버리고 한눈만 팔았다. 소설책 읽기도 지겨워지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에서 녹다운 당한 후 전환한 현대소설엔 도대체 취미가 안 붙어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한 학기가 다 가도록 혜정처럼 말 없이 자기 자리만 지키다가 하교하는 그 애에게 혜정은 자꾸 눈길이 갔다. 혜정처럼 그 애도 쉬는 시간마다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적당히 급우들과 말을 섞는 혜정과는 달리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그 애를 아이들은 불편해 했고, 귀찮아 했으며 결국 잘난 체 하는 애라는 누명으로 왕따시키기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했으나 아이들은 무섭도록 현실적이었고 조직적이었으며 이기적이었다. 새로 생긴 공립학교이었기 때문인지 흔치 않았던 남녀공학에서 여자반 아이들은 같은 학년의 남자반이 아닌, 입시에 홀릭해 있는 3학년 오빠들을 쫓아다녔고 그 중에서도 총학생회장 출신에 육사지망이라는 정보가 아는 것의 다였지만 주저함 없이 일등신랑감으로 찍혀올려진 민둥머리의 멀대같은  남자를 보기 위해 창문에 붙어서곤 했다. 여자애들은 한별단이나 스카우트 같은 공식적인 써클활동을 통해 남자애들을 만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인근 남고에까지 발이 뻗어있는 뚜들의 미팅주선에 못 이기는 척 참가하며 이성교제의 문을 넓혀갔는데 이는 아~주 특출나게 공부를 잘 하는 여학생과 어떻게 할 수 없이 못 생겼다고 자인되는 소수를 제외하곤 일반화된 통과의례처럼 취급되었다. 왜?

혜정은 동급생들의 이 절대적인,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범람을 곁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입학한 이 학교에서의 수업 첫 날에도 여자반만 있는 2층으로 밀려 내려온 남학생들이 자신의 반 창문에 매달려 들여다보던 그 왁자했던 사건이 실은 또래의 아이돌스타가 같은 반에 있기 때문이라는 걸 듣고서야 통로 건너편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긴 생머리를 착 올려묶은  소녀를 살펴보았지만 비교적 피부가 깨끗하고 이목구비가 단정하다는 것 외에 별 감흥이 없었다. 티비보기를 허용하지 않았던 아버지 덕분에 드라마하곤 담을 쌓고 사는 혜정은 그 소녀탤런트의 이름을 듣고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해서일까. 동급생들처럼 매체 속의 그녀를 알지 못 하는 혜정에게 그녀는 그저 좀 예쁜 아이였을 뿐이었다. 한 주 마다 한 줄씩 바꾸는 지라 그 녀와 짝궁이 되었을 때 혜정은 그 애에게 " 넌 어떻게 탤렌트가 되었어? " 하고 묻자 그 예쁜 아이는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방송국에 데리고 다녔다고 말했다. 뭐...그렇겠지, 어련하겠어.

중학교 때와 다르지 않게 학급의 회장도, 학교의 총학생회장도 아이들의 의사를 묻는 법 없이 어디선가 결정되어 공표되었다. 대통령도 직접 안 뽑는데, 무슨 선거씩이나... 그리고 이상하게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집도 부자였고 이런 저런 상도 잘 탔다. 그리고 아이들은 몇몇 인기있는 아이를 중심으로 패거리지었고  패거리에 복색의 차이는 비교적 잘 드러나는 편이었다. 브랜드점퍼나 가방, 나이키신발 같은 것으로. 시장통에서 튀김을 파는 집의 맏딸인 어떤 아이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도 좋았지만 선생님의 관심이 덜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아이를 중심으로는 절때 공부도 잘 하고 집도 부자인 아이들은 모이지 않았다는? 오해나 착각처럼 보이지만 촌지를 밝히는 선생으로 알려진 역사선생이 담임이 되자 대다수의 아이들이 진저리쳤으며 결국 부모의 시장통 가게까지 다녀온 그 선생이 그냥 오지는 않았을 꺼라는 소문이 그 아이를 부끄럽게 했다면? 혜정은 이 모든 불의와 타협, 말 뿐인 진리를 암기하라고 소리치는 학교와 선생과 아이들에게 분노했다. 뻔뻔스럽게도 여자애들은 대학을 가려는 이유를 묻는 혜정에게 " 시집을 잘 가기 위해서 " 라고 대답했다. 그런 인식이 그들에게 있었다. 어쩌면 남자반 교실을 들어갔을 때와 또 다른 이유로써 입시공부를 강조하려던 어느 선생의 입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었다. "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신랑감을 만나지! " 하고 공립고등학교의 늙은 남자선생들이 힘주어 말하는 건 정말 쉽게 상상되지 않는가?

그 모든 부패스러운 풍경 속에서 그 애는 고고한 한 마리 학처럼 조용히 앉아 서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애와 혜정은 짧은 쪽지를 가끔 교환하게 되었다. 그 애가 혜정에게 빌려준 책은 회색노우트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고 그  책을 감명깊게 읽었던지 그 애는 혜정에게 교환일기를 제의했다. 혜정은 솔직히 회색노우트보다 수레바퀴 아래에서나 데미안,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에 더 감동했고 그보다 더 불새의 늪이나 북해의 별에 더 심취해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애는 만화는 보지 않는 아이였다.  그 후의 여름방학 중에 그 애의 집에 놀러가서 만난,  " 친구 데려오는 거 처음 봤다" 면서 반기던 그 애의 오빠는  딴따라가 취미이고 그 애의 여동생도 끼가 있다는 데 당췌 이 아이는 낭만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어서 수학이 더 낫다면서 2학년 때는 이과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애는 혜정이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친구였다. 그 애는 회색노우트를 함께 읽은 외에도 지와 사랑이라던가 파우스트라던가 백년동안의 고독, 압록강은 흐른다에 대해 얘기했으며 전혜린의 에세이를 읽을 때에는 아주 미쳐서 수많은 편지와 일기를 교환하게 하였으며 비판과 환멸의 수사로써 세상을 치부하고 절대의 지와 진리가 존재하는가를 두고 실망과 의혹의 언사로써 생을 비관하게 하였다. 일천구백팔십육년, 그 때 우리들의 청춘은 절망적이었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시와 좋은 결혼이라는 미래를 추구할만한 가치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혜정은 그 애를 동지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 애는 지난 겨울 끝나버린 중학시절의 첫사랑을 대치하는 치유의 소울메이트였다.  생각의 되새김조차 아프기만 한 그, 끝내 바라보는 것 이상 나아갈 수 없었던 사랑을 가슴 한 켠에 묻고 혜정은 마음이 가는 친구를 사귀는 데 조금은 적극적이 되어있었고 더 많이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그 애였고 상처받은 것은 혜정이었다. 그건 아직 오전수업 중이었던 물리시간에 일어났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드르륵 의자를 밀고 그 애는 일어났다. 아이들을 등지고 판서 중이었던 물리선생이 누가 화장실이라도?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듣지 못 했고 뒤돌아선 그대로 교실문을 나가는 그 애의 뒤통수만 볼 수 있었다. 뭐라고 물어볼 틈도 없이 일어난 사태에 아이들도, 보다 더 물리선생은 충격을 받았다. 수업거부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왜? 부러 시사성 있는 발언을 절대 안 하면서 오직 수업만, 수업을 재미있게, 예상문제를 진도 나가면서 꼭꼭 집어서 나름 학생들을 돕는 선택과목의 선생으로서 성의를 다 하고 있었는데 !

혜정은 국어와 지리 다음으로 그 선생을 좋아했었다. 수학을 2차 방정식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는 난관이 아니었으면 물리의 세계로 입문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였는 것이, 고등학교에서 좋아할 수 있는 선생님은 극소수여서 그는 그저 설득력 없이 반공을 주창하며 지리 선생님이 간첩혐의로 잡혀가자 " 그 놈은, 왠지 눈빛이 이상했었어 ! " 하고 학생들 앞에서 뇌까리던 윤리선생이나 촌지를 밝힌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역사선생에 비해 싫어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물리선생은  그애 때문에 상처받았는 지 그 애에게 무슨 개인적인 일이 있는가를 아이들에게 물었으나 아무 성과가 없자 그 애가 돌아오면 교무실로 오라는 말을 전해달라 하고는 짐짓, 괜찮다는 듯 수업을 속개하였다. 대체, 그 애는 수업 중에 벌떡 일어나 나가서,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혜정은 심히 불쾌했다. 그 애가 수업을 참아낼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계속 계속 되뇌이고 있었던 세상에 대한 실망, 분노,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현실세계, 진리와 지에 대한 사랑을 신뢰할 수 없었던 철학사 - 그 즈음 우리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던가,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 전혜린에 파묻혀있었다. -속에서 그 애가 입시경쟁이데올로기의 이단자로서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은 너무나 잘 이해되었다. 그러나 왜 혼자만 !  혜정은 그 순간 자신도  수업을 박차고 함께 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물리선생은 그 정도는 아닌데....학교에 대한 거부를 왜 그 선생의 수업시간을 택해서 표현한단 말인가? 그리고 적어도 내게는 언질을 줘야 하는 거 아니었나 말이다 ! 점심시간에 그애 대신 혜정은 담임에게 불려갔지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종례 후에야 혜정은 그애가 유일하게 입을 떼는 동급생이라는 특권으로 심문하듯 당당하게 물었다. " 그래서 나가서, 어디 있었어? " " 체육실..." 혜정은 왜 체육실의 문이 잠겨있지 않은지 의아해서 그 후 어느날 4층 복도 끝에 있는 체육실의 문을 당겨보았다. 과연...열려있었다. 문단속을 잘 안 하는군....혜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애는 단지 수업을, 무의미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그 부동의 행위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애가 학교를 그만 둔 것은 아니었다. 그 애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여전히 수업에 수동적이었다. 그건 하루 종일 엎드려 자거나 끊임없이 딴짓을 하면서 혹은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진 않지만 그저 피동적으로 수업에 앉아있는데 익숙해져 있는 것과는 달랐다. 그 애는 2학년이 되자 자신의 선택대로 이과를 갔고 물리선생님과 친해졌으며 입시에도 무난히 성공했다. 그때 우리는 왜 그다지도 우울했을까, 사춘기여서 그랬던게 아닐까 싶어 하고 대학을 들어간 천구백팔십팔년에 그 애는 중얼거렸다.

