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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오는 날 아침

끝내고 싶지 않은 교섭 하나
현장 간부들의 성화에 밀려 마지못해 끝냈다.
잠정합의한 날에는
혼자서 다른 도시로 달아나서 밤새고,
끝내 조인을 한 날에는
그로 하여 울분이 가시지 않는
또다른 지부의 간부들에 둘러싸여 술을 푸고
내가 그 지부의 조합원인양 내 몫 이상 싸우겠노라고
약속 하나 내질렀다.
교섭이 막바지에 이르자
술만 마시면 취하는 지부장 앞에서
취할만큼 마시지 못하는
혹은 마셔도 취하지도 못하는
나는 비겁하다.
질긴 놈이 이기리라,
때론 끈덕지게 투쟁하는 것보다는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도 승리를 가져다 주느니 했건만,
버텨 본 자들은 안다, 기약없이 버티는 것이
싸우다가 힘이 딸려 꿇는 것보다
더 억센 투지와 깡다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이지도 않는 가공의 적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백골단의 폭력보다
더 크고 깊은 공포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아무리 도리질해봐도
우리가 시나브로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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