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에 해당되는 글 7건
- 여의도 국보법철폐 농성에 참여하기 (4) 2004/12/23
- [펌]노라옥자켈러 <종군위안부> 2004/12/22
- 딴지일보에 실린 기사 2004/12/15
- 대전 상영회 홍보문 2004/12/06
- 사건일지-3 2004/12/03
- 사건일지-2 2004/12/03
- 사건일지-1 2004/12/03
이 추운 날씨에
매스미디어에선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대한 공익광고가 넘쳐나는 가운데
밥을 굶어가며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분들이 있다
가족과 따뜻한 집에서 선물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간에
국가보안법 철폐와 이주노동자 인권문제, 그리고 각종 정치적 사안들로 인해
사적인 모든 것을 유보하고 거리에서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지방 출장과 상영회 일정으로 정신이 없어서
여의도를 지나치면서도 마음만 아팠지 함께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에 전화를 했다가 문득
거기서 영화상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각종 영상물을 제작해서
영화제작비를 마련하거나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우리로서는
지금 당장 단식에 참여하기는 힘들어도
뜻을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방금 독립영화협회 회원인 한 사람과 통화를 해서
여의도 농성현장에서 영화상영을 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인권탄압에 관계된 영화는 많다
동참할 감독들도 많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늘 우리들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위해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와 소외된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단 며칠 만이라도
같이 영화를 보면서 서로 마음 훈훈해지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독립영화인의 농성참여 프로젝트
여의도에서 영화틀기
출발!
출처:여성문화이론연구소 자료실
http://www.gofeminist.org/Board/Content.asp?TxtCode=23271&Page=1&BoardCode=Board002
노라 옥자 켈러 <종군위안부 ( 1997)>
전지구적인 제국주의와 가부장적 식민압제 및 남성주의적 민족주의의 물결이 거셌고 거센 20세기, "아무런 이름이 없던" ("no name") "제3세계" 여성의 원혼들이 태평양을 건너와 딸들을 홀리고 그 딸들의 독자를 홀린다. <여성전사>의 작가 맥신 홍 킹스턴(이 사람은 확실히 대단한 작가다. 적어도 아시아계 미국 문학에서는 비포/애프터 킹스턴이라 할 만허니)이 "이름을 빼앗긴 채 자살해 간" 고모의 원혼이 떠돌지 못하게 글쓰기로 고정하여 달랬던 것처럼, <종군위안부>의 작가 노라 옥자 켈러도 떠도는 여성원혼들을 "고이" 떠돌게 냅두지 않는다.
킹스턴이 자기 고모의 혼령에 홀렸던 것처럼, 켈러도 어느날 하와이에 일본군 성노예의 참상을 증언하러온 황금주 할머니의 증언에 "홀린다." 글쓰기를 통해서 켈러도 한판 "굿"을 벌이며 비체화된 여성들의 원혼을 "달랜다." 이 텍스트를 "쉽사리" 큰 단어들로만 이야기한다면, 20세기의 제국주의와 여성억압(일본군 성노예는 한마디로 저 유태인들이 맨날 산업화하고 기억하려고 열라 애쓰는 사건의 용어를 빌어쓰자면, "성적인 홀로코스트"라 할 수 있겠지)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이겠지만, 참으로 복잡한 것이라 차라리 봉합하고자픈 욕구가 솓구쳐 온다.
어쩌면, 아니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젠더화된 억압(억압이란 기본적으로 젠더 억압이며 중층결정의 양식 또한 젠더화 양식이다) 하에서, 여성들에게 글쓰기는 한 판의 "굿"이자 (약한자의 강한?) 무기이며, 그러한 것으로서 글쓰기는 자신과 타자들을 치유하는(이것땜시 모한티는 벨훅스와 트린을 열라 까지만. 여성의 경험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가정을 의문시하지 않는 본질주의적이라고) 샤먼적 힘이 있는 것이라는 진부한 진리를 <종군위안부> 역시 예증한다. 켈러의 책은 여성의 몸이 가장 끔찍한 류의 비체가 되는 방식이 섹슈얼리티를 통해서라는 점 역시 드러낸다. 오, 휴/우매니티여, 섹슈얼리티여!
