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던 그는
서운했던 것 같다
이제사 인터넷을 뒤져보고 안건데
여러 신문사와 기자들에게 <돌 속에 갇힌 말>을 소개하고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몰랐다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팔다리가 덜덜 떨렸고
마이크를 놓칠것만 같아서 자꾸만 손을 등뒤로 감췄다
맨 마지막 질문 외에 다른 질문들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도 않고
내 답변 따위는 아예 기억나지 않는다
참으로 무책임한 감독이 아닌가
그런데 맨 마지막 질문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노코멘트'라고 대답한 것이다
출연자가 얼굴을 가려달라고 부탁한 상황에서 턱 아래쪽만 촬영한 화면이 있는데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고 움직이는 걸 민첩하게 따라잡지 못해서
여러 번 얼굴이 노출되었다
출연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내용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대답하기 난처하니까 나는 그렇게 말해버린 것이다
그 때부터 진행하시던 분의 표정이 달라졌다
대화를 마치고 손님들과 한참 인사를 나누다가
뒤늦게 극장 문을 나설 때
담배를 피우던 그는 나를 보자 마자 호통을 쳤다
'수많은 대중 앞에서 감독이 윤리적으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정말 실망이다...'
나는 할 말이 없었고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폐막식을 하던 날
입장하기 몇 분 전,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더 호되게 지적했다
'영화는 잘 봤는데 만든 사람은 너무 실망스럽다'
'유시민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없다'
'유시민같은 정치적인 인물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회피하고 지나치게 방어적이다
유시민같은 사람보다 더 나쁘다'
'나중에 강의할 때 참고자료로 사용하고 싶은 영화였는데
감독을 만나고 나서 생각이 바뀌려고 한다'
'감독과의 대화를 100회 이상 진행해봤고 당황스런 경험도 많았지만
이번처럼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다'
'그리고 대화를 마치고 나서 어떻게 나한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느냐'
'뒤풀이 하러 가면서 같이 술 한잔 하자는 말도 못하냐'
'나도 당신만큼 성깔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휙 사라졌다
그의 표정과 어투에서 흥분상태가 느껴지고
너무나 감정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어서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아마 그는 그 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보다 더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 대해 너무 실망했나 보다
하여간...여러모로 서운했던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지적을 받을만 했다
지적을 좀 받아야 한다, 나처럼 서툰 사람은...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영화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만
단 한번, 단 30분만에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를 가지고
나에 관해, 한 인간에 관해 그렇게 규정해도 되는 것일까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격한 표현을 사용했을 뿐일 거라고
아마 다음에 다시 만나면
우리는 조금 더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일단 내가 잘못한 거라고 마음을 다잡고 있지만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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