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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의 쾌거와 여성의 몸
     - 난자 이용한 줄기세포 배양


 윤하 기자
 2004-02-15 23:56:37 

 

며칠 전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보도 중 하나는 우리나라 연구진이 ‘인간의 난자’로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이 성공으로 지금까지 불치병인 당뇨나 치매, 그리고 심장병, 이식이 요구되는 여러 난치병들이 완치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그러나 보도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현재 수준은 그저 인간배아를 가지고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지, 이것을 각종 질병치료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줄기세포가 어떤 기관으로 분화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성공을 확신할 수도 없으며, 그것의 실험을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기간이 요구된다고 전했다.




한편, 이 보도에 대해 즐거움을 표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려의 목소리들 또한 높았다. 참여연대와 시민과학센터는 이들 연구자들이 얼마나 윤리적인 고민들을 했는지를 문제 삼으면서 앞으로 실험에 필요한 난자와 수정란을 둘러싸고 발생될 수 있는 매매와 불법적인 거래의 위험성을 예고했다.

 

나 역시 이들의 의견에 철저하게 동의한다. 이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난자는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될 것이다. 난자 산업, 그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아무리 기증에만 의존한다는 원칙을 정한다 하더라도, 이 실험을 위해 필요한 무수히 많은 난자를 구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난자를 사길 원할 것이며, 난자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가난한 여성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국여성들이 아니라면 국내의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이나 다른 가난한 국가의 여성들이 이 실험의 난자 판매자가 될 것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이미 제 3세계 여성들을 실험재료로 이용한 바 있다. 서구에서 사용허가가 나지 않은 주사용 피임약(ICs)이나 발암가능성이 있어 판매 금지된 피임약들이 제 3세계 여성들을 대상으로 실험된 것은 유명한 일이다. 더군다나 난자를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면 다양한 수술과정 중 난자를 도둑맞는 일조차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판적인 기사들, 그 어디에도 이 연구가 얼마나 여성의 몸을 함부로 다루고 있는지를 거론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듯이 연구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여성들의 난자’다. 난자의 핵을 떼어내고 환자의 체세포를 난자에 주입하여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이 연구 속에서 난자는 더 이상 여성들의 몸의 중요한 신체기관이 아니다. 난자는 하나의 실험도구일 뿐이며, 체세포를 배양하는 “생식물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나는 이번 생명공학의 쾌거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새로운 생식기술 하에서 여성들의 몸은 하나의 온전한 대상도 되지 못한 채, 떼어내고 검사하고 재조합하고 팔아먹고 빌려주거나 혹은 실험에 쓰이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말했던 독일 에코페미니트인 마리아 미스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녀의 의견이 좀 극단적이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지금 그것이 너무나 분명한 현실이라는 것에 놀라고 있다.

 

생명공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날,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극단적이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의 몸을 함부로 다루는 과학적 기획을 철저하게 거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를 ‘꼴통페미’라고 부르더라도 우리의 몸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꼴통’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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