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집 8-9페이지)
*87년 12월 18일
00:00
서울시장 염보현 진압예고 전화. 위기설 퍼짐. 경찰은 부정투표함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농성해산만 요구.
00:35
시민, 학생 약 2,000여명 "부정선거 규탄대회" 계속 진행.
00:40
소규모 국지전에서 2명의 부상자 발생.
01:50
"우리는 왜 농성투쟁을 감행하는가"라는 성명서 채택. 불법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전·노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최후까지 농성투쟁을 계속한다는 내용을 결의.
경찰은 전경차 약 70여개 배치.
02:50
선관위, 구로갑구의 개표를 을구에서 한다고 발표.
05:00
백골단, 경찰서에서 구청쪽으로 자리 이동.
06:30
구청 오른쪽 첫 방어선을 시민, 학생(우리측) 불지름.
06:35
전투경찰, 백골단이 지랄탄을 난사하며 전면 공격 개시
06:45
구청 밖의 규찰대 저지선 붕괴. 구청 청사 안까지 경찰병력 난입하기 시작. 투쟁 동지들 옥상과 지하실로 퍼짐. 순식간에 5층까지 진압당함. 시민, 학생들 연행되기 시작.
07:00
고척 1, 2동, 개봉 2동의 부정투표함 탈취당하여 을구 개표소로 이동됨.
07:20
쇠파이프를 든 백골단 옥상 1차 진입 기도. 옥상투쟁 동지들 필사의 각오로 투쟁을 전개하여 격퇴해 버림.
07:40
소방차, 앰블런스 집결, 전경들 구청 앞 사거리 등 주변 차단.
07:50
구청 밖에 운집한 시민들, 전투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1.5km 밖으로 밀려남. 투표함 옥상으로 이송. 강제진압시 분신하겠다고 함.
08:00
고가사다리차 3대 동원, 투신대비용 매트리스 설치. 옥상에서 100여명의 동지들 계속 투쟁. 옥상과 그 아래층에 화재 발생.
(당시 옥상에 있던 한 분의 증언에 의하면, 창고에서 신나가 발견되었고 이를 이용,
옥상으로 통하는 출입문에 불을 질러 백골단의 진입을 막아보려 했다. 다른 분의 증언으로는 농성가담자들이 직접 방화하는 것은 목격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 화재발생에 관한 동기와 목격담이 엇갈리고 있다.)
08:15
옥상 계속 화재. 옥상의 투쟁동지들 독재타도 구호, 애국가 제창 소형 태극기 흔듬. 바깥 시민들 이에 호응하여 '최루탄을 쏘지 말라'고 외치자 경찰, 무차별 최루탄 난사. 등교하던 고교생에게도 무차별 구타.
08:17
구청 밖의 시민들에게 최루탄, 지랄탄 난사하여 대부분 해산 당하거나 퇴각. 고가사다리차 동원하여 옥상에 물뿌리며 진압시작. 옥상 투쟁동지들 중 수명 투신.
(투신한 이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고 투신을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08:35
옥상에서 계속 투쟁 중. 투표함을 안고 분신하겠다고 함.
08:40
옥상에서 기왓장 계속 투석, 거리 주민들 '최루탄을 쏘지 마라' 등으로 호응.
08:44
잘 훈련된 백골단, 옥상에서 살인적 진압 시작, 직격탄 발사, 쇠파이프 등으로 무차별 구타. 투쟁동지들 최후까지 기왓장을 던지며 항쟁하다가 모두 진압당함. 항거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도 무차별 구타 후 연행함.
(조원봉씨의 증언에 의하면 직격탄에 맞아 부상당한 학생이 있었으며, 이 학생을
후송하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본인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여
병원으로 후송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료집 8페이지)
*87년 12월 17일
12:40
투표함을 밀반출하려 했던 사람을 붙잡아 공개 기자회견 가짐.
17:30
16일 밤 구청에서 농성을 하고 나온 구로지역 주민(반장) 허기수씨(41)가 부정선거에 항의 분신 기도,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나 중태라는 소식 들어옴.
