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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다큐페스티발 기간에 여러 영화를 보다가

   두 작품에서 같은 음악을 들었다

   가편집시사회를 할 때 잠시 사용했던 음악이라 기억하는데

   <굿바이 레닌>이란 영화에 삽입되었던 곡이다

   한 작품에서는 원곡의 제목이 언급되었으나

   다른 작품에서는 사용한 음악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가끔 독립영화를 보다가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음악이나 자료화면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도 되는걸까

   혹시 내가 조느라고 자막을 보지 못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나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일이 있다

   <돌 속에 갇힌 말>에 자료화면을 삽입하면서

    화면 상단에 '자료화면'이란 자막을 넣었고 

    엔딩에서 자료제공자의 이름을 밝히기는 했으나

    어떤 장면을 얼마나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자료제공자들과 협의하지는 못했다

    이 부분에 관해 혹시 오해가 생길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기억나는 대로 자료에 대한 이야기를 한 판.

 

   

   



   <돌 속에 갇힌 말>을 취재하는 동안

    자료화면을 구하는 일이 참 막막했다

 

   2000년에 오마이뉴스를 통해

    '87년 구로구청 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이나 도움주실 분을 찾는다'고 알리기도 하고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인터뷰에 응해줄 수 있는 사람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한독협 게시판에도 여러 번 들락거렸고

    각 대학 총학생회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구로에서 활동하는 여러 단체를 찾아가기도 했고

    독립영화작업을 하는 선배들에게 수소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1년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개최될 즈음

    상영작 목록에서 '어둠을 뚫고 태양이 솟을 때까지'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88년에 구로구청부정선거 항의투쟁동지회에서 만들었던 영상물이었다

    그렇게 구하고 싶어도 보이지 않던 그 비디오가

    어디에 있다가 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걸까

    어떤 프로그래머가 이 작품을 상영할 생각을 했을까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고 고맙고 허탈하고 서운한

    복잡한 마음을 안고 일단 전주로 달려갔다

 

    당시 현장을 촬영했던 이**씨는

    영화제가 열리기 전에 이미 통화를 여러 번 했었고 만난 적도 있었는데

    당시 촬영테잎이나 완성된 비디오를 보관하지 못했다고 말했었다

    '그 비디오를 어디서 구했다고 하던가요?'

    나는 그를 만나자 마자 물었다

    '서울영상집단에 있었대, 나도 몰랐어'그가 말했다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그는

    '내가 촬영한 분량이 많긴 하지만

     당시 그 모임에서 인맥을 통해서 방송사 자료도 많이 구해왔고

     편집을 내가 직접 하지 못해서 내 작품이라고 하긴 좀 곤란한 작품이다

     게다가 나레이션 내용이 내 입장과 차이가 있어서

     나는 자료 제공만 하고 후반작업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라는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감독으로 초청받은 당사자도

     그 테잎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기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구로구청 항의농성 사건 이후 구속되었던 사람들이 88년 8월 이후 출소하면서

    '동지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었고 사건에 관한 비디오를 제작했었다

    92년까지 해마다 12월이면 구로에서 기념식도 열었다고 하는데

    나는 88년 겨울에 명동성당에서 그 비디오를 본 이후에는

    모임에 참석하지도 못했고 어디서도 비디오를 본 적이 없었다

 

    하여간 씩씩하게 전주에 가긴 했는데

    영화제 주최측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무조건 찾아가서 비디오를 좀 빌려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떡하나, 혼자 고민하다가 푸른영상 선배들을 만났다

    그 때 김태일 감독이  '어머니의 보랏빛 수건'을 상영했다

    뒤풀이에 따라가서 난감한 상황에 대해 털어놓긴 했지만

    그 누구도 별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었고

    그저 술잔이나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가 87년 당시 농성현장을 촬영할 때

    김동원 감독님의 카메라를 빌려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 카메라는 감독님 개인의 것이 아니었고

    '상계동 올림픽'이 해외에서 상영된 이후 외국의 기금을 받아서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그랬는데 그 사건 이후 그만 카메라가 망가져버렸다

    빌려준 사람은 죽다가 살아온 사람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도 없고

    빌려갔던 사람도 자신이 잘못해서 망가진 건 아니어서

    서로 어색해해다가 시간만 흘러간 것이다

    혹시나 해서  그런 대화들을 촬영하긴 했는데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오려니 답답하고 맥빠지던 기억이 난다

 

    전주영화제 이후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87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씨와 연락이 닿았다

    첫 통화에서 흔쾌히 인터뷰를 승락한 몇 안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질문 내용에 관해 메일을 보내고 인터뷰 준비를 하다가

    혹시 동지회에서 만들었던 비디오에 대해 알고 있는지,

    테잎을 가지고 있는지, 를 확인했더니

    완성된 테잎은 분실했는데 편집할 때 사용한 자료테잎은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를 만나러 가던 날,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새벽부터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방안을 서성거렸다

    드디어 자료화면을 구했다, 자료화면을 구했다...

    그 날 받은 것은 80년대에 방송사에서 사용하던 U-matic 테잎이었다

   

    그 테잎을 받던 당시 나는 작업할 공간이 없어서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VJ과정을 같이 수료했던 한 친구의 사무실에서
    월세도 보태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기생생활(?)을 하고 있었다

    테잎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어서 보고 싶긴 한데

    포맷이 달라서 도무지 틀어볼 수가 없으니 애가 탔다

    그러자 이 친구가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했고

    또 다른 동기였던 이**씨의 회사에서 재생이 가능하다는 걸 알아냈다

    그 두 사람이 몇 시간을 고생한 끝에

    U-matic테잎을 디지털 6미리로 전환해서 복사해주었다

    그 두 친구에게 늘 감사한다  

   

    시간이 흘러서 2002년이었던가 2003년이었던가

    광화문 미디액트에서 어느날 이 모 감독을 만났을 때

    '전주에서 상영했던 테잎을 이**씨가 가져갔다는데 혹시 몰라요?'라고 물었다

    2001년에 상영을 마친 다음

    이**씨가 그 테잎을 복사하고 싶다고 영화제측에 문의해서 빌려갔는데

    1년이 지나도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테잎을 내가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이상빈씨와 통화를 하게 되어서 테잎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곧 돌려줄거라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4년이 되었고

    한참 편집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씨가 테잎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이쿠, 내가 확실하게 받아왔어야 했던 건가

    부랴부랴 연락을 해서 퀵서비스로 받은 것이 3월이었던가 4월이었던가

    막상 테잎을 받아놓고서는 시사회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두 어달이 더 지나서야 서울영상집단에 보냈던 걸로 기억난다

   

    복잡하고 피곤한 작업과정, 하지만 서로 지켜야할 예의가 있다

    나도 아직은 미처 세심하게 둘러보지 못하는 일이 많지만

    이미 여러번 작업했던 분들이라면 앞으로 출처와 저작권에 관한 일로

    엉뚱한 오해가 불거지는 일은 없기를

   

      


2005/11/05 03:33 2005/11/05 0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