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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상태도 영 그렇고, 집에 간 지도 오래 됐고 해서
나름 자체 휴가를 내어 집으로 왔다.
엄마 아부지도 보고싶고 우리 곤냥이도 궁금하고 해서.
해야 할 일들 무작정 그냥 다 미루고 쫄레쫄레 집으로 오는 길.
마음은 그리 편치는 않아도 어쩐지 신나기도 하고.
버스에서 내리니,
와,
공기가 다르다.
구질구질한 강남 구석의 먼지 가득한 냄새가 아니라
풀 냄새 나무 냄새가 난다.
심지어 바람은 시원한 정도가 아니라 춥다.
하지만 집에 오니 가족들은 다 어딜 가고 없고 우리 곤냥이만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더라.
그래서 영 심심하기도 해서 동네 주민 위주로,
아무 때고 연락해도 나올 것 같은 사람들 셋에게 연락해봤는데
모두 하필 오늘은 다 일이 있단다.
방에서 뒹굴뒹굴, 티비 보면서 늘어져있다가
괜히 입이 심심해서 피자도 시켜 먹고
(요즘 내 몸은 지난 달 못 먹은 음식을 다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이라도 있는지 정말 미친듯이 음식을 몸 속으로 쳐 넣고 있다)
그리고 배가 불러져서 동네를 한 바퀴 걸었다.
도무지 논현동 구석에서는 걷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환하고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동네,
밤에는 맘 놓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우범지대인데다가
빵빵거리는 차들, 택시들 때문에 앞만 보고 걸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 공기도 안 좋고 시끄럽다.
모처럼 걷는 우리 동네는 참 좋더라.
시간이 늦어서 조용하고,
바람은 시원하고,
차도 없고,
공기도 좋고,
사람도 없다.
한참을 걸으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기도 좋고,
여하튼 좋았다.
갑자기 현실 세계에서 다른 세상으로 뚝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
생각해보면 그렇게 멀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는데
왜 그런가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오늘, 도망치고 싶었는 지도 모르고.
아, 요즘은 왜 이렇게 모르겠는게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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