(참고루, 이 비체, 크리스테바가 말한 비체란 초국가적이고 다문화적이며 문화사 자체가 가장 강력한 설명틀이 되는 우리 시대의 종속화 양식이다. 미국 안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렇다. "법적으로는 느그들도 "우리" 국민이긴 헌데 문화적으론 외국인이여/'우리 것이 아니여'(alien)"함시롱 싸가지 없이 하이픈을 붙여 한국곕네 아프리카곕네 하는 하이픈화의 정치학. 이것은 또한 포용하면서도 배제하는 포용/억제(containment)의 술수이기도 하다. )
자원했던 (자원할 때도 너부리는 이미 후회할 것을 예견했었다......아아! 너부리의 욕망은 언제나 절제를 모르고 그리하야 언제나 후회와 부담을 무릅쓰는고야 마는) 발제 준비를 해야지만, 이 켈러의 "허구적" 이야기에 왜 그리 불편시련 것일까.... 마고약도 아닌 이 책은 가슴의 살을 후벼파고 도려낸다. 20세기 판 말뜻 그대로의 하트 오브 다크니스.
이 책은 픽션이고 문학적 재현일 뿐이다...하고 여러 번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하지만, 일본군 성노예의 역사! 진실!은 그저 (일본 정부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되풀이했던 대로) "과거지사"가 아니다. 이 문제는 전지구화의 압력하에서 점증적으로 악화된 채 갱신되고 있는 (초국가적) 민족주의라는 현금의 문제와도 복잡하게 교직되어 있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문학적 재현인 이 소설은 허구와 역사의 경계를 흐뜨러 뜨리고 우리에게 "불편"하라고 강요한다. 또한 이런 것으로서 이 책은 재현 일반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또한 내가 왜 한국계 여성 미국인 문학 작품을 학위 논문에 한 장이나 그 이상을 할애하고자 하는 개인적 문제도 생각하도록 강제한다.
20여개의 한국 페미니스트 조직이 만든 정대협의 줄기찬 운동/교섭으로 90년대 들어서야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그나마 어느 정도 사람들의 인식에 들어왔다. "진지한" 켈러의 이 책도 분명 이런 물결에 편승, 가세, 공헌했겠지만, 조지고 부시는 텍사스 주의 한 대학원 수업에서 읽자니 참으로 묘한 심정이다. 어찌보면 지정학적으로 구체적인 이 문제를 우리시대의 미국의 생활, 문화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런 일도 있었구나....쯧쯧...." 역사의 참상과 차이의 문제들이 대학 제도를 통해서 (이내 또 시들어갈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며) 담론적으로 "소비"되고, 출판 시장을 통해서 문화적으로 "소비"되는 이 미국에서, 텍스트 곳곳 너무나 한국적인 문화적 기호들이 지뢰처럼 박혀있고 한국/동북아 주체들에게 더욱 더 반향과 공명이 많을 이 텍스트에 문학 연구자로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어떤 참신한 언어와 새로와보이는 형식에 담아 "저들"과 나 자신을 위협할 것인가?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보편주의적 글로발 페미니즘에 저항하지만, 동시에 글로발 페미니즘의 우산 하에서라야 읽혀지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너부리는 "잘놀고"(playful), 해러웨이가 말한 "아이러니"의 불경을 일삼으며 재미를 좋아하고(fun-loving), 때로 탈젠더로 가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
그란데, 이 책은 이런 너부리의 발목을 잡는다.
20세기 후반들어 페미니즘은 지역, 국적, 인종, 성적 지향, 계급, 문화 등의 갈래를 따라 핵분열을 일으켜 왔다. 포스트구조주의가 차이들의 복권에 상당히 이론적 힘을 실어준 것 같지만 (철학자들은 항상 세상이 (자기들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고 믿는 바보들이다), 실상 이런 차이들의 핵분열은 차이들을 위계적인 사유에서 절단탈구시켜 다르게 구성배열하고자 하는 다른 삶들이 자신들의 욕망과 힘을 가동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켈러가 어머니-딸을 중심으로 소설을 썼던 것은 아마도 이런 차이의 핵분열(켈러는 이 핵분열의 가장 비체적인 뇌관을 재현한다)을 어머니로부터 딸들에게 전해지는 여성들 공동의 자산, 유산으로 삼을 필요성이 있으며, 그 역할을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위임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주 진부한 또 하나의 페미니즘 상식이 나온다: 재현이란 (알고보면 사이비인) 보편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sympathy)이자 "감정이입"(empathy)이니.
