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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현현님의 [부끄러운 인생2] 에 관련된 글.

2007.03.28. 작성


0.

되는 일이 없는 날이었다.

날씨조차 도와주질 않아,

우박을 맞고 비를 맞았다.

아프고 추웠다.

 

1.

알티비 앞에서 일인시위를 했다.

알티비에 엑세스를 하는 방송팀으로서, 하기로는 했지만

사실은 이게 별 압박이 될 수나 있을까 싶기도 했다.

 

2.

그 한 시간 사이 일어난 일.

-로비에서 나가라는 경비 아저씨와 실갱이.

생글생글 웃으며 나가지 않고 버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감.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사건에 대한 한참동안의 대화

"말끔하게 잘생긴 놈이 왜 그랬대. 아유 나쁜놈. 그 놈이 이 안에 있어?"

 

3.



성폭력 사건이니 만큼,

피켓을 들고 있는 '여성'인 나를 바라보는 눈길도 만만찮음을 느꼈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쯧쯧, 혀를 차며 지나갔고,

어떤 젊은 여인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보고 피켓을 한 번 보고를 두 어번 반복했고,

결정적으로 어떤 사람이, 어머 너무 안 됐다, 저 여자,

라고 말했을 때

사실 울컥, 했다.

'이봐요. 내가 아니에요.'

내 마음은 어느새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서 있는 시간 동안 나는,

꽤나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왜 그 순간 나는 그녀와 나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꼈는가,

왜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가, 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은 그녀의 행실이 그러하여 그리 되었다, 라는 편견에

나조차 동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아주 뭣 같아졌다.

 

나에게도 성폭력 피해의 경험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일도 있고,

말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일도 있었고,

말했으나 이해받지 못했던(혹은 내가 그렇다고 생각했던) 일도 있었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결국 나의 태도를 반성해야만 했었다.

내가 똑바로 하고 다니지 않아서 그래,

내가 너무 사람들을 잘 믿었던 거야,

내 잘못이야.

나는 아직까지 그런 생각들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얼마전 한 친구에게 그런 경험들 중 하나를 이야기했을 때에도,

사실은 그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무서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차피 피켓 속의 이름 없는 그녀는

나이고, 그녀이고 우리다.

나 역시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을 당할 지 모르고

실제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두려움 속에서 산다.

그 날 내가 들고 있던 피켓 앞에서

내 얼굴과, 활짝 웃고 있는 이형모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내 얼굴을 보고 혀를 끌끌 차고 갔던 그 아저씨는, 어쩌면 평생가도 모를.

 

우울해도 기운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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