 

끼많던 그애의 여동생은 대학로의 극단을 따라다닌다 했고 군대를 가서도 딴따라를 했다던 그 애의 오빠는 개그콘테스트에 나가느라 엄마와 싸움 중이라고, 입상을 해서 안방극장에 나올꺼라는 얘기를 들은 건 조금 더 후였다. 하지만 꿈많은 팔팔학번으로 86년 애학투련 사건 이후 엔엘의 아성으로 불렸던 학교에서 데모에 여념이 없었던 나는 개콘에서 김국진과 짝을 이루고 인기상승 중이던 그의 오빠, 김 용만의 개그를 잘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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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들

혜정은 조숙했다. 늘, 동급생들에 비해.

그건 순전히 아이들보다 한 살, 때로는 두 살 많았기 때문이다.

 

혜정은 유심히 그 아이를 주목했다.

다른 아이들이 계속 수군거리는 것에 무심한 척, 그러나 참지 못 하고 씨발을 중얼거리며 그 애는 지각과 조퇴, 그리고 땡땡이를 반복했다.

점심시간까지도 기다릴 수 없었던 그 아이의 날라리친구들은 복도 끝에 있는 혜정의 반 앞을 지나면서 " 야, 배선희이이, 빨랑 나와~"  하고 소리쳤고 뒤미처 까르르 웃는 소리는 수업에 열중하던 선생님과 급우들을 당혹시키곤 했다.  그럴때면 배선희는 차마 꼰대가 지켜보고 있는 상태에서 나갈 수는 없고 글타고 제 친구들을 모른체 할 만한 뻔뻔함도 없어서 곤혹스럽게, 그러나 자기는 저네들과 한편이라는 듯 기쁨의 미소를 입가에 걸고 " 씨바, 미친 년들 ! " 하고 또 중얼거리곤 했다. 그네들은 곧 교사를 빠져나간 듯 잠잠해졌고 아무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수업은 재개되었다.

점심시간을 지나서도 그 애가, 모두가 잠드는 5교시 이상의 수업을 버틴다는 것은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것같은 고문이었다. 종례시간이면 체육과 출신으로 중학교 교편이라도 잡고 있는 것이 대단한 출세인양 담임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는 늙은 여자 체육선생은 배선희의 착석 여부를 눈으로 먼저 확인했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오늘 수업을 들어갔던 동료교사들이 한 마디씩 하고 갔던 배선희에 대한 얘기들 중 어느걸 지적하고 훈계하고 지도해야 할 지를 고민했지만 결국 암말 않고 평소보다 더 길어진 잔소리만 늘어놓고서야 아이들을 풀어주곤 했다.

혜정은 선생님들이 왜 질책하지 않는 지 알 수 가 없었다. 그들은 숙제검사를 했고 질문에 답하지 못 한 아이들을 일어선 채 수업을 듣게 하였으며 떠드는 아이들을 복도로 쫓아내고 용의복장 검사를 재소자들에게 하듯 모욕적일만큼 철저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교훈을 모토로 매주 학원의 전교생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성스럽고 거룩한 예배를 진행하고 주 1회의 성경시간을 두고 국정교과서보다 품위는 없어보였지만 재질 좋은 백상지의 성경교과서를 펼치게 하고, 시험까지 보게 해서 학기말 평균에 반영하는 기독사립학원에 특별히 채용된 사람들이 아니던가.

초딩들은 애사당만큼의 존재도 못 된다는 듯, 이 사립학원의 정원과 운동장과 예배시간을 공유하는 고등학생들만큼 심리적으로 격상된 여자중학생들은 선생들의 성적지상주의와 각종 경시대회에서의 입상에 집착하는 정책에  잘 부응하지 않았던가. 불과 몇 달 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초딩티를 저 멀리 내던져버리고 담임의 설득과 칭찬과 애원을 들어주기 위해 하교시간을 훨씬 지나 정문수위가 문단속을 하러 올 때까지 환경미화대회의 우승을 위해 교실에 남아 찣고 오리고 붙이고 그리고 다른 반의 디자인과 컨셉을 탐색하곤 했었다. 늙은 여자 체육선생은 최우수는 아니었지만 우수상을 받으러 학급회장이 연단에 오르자  한껏 작은 어깨를 치켜올리곤 했다. 1학기의 첫 월말고사에서도 1학년의 열 두반 중 상위에 링크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특히 전교1등을 비롯해 상위 10%이내의 학생들이 자기 학급에 적쟎이 있는것에 훨씬 더 안심하는 듯 했다. 물론 공부 잘 하는 영악한 것들은 담임이 수학도, 영어도 하다못해 국어나 세계사 선생도 아닌 것에 불만이 많은 듯 했지만. 뭐...엄마들이 선생을 만나는 것엔 더 좋았을 지도 모르지만.

첫 월말고사에서 담임들은 올 한 해 자신이 맡은 반이 어느 정도 성취할 지를 가늠했고 임용고시에 패스하고도 적체된 신입교사지원자들이 서울명문대의 알오티씨 정도는 달고 있어야 돈을 좀 아끼고 들어올 수 있는 이 사립학원에서의 교직과 보직을 유지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할 두 종류의 학생들을 선별해내었다. 혜정은 교정에 만개한 백목련이 그 추한 자태를 드러내며 모멸 속에 지고 있던 4월 어느날 담임에게 호출당해 교무실에 들어섰다. 몇몇 낯익은 선생들이 분주히 책상 앞을 왔다갔다 하다가 문을 들어서는 혜정에게 아는 체 하는 눈길을 던졌다. 학생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공간, 그닥 넓지도 않은 교무실의 한 쪽 끝에는 꽤 넓은 책상을 갖고 양쪽의 여유공간에 커다란 화분을 두고 교사들을 감시하고 있는 교감의 모습이 보였다.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노란 완장을 차고 매끔한 복장으로 위엄있게 서 있던 선도부 언니들을 진두지휘하던 생활지도부선생은 그 날의 교칙위반자들의 명단을 노려보다가 흘끔 혜정을 보고는 곧 눈길을 돌렸다. 좋게 보면 전원주같은 인상의 담임은, 그러나 악다구니를 할 때의 전원주같은 이마의 주름을 늘 펴지 못 한채 젊은 여자들과 진중한 남자선생들 사이에서 혜정을 손짓해 불렀다.

" 어. 이리 와라. "

한결 풀어진 여자체육선생의 얼굴에 옆자리의 선생님이 슬쩍 관심을 갖는다.

" 누구? "

" 응, 우리반 엘리트."

옆자리 선생은 혜정을 흘끗 보면서 미소를 흘렸다.

" 사월인데, 여즉 스웨터를 입고 있니? 덥지 않아? "

혜정은 철마다 입을만한 몇 안 되는 허섭한 옷가지 중에서 비교적 맘에 들어하는 화사한 분홍색의 털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여름보다 겨울이 늘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혜정은 겨울옷을 일찍 꺼내입었고 또 늦게까지 벗지 않았으며 자주 갈아입지 않아도 괜찮은 만큼 비교적 번듯한 옷을 자주 입다 보니 늘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혜정의 자랑스러워하는 웃도리에 칭찬 한 마디 없이 담임은 그렇게 상처로 면담을 시작했다. 교무실에 들어오는 두 종류의 아이들 중 혜정은 문제아가 아닌 모범생 축에 끼었지만 전자나 후자나 선생의 앉은 자리 옆에 서서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짧게 수업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적응여부를 묻는 형식적 언사에 이어 담임은 본론을 슬며시 꺼냈다.

" 너, 배선희랑 친하게 지낸다며 ?"

" ... ... ? "

" 혜정아, 네가 그 애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또 짝궁이니까 잘 지내는 건 좋은데..."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엄마도 없고 작년에 가출하느라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해 유급하여 1학년을 다시 다니면서 위층의 2학년 교실에 친구들을 놔두고 초딩냄새 풀풀 풍기는 1학년 교실에서 늘 낯선 타인처럼 굴고 있는 그 애에게 친절하고 착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주고 있는 내게 칭찬이나 아니면 뭐 그 애에 대한 상담이라도 하려는 걸까? 혜정은 언뜻 자신이 어디선가 본 불우한 친구를 돕는 장한 어린 시절을 기록한 위인전의 주인공처럼 생각되었다.