켈러의 아키코/순효 앞에서, 페미니즘 한다는 우리 역시, 또한 "잘들 놀고있는" 미국판 포스트모던 페미니즘들이 여성 섹슈얼리티, 몸을 살아숨쉬는 여성들의 피와 살, 육체적 삶의 현실에서 따로 떼어 관념적인/담론상의 차이의 항으로 만드는 작태에 적극적으로 공모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베카는 알게 된다. 자기 엄마가 겪었던 문제는 봉합해서는 안 되는 점이라는 점을. 순효의 녹음테잎은 위계적으로 봉합해도,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자 하는 (알고보니) 주체인 여성의 욕망과 삶이 그 위계적 봉합선을 넘어서고 튿어낸다는 것, 그리하야 딸들에게 봉합하지 말고 튿어내어 리좀적 주체가 되라는, 살아서는 주체됨을 부정당했지만 증언으로 주체임을 증명한 바로 그 산 주체, 허구상 "우리"를 끊임없이 "홀려대는" 유목적 원혼의 절규였던가. . .
이렇게 쓰고 나도,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왜 일본군성노예의 고통스럽고 끔찍한 역사를 다시 기억으로부터/증언으로부터 불러내어 쓰는가? 그리하여 왜 이토록 나를 불편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가?
차학경은 <딕테>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지금 그 모든 것을 부활시키냐고? 과거로부터. 역사를, 그 오래된 상처를. 오래된 감정을 또다시 말이다. 똑같은 어리석음을 다시 사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 지금 그것을 명명함으로써 다시는 망각 속에 잊혀진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라고 (원서, 33).
"위안부"질 당하느라 생긴 몸, 그리하야 정신의 상처를 정신분석학의 용어로 트라우마라 할 수 있는데, 트라우마란 일종의 "정신은 죽었으나 몸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하게되는 그런 패턴"을 지닌 행동을 하게 된다. (혹자는 이것이 전일본군성노예였던 할머니들이 무당이 된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아까 앞서 말한 종속화의 양식으로서 비체를 일본군 성노예라는 "성적 홀로코스트"의 경우와 연결해보자면, 이 비체를 문학적으로 재현했을때 사회적 침묵시키기(치욕과 민족의 자존심! 말끝을 흐리며 하는 이제와서...라는 레토릭에 숨은 끈질기게스리 남성주의적 민족주의(여기서 여성은 나라요 민족이다)의 욕망)를 초과하는 "말하고자 하는 욕망"(서발턴은 정말로 말할 수 있고 말한다! 보라, 저 할머니들의 증언을! 매주 교회가듯 꼬박꼬박 참여하시는 수요집회를 보라! 단지 우리가 듣지 않고자 무의식적인 척함시롱 싸가지 없이 고의적으로 안들으려 할뿐....)은 때로 유령적 형상으로 드러낸다. 왜 유령이냐고? 문학적 재현상 바로 그 초과/잉여를, 그 모든 구속과 억제, 억압을 뛰어넘는, <주체>로서의 행동*교섭능력과 욕망, 요구를 어떤 합리성과 정확성으로 재현한단 말인가? (<서발턴연구회>처럼? 글쎄....)
"배제와 비가시화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유령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다 (7) . . . 이 이야기들은 재현상의 실수를 고치지도 아니하며, 기억이(즉 역사가) 우선적으로 생산되었던 조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미래를 위해서 대항기억을 향해간다"(Avery Gordon
트라우마로 남는 몸, 그리하여 정신(pschy)의 상흔들은 유령처럼 출몰하는데, 이 때의 유령은 행동*교섭능력, 욕망을 지니고서 무언가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유령들이다. 켈러가 <종군위안부>에서 불러들이는 일본군 성노예의 유령적 출몰에서 우리는 이 출몰하는 유령들이 "피해자"였던 성노예의 지위에 의해서 부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목도한다. 비유적으로 죽은 아키코/순효는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온 세상에 대고 소리질러 고발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신의 "훼손된" 몸과 정신을 긍정하고자 하는 행동*교섭능력을 가진 유령적 인물이다. 유령은 실제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이며(not actual but real) 물질적 효과를 불러온다.
이 살아있는 유령들에게는 공식 역사가 숨기는 아카이브가 있는데, 트린 민하는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세계 최초의 아카이브 혹은 도서관은 여성들의 기억이었다" (Woman Native Other, 112)
----------------너부리
2004.12.15.수요일
딴지 편집국
12월 16일. 이 날이 무슨 날일까?