18:00
문익환 민통련 의장 이하 간부들 농성현장에 와서 지지 격려.
20:00
시민 약 6,000여명이 운집한 상태에서 "선거무효화를 위한 서울지역 투쟁위원회" 발족. 이번 선거를 원천적 부정선거라 규정하고 선거무효화와 독재타도를 위해 범국민적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을 결의.
23:00
구청 앞 4거리와 구로경찰서 앞의 바리케이트를 중심으로 간헐적인 접전을 벌임.
*여기에 수록하는 사건일지는 1988년 4월 20일 발간한 <제5.5공화국과 구로항쟁>이라는 책을 기초로 하였으며, 인터뷰 결과 엇갈리는 부분이나 보완된 점은 괄호안에 기록한다. 이 책은 구로항쟁 이후 결성된 '구로구청부정투표함밀반출 항의투쟁중상자양원태후원회''구로구청부정투표함밀반출항의투쟁피해자가족협의회''구로구청부정선거항의투쟁동지회'등의 모임에서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자료집 본문 첫 내용, 7-8페이지)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밀반출 항의투쟁 일지
11:20
"부정투표함이 구로구청 현관앞에서 반출되고 있다"고 어느 아주머니께서 제보.
(당시 여의도 평민당사로 여러 차례 전화제보가 왔었다.)
당시 평민당원이던 박영환 외 수명이 구로구청으로 달려가 이미 두 대가 도주한 상태에서 서울 7다 7870 봉고트럭을 발견. 시민, 공정선거감시단원들 4~50여명이 합세하여 부정투표함 반출을 저지.
(구청앞에서 줄을 지어 투표 차례를 기다리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세하였다,)
13:30
구청 3층 사무실에서 투표위조 여부를 조사하던 시민 학생들에 의해 투표함 1개, 투표용지 1506개, 붓두껍 60개, 인주 70개, 손장갑 6켤레 발견
(박영환씨 등 몇 몇 증언에 의하면 투표함이 발견된 차량안에서 투표용지와 장갑 등이 발견되었다고 함)
16:00
공정선거감시인단, 평민당, 민주당, 선관위장 등 관련자들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염.
선관위장은 부정투표함 반출에 대해 자신이 지시내린 바 없다고 발표. 붓두껍, 인주 등은 10월 27일 국민투표시 사용한 것이라 변명하였으나, 발견 즉시 백지에 찍어본 결과 선명히 찍혀나왔음.
(구로을구 선관위과장 강실원이 기자회견과 집회 시 비합리적인 변명을 계속하였다.)
18:30
선관위원장, 부정투표함 반출이 불법임을 시인.
(이 시각, 국내 방송사 중 유일하게 부정선거 사례를 사실 그대로 방송하던 기독교 방송국은 기관원에 의해 방송이 중단되었으며 방송국 내부에서 농성중이던 학생들이 선배들의 연락을 통해 구로구청으로 이동했다. 방송국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전경과 경찰이 학생들을 폭행한 장면이 목격되었다.)
19:00
"평민당원이 합법적인 투표함을 탈취하였다"고 중앙선관위 성명 발표 이후 운집한 시민, 학생 5천여명이
'선거무효, 독재타도' 등을 외치며 부정투표함 즉각 개봉 및 당국의 공식적 해명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21:00
서울시 선관위원장의 "구로을구 개표를 타지역 개표가 끝난 후 개별 개표하여 부정여부를 가리겠다"는 전화옴.
22:00
구로구청 마당, 도로까지 1만여 시민들이 운집. 주민대표, 공정선거감시단, 학생대표, 지역대표 신부 1인 등으로 농성지도부 구성. 규찰대를 조직하여 농성장 주변 경계. 운집한 시민 1만여명은 '선거무효 독재타도' 등을 외치며 부정투표함 즉시 개봉을 요구.
(지역대표 신부 1인은 구요비 신부님으로 밝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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