" 너, 근묵자흑이라는 말 아니? "

혜정은 당근 알아먹고 있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 그래,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이란다. 넌 아직 어리고 또 착하니까...공부도 잘 하고. "

그가 혜정을 본 한달 반 동안 알게 된 것은 마지막 말 밖에 없을 것 같지만....

" 그애하고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게 너한테는 좋지 않을 것 같다. 그애한텐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백로들 속에 있다고 까마귀가 희어지는 건 아니란다.... "

교무실을 나오면서 혜정은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지 알 수 가 없었다.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고 무엇보다도 놀랍기만 했다. 키 작고 늙고 인상 구기고 있는 이 깐깐한 여자 체육은 처음부터 비호감이었다. 학급석차 순서대로 반장, 부반장을 뽑고 나서 보통의 부장들과는 격이 다른 지육부장을 맡고 있는 혜정에게 체육과 출신의 담임은 모종의 경외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건 교실 복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전교석차 50등 이내의 아이들에게 그닥 경쟁의 상대로 인식되지 않는 중간층 이하의 성적군의 아이들이 보이는 눈빛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그래도 그는 선생님이 아니었던가? 담임이었고 학생이라는 시절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스승이라는 어쩌면 인생을 길게 혹은 깊게 함께 할 수도 있는 영향력 있는 어른이 아니던가? 혜정은 교무실을 나와 교실 안 쪽에서 바라보던 화단의 백목련나무 앞에 섰다. 중학교의 교사 옆으로 나즈막한 언덕 위로 예배와 성가대회같은 행사를 하는 강당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 여고와 여상이 있는 고등학교 교사가 병풍처럼 둘러친 끝에는 그린벨트지역 안의 학교답게 야외음악당이 무지개처럼 반호를 그리며 엎어져있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언덕은 학교의 배후를 빙 두른 산으로 가는 길이었고 아이들은 곧잘 그 어둠침침한 학교 뒷산에서 여자 팬티가 발견되었다는 둥, 수업을 땡땡이 깐 날라리들이 담배를 피우러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둥의 얘기를 재잘거리곤 했었다. 선희는 지금 어디 있을까?

 

 

혜정이 그 애와 친하게 지낸다는 건 다소 아니,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누구나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고 배선희도 움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었다. 혜정은 그 비범한 행동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혜정은 갓 입학한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오도카니 홀로 앉아 볼터치를 한 것이 분명한 핑크빛 얼굴과 억지로 만든 쌍커풀에 어색한 인상을 만들어내며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그 애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야, 누구한테 반말이야. 젖비린내 나는 것들이...언니라고 불러. 난 작년에 들어왔다구, 씨발 "

그 애의 함부로 내뱉는 욕지기와 핀컬퍼머를 한 풍성한 짧은 머리 아래로 반짝이는 귀걸이에 주눅이 든 아이들은 새 학교, 새 학급의 이 특별한 친구를 어찌 대해야 할 지 당황하고 있었다. 언니지만 본받을만한 선배는 아닌 것이 분명한 이 중학교에서 상급학교에서 날라리라고 불리우는 이 급우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주의받는 나쁜 친구, 즉 비행청소년이라는 범주에 속해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집안 환경이 어렵거나 그렇지 않으면 결손가정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었으며 늘 나쁜 소문을 몰고 다녔다.  그들은 화장과 짧은 치마를 즐겨 입었고 교문에서 이미 명단이 확보된 생활지도부 선생의 검문을 벗어나지 못 했으며 용의검사에서 오래 주목의 대상이 되었고 임의로 추출되어 가방을 뒤지는 소수에 꼭 걸려들었다. 그리고 가끔 화장품 나부랭이와 함께 담배를 몰수당하는 멍청함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남학교의 그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겠지만 그네들의 작고 여린 뽀사시한 뺨이 우악스러운 남자선생의 손바닥 자국으로 벌개지거나 그보다 더 하드할 수 없는 검정색의 출석부에 머리를 맞고 아침 내내 드라이하며 매만졌을 머리카락을 흐트리는 것을 아이들은 경악과 공포 속에서 지켜보며 관찰학습의 효과를 톡톡히 재현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모멸과 경원을 당하던 이른바 날라리가 한 명 혜정의 반에 배속되어있는 걸 보고 담임의 속깊은 고뇌와 분노와는 달리 아이들은 어쨌든 하루 8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 배선희를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몰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  어휴, 젠장...나갈 수도 없고...1학년 때 다 배운 걸 또 보고 있어야 하니, 씨발..."

단지 한 번의 가출로 출석일수가 모자라 친구들과 함께 2학년 교실에 갈 수 없었던 배선희에게 수업은 고통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버티는 건 중학교는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리라. 대학생 오빠들을 만나는 것 이상 나아가긴 힘들었겠지만 여느 중학생들보다는 세상을 많이 알고 있는 소치였을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게 배선희는 아이들에게 언니라고 부를 것을 명령하며 교실에서의 생활에서 자신과 다른 아이들의 위치와 행동방식이 다르다는 것, 자신에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들에게도 잘 주지시키는 데 성공한 듯 했다. 일부 몰지각한 신입교사들과 생활지도부 선생과 담임만이 사명감과 역할에 강제받아 가끔 한번씩 지적질과 매타작을 번갈아하며 우왕좌왕했을 뿐.

혜정은 그 애의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을 난감하게 생각했다. 하루종일 그 애와 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그 애를 언니라고 호칭할 수도 없었다. 혜정이 열 두살 쯤 되었을 때 확실히 알게 된 것이지만 자신은 학급의 대다수의 아이들보다 한 살이 많았던 것이다. 생년월일을 얘기할 때면 아이들은 앞으로 혹은 뒤로 1년 정도 태어난 해의 차이가 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보통은 학교를 빨리 들어와 나이가 한 살 적은 경우가 많았다. 혜정은 자신처럼  한 살 많은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라는 것을, 자신이 아는 대부분의 아이가 한 살 적거나 때로는 두살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혜정이 공부를 잘 하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다. 혜정은 그래서 더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같다. 다른 모든 아이들보다 더 뛰어나도 자신은 또래들보다 1년 늦은 집단에 속해 있음을 자각할 때마다 창피했다. 늘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 그건 자신이 5학년 아이들과 놀때 6학년으로서 초딩을 졸업해야 했다는 것, 진즉에 중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 지금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내용 같은 건 이미 작년에 다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 등이 혜정의 자괴감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배선희에게 언니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 너...몇 년생이야? "

" 뭐? ... 천구백육십팔년생이지. "

" 나두..."

" ?......"

혜정은 주위의 다른 친구들이 들을 세라 조그많게 말했다.

" 나두 천구백육십팔년생이야. "

선희는 실패한 쌍커풀 수술로 사뭇 삐에로처럼 보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한참 혜정을 바라보았다.

 

선희는 준비물을  챙겨오는 법이 없었다. 짝궁으로서 함께 물감을 쓰거나 바느질 도구를 빌려주거나 하는 것으론 안 될 때도 있어서 혜정은 그를 대신해서 체육복을 빌러러 옆반을 기웃거려야 했다.

그의 날라리친구들은 그런 혜정에게 " 네가 선희 체육복 빌려다 주었다며? " 하고 친한 척 말을 걸어 오기도 했다. 그 애의 도시락은 누가 싸 주는 걸까. 혜정은 나중에 어렴풋이 그 애에게 새엄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불행히도 친엄마를 사별하거나 좀더 점잖게 이혼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어느날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드라마의 사연깊은 소녀들처럼 부잣집 딸래미도 아닌 것이 그 애의 옷차림이나 소지품은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 선희는 용돈을 조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도 보였다. 혜정은 소문처럼 그 애가 거칠거나 퇴폐적이거나 고약하지도 않다는 것,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른스럽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내심 정감이 갔다.  선생한테 맞으면 분해서 눈물을 쭉쭉 흘렸고 고맙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잘 했다. 깡패들 이야기에 흔히 나오듯 동급생들에게 삥을 뜯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한 번, 혜정에게 돈 있으면 좀 빌려달라며 집 근처까지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혜정은 얼마 안 되는 주머니 돈을 주면서 배선희가 함께 온 날라리 친구 앞에서 좀 창피해 하는 듯해서 자신이 가진 돈이 별로 없는 것이 적잖이 미안스러웠다. 그애는 아마도 친구들과 명동이나 아니면 나이트같은 데를 가려는 듯 했다.

어느 일요일, 선희가 자기네 동네로 놀러오라고 했다. 그 애네 집은 혜정의 집이 있는 동네의 옆에 옆에 동네여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애는 골목시장으로 혜정을 데리고 갔다. 혜정의 동네에 있는 시장과 다르지 않은 풍경의 그 곳, 어물과 나물과 과일, 정육점 등을 지나 구경을 하다가 길가로 내어놓고 조리해 파는 떡볶이, 오뎅, 순대, 튀김 등을 파는 가게 앞에서 선희는 먹으라고 했다. 혜정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게 우물쭈물 하며 그애의 곁에 나란히 서서 뭔가를 씹긴 했다.