총수 생일도 아니고(비슷하긴 하다) 편짱이 첫 빠굴 뛴 날도 아니며 뒤져보면 이 날이 기념일인 사람은 부지기수일테지만 딴지에서 공지하는만큼 뭔가 전국민적인 버라이어티 기념일은 틀림없겠다.
힌트 하나 주까? 전재산 29만원의 채권제일주의자께서 워낙 위대(胃大)한 보통사람이라서 집안에 사과상자가 가득한 No통에게 구국의 결단을 하사하시어... 갖은 부정으로 친구 하나 대통령 만든 날 되시겠다.
감히 부정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는 사건. 구로구 주민의 투표의사와는 무관하게 쌩!뚱!맞!은 투표함이 몰래 옮겨지다가 딱 걸려서 온동네 사람들이 대략 1만명 이상 모여서 시위를 하던 사건. 일명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시위농성사건'이 있던 날이다. 명백한 부정의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싸웠건만 결국 살인마를 대통령이 되고 그 위대한 사과상자의 시대를 열어제꼈던 날.
구로구청이 난리가 났는데도 일체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만큼 극심한 보도통제 속에서도 제대로 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마음만으로 뭉쳤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잡아 가두었던 폭력. 폭력. 폭력. 그러나 비단 그 폭력은 몽둥이 뿐이었을까?
여기에 의문을 던진 인물, 그 진압의 현장에 있었던 당시 19세의 소녀는 1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사건. 애써 기억을 잊으려 노력하던 사람들을 찾아찾아 절대로 잊지 말라고, 그 억압과 폭력과 내분을 기억하라고 전달하고 있다.
무릇, 역사의 현장에서는 숙연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숙연해지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야... 원래는 12월 16일에 맞춰서 구로항쟁의 기사를 실으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기사보다도 시청각 교재가 될 작품하나 소개해올리는 코-너 되시겠다.
12월 21일 구로구민회관 오후 7시
무려 540석! 자리없다 걱정할리 없으나 무료인 관계로 연말 특수가 예상됨. 게다가 선착순 00명에게는 멋지구리한 포스터를 말아준다. 그리고 궁금한거 있으면 감독한테 직접 물어볼 시간도 있다.
혹여 80년대 폭력에 희생된 사람이라면 0순위 강추! 폭력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1순위 강추! 폭력의 경험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설레발이 길었다. 일단 예고편 함 때려 보신담에 내일 16일 퇴근길에 무료로다가 역사의 기억을 더듬는 경험들 함 해보시라. 이하는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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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본문에서 빠트린 상영 주최단체
진보생활문예지 삶이보이는 창
구로시민센터
구로건강복지센터
서울남부 민중연대
민주노총 남부지구협의회
민주노동당 구로갑.을.금천 지구위원회
- 제목 : 다큐멘터리 '돌 속에 갇힌 말' 상영
- 주최 : 민주노동당 대전광역시당 문화예술위원회(준)
- 일시 : 2004년 12월 13일(월) 19시
- 장소 : 근로자복지회관 2층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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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16일
6월 항쟁 이후 직선제를 실시했던 대통령 선거 당일
서울 구로구청에서 부정투표함 밀반출 사건이 벌어진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돌 속에 갇힌 말
(70분 / 다큐 / 기획.연출.제작: 나루)
2004 인디다큐 페스티발 국내신작전 상영작
2004 수원인권영화제 상영작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일 오전 11시 20분
서울시 구로을구 투표소에서 의문의 트럭 한 대가 발견된다
선거관리위원의 동행없이 투표함을 옮기려던 타이탄 트럭,
거기에 실린 봉인되지 않은 투표함,
그 투표함을 가리고 있던 종이박스들...
노태우 당선을 위한 부정선거 사례가
이미 전국적으로 발견되던 그 때
인근 주민과 학생들, 공정선거감시단, 평민당 당원들이 모여
사흘 밤낮으로 항의농성을 벌인다
이 영화는 그 날 그 사건을 복원한다
자료화면과 인터뷰를 통해
17년만에 되살아난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 사건'
그리고
그 사흘간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씁쓸한 증언들 사이로
농성에 참여했던 감독의 기억도 담겨있다
감독은 또 한 사람의 생존자로서
이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했으며
이제 그 기억에서 자유로와지기를 바란다
80년대를 상징하는 '돌'
그 속에 갇혀버린 우리들의 '말'
<돌 속에 갇힌 말>은
지금, 당신에게도
머리와 가슴과 온몸이 기억하고 있으나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은 없었냐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냐고
진지하게 묻고 있다
(자료집 8-9페이지)
*87년 12월 18일
00:00
서울시장 염보현 진압예고 전화. 위기설 퍼짐. 경찰은 부정투표함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농성해산만 요구.
