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소주 한 잔'이라는 공연이 있었다
그 자리에 가기 전까지는 몰랐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를 위한 콘서트였다
'돌속에갇힌말'에 음악을 맡았던 지은언니가 가자고 해서
얼떨결에 따라나선 자리였다
최근에 나는 어쩐지 쑥스러워서
집회나 토론회, 콘서트 같은 데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다
누가 같이 가자고 해도 오랫동안 망서리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갔다
내가 움직였던 이유는 오로지 그 사람
'박향미' 때문이다
작년 겨울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지은언니와 그는 꽃다지에서 함께 일했던 선후배이자 친구다
그런데 그가 첫 독집앨범을 내고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지은언니는 그가 사라진 지 일년만에
동해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필요할만한 물건들을 챙겨서 차에 싣고 떠났다
그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던 시간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그저 옆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 여행에 내가 동행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대학로 소극장에서 노래하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되자 마자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에게 빚이 있었다
그 날 동해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시디 한장을 건네주었다
사인도 해주세요, 라고 말하자
나루 언니와 좋은 인연이 되길, 이라고 적어주었다
그리고 그 시디는
내가 영화 한 편을 간신히 편집하는 동안
든든한 응원가를 들려줬다
태어나서 가장 힘겨웠던 지난 여름
선풍기를 종일 틀어놓고 땀띠가 돋은 온몸을 긁어가며
봐도 봐도 낯선 '프리미어'와 씨름을 할 때
몇 번이나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을 때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던 파일들이 날아가 버렸을 때
나는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를
눈 앞에서 생생하게
그가 직접 부르는 걸 듣고 있자니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소름이 스물스물 기어오르다가
눈물을 감출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제가 서울을 떠나 동해에 있던 2년동안
좋은 일과 안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은...떡두꺼비같은 딸을 하나 낳았다는 것이고
안좋은 일은...그곳에서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하다가
오해를 받고 왕따가 되었다는 겁니다...
항상 옆에 있어서
그게 너무 당연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동지들, 친구들이 제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노래는 제가 저를 위해서 불렀습니다
전에는 제가 여러분에게 노래로 힘을 드렸다면
이제는 제가 여러분의 힘을 받고 싶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어떤 모임에서 독립한다는 건
한편 기쁜 일이지만 한편 착잡한 일이다
그는 꽃다지가 고향이고 거기서 행복했겠지만
아름답지 않은 추억들도 많을 것이고
우여곡절끝에 독집앨범을 만들었을 것이다
힘들게 만든 앨범을 제대로 홍보해보지도 못하고
혼자 객지로 떠나 혼자 아이를 낳아야 했던 일도,
그 아이와 함께 그 곳에서 투쟁현장을 찾아 노래를 하고
노래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다가
상처만 안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된 과정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으리라
그런 그가 허리까지 닿는 치렁치렁한 머리를 휘날리며
다시 무대에 섰다는 것이
그리하여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다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당신은 그의 노래를 들어보았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주저앉지마라'
혹시 그 노래를 구할 수 있다면 덧글 달아주세요
그리고 멋진 가수 박향미의 노래를 꼭 들어보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삶의 그늘과 그 그늘을 지워내는 시퍼런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당신도 분명 가슴이 두근거릴걸요
* 이 글을 작성한 뒤로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를 기획했습니다
관련된 다른 글들과 작업과정은 또 다른 블로그에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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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거 못 봤다. 문자 얼른 확인했으면 눈 오는 거 봤을텐데...나중에사 발견하고 창문을 열어보니 날씨가 말끔~하잖아..흑흑
"당신은 그의 노래를 들어보았나"
못들어봤는데요 주인님....
알엠/안타까워...글구 금욜날 난 밤새 송년회에 매진했다우...미안
평민/음...꼭 들어보세요, 민중가요 사이트에 있을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