" 왜 그래? "

선희는 짜증스럽다는 듯 눈을 흘겼다.

" 하나도 맛 없고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

그리고 나서 선희가 혜정을 다시 부르는 일은 없었다.

친하게 지내기에는 비슷한 구석이 너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혜정은 그렇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혜정은....그 애가 자기를 데리고 나이트에 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자기를 앞에 놓고 혼자만 담배를 피우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불량친구를 사귀면 그 불량스러움을 따라 배우는 것이 수순이 아니었던가?

이래서야 담임의 엘리트가 그 패거리를 벗어나서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저 아래의 성적을 기록하며 사춘기의 방황을 계속하고 있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혜정은 사귀고 있는 내내 그 애가 자신의 날라리친구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대하고 있다는 것, 다르게 말하고 있다는 것, 다른 것을 공유하고자 한다는 것 아니 자신의 영역에 혜정을 들여놓지 않고 있다는 것에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혜정의 그 애의 세계를 알고 싶었고 그 애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그 애가 자신을 통해 달라지기를 바랬다. 예를 들면 자신과 함께 공부를 잘 하는 성실한 학생이 되는  것 같은?

열 다섯살에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성공하는 성장으로 그 이외의 것을 상상할 순 없었다.

어쩌면 선희는 다른 성장을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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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중....

왜, 늘 항상 누군가에 집착하는 걸까...

이 집착을 버리는 것도 너무 힘겨웠지만, 버리고 나서의 공허함을 견디는 것도 만만챦게 힘겹다.

게다가 집착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도 집착하고 있던 한 사람의 영향 때문이었다...

 

쟝, 그니는 말끔한 신사였다.

하하하...이리 써 놓고 보니 더 말끔하게 느껴진다.

그이만큼 쿨하면서 진정성을 겸비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혹은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일치" 에 대한 운명을 느낀 적도 처음이었다.

소설 속의 연인들이 말하는 운명적인 만남이 무슨 뜻인지 - 로미오나 쥴리엣이 죽음을 불사하면서 혹은 안나 카레리나가 숭고한 희생으로 함께 하는 여정 속에서도 제대로 말로 표현한 적이 없으므로 - 그들이 왜? 그토록 상대를 갈구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그와 동조하고 공감하고 일치했기 때문에 운명을 느꼈다.

그는 팀의 리더였다. 그의 팀은 나와 다른 층에 위치했으므로 직접 그의 활약을 볼 순 없었으나 다른 리더들이나 사원들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호평되는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가 매우 공명정대하면서 상사에게 대범한 반면 동료들에겐 매우 온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의 업무처리능력도 뛰어나서 우등그룹의 사원들보다 150%이상 성취해내곤 했기 때문에 사원갈구기를 전문으로 하는 과장도 시빗거리를 찾지 못 해 입맛만 다시기를 반복했다.

또한 누구보다도 먼저 동료들의 고충을 세세하게 알아차렸지만 혼자서 조용히 도와줘야 할 지, 여럿이 함께 업무분담을 할 지, 상사를 방문하여 협상을 시작해야 할 지에 대해 그이만큼 정확하게 간파해내고 해법을 제안하는 이도 없었다.

당연히 그는 인기캡이었다.

그의 지인들은 오늘은? 내일은? 그럼 주말저녁은 어때? 하면서 술 한 잔 하기를 청했고 보통 2주 후까지도 그의 저녁 스케쥴은 꽉 차 있었다. 한 마디로 그는 술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것에 매일매일을 바쳤고 회사에서 가까운 한, 두 집을 정해두고 외박을 하였지만 다음날은 말끔한 모습으로 출근했다.

내가 그를 본격적으로 만난 것은 회사가 도산하면서였다. 아니 도산 직전에 인수합병되었지만 기존의 회사와 이후의 회사는 모든 면에서 일대쇄신을 보여주었기에 우리들이 수 년간 다녔던 회사는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회사의 새로운 경영과 관리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회의는 연일 이어졌고 뒤풀이도 계속 뒤따라다녔다. 자연히 그의 저녁 술자리는 한 곳으로 집중되었고 그의 술자리 파트너는 아니었지만, 회의석상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내가 일찍 집에 가지 않는 한 대부분의 마지막 차주...까지 지키는 그와 주석을 함께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그닥 교제범위가 넓지 않고 세 명이상을 한꺼번에 만나는 자리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나는 처음에는 뒤풀이에 자주 빠졌었다. 혹은 1차에서 돌아가는 초기그룹에 묻어 나왔었다.

그러나 어느날의 회의 이후 나는 술자리의 끝까지 남았다. 그가 회의에서 한 발언 때문이었다.

" 외부인 참석은 반대야."

그는 약간 망설이다가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항상 선배들보다 늦게 이야기하고 반론을 펼 때는 논지를 객관화시켜 목소리 높인 사람들의 기분을 감안해 주곤 했던 그였기에 좌중은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주의를 집중했다.

"조언을 구하는 건 괜찮지만 직접적인 참가는 아니라고 생각해. 주체와 연대가 구분한다고 구분되어지고 합친다고 합쳐지는게 아니쟎아. 각각의 위치에서 소통하는게 맞다고 생각해. ...회의 구조를 이분화시킬게 아니라면."

그의 마지막 말은 일타였다. 주창자들에게 미리 동조했었던 성미 급한 한 동료가 뭐라 말하려는 순간, 의장 역할을 맡고 있던 대표가 말했다.

" 물론이지. 회의 구조를 이분화시킬 수는 없어. 당연히 회의하면서 사회자가 두 명일 수도 없지. 이 얘기는 아닌 걸로 하고. 지금까지처럼 필요할 때 조언을 듣고 와서 전달해주면 참고하고 그러면 되지."

대표는 주창자들을 쓱 한 번 건너다보곤 바로 다음 얘기를 하자고 했고 이의는 제기되지 않았다.

나는 덕분에 불편하고 힘든 얘기를 하기 위해 입 한 번 벙긋할 필요가 없었다.

대표의 논거는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될 수 밖에 없을 꺼라는 상황을 직감적으로 수긍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기에 또, 그리될 것을 의도한 제안이었나? 하는 의구심을 순간적으로 솟구치게 하는 즉문즉답이었기에 좌중은 은연 숨을 죽인 듯 했다. 그 후의 회의는 소소한 의결 외에 대책에 부심하는 것으로 시간을 채우고 마무리되었다. 사람들은 고뇌와 걱정으로 시작한 회의를 피로와 짜증으로 치워버리고 술을 마시러 갈 생각에 흥을 돋워 새로이 기운이 나는 듯했다.

늦은 시간 때문인지 1차에서 대거 탈락하고 단골호프집에 모인 사람은 네 명 뿐이었다.

" 야, 아까 너 말 잘 했다. 내 입장상 걍 자를 수도 없고, 난감했는데 참... 갸들은 왜 그런지... "

대표는 남은 자들이 다 제 편도 아닌데 속내를 툭 펼쳐놓으며 쟝에게 말했다.

" 뭐? 뭐 말이야? 응? 그나 저나 취하네..나 오늘 어디서 잘까? "

신입사원 주제에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1과의 양호는 입사 초기부터 바람을 일으킨 독특한 스타일과 재담에다 유능함과 진보적 성향까지 겸비하였지만 그 성향이 논리적 깊이를 갖기에는 좀 역부족인 듯  눈치가 없었다.

 " 글쎄... "

쟝은 없는 사람들을 놓고 뭐든 말하기가 불편한 듯 대답이 시원하지 않다. 다혈질처럼 보이지만 눈치 백단으로 민심을 휘어잡고 있는 대표는 쟝에게 더 푸념하지 않고 화살을 돌렸다.

" 넌 어케 생각하냐? 그거. "

취해 있는 신입사원을 집으로 데리고 갈 냥인 듯 제 옆자리에서 소파 구석으로 쭉 밀어부치면서 대표는 흘끗 나를 쳐다보았다.

" 그렇지...회의 구조가 이분화될 수 밖에 없어, 보내고 나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니까..."

외부인의 주도대로 회의가 끌려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나는 속내를 슬쩍 덮으며 대표의 자존심에 기를 보태주었다.

"그렇지, 다시 얘기해야 하지, 결국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행동해야 하는 거니까...누가 책임지는데...다 내가 책임지게 될게 뻔한데 ! "

대표로 추대되면서 한 점 이의도 받지 않았지만 정작 자신은 늘 자리가 부담스러웠던 이대표였다. 누군가 정확하고 바르게 지침과 해답을 제시해 주면 좋겠지만 그건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일 뿐, 혼돈의 시기, 힘없는 우리들은 쪽수를 모아 권리를 지키는 데 무엇을 더 동원하고 어떤 행동으로 한 발을 내딛어야할 지에 고민만 많았다.

"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회사의 의도를 미리 알 수 있거나...."

이대표는 또 나를 건너다본다. 쟝이 아이디어를 내지 않기 때문일까?

" 연구소에 경영분석을 의뢰해보는 건 어떨까? 요즘 구조조정 들어가는 회사들에서 많이 하는 것 같던데?"