00:35
시민, 학생 약 2,000여명 "부정선거 규탄대회" 계속 진행.
00:40
소규모 국지전에서 2명의 부상자 발생.
01:50
"우리는 왜 농성투쟁을 감행하는가"라는 성명서 채택. 불법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전·노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최후까지 농성투쟁을 계속한다는 내용을 결의.
경찰은 전경차 약 70여개 배치.
02:50
선관위, 구로갑구의 개표를 을구에서 한다고 발표.
05:00
백골단, 경찰서에서 구청쪽으로 자리 이동.
06:30
구청 오른쪽 첫 방어선을 시민, 학생(우리측) 불지름.
06:35
전투경찰, 백골단이 지랄탄을 난사하며 전면 공격 개시
06:45
구청 밖의 규찰대 저지선 붕괴. 구청 청사 안까지 경찰병력 난입하기 시작. 투쟁 동지들 옥상과 지하실로 퍼짐. 순식간에 5층까지 진압당함. 시민, 학생들 연행되기 시작.
07:00
고척 1, 2동, 개봉 2동의 부정투표함 탈취당하여 을구 개표소로 이동됨.
07:20
쇠파이프를 든 백골단 옥상 1차 진입 기도. 옥상투쟁 동지들 필사의 각오로 투쟁을 전개하여 격퇴해 버림.
07:40
소방차, 앰블런스 집결, 전경들 구청 앞 사거리 등 주변 차단.
07:50
구청 밖에 운집한 시민들, 전투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1.5km 밖으로 밀려남. 투표함 옥상으로 이송. 강제진압시 분신하겠다고 함.
08:00
고가사다리차 3대 동원, 투신대비용 매트리스 설치. 옥상에서 100여명의 동지들 계속 투쟁. 옥상과 그 아래층에 화재 발생.
(당시 옥상에 있던 한 분의 증언에 의하면, 창고에서 신나가 발견되었고 이를 이용,
옥상으로 통하는 출입문에 불을 질러 백골단의 진입을 막아보려 했다. 다른 분의 증언으로는 농성가담자들이 직접 방화하는 것은 목격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 화재발생에 관한 동기와 목격담이 엇갈리고 있다.)
08:15
옥상 계속 화재. 옥상의 투쟁동지들 독재타도 구호, 애국가 제창 소형 태극기 흔듬. 바깥 시민들 이에 호응하여 '최루탄을 쏘지 말라'고 외치자 경찰, 무차별 최루탄 난사. 등교하던 고교생에게도 무차별 구타.
08:17
구청 밖의 시민들에게 최루탄, 지랄탄 난사하여 대부분 해산 당하거나 퇴각. 고가사다리차 동원하여 옥상에 물뿌리며 진압시작. 옥상 투쟁동지들 중 수명 투신.
(투신한 이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고 투신을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08:35
옥상에서 계속 투쟁 중. 투표함을 안고 분신하겠다고 함.
08:40
옥상에서 기왓장 계속 투석, 거리 주민들 '최루탄을 쏘지 마라' 등으로 호응.
08:44
잘 훈련된 백골단, 옥상에서 살인적 진압 시작, 직격탄 발사, 쇠파이프 등으로 무차별 구타. 투쟁동지들 최후까지 기왓장을 던지며 항쟁하다가 모두 진압당함. 항거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도 무차별 구타 후 연행함.
(조원봉씨의 증언에 의하면 직격탄에 맞아 부상당한 학생이 있었으며, 이 학생을
후송하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본인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여
병원으로 후송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료집 8페이지)
*87년 12월 17일
12:40
투표함을 밀반출하려 했던 사람을 붙잡아 공개 기자회견 가짐.
17:30
16일 밤 구청에서 농성을 하고 나온 구로지역 주민(반장) 허기수씨(41)가 부정선거에 항의 분신 기도,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나 중태라는 소식 들어옴.
18:00
문익환 민통련 의장 이하 간부들 농성현장에 와서 지지 격려.
20:00
시민 약 6,000여명이 운집한 상태에서 "선거무효화를 위한 서울지역 투쟁위원회" 발족. 이번 선거를 원천적 부정선거라 규정하고 선거무효화와 독재타도를 위해 범국민적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을 결의.