" 그런게 있냐? 너두 알아? "

대표는 쟝에게 확신을 구하듯 돌아본다.

" 응, 들어본 적 있어. 책도 나오던데. 아는 사람이 거기 연구원이 친구라고 했었는데."
과연 발 넓은 쟝, 바로 인맥의 힘을 발휘한다.

" 그래? 다음 회의때 의논해 보자. "

다음 회의에서 나의 의견은 별 근거없이 폄하되었지만 쟝이 찬성을 표시했고 다른 제안도 없었기에 일단 알아보자는 차원에서  연구소 상담을 받아보기로 하였고, 상담 이후 역시 다른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회사의 경영상황을 제대로 알아보자는 차원에서 경영분석을 의뢰하고 보고서를 받기로 하였다. 담당은 나와 쟝이 되었다.

쟝은 다른 동료들과 달리 연구소 뿐만 아니라 단체들과 조류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서로 아는 얘기들이 더 많이 오가게 되었고 회의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는 일도 더 잦아졌다.

나는 업무능력도 평균 이하였지만 사교성도 별로였고 두드러진 재능이나 매력도 없는 편이었다. 그저 착하고 성실하고 다소 내성적이었지만, 기존의 리더가 좀...싸가지가 없는 편이어서 내가 리더로 선출되었다.

나의 내성적인 성격은 왜소한 체구에서 비롯된 바도 커서 추우면 말이 없어지고 더워도 말이 없어지는 것으로 잘 견디는 편이었는데 내 옆자리에 있던 리더는 덥다고 연신 화를 내더니 초연해보이는 나를 보면서 나 때문에 더 열 받는 것 같다고 짜증을 냈다. 그의 짜증에 팀원들은 은근 불만을 쌓아가더니 해가 바뀌자 입사연수도 짧은 나는 리더로서 쟝과 함께 회의에 자리하게 되었다. 회의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업무를 만들어냈고 학창시절 글쓰기를 좋아했던 쟝과 나는 편집부의 주축이 되었다.

편집부란, 어느 기관이든 단체든 수작업이 많은 부서이고 강도는 낮지만 노동밀도와 빈도가 높은, 장시간 늘어지는 노동분야이어서 나는 쟝과 함께 해야할 크고작은 일들이 많았으며 길게 혹은  짧게 자주 만나야 했으며 오가는 와중에서 주고 받는 이야기도 늘어났다. 그리고 어쩌다 술 한 잔 하게 되면 과거사도 뭉덩뭉덩 들려주고 관심사도 시시콜콜 나누게도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와의 많은 면에서 닮은 점을 발견하였고 대부분의 사안에서 의견의 일치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리고 과거의 한 자락에서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운 충격 속에서 서로 같이 아는 지인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다그치고는 아, 우리가 같은 뿌리였구나 하는 걸 알았다.  

 " 그때, 장청대회에서 문산까지 행진했었쟎아. 대열도 컸지만 열기도 대단했었지. 그때 사회보던 사람이 말야..."

쟝은 내가 함께 공부했던 그룹의 선배와 같은 교회를 다녔었고 80년대말과 90년대 초의 거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깨진 보도블럭과 안개 속의 숨막힘, 눈물과 그리고 피로 물들었던 그 거리를 말이다.

그리고 그는 나와 같은 지점에서 비판을 시작했고 같은 사고와 인식 속에서 노선을 변경했다. 우리가 이십대의 후반에 같은 현장에서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후....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역경들은 천로역정의 그것이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세기에서 기업구조조정은 사회를 바꾸는 신호탄이었고 아이엠에프는 세태의 격변을 부채질하는 데 불과했다.

지금 그는 다르지만 여전히 열악하고 눈물많은 기층의 민중들이 살아가는 현장에 있고 나는 후퇴한 채 머물러있다. 일찌기 진보란, 역사가 필연적으로 나아가는 흐름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머무름이란 퇴보의 다른 이름에 다르지 않았으나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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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들

궁색했던 집.

항상 결핍을 느꼈던 어린 시절로 추억된다.

그 집이 있는 동네, 삼십년 전의 장위동이다.

벗어나기 위해 어른이 되고 싶어했던 십대를 벗어나자 마자

미친듯이 거리를 누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니, 단지 쏘다니고 싶어서 그러나 데먼스트레인션에 참여하고 있다는 훌륭한 이유 속에 숨어서.

 

집은 홈도 아니었고 하우스도 되지 못 해서 나는 가정이나 가족의 진정한 뜻을 사전적 의미 이상으로 실감해 보지 못 했다.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지를 묻는 톨스토이를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교도소의 독방 만큼의 사적 공간도 없는 초라하고 위험한 사춘기를 보냈다.

사흘이 멀다 하고 고함 소리 속에서 매맞는 엄마와 함께 귀뚤귀뚤 귀뚜라미 우는 연탄보일러가 있는 지하실에 숨어서 어둠과 벌레들로 인한 공포를 아빠보다는 낫게 여겼던 어린 시절이 지금은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초록색 기와지붕 얹힌 작은 단독주택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집, 아이들을 돌보지 못 하고 아빠와 가게에서 장사하기에 바빴던 엄마를 기다릴 수 없어 서툴게 라면을 끓여주던 오빠와 그 때도 말 안 듣고 늘 빗나가기만 했던 귀여운 구석 없는 남동생 사이에서 나는 성 역할 사회화가 잘 안 되던 아이였다. 줄창 혼자 놀고 혼자 싸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책만 읽었었다. 일어설 수 없이 천정 낮은 다락에 혼자 숨어 만화책을 보다가 다락의 작은 유리창을 깨고 아빠한테 뺨을 맞았던 일-아빠는 단지 깜짝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때렸다고 나중에 말했다, -컴컴하고 무서웠던 지하실,  늘 속 시원히 말대꾸 하고 더 시원하게 두들겨맞았던 엄마가 답답하기만 했던 일 그런 류의 기억들이 그 낡은 단독주택을 보면 생각난다. 그 집 주인이 구청의 지원금을 받고 담장을 허물어 그 비좁은 마당을 드러내 놓고 있기에 그 집의 추억은 더욱 잘 생각킨다. 그 지하실의 입구가 마당의 작은 베란다 아래로 음험한 그늘 속에 숨어서 나를 내다 보곤 한다. 그 집 앞을 지나는 게 너무나 싫다.

 

이십대의 중반을 넘기지 않고 나는 집을 나왔다. 몇 번의 가출 경험이 있기에 스물 다섯의 가출은 거의 완벽한 출가, 아니 분가 아니 자주독립의 수준이었다. 모아놓은 돈은 없었다. 그러나 내 가출의 이유를 너무나 잘 이해하는 오빠가 모아놓은 돈으로 허름한 월세방을 얻을 수 있었다. 오빠는 나의 몇 번의 다짐에 잘 부응하여 평소의 오빠 답지 않게 엄마아빠의 우격다짐에도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전의 가출에서 있는 곳을 추적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오빠를 완벽히 내 편으로 만든 것 만으로 내 독립된 생활이 지속될 수 있슴에 놀라워했다. 그 후로  장위동에 다시 돌아가는 일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었다.

그 집 앞을 지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온다. 어린이집을 갈 때는 차량을 이용하지만 올 때는 피아노 학원을 들러 오기 때문에 아이들을 직접 데리고 그 집 앞을 지나 조그마한 빌라인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

이 동네가 철거되길 기다리며, 철거시에 받을 이런 저런 이득을 건져보고자 주민등록의 실제 거주자임을 지키기 위해 장위동으로 돌아와있기 때문이다.

결국 궁색함이 나의 가정에서도 이어지기 있다는 말이다.  내 궁색함은 내가 남편으로 삼은 이의 지독한 가난과 그 가난에 습성화된 궁색함에 강화되고 더욱 강제되고 있다.

이렇게 몇 푼을 위하여 몇 년을 궁색한 동네에서 살 필요는 없는데....나의 아이들에게 나와 똑같은, 내유년의 궁색함이 여기 저기 묻어있는 낡은 동네에서의 생활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아니 더 나빠졌고 이건 우리가 이 동네를 떠나기 전까지 개선될 수 없는 생활환경이다. 철거예정지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천을 건너 야산으로 놀러다녔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자동차들 사이를 갈짓자로 걸어야 하는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서울의 변두리, 아이들은 놀 곳이 없다. 나도, 우리 아이들도.

한글도 모르던 나이 때부터 만화방을 들락거렸다고 엄마는 나중에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책이 있는 곳이 거기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그리고 우리 삼남매가 언제 집에 맘 편히 있을 수 있는 날이 있었냐고 속으로 뇌까렸다.

 

두 칸의 점포 안 쪽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다. 아니 거실처럼 쓰는 가게에서 바로 이어지는 작은 방 안쪽으로 길고 좁은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거실방엔 티비가 있었고 밥을 먹는 곳이자 엄마아빠가 잠자는 곳이었다. 다른 하나의 조금 더 큰 방이 오빠와 남동생이 쓰는 방이었으므로, 나는 엄마아빠가 잠자는 방 안쪽의 기다란 방에서 혼자 자야했다. 오빠는 고등학생, 나는 중학생이었다. 삼남매가 한 방을 쓸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고 엄마아빠의 잠자리 옆에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어린애도 아니었던 나는 내 방이 너무나 갖고 싶었다. 그 사무치던 욕구, 그 결핍과 단지 불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가난에 대한 분노는 사춘기시절 내 방을 갖지 못 함으로써 뼈에 사무치도록 각인되었다. 가난이 싫고 미웠고 저주스러웠다. 궁색함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근검절약도, 촌지를 받으며 대학을 가야한다고 너불대는 고등학교의 담샘도 증오스러웠다.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의 반감은 대학을 들어가자 마자 나를 데모꾼으로 만들었다. 자구발 하나만 읽고도 나는 완벽히 맑스주의자가 되었다. 이미 사춘기를 지나 십대말에 이르렀을 때 가난이라던가 가정의 누추함이라던가 불행한 가족관계라던가 하는 것에 영향받고 휘둘리는 것을 모면하고 다소 위험하긴 했지만 빗나가지 않고 무사히 성장했던 나는 사회과학과 내 개인사를 혼동하진 않았다. 그러기엔 나의 인문학적 소양이 너무 깊었다. 고교시절 실존주의에 심취했던 내게 꼬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 쉬웠다고나 할까.... 고교시절 제 2의 성을 읽으면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나는  사회과학세미나 써클에서 경제학, 역사학을 다 보고 정치사회학을 공부할 때 쯤 곁다리로 본 여성학 텍스트에서 시몬느 보봐르를 만나는 것에 너무 익숙해있었고, 고교시절 존경하는 선생님이 당신의 캐비넷을 열고 빌려준 마가렛 미드의 문화인류학관련 서적을  읽었던 내게 가족의 기원을 공부하는 것은 인식의 나선형 발전구조를 몸소 체험하는 형국이었다. 맑스주의는 내 유년의 결핍을 사회구조적으로 밝혀주었고 60년대 이농한 도시빈민이었던 내 아빠의 굶주림과 공포와 분노, 그리고 가부장적 폭력의 연원을 밝혀주었다. 이해했으므로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았다. 다만 비판적이 되었다. 나는 매우 비판적이었고, 이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으로서도 여성으로서도 제대로 올곧게 살아갈 수 없었으므로, 그 토대를 만드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내 삶의 내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운동...십년에 걸친 내 운동이 패배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동지들을 잃지 않았다면 아주 작은 조직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다면 내가 장위동으로 돌아올 일은 절때 없었을 터인데....

길을 잃고 돌와왔다. 마뜩챦은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그 점포의 방들은 다 없어졌지만, 그 가게의 한 켠에서 엄마아빠는 일흔의 나이에도 가게를 지키고 있다. 달리 할 것이 없으므로 말 그대로 지키고 있다. 못 먹고, 못 입고, 죽도록 고생만 하면서도 골병이 들도록 두들겨맞았던 엄마는 제대로 거동을 못 하신다. 가게에 커다란 평상을 놓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하신다. 그 가게의 위 층에 방 3개와 너른 거실이 있는 살림집이 있지만 엄마는 언젠가부터 그 이층으로 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 하게 되었다. 근검절약의 최후단계에 이르러서 엄마는 그 축저된 돈을 사용할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나는 분노한다. 내 엄마의 생을, 내 엄마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아부었던 아빠를, 그 가게를 아침마다 가는 것이 또 하나의 고통이다. 내 아이들의 어린이집 차량이 엄마아빠의 그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가게 앞에 서기 때문이다. 나의 궁색한 집이 있는 골목 안쪽까지 어린이집 차량이 들어오기엔 여기저기 처박혀있는 자동차들이 너무나 많은 철거예정지구이다, 장위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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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 이야기

혜정의 두번 째 이야기

이렇다 할 친구도 없이 여름이 갔다.

아니 마뜩치 않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을 함께 했던 새로운 친구를 한 명 사귀긴 했다.

그건 그 친구를 사귄거라기 보다 이미 다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그네들 속에 있느라 자신과의 하교길을 함께 하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의 단짝친구와 균형을 맞추는 의미에서 혜정도 다른 이와 함께 한 것 뿐이었다.

그니가 내게 이 정도밖에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그보다 넘치게 사랑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기울어지는 것은 위험했다. 그건 스스로를 상처내는 길이다. 그니에게 있어 내가 적당한 친구인 것처럼 나에게도 그니가 그 정도의 무게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혜정은 그니처럼 다른 친구를 사귀었고 그 애는 혜정을 단짝처럼 대하진 않았어도 꽤 절친한 친구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주었다. 화장실을 함께 가거나 교실을 벗어나 이동하는 주 1회의 예배시간, 체육복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가면서 곁에 붙어 함께 수다를 떠는 것 등등... 여자아이들에겐 일거수일투족에  의사를 주고 받고 혹은 목적없이 말들을 주워섬기면서 걸음걸음에 적어도 팔짱을 끼지는 않아도 팔꿈치를 스치며 동행하는 친구가 늘 필요했다. 그것이 보기에도 좋았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 애는 같은 분단이었고 한 줄씩 돌면 바뀌는 오른쪽 짝궁이었다. 청소시간 사건 후 왼쪽 짝궁은 더 이상 친해지지 않았고 그 애는 그애의 친구들과 혜정은 오른 쪽 짝궁과 의자를 끌어당겨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애는 착한 아이 같았다. 혜정이 상위권 그룹인데 비해 그애는 중하 정도의 성적을 가지고 있었고 비교적 비슷한 성적군의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교실분위기 속에서 그 애는 혜정과 친구하기를 기꺼워하는 듯 했다. 그리고 혜정은 뚜렷한 특징 없는 그 애를 그저 그렇게 친하게 지냈다.

그 우정은 한 철도 가지 못 했다. 어느날 그 애와 함께 하교하기를 그만 둔 후, 혜정은 혼자 긴 뚝방 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버스를 타도 30분, 걸어서 가도 30분 정도 걸리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그 절반 이상이 차도와 개천을 따라 이어지는 뚝방이었고 그 길은 불안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걷는 사람들이 계속 눈에 보이는 반면,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가까이 올 때까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혜정은 맘껏 공상의 나래를 펴고 혼자 골몰하며 걸을 수 있었다.

단짝을 잃어버린 후 혜정은 말할 사람이 없었고 비판하지 않는 마음으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열 서넛 아이들의 일상과 질투, 시샘, 성적이야기 등등을 의미없이 뇌까리는 그 마음 선한 오른쪽 짝궁을 혜정은 경멸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가 없었다. 어느날 일방적으로 외면한 것처럼 되어버린 오른 쪽 짝궁을 혜정은 아주 나중에서야 다소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오래 추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새로운 생활에 끝내 적응하지 못 한 혜정은 혼자 만의 생각과 시간과 생활을 이어나갔다. 점심밥은 어찌어찌 뒤에 앉은 아이와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 혼자서 쉬는 시간을 맞이해야 했다. 45분의 수업 사이에 있는 10여분의 쉬는 시간, 그 시간은 쉬는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아우성으로 수업시간이 채 끝나기 전에 시작되었고 다음 수업 종이 치고도 한참을 웅성거림 속에서 연장되었다. 매 교시 마다의 그 시간들, 그 시간들에 혜정은 하릴 없는 사람처럼 멀뚱거릴 수 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도 쉬는 시간 마다 책을 보는 습관이 있던지라 혜정은 쉬는 시간마다 소설책을 꺼내 읽어나갔고 소설을 읽는 사이 사이 수업에 열중했다. 문제는 책을 조달하는 것의 어려움이었다. 초등학교는 교실마다 학급문고가 있어 교실 뒤쪽의 긴 책장에 수 백권의 책이 있었다. 늘, 계속 계속 책을 읽고 있는 혜정에게 초등학교시절 아이들은 학급문고의 책을 거의 다 읽은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중학교에는 책이 없었다. 적어도 교실엔 없었다. 이 멋진 기독사립학교는 여중과 여상, 여고가 함께 있었고 붉은 제복과  견장의 금술을 휘날리면서 행진하는 고적대를 자랑했지만 도서실은 여고 교사의 한 쪽 귀퉁이에 있는 것을 사립학원의 모든 학생들이 함께 이용하고 있었다. 사실 주이용자는 여고생들에 국한되는 수준이었지만. 혜정은 도서실을 드나들면서 책을 빌리고 갖다주느라 분주했다. 온 아이들이 우루루 하교하는 시간을 피해 도서실에서 사씨남정기며 구운몽에 이르는 온갖 종류의 소설책을 읽다가 저물녘이 되어서야 혼자 너무 어두워지지 않은 뚝방길을 걸어 근자에 읽은 소설을 떠올리며 공상에 잠겨 집으로 걸어가곤 했다.