23:00
구청 앞 4거리와 구로경찰서 앞의 바리케이트를 중심으로 간헐적인 접전을 벌임.
*여기에 수록하는 사건일지는 1988년 4월 20일 발간한 <제5.5공화국과 구로항쟁>이라는 책을 기초로 하였으며, 인터뷰 결과 엇갈리는 부분이나 보완된 점은 괄호안에 기록한다. 이 책은 구로항쟁 이후 결성된 '구로구청부정투표함밀반출 항의투쟁중상자양원태후원회''구로구청부정투표함밀반출항의투쟁피해자가족협의회''구로구청부정선거항의투쟁동지회'등의 모임에서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자료집 본문 첫 내용, 7-8페이지)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밀반출 항의투쟁 일지
11:20
"부정투표함이 구로구청 현관앞에서 반출되고 있다"고 어느 아주머니께서 제보.
(당시 여의도 평민당사로 여러 차례 전화제보가 왔었다.)
당시 평민당원이던 박영환 외 수명이 구로구청으로 달려가 이미 두 대가 도주한 상태에서 서울 7다 7870 봉고트럭을 발견. 시민, 공정선거감시단원들 4~50여명이 합세하여 부정투표함 반출을 저지.
(구청앞에서 줄을 지어 투표 차례를 기다리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세하였다,)
13:30
구청 3층 사무실에서 투표위조 여부를 조사하던 시민 학생들에 의해 투표함 1개, 투표용지 1506개, 붓두껍 60개, 인주 70개, 손장갑 6켤레 발견
(박영환씨 등 몇 몇 증언에 의하면 투표함이 발견된 차량안에서 투표용지와 장갑 등이 발견되었다고 함)
16:00
공정선거감시인단, 평민당, 민주당, 선관위장 등 관련자들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염.
선관위장은 부정투표함 반출에 대해 자신이 지시내린 바 없다고 발표. 붓두껍, 인주 등은 10월 27일 국민투표시 사용한 것이라 변명하였으나, 발견 즉시 백지에 찍어본 결과 선명히 찍혀나왔음.
(구로을구 선관위과장 강실원이 기자회견과 집회 시 비합리적인 변명을 계속하였다.)
18:30
선관위원장, 부정투표함 반출이 불법임을 시인.
(이 시각, 국내 방송사 중 유일하게 부정선거 사례를 사실 그대로 방송하던 기독교 방송국은 기관원에 의해 방송이 중단되었으며 방송국 내부에서 농성중이던 학생들이 선배들의 연락을 통해 구로구청으로 이동했다. 방송국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전경과 경찰이 학생들을 폭행한 장면이 목격되었다.)
19:00
"평민당원이 합법적인 투표함을 탈취하였다"고 중앙선관위 성명 발표 이후 운집한 시민, 학생 5천여명이
'선거무효, 독재타도' 등을 외치며 부정투표함 즉각 개봉 및 당국의 공식적 해명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21:00
서울시 선관위원장의 "구로을구 개표를 타지역 개표가 끝난 후 개별 개표하여 부정여부를 가리겠다"는 전화옴.
22:00
구로구청 마당, 도로까지 1만여 시민들이 운집. 주민대표, 공정선거감시단, 학생대표, 지역대표 신부 1인 등으로 농성지도부 구성. 규찰대를 조직하여 농성장 주변 경계. 운집한 시민 1만여명은 '선거무효 독재타도' 등을 외치며 부정투표함 즉시 개봉을 요구.
(지역대표 신부 1인은 구요비 신부님으로 밝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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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생각이에요~ 기쁜 성탄, 즐거운 한 해 맞으라고 글 적으러 왔다가 덧글 남겼어요.
근데 잘 안될 것 같다, 일욜날 첫 상영일정을 잡고 릴레이상영을 할 계획이었는데 담당자의 연락이 아직도 없다는...어떡하나
나도 그 이야기 듣고 당연 같이 한다고 했는데 그 이후에 연락이 없네요. 근데 오늘 집회장소에 갔다 왔는데 정말 요상한 분위기에 이상했어요. 열린우리당 깃발이 있었어요. 정말 어색했어요.
슈아/음...거기에 관해서 좀 더 알아봐야겠군...그리고 상영이 취소된 것에 관해 짧은 경과보고를 하려고 해...지금은 좀 정신이 없고 오늘 내일 안에 글 올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