루이제 린저의 "슬픔이여 안녕" 때문에 혜정은 슬픈 마음을 계속 계속 유지하며 말없는 소녀로서의 중학교 1학년 생활을 지속해 갔다. 읽을꺼리를 찾다가 주워든 하이틴 소설에서는 모래밭의 사금파리만큼 어쩌다 한 번 심금을 울리는 러브스토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정서를 갖고 마음 속에서 조금씩 자라는 그 애에 대한 생각을 되새김질했다. 그냥 생각만 하고도 만족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단짝친구는 더이상 단짝이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동창생으로서 가끔 교실을 오갔다. 아니 여전히 혜정이 그니의 교실을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갈수록 가져오지않은 교과서를 빌리거나 체육복을 빌리러 내왕하는 수준으로 변해갔지만 그니의 교실에서 윤진의 모습을 보는 것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니의 반과 혜정의 반은 같은 시간대에 체육수업이 있었고 초등학교 동창생이 아닌 윤진의 모습을 찾고 나면 혜정은 계속계속 그의 모습을 주시했다. 그를 볼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혜정은사립기독학원의 모든 학생들이 다 한 곳으로 모이는 주 1회의 예배시간에 강당으로 가기 위해 교실을 일찍 나섰고 혜정의 교실보다 강당에 가까운 초등학교 동창의 교실에서 윤진이 나오는 것과 마주치기 위해 애썼다. 그보다 약간 뒤의 행렬에 있어야 그를 마음 놓고 바라볼 수 가 있었으므로.

키가 큰 그는 행렬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사람좋은 미소를 띠고 아이들 속에 있었고 결코 혼자 있거나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그의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안제리크에서 나오는 중세 유럽의 공자들처럼 보이는 단발머리, 그린 듯 단정한 눈썹, 큰 키에 돋보이는 날씬한 다리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하고나 잘 웃고 잘 어울리고 호쾌한 그의 풍모에 혜정은 날로 날로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와 같은 반이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친할 수 없는 운명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초등학교 동창생은 날이 갈수록 속물처럼 되어가서 그런 애와는 친구가 되지 못 하고 늘 허섭한 여자애들과 수다만 떨고 있었다.

아, 그 애는 왜 그 눈을 휘 둘러보아 나를 발견하고 말 걸어주지 않는 걸까....

바보같은 왕자님처럼 멀리있는 인어공주를 결코 발견하지 못 하고 그는 늘 눈앞에서 와글대는 여자아이들하고만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슬픔은 마치 자신의 운명이라는 듯, 혜정은 슬픔과 사랑의 정서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가을을 보내고 포근한 겨울을 맞이했다.

이 사랑을 어찌해야 할까....

혜정은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윤진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쳤다.....

 

 

 

 

 

 

 

 

음...............삘 받아서 좀 끄적여 볼까 했더니 귀가하시는 자녀님들땜에 더이상 못 버티겠네....젠장.....

근데  이건...동화라기 보다 청소년 소설인가....자전적 성장소설이랄까....근데 대사가 너무 없어서 원 당췌 흥미유발이 안 될 것 같네....합평회에 들고 나가면 사람들이 전부 수필 쓰냐고 할 것 같은데....

어케 대사와 사건을 집어넣어서...기승전결을 만들어서 소설처럼 만드나....아니...동화처럼 만드나....큰 일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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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들

옛날 옛날에

바닷가 작은 마을에

이녹 아덴이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이건 꽤 어린 시절에 들은 이야기이다.

책도 읽었지만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분명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마 6학년 때 였을 것이다.

나의 6학년은 꽤 괜찮았나보다. 50명은 기본으로 넘는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서 작지도 않은 6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담임선생님이 내겐 있었다. 아, 내가 57번이었다. 근데 키순은 아니었을것이다.

.

유년시절의 기억이 그닥 또렷하지 않은데 6학년 담임선생님이 여자였고 비교적 좋아했었고 (열두살 이후로 좋아했던 선생님은 한명 혹은 두명 뿐이다, 오히려  나는 선생님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졸업할 때 석별이란 노래 때문인게 크긴 하지만 무척 울었던 걸 보면 6학년 담임샘을 싫어하진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아니 나에게 있어선 국민학교인 그 시절에  아이들이 1년 내내 하루종일 보고 있어야 하는 선생님은 담샘 뿐이었으니 담임선생님을 좋아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인생이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추단하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6학년의 기억은 그것 뿐이다. 이녹 아덴을 들은 것.

친구들이라 하면, 단지 만화를 같이 좋아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조금 나눴을 뿐인 동급생이 하나 있었고, 별로 중요치 않은 친구가 하나쯤 더 있었던 것 같고, 매우 '중요한 타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벗이 한 명 있었다.

벗! 열 두살 즈음부터 그 친구를 알았고 사귀었고 그미에게 편지를 쓰면서 벗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었다.

그애는  열 두살부터 중학시절까지의 일기장에 거의 매일처럼 등장하는 친구였다.

 

 

혜정이가 학교 가는 날이다.

그냥 학교 가는 날이 아니라  중학교 입학하고 처음 등교하는 날이다. 바로 어제 입학식을 하고 담임선생님과 배정된 반의 교실만 보고 그냥 왔으니 수업을 받고 점심을 먹고 6교시가 끝나는 오후 세시까지 계속 있어야 하는 학교생활은 오늘부터 시작이다. 화요일인 오늘과 내일은 6교시지만 목요일은 7교시까지 있어서 네시나 되어야 교실에서 나올 수 있다. 

혜정은 한없이 우울했다. 오후 3시나 4시까지 자신이 들어간 반의 교실에서 나올 수 없다니...교실은 그냥 감옥의 다른 이름 같았다.  그 중에서도 독방이나 다름없는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과 기댈 곳 없이 막막한 공간이었다.

 

'6학년 때도 그애와 함께 있을 수 없어서 슬펐는데 중학교가 같은 곳으로 배정되어 뛸듯이 기뻐했던게 얼마전인데 이게 뭐람...1학년의 반이 왜 이리 많은거람....아이들은 왜 이리 많담.....왜 그애와 같은 반이 되지 못했을까...'

 

운명은 자신을 비켜가고 있다는 생각에 혜정은 너무나 우울했다.  중학 3년동안 그애와 같은 반이 될 날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2학년 때는 될 꺼라는 생각이 확신처럼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1년이나 남았다. 앞으로 1년 이라는 긴 시간을 그애 없이 학급 생활을 해야 한다는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그애의 마음이 내 곁에 있을까...'

 

왜 이런 생각을! 혜정은 도리질을 쳤다.

작년에도 같은 반이 아니었지만 매일 만났고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늘 함께 했고 거의 매일처럼 그애의 집에 들러 더 머물렀으며 일요일에도 곧잘 그애의 집을 찾아 함께 지내지 않았던가.

문득 지난 주 일요일에 그애의 집에서 함께 먹었던 맘모스빵이 생각났다. 달콤한 사과잼이 숨어있는, 보솜한 소보루가 듬뿍 얹어진 커다란 맘모스빵은 가로세로 네모지게 등분하여 그애와 나와 그애 오빠가 함께 먹고도 충분하여, 남은 걸 다시 봉지에 넣어 샛노란 금색테이프로 다시 잘 묶어 봉해졌었다. 그애의 집에서 우유 한 잔과 혹은 그냥 보리차 한 잔과 함께 먹는 맘모스빵은 정말 맛있었고 또 평화로왔다.

그애의 집은 학교와 혜정의 집 사이에 있었다. 말하자면 혜정에게는 학교를 가거나 오는 길에 지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혜정은 아침이면 조금 일찍 나와 가능하면 그애의 집 앞에서 그애를 기다리는걸 좋아했다. 시간은 조금 일찍이어야 그애가 대문을 나오지 않았거나 아담한 그집 대청마루에서 신을 찾고 있거나 하는 짧은 시간을 골목께에서 기다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혜정은 그 역할을 아주 좋아했다.

어쩌다가 그애의 집에 도착했는데 이미 학교에 가 버린 후 일 때도 있었다. 그땐 너무너무 속상했다.  그애가 먼저 가 버린 걸 나무라진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한 번 외에는.

혜정은 그러나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거꾸로 혜정의 집이 학교와 그애의 집 사이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코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특히 아침 등교시간에는 더욱이나.

중학생들은 한껏 폼을 재며 버스정류장에 옹기종기 모여 서서 웅성댔고 생전 처음 입는 교복들을 어색함도 없이 언니오빠들 사이에서 언제부터 중학생이었던 양 익숙하게 입고 나래비 서서 버스에 올라탔다.

혜정은 혼자 버스를 타고 혼자 어색함과 민망함으로 상기된 얼굴을 창 쪽으로 돌리고 섰다. 여중이 있는 곳은 버스로 네 정거장 정도였다. 다섯 정거장까지 가는 버스를 타면 교문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지만 기다릴 여유가 없는 상급생들은 학교 어귀의 큰 길에서 지나가버리는 버스를 타고 갔다가 내리자마자 교문까지 냅다 뛰었다. 교문에는 지각과 용모단정을 체크하는 학생지도부 선생님과 완장을 두른 깔끔외모의 선도부가 있었다. 때문에 걸릴 만한 뭔가를 숨긴 이들은 최대한 많은 인파가 교문을 통과하는 시간을 이용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혜정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버스가  지나는 길에 있는 또 하나의 중학교, 그 남자중학교의 학생들이 함께 버스를 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익숙해지지도, 관심도 가지 않는 이 오빠들이 마냥 눈에 가싯거리였다. 뭐 글타구 누가 눈길 하나 주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남자도, 여자도, 사람도 많은 것이 싫은 건지도 몰랐다. 혹은  혜정은 그냥 그애와 함께 할 수 없는 이 삼십여분의 등교시간이 하냥 싫고 또 싫었다.

쉬는 시간마다 단짝친구를 찾아 그애의 교실에 가게 될 것 같았다. 그애의 교실은 불행히도 복도의 맨 끝에 있었고  혜정의 교실은 반대편 끝이었다. 그나마 같은 1층에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을까, 2층에도 1학년의 11반과 12반이 있었다. 그 옆으로 2학년 교실이 이어지는 2층에 갈 일은 없었다. 혜정은 같은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아이들을 자기 교실에서 몇 명 발견하긴 했다.  아니 그네들이 서로 아는 척하며 물어보고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절로 알게 된 것에 불과했다. 혜정 자신이 아는 얼굴은 없었다. 친해보자고 인사하는 친구도 없었다. 혜정은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초등학교 내내 담임선생님의 통신란에 써 있었던 대로 침묵과 작은 목소리로 하는 최소한의 대답으로 중학교 시절을 시작하고 있었다. 3월, 이 다사로운 삼월의 하루 하루를 혜정은 단짝친구를 자주 볼 수 없음에 슳어하며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유년의 행복은 일찍 끝났다. 그 삼월이 다 가기 전 어느날이었다.

 

혜정은 다 친해지지 않은 옆자리의 짝궁과 수업 종료 후 청소시간을 함께 하고 있었다.  옆자리 짝궁은 혜정 이외에도 초등학교 동창이거나 한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벌써 친해진 같은 분단의 아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칠판을 지우고 있었다. 혜정은 자신이 속한 칠판 앞 교단 구역을 쓸고 대걸레를 찾아서 닦으려고 했다. 짝궁도 함께 속한 구역이었다. 분단의 다른 아이들은 각기 자신의 짝궁들과 함께 책상들이 즐비한 1분단 구역, 2분단 구역, 3분단 구역...그리고 교실 뒤쪽 구역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짝궁들과 함께, 같이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있는 아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칠판을 지우면서 낙서를 하고 지우개를 던지고 분필가루를 사방에 흩날리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바로 청소를 담당하는 분단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혜정은 그네들을 한심하게 생각했고 쉽게 경멸했으나 오래 생각키지는 않았다. 빨리 청소를 끝내야 귀임의 반에 갈 수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 아까 쉬는 시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우연하고도 다행히도 그애도 오늘 청소당번이었다. 혜정은 청소를 다 해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청소검사를 다 맡아야만 교실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바로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청소시간을 마냥 자유시간인 양 허비하고 있는 아이들이 미웠다. 밉고 미웠지만 구역마다 청소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짝궁없이도 거개 끝내가고 있었기 때문에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분단장이 빨리 담임선생님한테 가서 청소가 끝난 사실을 알리고 담임이 교실을 한번 둘러보러 오거나 아니면 그대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만 떨어지면 그 뿐이었다.

 

" 야, 이 지우개도 좀 털어와."

 

짝궁은 대걸레를 빨러 교실문을 향하는 혜정의 등 뒤에서 소리쳤다.

혜정은 내가 왜 ! 하고 속으로 외쳤다. 미간을 찌푸리며 뒤돌아보았지만 그닥 친하고 싶지 않은 짝궁에게 할 말은 아무것도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 너도 칠판 담당이쟎아, 내가 지웠으니까 니가 털어오라구. "

 

혜정은 뭐라 뭐라 조목조목 할 말이 많았다. 칠판은 이 교단 구역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구, 여길 다 쓸고 닦고 있는 내가 안 보이냐구, 내가 허리 굽혀 먼지 속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우리반의 2개 밖에 없는 대걸레를 교실 뒤쪽 구역의 아이가 가져가기 전에 교실 중간구역을 맡은 아이들한테서 받아오느라  얼마나 힘들게 눈치를 봤는지...얼른 빨아와서 얼른 닦고 가야 하는데...지는 한 것도 없으면서... 이 모든 말이 목구멍 안에 걸려 있었다.

 

" 야아...이거 가져가라니깐..."

 

짝궁은 힐끗 보고 다시 뒤돌아가려는 혜정의 등을 향해 지우개 하나를 가볍게 던졌다. 교실 문을 나가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혜정의 목 뒤를 스쳐간 지우개 덩어리는 가속도가 붙어 교실 문을 막 들어오는 윤 진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 어 ! 어...어어엇...!"

 

윤진은 키가 컸다. 지우개를 피하려던 윤 진의 어깨 즈음이 혜정의 코에 콱 받혔고 혜정은 아픔과 함께 그 곳이 코라는 사실, 코가 벌개져 우스울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왜 이렇게 억울한 지 모르게 눈물이 샘솟았다. 순식간에 아이들이 와 하고 몰려들어서 더 창피했다.

윤 진은 괜찮으냐고 물었고 짝궁은 지우개를 가슴에 안은 채 다가와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주워대며 당황해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혜정이 우는 모습에 깜짝 놀라 어떻게든 이 말수 적은 동급생을 위로해 주고 싶어했다.

 

"흑...흑흑흑..."

 

혜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이들의 팔 사이를 빠져나가 그 길로 자신의 단짝친구네 반으로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고 싶었지만 눈에 띌까봐 빠른 걸음으로 막 걸어갔다. 머릿속은 오직 그애를 만나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힘든 일을 겪고 있다고, 내게 이런 일이 생겼다고 호소하면서 혜정은 단짝친구의 위로를 받고 싶었고 사건을 공유하고 싶었고 그래서 보고하러 간 거였다.

 

'우리는 그날 그날의 모든 일을 서로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6학년 시절 같은 반이 아니어서 우리는 매일매일 쪽지를 썼고 쉬는 시간마다 쪽지를 교환했으며 처음 친구가 되었던 5학년 때의 같은 반 때보다 더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고 서로에게 할 말이 넘치지 않았던가.'

 

이런 정도의 큰 일은 당연히 단짝 친구가 먼저 알아야 했고 바로 그애로부터 먼저, 가장 크게 위로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길지도 않은 복도의 끝에 있는 그애의 교실까지 가려면 건물의 중앙에 있는 현관 홀을 지나야 했고 거기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많이 집중되는 것 같아서 혜정은 눈물이 멈추지 않아 더욱 벌개지고 있는 얼굴을 푹 숙이고 한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휙 지나갔다. 윤 진이 그 뒤를 따라 가고 있었다.  혜정의 단짝친구네 반 아이인 그애는 혜정의 반으로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러 오곤 했었다. 오늘도 청소시간이 어찌되었는지,  저의 친구를 보러 들어오다가 혜정과 맞부딪힌 것이었다. 키가 큰 윤 진은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남의 반 교실도 서슴없이 들어오곤 했다. 혜정이 늘 단짝친구네 반의 교실 뒷문께에서 뒷쪽에 앉거나 서 있는 누군가에게 예의바르게 누구 좀 불러줄래 하고 말하던 것과 달리.

단짝친구는 늘 자기 자리 근처에서 별로 떠나지 않은채 주위의 아이들과 떠들고 있었다. 교실 뒷문 쪽에 가까이 앉는 날이 아니면 혜정으로서는 목소리를 크게 내어 친구를 부르기가 어려웠지만, 키가 큰 윤 진은 어쨌든 뒷쪽에서만 맴돌았고 자주 혜정이의 부탁을 받게 되었으며,  받지 않아도 뒷문에서 빼곰히 고개를 내민 혜정을 볼 때면  큰 소리로 혜정의 친구이름을 불러제꼈다. 그애는 보지 않아도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으리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혜정의 관심은 자신의 단짝친구 밖에는 없었다. 혹은 단짝친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그 애를 좋아할 필요가 없었다.

 

윤 진의 반은 청소를 끝내고 담샘이 검사하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혜정의 단짝친구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애는 어쩌면 그리도 빨리, 그리도 많은 아이들을 친구로 사귈 수 있었을까...혜정은 그애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떠들고 있는데 자신이 불쑥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불편했다. 자신의 울어서 벌개진 얼굴, 벌개진 코, 흐트러진 앞머리에 가려졌지만 눈물이 그렁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단짝친구만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고 분했다. 자신이 왔는데 왜 그애는 뛰어나와 맞이해 주지 않는 걸까. 혜정은 여느때와 달리 교실의 뒷문께에서 멈추지 않고 친구를 발견하자 바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놀라고 있는 그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계속 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다른 아이들이 보는게 싫어서.

아이들은 갑자기 휙, 울면서 들어와  딘찍친구의 품에 안기는 혜정의 모습에 깜짝 놀라는 듯 했다. 그리고 뒤미처 들어온 윤 진이 상황을 설명하자 많이 아프냐고 걱정스레 물었다.

아픔 따위, 눈물 따위 그애를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 마자 단번에 잊어버렸고 그쳐버렸다.

혜정은 더 이상 자신의 단짝친구가 자신 만의 친구가 아니라는걸 뼈저리게 절감했다.

이 다사로운 봄날, 제 인생의 처음 사랑이 속절없이 허물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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